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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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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784g | 140*195*35mm
ISBN13 9788935670475
ISBN10 8935670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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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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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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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20세기 모던아트를 열었던 야수주의와 입체주의를 선두로 표현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그리고 20세기 전반의 주요 흐름인 추상미술을 다룬다. 추상은 데 스테일, 바우하우스, 아모리쇼, 앵포르멜 그리고 뉴욕 스쿨의 추상표현주의로 나눠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더니즘의 골격에 저항하는 포스트모던 움직임으로 팝아트와 누보 레알리즘 그리고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알아볼 것이다. 책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 모든 ‘이즘’들이 그들의 첫 전시를 통해 등장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전시는 미술의 역사에 등단하는 관문이자 희비극이 엇갈리는 전쟁터이고 미술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_ 10쪽

작품이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장(site)으로서 전시는 미술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역사적 현장이다. 서양의 현대미술사가 파리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전시체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파리에서는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를 선보일 새로운 전시체제가 마련돼 있었다. _ 13쪽

야수주의가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05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도톤》이었다. 《살롱 도톤》은 야수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선보인 첫 전시였는데, 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은 야수주의 작품으로 둘러싸인 알베르 마르크(Albert Marque)의 청동 조각상을 보고 “야수의 우리 속에 갇힌 도나텔로”라고 평하였다. 이 용어가 후일 야수주의를 명명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이다. _ 21쪽

야수주의와 입체주의라는 모던아트의 두 갈래를 이해하는 데에 그들의 모체인 세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야수주의 화가 누구에게나 세잔의 영향력은 컸고 그중 마티스가 색채를 중심으로 고전주의 맥락에서 세잔을 수용한 것은 위에 강조한 바와 같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방식에서 세잔의 회화를 해석한 것이 입체주의를 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는 브라크의 공이 크다. _ 47쪽

피카소의 작업과 ‘원시’ 부족미술의 관계는 1907년 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그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무도 찾지 않던 파리 트로카데로 민속박물관의 전시실을 방문했다. 또한 그보다 한 해 전인 1906년, 그가 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콩고 가면을 보았던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표현적 영감을 준 영향으로는 마티스의 〈푸른 누드〉(The Blue Nude)를 들 수 있다. 이는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의 자유로운 조형을 어떻게 그림에 구체적으로 나타내는지의 미적 표현방식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_ 56쪽

《앙데팡당》은 살롱 큐비스트들의 작업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첫 전시이자, 앞서 언급했듯 입체주의Cubism 용어가 발생된 전시다. 글레이즈, 메챙제, 레제, 르 포코니에, 들로네와 같은 작가들이 참여하였고, 전시는 이 그룹의 위원장 르 포코니에가 이끌었다.
이 전시의 오프닝은 하나의 열광적인 사건과도 같았다. 이미 장안의 화제였고 대중의 주목을 하나로 모은 전시였다. 큐비스트들의 작업은 제41전시실과 제43전시실에서 전시되었다. 그중 관심과 논쟁은 제41전시실에 집중되었다. 그러한 동요의 중심에 있던 작품들은 르 포코니에의 〈풍요〉(Abundance), 레제의 〈숲속의 누드〉(Nudes in a Landscape), 글레이즈의 〈플록스를 든 여인〉(Woman with Phlox) 그리고 들로네의 〈에펠탑〉(Eiffel Tower) 등이었다. _ 66쪽

표현주의는 독일을 중심으로 1905년에 형성되어 1920년대까지 지속됐다. 대상에 대한 시각적 관찰에 충실히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심리, 감정에서 발현된 의지에 따라 주관적으로 나타내는 미술의 방식이다. 여기에는 다리파(Die Bruke),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그리고 부분적으로 신즉물주의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_ 85쪽

1905년 6월, 다리파의 창립 멤버 네 명, 즉 프리츠 블라일(Fritz Bleyl), 에리히 헤켈(Erich Heckel), 에른스트 키르히너(Ernst Kirchner), 카를 슈미트로틀루프(Karl Schmidt-Rottluff)는 미술가 공동체가 제 기능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1910년까지 막스 페히슈타인(Max Pechstein), 에밀 놀데(Emil Nolde), 오토 뮐러(Otto Muller) 등이 합세하였다. 이후 1913년 베를린에서 그룹이 해체된 후에도 이들은 오랫동안 표현주의를 지지했다. ‘다리파’라는 명칭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을 잇는 하나의 밧줄이다. 심연에 놓인 밧줄…. 인간은 다리 지 목표는 아니다”에서 유래되었다. _ 87쪽

