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이나 국가폭력은 마치 암세포와 같이 그것과 전혀 무관한 구성원들의 정치?사회의식과 도덕적 기반을 좀먹어 들어간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사회에 복귀시키고, 그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기억의 정치’는 한 국가나 사회의 헤게모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자 사회의 질서, 법과 도덕의 기본이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국가를 만드는 일과 맞먹기 때문이다. 과거 청산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죽음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삶은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생명의 가능성을 묻는다.---p.7
나는 지난 10년 동안 한 시민으로서, 기억되어야 할 것을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기억의 창고를 여는 산파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이제 진실화해위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 그것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세상에 맡기더라도, 진실화해위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어떤 한계를 가졌는지를 당사자의 한 사람인 내가 우선 몇자 적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또 앞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유사한 활동을 하는 위원회를 위한 시사점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학술 서적도 아니고 단순한 회고록도 아니다. 2000년 이후 전개된 한국전쟁기 학살 사건 진상규명 운동의 역사이자, 그 과정에서 제기된 진실규명?정의 수립 운동의 쟁점을 내 경험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나는 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일하면서 하루하루의 모든 활동과 사안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민간에서 운동하다가 정부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훗날의 평가를 위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 작은 기록이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 위해 오늘도 차가운 거리에서 투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힘겨운 삶을 살아온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그들 모두에게 이 책을 바친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나를 추동한 힘이었다.---p.10
그런데 나는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안 기관의 위법과 권력 남용, 도시 재개발 철거 현장에 난무하는 폭력과 노동 현장의 구사대 폭력, 빨갱이라고 덧칠을 해서 특정인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나는 학살은 전쟁기에 나타나는 매우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폭력으로 정치적 저항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하거나 제거하는 권력 행사의 한 특수한 형태라고 보았다. 권력과 언론은 노동자, 철거민 등 저항 세력의 위험을 강조해 그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 다음 마치 적을 토벌하듯이 시위를 진압했고,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된 진보 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자리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외국의 모든 학살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국가폭력의 정치는 군사정권 시절에는 물론이고, 매우 부드러운 방식으로 변하기는 했으나 민주화 이후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 즉 마구 폭력을 행사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존재가 여전히 정치적으로 특정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이 미치지 않았다. 법도 작동을 멈추고, 관료 조직은 최고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이나 지시를 생명처럼 받들었다.---p.30~31
내가 이러한 전쟁과 학살의 ‘과거’에 집착했던 이유는 전쟁과 학살이 우리 사회에서 ‘죄와 책임’의 문제, 사법 정의와 도덕 질서를 완전히 뒤헝클어놓았고, 전쟁의 논리가 일상의 사회적 유대를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단 한 명의 빨갱이가 없어도 빨갱이를 창조해낼 사회”다. 한국전쟁은 확실히 60년도 더 지난 옛일이 되었으나 여전히 휴전 상태에 있고, 우리는 지금 다른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은 생존의 전쟁을, 화이트칼라나 기업의 임원은 조직에서 살아남기의 전쟁을, 그리고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전쟁을 매일매일 치르고 있다. 노동자에게 삶은 전쟁이 아닌 적이 없었고, 일터는 ‘계엄 상황’이 아닌 적이 없었다. 기업의 사용자나 임원은 군대의 상관보다 더 엄한 명령자이고 그곳에서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민간인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는데 단지 그 방식과 강도만 달라졌을 따름이다.---p.443
피해자와 민중들 그리고 정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사람들에게 과거는 현재와 맞닿아 있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과거는 계속 되살아난다.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은 언제나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역사의식 없는 정치의식은 현실적 근거가 약하다. 물론 역사의식에는 투쟁과 승리의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패배의 기억도 있다. 그것은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밝혀야 할 과거의 진실은 기성 도그마, 허위와의 투쟁이며 현실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새롭게 발굴되고 해석된 역사는 죽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 구조의 기원을 고발해주는 문서다. 이 성과가 단순히 피해 당사자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 시민의 것이 되고 또 인류의 것이 될 때, 우리는 인권과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p.445~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