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말처럼 이 작은 섬 안에 온 세계가 있다. 세계의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살면서 그들의 문화와 음식을 이 섬 안에서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섬의 가장 큰 축복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찰스 디킨스는 델모니코스에서 열리는 뉴욕 프레스클럽 만찬에 초대를 받았는데, 델모니코스에서의 만찬은 그동안 미국에서 경험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에 디킨스는 기존 『미국 인상기』의 별책부록까지 만들어 델모니코스에서의 화려한 만찬과 환대의 경험을 기록했다고 한다. 한편 제인 커닝엄 크롤리Jane Cunningham Croly라는 여성 저널리스트도 이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프레스클럽의 간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 달여쯤 지나 크롤리는 델모니코스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조직 발족을 위해 점심 회합을 가졌다. 남성의 에스코트를 받지 않은 여성에게는 음식을 서빙하지 않았고, 가능하다 해도 술집 여성이나 창녀들로 간주되던 엄혹한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소로시스’였고, 최초의 여성 클럽으로 기록된다.
---「뉴욕 요식업의 새 장을 개척한 고급 레스토랑, 델모니코스 Since 1837」중에서
남와 티 팔러가 위치한 도이어스가Doyers Street는 중국 이민자들의 흑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민의 흑역사로 한때 유명했던 ‘파이브 포인츠5 Points’라 불리던 곳에서도 가깝다. …유럽 이민자들의 정착기 흑역사가 파이브 포인츠에 있다면, 중국 이민자 사회의 흑역사는 도이어스가의 ‘피의 모서리Blood Angle’에 있다. 골목이 거의 90도로 꺾이면서 시야가 막히는데, 기습하거나 기습당하기 좋은 골목이다 보니 아침마다 골목이 피로 물들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와 티 팔러는 그 험악한 시절이 조금 끝나 갈 무렵인 1920년대에 영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유서 깊은 중식당이다. 1920~30년대는 미국 금주법의 시대로 ‘스피크이지Speakeasy’라고 하는 주류 밀매 업소가 성행했다. 몰래 술을 팔다 보니 술집이 아닌 것처럼 위장을 하고, 어떤 곳은 암호를 대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최근 이곳을 중심으로 스피크이지 스타일의 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힙한 뉴요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피로 물든 골목에서 전통을 지킨 중국 얌찻집, 남와 티 팔러 Since 1920」중에서
‘소울 푸드Soul Food’나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라 하는 음식들은 음식 그 자체보다는 마음에서 오는 양념, 즉 추억이 더욱 그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 같다.
---「유대인의 소울 푸드 ‘크니쉬’ 호호 불어먹는 맛, 요나 쉬멜 크니쉬 베이커리 Since 1890」중에서
밀라노스 바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다이브 바Dive Bar’이다. 실제로 ‘Dive Bar’라는 상호명으로 영업을 하는 가게가 뉴욕 어 퍼 웨스트 사이드 지역에 있기는 하지만, 사실 다이브 바는 고유 명사라기보다는 특정한 분위기의 장소를 지칭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평판이 좋지 않거나 지역 사회에 해가 되는 동네 술집을 다 이브 바라고 했지만, 현재에는 지역 주민들이나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 한 잔씩 하는 허름한 동네 술집 같은 곳을 의미한다. 미국 술집에서는 단골손님을 ‘레귤러Regular’라고 부르는데, 이런 다이브 바는 항상 레귤러들로 그득하다. 특히 다이브 바의 단골손님들은 유난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른바 유명 작가에서 동네 좀도둑까지 모두가 단골이다. 다이브 바에서는 이들 모두 가 팔꿈치를 부딪쳐가며 비좁은 공간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술값만 지불할 수 있다면 술 한 잔 앞에 모두가 동등해지는 곳. 어찌 보면 가장 민주적인 곳이다.
---「만원 지하철처럼 북적이는 게 제맛인 다이브 바, 밀라노스 바 Since 1880」중에서
100년을 한결같이 사랑받는 가게들이 꼭 가족을 통해서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주인은 바뀌어도 그 분위기와 문화와 정신을 계승한다면, 그 역시도 역사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현재 오너인 샤사 노아와 잠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 가게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이 자리에 유명 브랜드 매장이 들어오게 해 임대료를 받는 것이 훨씬 더 이윤이 크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자리에 앉는 순간 150년 전의 정취가 밀려오는 펍, 페넬리 카페 Since 1847」중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중요한 아지트로 쓰였던 첨리스는 1928년부터는 본격적인 밀매 술집으로, 그것도 문학 살롱의 성격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초기 단골손님 중에는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에드나 빈센트 말레이를 비롯해 존 스타인벡, 존 더스패서스와 같은 작가들도 있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부인 젤다 세이어도 이곳의 단골이었다. 그들은 결혼식 날 자신들이 좋아했던 26번 부스에서 만취 상태로 정사를 벌였다는 소문도 있다. 이곳에서 헤밍웨이는 종종 술에 곯아떨어지기도 했고,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썼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증명되지는 않았다.
이 시대 이 장소에서 유래된 은어 하나가 있다. ‘에이티 식스eighty-six.’ 금주령 시대, 경찰의 기습단속이 있을 거라는 소식이 몰래 흘러나오면 바텐더들은 손님들에게 도망갈 것을 미리 귀띔해 주는데, 첨리스에서는 ‘에이티 식스’가 손님들에게 바로 자리를 뜨라는 신호였다고 한다. 즉 단속반이 몰래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오니 베드퍼드가 86번지로 난 문으로 도망가라는 의미로 ‘에이티 식스’를 외쳤다.
---「성공이 고픈 문인들이 목을 축이던 바, 첨리스 Since 1922」중에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이 지난 1919년, 이 호텔의 음식점이 유명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어떤 한 모임 때문이었다. 특정 목적을 위해 결성된 단체도 아니며, 어디에 등록된 단체도 아닌, 그저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모인 사교모임이었다. 몇몇이 모여 점심을 먹었던 것이 새로운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합류하면서 자연스레 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주로 풍자와 해학, 냉소가 담긴 대화들이 길게 오고 갔다. 모임 참석자들은 이 모임을 ‘악순환Vicious Circle’이라고 불렀는데, 모임의 성향이 재치있게 반영된 별명이었다.
---「뉴욕 문화를 지배했던 사교 모임 ‘악순환’의 아지트, 앨곤퀸 호텔의 라운드 테이블 Since 1919」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