청기사파의 첫 번째 전시는 1911년 탄하우저(Thanhauser) 갤러리의 제4~6전시실에서 열렸다. 16일 동안 진행된 이 전시에는 여덟 개 도시에 사는 14명의 작가의 작품 43점이 전시되었다. 칸딘스키는 〈인상-모스크바〉, 〈즉흥 22〉, 〈구성 V〉 등 세 가지 범주의 작품 모두를 출품했고, 마르크는 〈노란 암소〉와 〈숲속의 사슴〉(Deer In The Foest II) 을 선보였다. _ 93쪽

이렇듯 20세기 초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된 표현주의 작품들을 탄압한 끔찍한 전시가 열렸다. 이는 역사의 격동 속에 미술사에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긴 전시로, 이른바 ‘퇴폐미술전’이었다. 나치는 표현주의를 포함한 모던아트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파괴했다. 그들은 순수하고 원시적인 정신성과 분방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것, 인간 내면에 잠재된 불안과 위선을 폭로하는 것은 비非독일적인 것이며, 타락과 퇴폐라고 단정했다. 이 전시로 인해 많은 작가들이 핍박받고 심지어 자살했으며, 소중한 작품들이 압수, 소각되거나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_ 115쪽

다다(Dada) 는 1916년 중립국이었던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에서 결성되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불안한 사회 속에서 기존 체제와 전통적 미학을 반대한 운동이다. ‘다다’라는 용어는 리하르트 휠젠베크(Richard Huelsenbeck)가 휴고 발(Hugo Ball) 과 함께 사전을 펼치고 그 위에 나이프를 꽂아 우연히 정한 용어다. 그들은 이렇게 발견한 단어야말로 이성적 계획이나 미학적인 범주를 벗어난 예술을 지향했던 다다의 정신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미술집단이라기보다 여러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다다는 취리히를 시작으로 베를린, 쾰른, 하노버, 파리 그리고 뉴욕까지 확산되었다. _ 127쪽

그런데 오늘날엔 이처럼 유명한 뒤샹의 〈샘〉이 당시에 제대로 전시되지 못했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이 작품은 본래 언급한 대로 작가의 가명 ‘R. MUTT’로 뉴욕의 《앙데팡당》(1917)에 출품되었으나 결국 집행부는 이를 전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 당황스러운 작품이 예술작품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그 기준에서 〈샘〉은 부적격이었다. 그런데 작품을 거부할 수 없는 《앙데팡당》에서 이 작품은 공식적으로 거부될 수 없었기에, 전시되지 못하고 칸막이벽 뒤에 숨겨져 있게 되었다. 뒤샹은 이것이 뉴욕에서 “나름의 잡음을 일으킨 소동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레이와 함께 이 “외설적인” 작품을 찾으러 그랜드센트럴 팰리스를 방문한다. 그리고 칸막이 뒤에 숨겨져 있던 샘-소변기를 결국 찾아내고 다수의 시선을 받으며 보란 듯이 이를 갖고 나온 것이다. _ 145쪽

1920년대 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시기에 다다와 더불어 미술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미술그룹인 초현실주의가 형성되었다. 느슨하고 산발적이었던 다다와 달리, 초현실주의 운동은 브르통을 중심으로 모인 예술가들 및 문학가들이 만든 상당히 조직적 집단이었다. _ 149쪽

1938년 1월, 파리의 보자르 갤러리에서 열린 대규모 《초현실주의 국제전》(Exposition Internationale du Surrealisme)은 초현실주의의 영향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14개 국가의 60명의 작가들이 참가했고, 229점의 작품이 출품되면서 《초현실주의 국제전》은 그 명칭 그대로 ‘국제적’이었다. 전시의 기획은 브르통과 엘뤼아르가 맡았고, 전시 전체의 설치는 뒤샹이 총 책임을 맡았다. _ 154쪽

