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일선에서 물러선 나에게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활자를 통한 문화 창조자인 편집자가 사회로부터 응당한 대접을 받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어, 선진 외국과 같이 우리나라 편집자들도 그 노력만큼의 대우와 보수를 받는 날이 오고, 편집자들도 그 직업에 긍지를 갖고 편집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바람직스러운 문화 창조의 정신―에디터십―에 더욱 투철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머리말
33년에 걸친 편집자 생활을 통해서, 퍼킨스 씨는 재능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재능이 열매를 맺도록 돌보고 인도함으로써 훌륭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는 참다운 재능을 처음 찾아내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그 재능을 인도하고 발전시키는 인내심과 총명한 이해심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미숙한 원고라도 그의 손만 거치면 편집이 잘 된 훌륭한 책으로 둔갑해 나왔다.
--- p.34
깅리치는 《에스콰이어》로 성공해 부자가 되고 유명해졌지만 결코 자기의 재주를 자랑하거나 공로를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없었다. 훌륭한 편집자의 조건은 절대로 뻐기지 않는 것이다, 라는 소박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p.58
베넷 세르프는 뛰어난 편집자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재능을 어느 정도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편집자가 되려면 흥미의 범위가 상당히 넓지 않으면 안 되고, 영어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박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저자가 쓰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협력도 할 수 있다. 편집자가 뛰어난 작품을 인정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책을 널리 읽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대중이 어떤 책을 사줄 것인가 하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감각이 없으면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책일지라도 수요가 없으면 출판사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 pp.84-85
편집자가 원고의 가치에 대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그 책이 팔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해야 한다.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편집자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퍼스에서는 책의 제목도 저자에게 맡기지 않고 편집자가 직접 결정한다고 한다. “실패의 위험을 각오하는 것은 창조적인 출판에 있어서는 불가결하다”라고 캔필드는 말한다.
--- pp.136-137
《뉴요커》의 편집자로서 11년 동안 로스와 함께 일했던 러셀 말로니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기진맥진할 정도로 일에 몰두한 자살 행위와도 같은 기간이었다.”
--- p.159
편집자는 부적격, 부정확, 오보, 허튼소리, 속임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편집자는 재능을 위해서,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해서, 그리고 정보의 최대한의 보급을 위해서 싸운다.
--- p.183
이러한 크라우닌셸드의 고상한 취미는 《배너티 페어》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미술, 문학, 연극 등을 중심으로 한 멋있는 워간지가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배너티 페어》에 소개된 복사판을 통해서 피카소, 루오, 마티스, 고갱을 처음으로 알게 된 미국인이 많았다.
--- p.200
하이든은 『롤리타』를 읽었을 때 구역질이 날 정도로 못마땅했다. 베넷 세르프는 제2의 『율리시스』가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하이든은 단호하게 그 출판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하이든은 코넬 대학에서 나보코브의 강연을 듣던 자신의 딸로부터 핀잔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pp.243-244
이 편지에 6연발 권총을 동봉하겠다. 거기에 총알을 넣어 네 머리를 쏘아보게나. 너는 지옥에 가서 많은 편집자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로부터 이 직업이 세상에 다시없을 무서운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깨닫게 되면 나에게 감사할 것이다.
--- p.248
파스칼 코비치는 나에게 있어서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나의 편집자였다. 명편집자는 작가에게 있어서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교사이자 악마 그리고 신이라는 사실은 오직 작가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 동안 코비치는 나의 합작자였고, 나의 양심이었다. 그는 나에게 실력 이상의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나를 만들었다.
--- p.273
편집자는 대개 퇴근한 뒤 ‘자기 시간’에도 원고를 읽는다. 사무실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밤에, 주말에, 또는 쉬는 날에 읽는다. 이것은 너무나도 시대에 뒤떨어진 혹사당하는 직업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편집은 실제로 이러한 직업이니 어쩔 수가 없다. 거의 한시도 쉴 틈이 없는 24시간의 근무, 이것이 지겹다면 편집자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타그는 말한다.
--- pp.339-340
책을 읽다 보면 고 선생님이 공을 많이 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각 편집자의 회고록은 기본이고, 관련된 인물의 저서는 물론이고 미국의 출판 잡지 역사에 관한 책도 두루 참고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출판계는 산업적 기반이 약해서 편집자들이 오랫동안 출판사를 다니지 못했다. 교과서나 학습지 출판사가 그나마 오랜 이력이 있는 편집자가 있던 시대다. 그러다보니 일반 출판사의 편집자가 배우고 닮아야 할 편집자가 드물었다. 미국 사례를 들어 다음 세대 편집자가 바람직한 편집자상을 스스로 배우고 익히기를 바란 마음이 느껴진다.
--- 이권우 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