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곧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탄핵 파면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며 자유한국당은 9년여 만에 야당이 되었다. 나의 야당 경험은 2004년 초선 때 말고 처음이었다. 혼란스러운 촛불 정국을 관통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미 임기 초반부터 그 ‘본색’을 드러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하에 이뤄지는 대대적인 수사와 전 정권 업적 뒤엎기는 야당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로 다가왔다. 어쨌든 ‘전임 대통령 탄핵’이라는 매우 무거운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취임한 정부라면, 적어도 국민 통합과 민심 수습에 더 공을 들여야 했다. 이미 상처로 얼룩진 정치권에 또 다시 ‘보복’의 메스를 들이대는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치를 더 큰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탄핵당한 정권의 후임 대통령이어서 그런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사상 최고치의 국정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막강한 장악력을 보였다. 야당이 야당 역할을 하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 p.25, 「도전에서 응전으로」 중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나의 소신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 선거 제도였음이 입증되었다. ‘연비제 드라이브’로 정국을 몇 번이나 파행과 결렬로 몰고간 민주당조차 21대 총선 평가 보고서를 통해, 자신들이 주도해 탄생시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시사했다. 2019~20년을 적신 잔물결 속에서 한때 승리의 쾌감에 젖었을지 몰라도, 대한민국 헌정사라는 도도한 물결 속에서 보면 패배였다. 그들은 이김으로써 역설적으로 완벽하게 졌다.
--- p.49,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에서
아직 다소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보고자 정양석 수석부대표가 운을 뗐다. “새 당대표가 되신 황 대표께서 여기 나경원 원내대표와 함께 투톱이 되어 잘 이끌어 달라” 그런 비슷한 덕담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황 대표의 다소 차가운 답변이었다. “투톱은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어색하던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 물론 나도 무안하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투톱 체제’라 하여 원내대표의 당내 입지를 강화한 것은 ‘제왕적 당대표제’의 폐해를 시정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황교안 대표가 정무직인 장관과 총리까지 지낸 거물이라고는 해도 정치에는 신인이고, 정치란 한 개인의 지식·전문성·경륜만 가지고 헤쳐나갈 수 없는 복잡계 정글이다. 당 안팎의 문제들 중에는 원외 당대표가 원내대표와 협업 없이는 파악조차 어려운 것도 많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언론들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대표와 의원총회에서 선출된 원내대표를 으레 ‘투톱’이라고 하는 것이다.
--- p.87~88, 「북적북적」 중에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 순식간에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야유와 조롱을 넘어 포효에 가깝게 고함을 쳤다. 나의 연설은 중단됐고, 문희상 국회의장의 계속되는 만류에도 여당 의원석의 소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찌나 크게 소리들을 질러대는지 마이크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구애받지 않고 연설을 이어가려고도 해봤지만 도저히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제야 털어놓는 얘기지만, 나는 저 문장을 준비하면서도 여당이 그토록 심하게 반발하고 거칠게 항의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은 내가 처음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설에서도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직접 부르지 않았다.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였다.
--- p.97, 「김정은 수석대변인」 중에서
우리 자유한국당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 규탄 및 재발 방지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여당도 동참하라며 이인영 원내대표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 원내대표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북한이 앞으로도 더 많은 미사일을 쏠 것이니, 지금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일순 머리가 멍해졌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남북한 정권 간에 ‘교감’이 있고, 그 교감이 민주당에게도 전해졌다는 투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도 많이 쏠 것”이라니,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북한의 도발은 어느 정도 알던 바이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이 쏘더라도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라는 말 아닌가! (…)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은 야당 참여 없이 단독으로 회의를 열어 이인영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7일 이인영 장관 임명을 재가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 지난 9월 21일, 서해상에서 어업 지도중 실종된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까지 흘러가 이튿날 한밤중 북한 군인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훼손(소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 p.141~142, 「동물 국회」 중에서
왜 나는 정치를 하는가?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 세대보다 더 좋은 대한민국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나보다 다음 세대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가짐, 바로 부모 마음이다. 다음 세대 전부를 가재·붕어·개구리로 놔두고 자기 자식만 콕 찍어 용으로 만들려는 정치인들도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말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니, 당장 2030세대는 “아니, 지금 우리 세대 살아가기도 힘든데 다음 세대를 생각할 겨를이 어딨냐?”며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에게 다음 세대가 바로 2030 세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부모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부모, 부모의 부모들이 그런 마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이겨내고, 가난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건국, 번영, 민주화로 이어진 기적의 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나보다 다음 세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
--- p.172, 「왜 정치를 하는가」 중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말로 ‘살아있는 권력’,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칼끝을 겨눴다. 윤석열·조국 ‘석국열차’는 한곳을 바라보고 질주하는 ‘광란의 쌍끌이’ 대신, ‘원칙과 편법이 마주보고 돌진하는’ 치킨 게임열차가 되었다. (…) 조국 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두 패로 갈려 대치한 것도 기가 막히지만, 나를 포함해 오랫동안 대학을 함께 다니며 그를 막연히 ‘나이스한 동기’ 정도로만 알던 사람들은 뒤늦게 드러난 그의 볼썽사나운 뒷모습에 할 말을 잃기도 했다. ‘장관이든 그 이후든, 야망이 있었다면 자기와 주변 관리를 어떻게 저토록 엉망으로 할 수 있었을까?’
--- p.234, 「석국열차」 중에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춥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와 자유한국당 승리를 위한 그 어떠한 소명과 책무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도 숲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갑니다. 자유한국당은 흔들리거나 멈춰선 안 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p.292, 「바람이 흔들어도」 중에서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인’이 돼야 한다. 정치꾼이 다음 선거를 고민한다면,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100년 후의 대한민국에 대해 우리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바꿀 것인지 답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곧 정치의 개혁이고, 우리 보수의 개혁이다. 이것이 보수 정치가 가야 할 길이다. 내가 원내대표 1년 동안 가고자 했던 길이고, 나의 정치 인생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꿈이고,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다.
--- p.306, 「보수의 길」 중에서
‘그래, 치열하게 살았구나.’
17년 정치 이력에서 여러 번 그랬듯이, 여백이 마냥 길지는 못할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다시 입을 열 때는 바로, 책 맨 앞에서 물었던 똑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라야 할 것이다.
‘왜 지금 나경원인가?’
--- p.323, 「6년 만의 여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