《금세기 미술》은 1942년 10월 구겐하임의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다. 이곳은 본래 복층으로 된 의상실이었으나, 구겐하임이 프레드릭 키슬러(Frederick Kiesler)를 전시 디자이너로 고용하여 자신이 수집한 유럽의 모더니스트 아방가르드 작품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만든 것이었다. 《금세기 미술》은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다다 및 키네틱(Kinetic) 아트 등 유럽의 아방가르드 작품들을 미국에 전격 소개한 점에서 미술사적인 의미가 크지만, 이 갤러리미술관(gallery-museum)의 전시공간기획이 가진 실험성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_ 162쪽

《초현실주의 제1차 서류전》은 《금세기 미술》의 전시와 거의 같은 시기, 자세히 말해 그보다 일주일 앞서 개최되었다. ‘프랑스 구호단체 조정위원회’가 후원한 이 전시는 전쟁 포로를 위한 자선 전시였기에 미술관이 아닌 위원회 건물의 2층 홀에서 이뤄졌다. 비평가 헨리 맥브라이드(Henry McBride)는 당시 전시에 대한 논평에서 “전쟁 물자가 잔뜩 쌓인 건물 자체의 기이함이 초현실주의 회화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_ 168쪽

모던아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추상미술은 20세기 전반을 압도했다. 앞서 본 바대로 20세기 초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이후 191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추상의 움직임이 있었다. 모던아트의 주축을 이룬 추상미술은 다양한 문화적 토대 위에 결집된 미술그룹을 기반으로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기 전까지 활발한 담론과 전시를 펼쳤다. 현대미술에서 추상을 추구하고 실천했던 그룹들은 구체적으로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De Stijl),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프랑스의 앵포르멜(Informel) 그리고 뉴욕 스쿨이라 할 수 있다. _ 173쪽

데 스테일의 건축 모델과 스케치는 1923년, 한 달 동안 파리의 레포르 모데른 갤러리(L’effort Moderne gallery)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전시는 데 스테일의 첫 전시인 동시에 파리에서 열린 최초의 건축전이었다. …이 전시에 출품된 데 스테일의 건축작품 중 중요한 것은 반 두스뷔르흐와 판 에스테런의 건축 프로젝트와 리트벨트의 작업으로, 이들의 첫 번째 건축 프로젝트인 〈대저택〉(Hotel Particulier)과 두 번째 프로젝트인 〈개인 주택〉(Maison Particuliere)이었다. _ 194쪽

1923년 여름, 바우하우스의 첫 전시가 열렸다. 이는 창립 4주년을 맞아 학교체제를 정비하고 이제까지의 활동을 총결산하는 전시였다. 이 해는 앞서 언급했듯 바우하우스 교육이념과 방향을 전환한 해이기도 했다. 그로피우스는 ‘예술과 기술-새로운 통합’(Art and Technique-a new unity)이라는 전시 개막강연과 그 무렵 발표한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조직」이라는 논문을 통해 예술과 기술의 통일을 주장했다. 그는 기술이란 과거의 수공예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던 기술인 기계기술을 가리킨다고 밝혔다. 따라서 수공예 기술은 수공예가를 양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의 기술적 능력을 기르는 데에 있는 것으로, 수공예 교육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수공예와 공업은 서로 계속해서 접근하고 있고 공방과 공업 기업체와의 결부도 서로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바우하우스는 과거의 미술학교 및 공예학교에서부터 기계시대의 대량생산에 적응하는 산업디자인의 실천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_ 211쪽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의 공포와 고통을 실제적으로 담아낸 지극히 체험적 미술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초기의 전시로 앵포르멜의 대표주자 포트리에의 《인질들》(Les Otages)이 있다. 1945년 파리의 르네 드루앵(Rene Drouin) 갤러리에서 개최된 이 전시에서 포트리에는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소규모 그림 40개 이상을 일렬로 배치했다. 전쟁의 폭력과 정치적 압박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실제적으로 담은 작품들로, 그 파격적 표현과 반복적 형상은 관람자들에게 전쟁경험의 공포와 불안을 소환했다. _ 220쪽

뉴욕 스쿨(New York School)은 194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뉴욕에서 형성된 추상회화그룹을 일컫는다. 뉴욕 스쿨을 지칭하는 표현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 있는데 이는 종종 혼용되기도 한다.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는 제스처를 통해 유기적이고 다이내믹한 표현주의적 추상을 가리켜 ‘액션 페인팅’이라 명명했는데, 이후 추상표현주의의 유사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_ 255쪽

