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법은 다 주는 것이다. 상황을 따지거나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만 살 것처럼 다 비워내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나간 사랑은 우리 아이들을 통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설령 그 사랑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나의 사랑과 열정이 아이들의 삶과 성장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이미 채워진다. 100을 주고, 경이로운 순간을 통해 200이 채워져왔다. 그 살아 있는 감동이 나에게 또 다른 힘이 되고 더 큰 열정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다시 뜨겁게 사랑할 것이다. 남겨두지 않고 다 쏟아낼 것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뜨겁게 살아낼 것이다.
--- p.29~30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고 계획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 의견이라고 해서 허접하고 교육적이지 않을 거라고 간주하며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학급 회의건 학생 자치건 어떠한 형식이나 방법이 되었건, 아이들 의견을 귀담아 듣고 교육과정에 녹여내보면, 다른 선생님들의 교육과정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우리만의 교육과정, 우리 반만의 살아 있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리 반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 p.44~45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저마다 끼가 있고 배울 점이 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님이 되어주기에, 때로는 내가 제자가 되는 것도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우면 또 어떤가? 배움과 성장을 위해 때로는 부끄러움도 이겨낼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도 오늘 한 수 배웠다. 나보다 구구단을 잘 가르치는 구구단 선생님들을 보며, 나도 이 어린아이들에게 배워보려는 용기를 내보았다. 미술 시간에 색칠하기, 만들기, 종이 접기, 정리 정돈하기 등 아이들은 평소에도 나의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우리 반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배우는 중이다.
--- p.54~55
교사가 된 이후로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하얀 백지 위에 처음 점을 찍어 글자 하나를 쓴 느낌. 하얀 화선지에 검은 먹을 갈아 붓으로 글을 쓰려 할 때의 그 떨림, 너무 떨다 보면 먹물이 하얀 백지 위에 뚝뚝 떨어져 번지는 그 느낌. 그렇게 내가 알려준 대로 아이의 삶에 첫 글자가 그려졌을 때, 상상할 수 없는 떨림과 감격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
교사는 무엇으로 힘을 얻을까? 쉼? 여유? 자율성? 나는 무엇보다 교사는 감동을 먹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교실과 내 삶에서 아이(영혼)를 통한 이런 감동과 감격으로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서 가르친다.
--- p.62~63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남아 책을 읽던 아이가 내 앞으로 나온다. 며칠 전 여분의 이름표를 보고 내게 질문을 던졌던 그 아이였다.
“선생님, 왜 책을 이렇게 놓으세요? 책이 구겨지잖아요.”
“그러게, 오늘은 책갈피가 없어서…….”
“이거!”
아이는 며칠 전 내게 받아간 이름표를 자신이 읽던 책에 책갈피로 꽂아놓은 것을 자랑하듯 보여준다.
“선생님도 이렇게 하세요.”
그날 이후 그 후보 이름표들은 나의 책갈피가 되었다. 이 책갈피의 좋은 점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한 아이의 이름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이름표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 아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지만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 p.80~81
얼마 전 아이가 숙제를 한두 번 해오지 않아, 왜 안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숙제를 잘 해오던 아이가 깜빡 잊고 못했다는 말에 의아해하며 야단을 쳤다.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 아이는 혼자 있어야 하는 그 시간에 스스로 밥을 해 먹고 숙제도 스스로 해야 했다. 고작 아홉 살인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삶의 과업을 일찌감치 시작한 셈이었다. 이런 건 좀 더 늦게, 천천히 배워도 되는데 말이다.
내가 사는 집과 근무하는 학교가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내가 학교 옆에 산다면, 이 아이와 매일매일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먹고 싶다.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밥을 같이 먹고, 숙제도 함께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 p.113~114
방과 후 4시쯤, 어김없이 교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오는 아이가 있다. 어제도 그제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그냥 교실이 좋아서 왔다던 그 아이가 오늘도 교실에 놀러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아이가 먼 길을 걸어 집에 갔다가 다시 힘들게 학교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그리고 잠깐 선생님을 보고는 다시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에 대해 더 아는 만큼, 아이의 마음이 더 크게, 더 고맙게 보인다.
--- p.118~119
우리는 인생의 초년생이다. 처음 교사가 되면 교사 초년생, 사회 초년생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처음으로 가지면 아빠 초년생, 부모 초년생이 된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은 작가 초년생이고, 시를 처음 쓰게 되면 시인 초년생이다.
