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다녀온 후, 또 큰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나에게 다가왔다. 바로 취업과 프랑스 유학이라는 갈림길이었다. 처음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면 더 어렵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한번 해외에 나갔다 온 경험이 있어서 유학을 선택하기는 더욱 쉬웠다. 그 당시 취업을 미루고서라도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은 갈망이 컸었다. 이미 호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계획했던 목표들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 번 더 도전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혹시 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다고 하니 가정이 부유하거나 뭔가 다르기 때문에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그곳에서 유학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 p.33
나는 파리에 여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닌, 꽤 오랜 기간 동안 살기 위해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파리의 유명 장소들을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맛집, 관광지에 대한 검색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파리는 여행지가 아닌 내 삶의 일부분이었고, 초기 적응을 하고 언어 공부를 시작하기에도 바빴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프랑스어를 어떻게 정복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먼저 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때 파리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 p.47
문제는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선생님이 프랑스 원어민이다 보니, 프랑스어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근데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때부터 무슨 말인지도 몰라도 집중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수업 후에 외국인 친구들과도 프랑스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 p.51
지금 생각해 보면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프랑스어를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프랑스어를 배우는 나의 목적은 학원에서 가르쳐 주기를 기다리며 학원 수료가 아니었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표현과 문법을 내 것으로 만들어 자유롭게 프랑스인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는 태도가 좀 더 적극적이고 열정이 타올랐던 것이다.
--- p.53
파리에 적응하며 프랑스어로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었을 때쯤, 나는 파리 시내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좋았던 점은 건축물이 하나같이 다 예술작품처럼 느껴졌고, 어느 길을 걷더라도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p.57
간단한 프랑스어 자기소개와 면접을 마친 후, 뜻밖에 기분 좋은 말을 듣게 되었다. 내 발음이 내 프랑스어 레벨 수준보다 좋고, 더 놓은 레벨의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5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역시 칭찬은 기억에 오래 남고, 기분을 들뜨게 하는 것 같다. 프랑스어를 접하고 7개월째 되던 어느 날, 스타벅스 면접에서 떨어진 이후 프랑스어 실력을 더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 p.68
점차 내가 일주일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늘어갔다. 오전에는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며 프랑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주말에는 전화 프랑스어를 하는 동시에 손님들을 만나며 프랑스어를 연습했다. 나는 최대한 프랑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려고 노력했고, 특히 억양이나 악센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나의 프랑스어 공부는 매일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
--- p.71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어 하나를 더 함으로써 하지 못할 때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느낀 것 같다. 외국어를 하나 더 한다는 것은 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그들의 생각을 직접 엿볼 수 있게 도와준다.
--- p.163
나도 처음 이러한 규칙을 알았을 때는 내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처음 프랑스어를 접할 때 어렵다고 느꼈지만 단기간에 프랑스어로 스타벅스 면접까지 보며 현지인과 2시간 가까이 대화를 했으니 열심히만 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p.167
나도 영어를 공부하며 형용사 + 명사 어순에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형용사가 뒤에 올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프랑스어를 처음 접하며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머릿속에는 새롭게 세팅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프랑스어 문장을 해석할 때도 명사를 보고 뒤에 형용사가 따라오는지 확인 후에 해석을 해야 했다. 기본적인 문장의 어순은 영어와 동일하게 주어 + 동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영어를 미리 공부해 놓은 것도 큰 도움이 된다.
--- p.173
물론 처음 접했을 때 프랑스어의 발음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열정과 끈기를 갖고 도전한다면 원어민과 비슷한 발음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외국어를 구사하는 면에서 발음은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기 때문에 발음이 좋다면 프랑스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뒤늦게 배운 나도 해냈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 p.187
통번역 업무를 하며 느낀 것은 프랑스어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 것은 한국어였다.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을 할 때, 한국어 표현이나 어휘를 풍부하게 알아야 전달할 수 있고 문체에 따라 더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겠구나 느꼈다.
--- p.232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살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디를 가나 정신만 제대로 차리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한 번 뿐인데 그 인생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 모르는 것을 배우며 깨닫는 것,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보는 것,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경험은 겪어본 사람들만 그 기쁨을 알 수 있다. 세상엔 모르는 것 천지인데 이런 도전과 경험 없이 이 삶을 보낸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인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