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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의 연대기

미신의 연대기

: 지워진 믿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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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670g | 140*210*35mm
ISBN13 9791187789352
ISBN10 118778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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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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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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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먼지처럼 사물의 표면에 달라붙어 있어서 사물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무거웠던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이 책에서 나는 여러 미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감각적인 사물에 스며들어 있는 집합적 감정에 주목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사물에 저장하고 공유하던 특수한 감정을 복원해보고 싶은 것이다.
--- pp.12-13

비슷한 희망과 공포, 비슷한 행복감과 불행감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우리는 사회라고 부른다. 그리고 미신은 불안의 공동체 또는 공포의 공동체를 만드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이다. 종교가 하는 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희망과 공포의 강도나 종류가 다를 뿐이다.
--- pp.21-22

많은 경우 어떤 현상에 대한 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그저 우리의 종교적, 사회적 가치에 입각하여 다른 종교적 가치를 바라볼 때 미신이 탄생한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너의 모든 생각은 미신이다.
--- p.25

어떤 경우든 미신은 적합성이나 적절성에 대한 물음과 연결된다. 물론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적합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달라질 것이다. 미신이라는 범주는 결국 인간의 매우 자연스러운 심리적 편향성에 대한 브레이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나친 믿음이나 행위를 제어하기 위해 미신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 p.29

유사종교는 종교이면서도 정치에 속하는 것이자, 세속 사회에 들러붙어 있어서 분리되지 않는 끈적끈적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유사종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종교가 아니었다. 따라서 정교분리를 위반하는 유사종교는 종교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다.
--- pp.34-35

인간의 삶은 다양한 한계 상황과의 투쟁에서 독특한 인간다움을 형성한다. 인간은 아무리 극단적인 한계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를 모르며, 설령 비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내놓고야 만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온갖 불가능성에 가능성의 옷을 입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질병이든 죽음이든 자연재해든 마찬가지다. 속수무책으로 겪는 절망이 크면 클수록 이에 대한 해결책은 극적이고 찬란하며 때로는 잔혹하고 어리석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 행위의 극단성과 잔혹성과 과도성을 통해 역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절망의 부피를 측정할 수 있다.
--- p.42

한발이 지속하여 인간의 생존 자체가 위협당할 때 인간은 그저 수동적으로 성스러운 힘의 개입을 기도하고 간청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능동적으로 성스러움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죄를 저지름으로써 틀림없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성스러움의 복원력을 이용한다.
--- p.47

미신 치료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것을 먹거나, 먹기에 너무 역겨운 것을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 경우가 많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어야만 병이 낫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육포식의 많은 사례를 보다 보면 뭔가를 먹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런 것까지 먹었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마치 지옥의 밑바닥에서 외치는 신을 향한 처절한 하소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120

일상 공간에서 나환자를 분리하는 것은 공간적 제거를 의미한다. 이제 일반 국민은 나환자가 없는 깨끗한 공간 안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종이나 거세를 통해 생식기능을 없애는 것은 시간적 제거를 의미한다. 어떤 기억도 이어지지 못하게 나환자를 아예 시간 속에서 삭제해버리려 한 것이다.
--- p.152

나무에 시신을 걸어두는 풍장은 마치 죽음을 향해, 또는 죽은 자의 혼을 향해 경고를 날리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의 혼이 전염병을 퍼뜨려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은 땅에 매장되는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을 수 없을 거라는 경고 말이다. 그 사람의 시신은 나무에 매달린 채 비바람에 부식되거나 금수의 먹이가 되어 악취를 풍기며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성스러운 영역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한 채 마치 세상에 태어난 적 없다는 듯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다.
--- p.161

두창은 강남(江南)의 역신(疫神)이 일으킨 질병이라 하여 보통 질병과는 다르다고 여겨졌다. 특히 사망한 자를 바로 토장(土葬)하면 역신의 분노를 야기하여 그 밖의 소아가 모두 사망할 뿐만 아니라 한 부락 전체가 화를 입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전염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예방책은 특정한 장법이었다. 특히 사체를 풍우에 노출시키면 역신이 떠난다고 믿어서 풍장을 했던 것 같다.
--- p.169