초년생의 삶은 낯섦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기대와 새로움의 시작이기도 하다. 교사로서 어떤 학년의 초년생이 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뜨거운 사랑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경이로운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 p.126~127
“저도 선생님이 꿈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안 될 거예요.”
평소 짙은 화장을 하고 헤어롤을 말고 다니는, 무엇보다 틴트 전문가인 이 녀석의 꿈이 선생님이라니 의외였다. 기쁜 마음도 잠시, ‘나 같은 선생님이 되지 않겠다’니 이건 기분이 좀 나쁜데?
“저는 선생님이 되어도, 샘처럼 그렇게 애들한테 퍼주는 선생님은 안 될 거예요. 이렇게 뭐 사주고 내 돈 써가면서 아이들한테 잘해주기는 싫거든요.”
아이의 솔직한 말에 한 번, 나를 그렇게 좋게 보았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마음이 흐뭇하다.
--- p.158
때로는 ‘번 아웃’ 될 정도로 아이들에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 소진해버릴 때가 있다. 소진된 에너지를 나는 어디서 다시 충전시키는가, 라는 질문의 답도 아이들에게 있다. 나를 다시 충전시키는 힘도, 나를 다시 일으키는 힘도, 바로 아이들이 주는 감동적인 순간들이 아닐까?
오늘도 방과 후의 뻔한 일상(학원, 공부, 피시방,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 멀리 펼쳐진 비 온 뒤의 구름과 무지개를 향해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힘을 얻는다. ‘경이로운 순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내 일상, 내 삶, 우리 아이들의 가까운 삶 안에 숨어 있지 않을까?
--- p.162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가르쳤다. 아니, 아이들은 스스로 실패를 경험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사회에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첫 실패를 맛보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실패를 미리 배웠다. 실패를 딛고 경이로운 순간(친구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딱 맞는 금액을 메운 감동)을 경험했으니, 다음번에 또 실패를 겪더라도 오늘의 경험을 경이로운 순간의 초석으로 삼을 것이라고 믿는다.
--- p.169~170
교과서, 아이스크림, 인디스쿨의 자료를 활용하니, 수업 안에 ‘교사로서의 나’는 없고 교과서 혹은 다른 선생님만이 존재했다. 그 수업에 나의 삶은 묻어나지 않았고, 아이들의 삶도 온전히 담겨 있지 않았다. 차츰 우리(나와 아이들)의 삶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업 자료 가져오는 것을 줄이기 시작했다.
우리 삶에서 가져오는 자료, 우리 삶에서 나오는 배움으로 나의 시선이 옮겨가게 되었다. 교과서를 펴는 일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사용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다른 선생님들의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일이 사라져갔다. 오롯이 우리들의 이야기 안에서 수업이 만들어지고 펼쳐졌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곳과 동떨어진 배움이 아니라, 우리 삶과 가까운 배움, 우리 현실과 가까이 있는 배움과 수업은 살아 있고 생동감 있다. 나의 수업이 이런 변천사를 겪으면서, 수업 안에서 ‘경이로운 순간’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 p.189
교사에게 학부모란,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멀리해서도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 학부모님은,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이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부모님의 삶도 작게나마 돕고 싶은 것이 나의 마음이다.
한 아이도 놓치고 싶지 않다. 아이 삶의 한 부분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도 돕고 싶다.
이것이 내가 늘 잊지 말아야 할, 뜨거운 마음이 아닐까?
--- p.326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교실은, 집 같은 따뜻함이 있는 곳이다. 깔끔하고 정리가 잘된,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다소 지저분하지만 내 집 같은 따뜻함이 묻어 있는 곳이었다. 아니, 어떤 아이에게는 집보다 더 편안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방학이 되면 ‘집처럼 따뜻한 곳인 우리의 교실’에 아이들이 한 명씩 왔다가 간다. 그저 그곳에 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 가곤 한다. 그곳의 따뜻함을 느끼고 마음을 녹이고 간다. 매일매일 방문한 교실에는 매일매일 왔다 간 몇몇 친구들의 편지와 쪽지가 칠판에 남아 있다. 한 친구가 왔다 간 칠판의 흔적에 또 다른 친구가 다른 글을 남기고, 또 다른 친구가 친구들의 글에 또다시 답글을 남긴다. 어느새 칠판은 우리의 방명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 p.329~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