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계약하고 은행을 찾을 때 확인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들처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덜컥 겁이 나고 막막해지는 것도 많았지만 하나씩 차례대로 겪고 손으로 만지다 보면 금세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겪어보니 별거 아니더라.’ 이게 쌓여갈수록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중략) 물어볼 형이 없었던 그 시절의 내가 이 이야기들을 듣는다면 뭐가 많이 달라졌을까. 아니, 자기 삶은 결국 자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만큼 알아갈 뿐이다. 다만 조금은 겁이 덜 났을지도 모르겠다. 아, 겪어보면 별거 아닌가 보구나. 그 정도 얘기만 옆에서 누가 들려줘도 힘이 나는 순간들이 참 많다. 이 책이 그런 목소리였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겪어보니 별거 아니더라」중에서
혼자 산다는 건, 집을 나왔는데 ‘보일러 껐나?’처럼 아차 싶은 일이 있을 때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난 꽤 쓸데없는 수고를 자주 하는 편이다. 몸에 밴 습관들은 말 그대로 몸에 배어 하는 일이라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습관은 참 잘 들였다. 가스 밸브도 쓰고나면 제때 잠가두고, 집을 나설 땐 당연히 문을 잠근다. 잠그고 나서도 잘 잠겼는지 문고리를 두세 차례 당겨보기까지 한다. 문제는 그래 놓고도 그걸 까먹는다는 거다. 너무 의식 없이 하는 행동이라서. 몇 주짜리 출장을 떠나려고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나와 신호등 앞에 서 있다가 퍼뜩, 문을 잘 잠그고 나왔는지 불안해진다. 심지어 여느 집이 그렇듯 우리 집도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는 도어락인데. 설마 그냥 닫기만 하면 잠기는 문을 열어놓고 나왔을까. 설마는 힘이 없다. 지금까지 항상 잘 잠갔어도 오늘 열어놓고 나왔다면 다 소용 없는 일이다.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다시 올라가 확인해 보면 역시나 문은 잘 잠겨 있다. 사실 이렇게 돌아갔을 때 문이 열려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에 열려 있으면 다 소용 없다니까.
---「1장 자립의 순간은 문득 - 맛없는 오렌지」중에서
스무 살이 넘어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순간 그동안 생각해 온 바로 그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상영관을 당당히 들어섰다든지, 술 담배를 보란 듯이 구매했다면 모를까. 이건 법적인 성인이 되었음을 만끽한 순간이다. 동시에 그들이 보아오던 어른과는 가장 동떨어진 모습일 것이다. 술 담배 사면서 우쭐하는 어른을 볼 일은 없었을 테니. 어디 보자, 내가 성인이 되고 처음 극장에서 봤던 19금 영화는 이병헌이 나오는 「달콤한 인생」이었다. 특별한 스토리는 없었고, 감독의 말에 따르면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끝까지 가는’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고 했다. 진짜 끝까지 가는 영화였다. 곳곳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총소리,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피 칠갑 파티에 기가 다 빨렸다. 같이 본 친구와 둘이 핼쑥한 얼굴로 극장을 나오며 우리 앞으로 19금은 보지 말자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성인용 영화는 봤지만 어른이 되진 못했다.
---「1장 자립의 순간은 문득 - 어른은 언제 돼」중에서
그럼에도 눈에 띈다는 것은 어쨌든 성가신 일이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낄 때보다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긴 머리로 인해 받는 관심은 언제든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크게 부담을 느낄 정도가 아니라 상관없지만, 만약 내가 이게 너무 싫다고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머리야 자르면 그만이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장애가 있어서, 피부색이 달라서 나갔다 하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귀찮으면 잘라버릴 수 있는 내 머리와는 다른 이유 때문에 눈에 띄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내 긴 머리에 향하는 시선에는 그저 호기심 정도가 섞여 있을 뿐이지만, 다른 이유로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는 섞여 있는 감정도 보통 다르다. (중략) 긴 머리의 남자도, 장애인도, 피부색이 다른 이도 혹은 그 어떤 낯선 존재도, 신기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어, 하고 눈길이 가는 거야 어쩌겠는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감정을 담아 지속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종국에는 낯설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 하고 눈길조차 안 갈 만큼 그러려니 하는 존재들이 되었으면.
---「2장 문밖으로 나가면 - 남자지만 긴 생머리입니다」중에서
일기나 숙제로서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야지, 하고 처음 생각한 건 중학교 때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는 『드래곤 라자』라는 판타지 소설에 빠져 있었는데, 그 세계와 인물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다 읽고도 소설이 끝났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아쉬움을 달래려 열두 권짜리 원작과 일곱 권짜리 속편까지 두 차례 세 차례 다시 읽다 급기야는 내 손으로 직접 뒷이야기를 써보겠다는 결심에 이른다. 마침 크고 작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였고, 그중 제법 큰 『드래곤 라자』의 팬 커뮤니티를 찾아 팬픽을 연재한 것이 본격적인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중략) 하루가 멀다 하고 신나게 써재낀 몇 년 동안 글쓰기는 감각의 영역에 들어섰다. 더 이상 커뮤니티에 소설을 쓰지 않게 된 뒤로도 그 감각은 유효했다.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을 모사하기 위해 뒤적이던 원전은 이제 내 머릿속이 되었다. 생각과 감정들이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정체를 알 수 없을 때 연필을 잡거나 키보드 자판에 손가락을 올린다.
---「3장 단단한 홀로서기를 위한 도구들 - 글쓰기의 감각」중에서
취향이 생긴다는 건 독립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엄마가 사주던 옷을 곧이곧대로 입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 요새 애들 이런 거 안 입는다고!” 소리 지르기 시작하면 어른이 되는 첫발을 디딘 거다.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묻는 말에 눈치껏 「이터널 선샤인」이나 「비포 선라이즈」처럼 대답하기 좋은 영화 제목을 대다가, 「트랜스포머」 같은 제목도 당당하게 대기 시작하면 정말로 남들 신경 안 쓰고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책장에서 취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사주던 전집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같은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책장에서,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한 필독서를 거쳐 비로소 관심사가 보이는 책들이 하나둘 꽂히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
---「3장 단단한 홀로서기를 위한 도구들 - 책장의 취향」중에서
살면서 부러워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칭찬에 마음껏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에이 아냐”라든지 “니가 날 몰라서 그래”라며 사연 있는 척하는 것보다, 씨익 웃으며 “사람 볼 줄 아네”라고 대답하는 게 건강한 쪽이란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진짜 겸손은 칭찬을 들었을 때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다. 그 순간을 누리는 것이다. 그 기쁜 칭찬을 한 번씩 떠올리며 이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애써보는 것이다. 깨닫긴 깨달았는데 지금도 잘 안 된다. 칭찬을 받으면 어색하게 웃는 게 나로서는 최선이다. 마음껏 기뻐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모님은 정중한 존댓말보다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뽀뽀도 하고 어리광 부리는 걸 더 좋아하신다. 서른이 한참 넘었지만 오히려 이건 이제 잘한다. 진짜 어른스러운 건, 어른인 척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4장 손이 더 멀리 닿을 수 있도록 - 겸손한 겸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