뉴욕 스쿨은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소개한 대표적 전시로는 《9번가 전시》(9th Street Show)와 《새로운 미국의 회화》(The New American Painting)를 들 수 있다. 그런데 《9번가 전시》가 열리기 전인 1950년의 봄, 9번가 전시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참여한 두 전시가 있었다. 이는 참고로, 그린버그와 마이어 샤피로에 의해 새뮤얼 쿠츠 갤러리에서 기획된 1950년의 《새로운 인재》(New Talent Exhibition)와 같은 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최된 《오늘날의 미국 회화》(American Painting Today)였다. _ 289쪽

팝아트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까지 풍미했던 소비주의와 대중문화에 기반한 미술의 움직임이다. ‘팝아트’라는 용어 자체는 1954년경 영국 비평가 로렌스 알러웨이(Lawrence Alloway)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대중문화에 기반한 미술작품보다 매스미디어의 생산품을 지칭하기 위한 말이었으나, 1960년대 초, 팝아트는 그러한 종류의 미술에 대한 통칭이 되었다. 만화책, 광고물, 포장, TV나 영화의 이미지 등 모든 것을 활용하면서 문화적으로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사이 경계를 흐렸다. 따라서 이 새로운 미술이 시사하는 바는 미술적 혁신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미술과 기존의 미술을 거부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고급’문화와 대중적인 ‘저급’문화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욕구와도 관련돼 있다. 이는 대중 이미지나 대량 생산된 공산품 등을 작품의 재료로 채택하여 대량 소비사회의 특성을 담아냈다. _ 305쪽

미국 팝아트의 대표작가인 워홀은 광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전문적 미술 경력을 가진 후 이를 순수미술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팝아트를 만든 작가다. 미국 팝아트의 대표 주자로서 그는 상업미술을 주로 하던 시절부터 생활 속의 모든 것들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표현방식으로는 대중 스타의 얼굴이나 대량 생산품을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을 활용해 기계적으로 반복 배열한 스타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처음부터 상업미술과 순수미술 사이의 경계에 있던 작가였다. _ 324쪽

1962년 미국 팝아트의 역사적인 전시는 뉴욕의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그 명칭은 처음부터 팝아트가 아니었다. 전시의 제목은 재니스가 프랑스의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와 함께 “새로운 리얼리스트들”(New Realists)이라 정했는데, 문자 그대로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을 그대로 번역한 말이었다. _ 340쪽

누보 레알리즘은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미술 경향으로, 1950년대 유럽 미술계를 지배하던 추상미술과 급변하는 소비사회 사이에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현실참여적인 실천을 특징으로 한다. 재현이나 감성적 추상이 아닌, 오브제나 물질적 재료를 직접 활용하며 퍼포먼스도 과감하게 실현한 전위미술 운동이다. _ 349쪽

누보 레알리즘 작가들이 각성하고자 했던 ‘리얼리티’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도시화되고,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팽배한 소비사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의 새로운 창작을 모색하고자 한 누보 레알리스트들은 사회적 환경을 ‘표상’(representation)하고자 한 게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는 현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현실을 직접 ‘차용’(appropriation)하여 ‘제시’(presentation)했다고 말할 수 있다. 레스타니는 누보 레알리즘이야말로 당대의 그 어떤 다른 동향보다도 사회학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누보 레알리스트들의 사회에 대한 접근방식을 “객관적 현실(reel objectif)의 직접적인 차용”이라 불렀다. _ 351쪽

1958년 4월 말, 파리 시내에 위치한 이리스 클레르(Iris Clert) 갤러리에서 클랭이 기획한 《텅 빔》의 오프닝이 열렸다. 전시는 제목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는 전시를 위해 모든 가구를 치우고, 진열장의 금속 프레임과 천장을 제외한 모든 벽을 흰색 물감으로 칠해 벽에 남은 다른 작품들의 흔적을 지워내며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 계획은 어느 날 밤 클랭이 레스타니, 아르망, 팅글리, 클레르와 모여 논의할 때 세워졌다. 클랭은 갤러리 전체를 회화적 감성으로 채우고 싶다고 말했고, 클레르는 그 전시의 제목을 ‘텅 빔’(Le Vide)으로 제안했던 것이다. _ 356쪽

