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낙서가 기도로 변형된 지 거의 20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색칠 기도(두들링 기도)를 하고 있다. 이 기도법을 통해 내 손과 눈, 뇌, 심장 그리고 온몸은 기도 속으로 안착한다. 《두들링 기도》가 색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컬러링북은 아니다. 펜, 종이, 마카, 연필은 시각적 기도를 유기적으로 확장하는 도구다.
두들링 기도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이런 의구심이 있었다. “이것이 정말 기도인가? 진지하게 임하지만 가볍고 편안한 것도 사실이다. 기도 같기도 하지만 놀이 같은 느낌도 있다. 영성 실천이 기도 같은 동시에 유희적일 수 있는가?” 기도(pray)와 놀이(play)라는 두 단어를 보면, 그 모양이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알파벳 한 글자만 다를 뿐, 세 글자는 같다. 공통점은 또 있다. 기도와 놀이 둘 다 아이처럼 되는 일이고, 연약해지는 일이며, 새로움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내려놓고, 그 순간에 맡기는 일이다. 예수님은 아이와 같이 되는 일을 칭찬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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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칠 기도라는 영성 실천은 기도와 놀이 둘 다를 아우른다. 내게 영성 실천이란 멀티태스킹의 반대말이다. 그것은 내 지성, 몸, 감정, 생각, 영을 같은 장소에 모으고 한동안 거기 머무르는 일이다. 색칠 기도 연습은 나의 이질적인 부분들을 한데 모아, 의자에 앉아서 고요함과 경청의 공동체로 들어가도록 나를 이끈다. ‘연습’이라는 단어에는, 이 자리에 이르도록 자주 그리고 반복해서 시도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나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기도를 다룬다. 하지만 《두들링 기도》는 어떤 ‘저 위에 있는 힘’과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이들, 또 시각적이고 운동감각적인 명상법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도 썼다. 색칠 기도를 처음 접하는 분께 이 책은 손으로 해 보는,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는 영성 실천을 소개하는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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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칠 기도는 당신이 바라는 바를 말하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돌보심에 내어 드리는 시간을 갖는 데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아시는 힘 앞에 그들을 내어 드릴 수 있다. 기도는 종종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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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기도를 들고 가든 감당하실 수 있으시다. 어떤 때는 우리의 모든 불평, 징징댐, 심술, 고통을 모조리 하나님께 던져 버리고 싶다. 시편은 불평과 탄식의 시구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한번 해 보자. 종이에 당신의 불평을 적을 공간을 마련한다. 진행 방식은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와 마찬가지다. 억지로 참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오물을 거두어 가셔서 퇴비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다. 하루 동안, 한 주 동안, 또는 한 달 동안 그 기도를 붙잡으라. 그러고 나서 퇴비 더미를 얻었다면 거기 묻으라. 그 기도에서 어떤 기름진 결실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 기도를 붙들라. 때로 불평은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하나님께 심술부리고 징징대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면 우리 기도는 더욱 진정성 있게 된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을 덜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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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와 펜을 쓴다고 해서 다른 기도 실천에 비해 원수를 위한 기도를 더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 혹은 “당신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박해하는 사람”(마 5:44)의 이름을 쓰는 것은 큰 한 발짝이 될 수 있다.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 말로 하는 기도와는 달리, 이름은 한 번 쓰면 과거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종이 위에 자리를 잡고 당신이 그리고 색칠하는 동안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 대신, 이니셜이나 암호화한 이름을 써도 된다. 만에 하나 누가 당신의 기도 그림을 발견한다 해도 당신의 감정과 그 사람의 익명성을 보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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