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툰은 20대에서 30대로, 미혼에서 기혼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동안 남겨보는 허름한 표류기이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날이 빈번히 닥치지만 몸을 일으킨 이튿날이면 세상에 대한 잔정이 다시 움트는 걸 느낀다. 매해 더 묽고 넓은 존재가 되어, 내 바깥과 경로를 잘 응시하고 싶어진다.
의자를 빼면서 “가져가도 돼요”라고 묻는 사람이 되기 싫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그대로 밀며 승차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 혼자 있고 싶은 사람 곁에 붙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곁을 떠나는 사람이 되기 싫다. 고마움과 부당함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체구보다 작은 아이들과 동물들이 영원히 만만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이 30대를 통과한 독자들에게는 귀엽게, 30대를 앞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보이면 좋겠다. 골골이와 함께 이야기 사이를 거닐 산책자들이 이렇게 무식한 시행착오는 피하라는 안내 문구를 읽고 수상한 고랑을 돌아가길 바란다.
--- p.5~6
머리형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직원의 얼굴로 희미한 장난기, 끝 간데없는 불안, 내적 자아와의 싸움, 원죄의식, 어제의 꿈자리, 골똘한 직업관이 차례로 지나갔다. 떨리는 바리깡이 뒷덜미를 거쳐 귀 옆을 쟁쟁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의연한 척 윗니아랫니를 지그시 물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짧게 자른 모발이었다. 그가 가위를 내려놓자 머리통이 추워졌다. 크나큰 박하사탕이 된 것 같았다. 성탄절에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계줄을 산 가련한 아내 이야기도 떠올랐다. (중략) 직원이 스펀지를 들어 얼굴을 털어낸다. 아, 이게 실제구나. 물러설 곳 없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구나. 깨끗이 망했지만 괜찮다. 그래. 어울리지 않든 어울리든 잘라봐야 아는 것이다. 이건 내 결정이지 벌칙이 아냐(입틀막). 암, 내 편의가 타인의 평가보다 중요하지. 그런데 가운을 벗는 순간 몸이 굳는다. 직원이 소파에 앉아 있던 B에게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말을 건넨 것이다.
- 아유, 괜찮으세요? 남편분이 대단하시다.
머리카락을 자른 당사자는 나인데 그는 내가 제외된 구역에 씁쓸한 말을 던진다. B는 별안간 아내의 반삭을 허락한 관대한 인간으로, 나는 멋대로 오기를 부린 괴짜로 남았다.
--- p.13~15
- 남자도 가렸으면 좋겠어. 우리는 차도 난리, 안 차도 난리. 뭘 해도 오지랖이야.
- 사람들이 다들 남한테 관심 없는 건 맞아. 근데 내가 신경 쓰인다니까?
- 내 말이. 아직 나부터 의연해질 수가 없어.
유두가 부끄럽진 않았다. 다만 성가실 뿐이었다. 가슴 자체보다는 두 개의 지점을 꾸준히 의식하는 나와 남의 시선이 문제겠지. 스스로의 몸을, 몸 밖의 눈으로 본다는 건 오래된 악습이다. 그리고 몸의 특정 부위가 등한시되면 그곳은 부위가 되기 쉽다. 그렇게 신체의 일부가 줄곧 소외되는 건 서글픈 일이다. 기능보다 모양을 염려하라는 압박도 마찬가지로 몸을 분절시킨다. 그러다 보면 퇴근길 환승역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이나 무정하고 피폐한 태도로 자기 가슴을 보게 된다.
- ‘그거 가려.’
슈퍼에서 검은 비닐에 따로 넣어주던 생리대를 받아들 듯, 암묵적인 사회 규범어를 마찰 없이 알아듣게 된다. 낯설어 기이하다는 판단이 위험한 까닭은 그게 배제와 격리의 감각과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슴 근육 해부도에 왜 혐오주의 표시가 붙어야 하나. 동성의 몸은 지면에서 왜 늦게 접하게 됐을까. 인간의 몸을 남성 신체로 학습하는 데 익숙해지면 여성에게도 여성 신체가 충격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 p.24~25
그날 먹은 갱년기 장애개선제의 약효는 놀랍게 탁월했다. 약을 먹자마자 호랑이 기운이 샘솟아 근 50시간을 깨어 있을 수 있었다. 3미터쯤 되는 사다리를 날다람쥐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부터 이 약이 내 몸에 꼭 맞으면 실질적인 갱년기엔 어디에 기대지. 새벽녘, 열 살 어린 셋째 동생이 고민 상담을 해달라며 식탁에 앉았다. 19세 살이가 힘들다고 했다.