1963년에서 1965년 사이, 뉴욕을 기반으로 한 일군의 작가들이 오브제를 다루는 독특한 3차원 방식의 미술을 선보였다.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이들의 작업은 일종의 추상미술이면서 극도의 형태적 단순함을 지녔으며 의도적으로 표현적 내용을 배제한 것이었다. _ 371쪽

최초의 미니멀리즘 전시는 1966년 뉴욕의 유대인 미술관(the Jewish Museum)에서 열렸다. 제목은 《일차적 구조들》(Primary Structures)로서 ‘미국과 영국의 젊은 조각가’라는 부제를 내건 이 전시에 42명 작가의 51점이 출품되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키너스턴 맥샤인(Kynaston McShine)은 새롭게 등장한 ‘조각’에 대한 최초의 대형 전시를 구성하고자 했다. _ 390쪽

이렇듯 서구 주체중심주의에 기반한 모더니즘을 비판한 모노하를 전시에 포함시킨 것은 《또 다른 일차적 구조들》의 전시 의도에 어쩌면 가장 의미 있고 적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 미니멀리즘을 서구중심적으로 인식하려는 것을 스스로 깨고, 글로벌 맥락에서 196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관계된 작업을 서구 밖에서 초청하여 함께 전시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미니멀리즘에 대한 논의를 국제적인 범주로 확대시킨 시도였던 것이다. _ 414쪽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란 작품의 결과물보다 작가의 창조적 발상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 된다고 보는 미술이다. 전통적인 미술관 전시와 미술시장의 매매구조에 저항하고, 미술의 본질과 역할에 관하여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은 ‘미술이란 무엇인가’ 또는 ‘미술이 무엇일 수 있는가’ 같은 근본적 물음에 다시 집중했으며, 그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논의는 1966년과 1972년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어 ‘개념미술’이라는 범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개념미술은 1960년대 말에 명명되나 그 조짐은 이미 20세기 초 뒤샹에게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 그의 말 “아이디어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이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_ 415쪽

시겔롭이 기획한 《1월 전》은 1969년 뉴욕 이스트 52번가의 매클렌던(McLendon) 빌딩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1월 전》은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그룹전시로, 시겔롭은 전시 설명문에서 “전시(전달되는 아이디어)는 카탈로그로 구성되고, (작품의) 물리적 제시는 카탈로그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전통적인 전시 형태를 거부하였다. 아이디어가 전시의 형식을 지배했고, 작가는 인쇄물 등 직접적 재료로 그의 아이디어를 드러내었다. _ 427쪽

1969년 3월, 개념미술의 역사에서 시작을 알리고 새 장을 연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가 스위스 베른(Bern) 쿤스트할레(Kusthalle)에서 개최되었다. 전시의 기획자 제만은 당시 스위스 베른의 쿤스트할레 관장으로 이미 실험적인 전시를 다수 기획했으며, 시겔롭의 『제록스 북』이 출간되었을 때 딜러와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제만은 전통적인 예술이 거부되는 세계적 추세를 관찰하며 더 이상 관습적 전시가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국제적 스케일로 파격적인 전시를 계획했던 것이다. _ 432쪽

최근의 미술은 포괄적 의미에서의 개념미술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개념미술의 영향은 근본적이고 그 효과는 어느새 우리의 시각에 스며들어 있다. 이제 우리는 미술작품을 볼 때 그 표현에 앞서 아이디어를 먼저 헤아려 보고 작품의 의미가 내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의미란 것이 내가 사는 시대와 연관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지를 고려하게 된다. 더구나 전시를 보러 갈 때는 어떠한가? 작가의 이름뿐만 아니라 전시의 기획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비단 전문가만이 아니다. 기획자의 창의력이 얼마나 새로운 전시와 미술작품의 의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획자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 것이 바로 개념미술 이후의 상황인 것이다.
미술은 우리를 보게 할 뿐 아니라 생각하게 한다. 1960년대 말 이후 미술은 아름다움보다 앎을 택했다. 미술은 이미 레테의 강을 건넌 것이다. _ 454쪽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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