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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애는 머리가 나쁘니까

그 여자애는 머리가 나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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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516쪽 | 658g | 145*210*23mm
ISBN13 9791197046117
ISBN10 119704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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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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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가 보도되면 대중은 성적인 부분을 알고자 한다. 피해자가 어떤 성폭력을 당했는지 그 내용이 궁금하다고. 보도니 비판이니 공론화니 하는 명분을 얻어 무자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프로그램과 기사가 양산된다. 누가 가해자인지 모를 양상이다. 2016년 봄, 도시마구 스가모에서 도쿄 대학교의 남학생 다섯 명이 체포되었다. 다섯 명이 여대생 한 명을 집단 성폭행했다……는 식으로 전해졌다. 대중은 호기심으로 들끓었다. 지금부터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는데, 그 전에 미리 밝혀두겠다. 이 너머에 저속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이야기는 일절 없다.
--- p.9

‘여자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전문대나 가서 집 근처 유치원이나 아버지의 지인이 하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크리스마스 전에(스물다섯 살전에)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샐러리맨과 결혼해 퇴직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최고로 축복받은 여자의 인생이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존 F. 케네디와 이케다 하야토*가 일본은 미국의, 미국은 일본의 ‘파트너’라고 서로를 칭했을 무렵이다. 승전국과 패전국이 아닌 ‘파트너’. 파트너라는 표현은 일본인에게 참신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형 존의 최고의 파트너였던 아우 로버트 케네디와 대학 시절 결혼한 아내의 “저는 로버트의 파트너가 아닙니다”라는 말도 여운을 남겼다.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로버트의 파트너죠?”라는 말을 들은 부인은 “가장은 로버트고 저는 어디까지나 가장의 보필입니다. 저는 로버트의 파트너가 아닙니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이 발언은 전후 일본 사회에 민주주의 시대 현모양처의 상징처럼 울려 퍼졌다.
--- p.95

‘백마 탄 왕자님.’ 쓰바사의 품에서 기억의 단편이 흩날린다. ‘이 사람이 나의 백마 탄 왕자님.’ 쓰바사에게 안겨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미사키를 쓰바사는 힘껏 끌어안는다. ‘포근하고 따뜻해.’ 쓰바사는 녹아든 타액을 삼켰다. 사랑이 피어났다. 수상 버스가 가르고 지나간 수면에 떠오른 물거품 같은 사랑이었을지 몰라도 그래도 사랑이긴 했을 것이다. 본디 사랑이란 덧없는 것이다.
--- p.275

마사요는 생각한다. 빨리 결혼해, 빨리 결혼해. 부모님도 친척도 학년 주임도 말했다. 빨리 아이를 낳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어. 주위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자신도 시집가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을 통해 들어오는 혼담은 다 잘되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좋은 만남은 없었다. 그래서 ‘히로시마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는 조건을 포기하자, 곧 금테 안경을 쓴 지금 남편과 혼담이 성사되었다. “왜 굳이 후쿠야마 가쿠인대 사람과”, “너무 성급한 것 같아.” 결혼식 당일 숨어서 속삭이던 여자 동기 두 명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결혼 이후 이따금 마사요의 귓속에 되살아난다. ‘성급했을까. 전쟁 전도 아니고 40대에 초혼인 여자도 많은데……. 직업도 있었는데…….’ 어쩌면 서로 반해 결혼에 골인하는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p.481

‘본인이 강간이라도 당할 줄 알았나? 댁은 삼류야. 댁이랑 섹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댁 대학에, 댁 얼굴에, 댁 스타일에 누가 강간이라도 해줄 줄 알았나 보지? 유세 떨지 말라 이거야.’ 와쿠타는 이렇게 생각하며 이제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미사키에게 ‘유세 떤다’라는 이유로 분노했다. 미사키와 간음할 마음은 없었다. 진실이다. 설사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해도 그럴 마음이 없었노라고 신에게 맹세할 수 있다. “그런데 웬 강제 추행? 우린 걔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 p.477

“미사키 양이 얼마나 싫었을지 난 타인이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요. 그냥 헤아리는 것밖엔 할 수 없죠. 하지만 부디 힘을 내요.” 교수의 손에서 미사키의 손등으로 체온이 전해진다. 미사키는 소리 내어 울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이걸 써요…….” 교수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미사키에게 건네주었다. 티슈로는 부족하다. 손수건으로 코를 풀며 미사키는 하염없이 울었다. 놀던 아이가가만히 서서 지켜보다가 어머니에게 이끌려 멀어져간다. “성폭행당한 건 아니지, 다행이야”라고 어머니는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마음을 고백할 수 없었다. 가슴 속을 다 털어놓아 부모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자신은 동생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언니이자 누나이자 장녀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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