- 아홉수를 주의하라는 건 사실 아홉이 너무 좋은 숫자이기 때문이래. 좋은 수 3이 연거푸 세 번이나 겹쳐 있으니 위태로울 정도로 상승기운이라는 소리지.
- 뭔 소리야. 아홉수라 얼마나 고생인데. 언니는 열아홉을 대체 어떻게 넘겼어.
- 나? 사주 보니까 59세부터 말년 복이 좋대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지.
- 불쌍해. 오, 근데 그때까지는 살아 있는 거네.
20대를 넘긴 후로 새털 같은 날이 흘렀다. 이제 몸에 병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내 뇌가 고통에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리 걱정하고 겁을 먹어봤자 통증은 새롭고 강하다. 그러니 처방을 받고 심호흡을 한 뒤 오래 누워 있는 수밖에. 가능한 건강한 식단을 내게 제공하는 수밖에. 어제까지 쌓인 힘을 믿고 쉬어. 세상에 안 껴도 돼. 잠결 우주에서 나의 유한함을 조용히 격려하는 방법밖에.
--- p.46~47
아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늘 여기서 멈추게 된다. 세상에 태어날 아이도 중요하지만, 태어나 떠도는 아이들이 무수하다는 사실 말이다. 마음을 다잡고 B에게 입양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양가 어른들이 납득하지 않으리란 의견이 나왔다. 우리의 허약한 경제력도 함께 거론되었다.
- 그러니까 아이를 직접 낳아 기르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답변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B가 말한다.
-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아이와 지내는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구석구석 다 겪는 것 같아. 혹독하고 고통스럽고, 말도 안 되게 괴로울 때가 있지만 그만큼 변화가 엄청나지. 근데 아이 없이 지내는 사람들은 가을만 보내는 느낌이랄까. 포근하고 쾌적한데 어딘가 일정하게 한산한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 가을만 있는 거 엄청 좋지 않아? 부조리 체험, 다이내믹, 격변 그런 거 진력나. 게다가 우리나라 여름과 겨울이 거의 6개월씩인데 무슨 사계야. 평화롭고 싶어. 지리산 무박 등정 싫어. 둘레길이 좋아.
선선한 미풍이 도는 계절이 얼마나 짧고 귀한지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B가 뒷말을 보탠다.
- 가을 날씨 좋지. 근데 가을 뒤는 겨울뿐이잖아. 경로가 너무 짧잖아.
--- p.87~89
- 엄마, 여자가 담배 피워도 돼요?
입만 가리고 물으면 되나요, 다 들렸거든요. 옅은 두통에 눈을 지그시 감았을 때,
- 그럼! 되지, 왜 안 돼
질문을 받은 보호자가 이런 답을 외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정수리 뒤편으로 후광이 가득한 그를 쳐다보았다. 담배를 문 나를 발견하고 자식 눈을 가리시는 분도 있었는데(아이고, 딱 세 번), 전방 100미터나 떨어져 있어도 그땐 몹시 무안했는데.
어머니의 톨레랑스적 발언에 놀란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그날 이후 좋은 일로도 자주 놀라고 깨어나면서 쑥쑥 성장하고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리고 그 형제들 외에 다른 여아들에게도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모든 여자가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고. 엄마가 된 사람도, 할머니도 얼마든지 담배를 태울 수 있다고. 이모, 고모, 사촌언니, 선생님, 엄마 친구 중에 흡연 후 손을 씻고 이를 닦고 탈취제를 뿌리고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들어와 너를 안아 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 p.108
20대 학생들에게 본인의 엄마가 되기 전의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묻는 통계 결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밝고 환해 보이던 그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지 말라고, 자길 낳지 말라고 썼기 때문이다.
- 미래에 나는 없어도 되니까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제발 결혼하지 마.
나 역시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두 마디만 더 보태자면,
- 피임하면서 내킬 때만 연애해. 엄마 좋다는 사람 말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N년 후의 페미니즘은 엄마의 희생이나 자신의 경험이 동력이 되는 게 아니라, 단지 사회의 공통 윤리와 소양에서 성장하면 좋겠다고 염원하면서.
--- p.187-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