나환자의 시체를 화장하지 않으면 나병이 유전된다는 믿음, 천연두로 죽은 아이를 풍장하지 않으면 병이 온 마을에 전염된다는 믿음, 유산한 태아나 병으로 죽은 아이를 수장하지 않으면 유산이나 병이 반복된다는 믿음은 모두 사체 멸각을 통해 사자와 생자를 분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매장을 중심으로 하는 장법 체계에서 화장, 풍장, 수장은 모두 예외적이거나 비정상적이거나 불운한 죽음을 처리하는 장법이었다.
--- p.210

정신병은 영적 존재가 인체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이 존재를 몸 밖으로 쫓아내면 병이 치료된다는 믿음이 매우 강했다.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퇴귀(退鬼)의 방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바로 구타법이었다. 구타법은 신체에 폭력을 가하면 신체에 들어온 귀신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정신병은 영적 존재가 자기 자리를 벗어나서 신체나 집 안으로 들어와 몸과 집의 질서를 교란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 pp.225-226

복숭아나무는 신이 내리기 좋은 물체일 뿐 그 자체로 퇴마의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신이 빙의할 때만 복숭아나무는 주술적인 치료 도구가 된다. 그런데 신장대로 정신병자를 구타하여 살해한 많은 사건들은 치료 의례로서 굿이 갖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복숭아나무 살인 사건이 반복되면서 굿의 폭력성은 집중적인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근대 세계에서 굿은 주술적 폭력을 버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판수가 복숭아나무를 내려놓는 순간, 굿은 치료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면서 자기 존재의 절반을 잃어야 했다.
--- p.228

어떤 이에게 백백교는 종교라는 것이 원래 통째로 미신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교라는 것은 본래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 종교는 종교적이지 않은 어떤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종교화려는 경향이 있다. 백백교는 1900년경에 창립되어 근 40여 년간 유지된 신종교였다.

다른 여느 신종교와 비슷하게 백백교에서도 창립자 사후에 자식과 제자 간의 갈등이 있었고, 이를 통해 3개 교단으로 분파하는 과정을 거쳤다. 설령 사이비종교라고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더라도, 모든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백백교처럼 최악의 종교적인 길을 밟을 위험성이 있다. 이 글은 백백교의 종교적 연대기를 살펴봄으로써 언제 왜 종교가 사악한 길로 빠지고 마는 것인지 이해해보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 pp.254-255

백백교 사건 이후에 ‘유사종교’라는 범주는 점점 힘을 잃었고, 그 대신에 ‘종교 대 사교’의 대립이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인식 도구로 등장했다.
--- p.417

백백교 사건 이후 약 1년 동안 일제는 종교유사단체의 정체성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하여 ‘음사사교’라 인정되는 것을 철저히 탄압하고 소탕했다.
--- p.420

‘종교유사단체’ 또는 ‘유사종교’라는 말은 1915년에 ‘포교규칙’이 공포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 ‘종교와 유사종교’의 구분은 공인 종교와 비공인 종교의 대립을 가리켰다. 따라서 유사종교라는 말은 종교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른 구분과 배제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가 되려면 정치권력에 순종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했다. 일제강점기의 뉘앙스로 말하자면, 종교가 되려면 치안과 공안을 불안하게 하는 정치적 선동이나 독립운동 같은 것을 절대 하지 않아야 했다.
--- p.525

1935년이 되면 유사종교라는 말은 시대적 적합성을 상실하여 더 이상 종교 현상이나 종교 사건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로 기능할 수 없었다. 이런 계기에서 등장한 것이 ‘사교’, ‘미신사교’, ‘음사사교’라는 개념이었다.
--- p.526

사교는 주로 음란한 종교이거나 정치적으로 불온한 종교였다. 그래서 기도와 주문의 힘으로 조선 독립을 이루고자 한 많은 종교가 사교로서 탄압을 받았다.
--- p.527

사실 “미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무익하다. 어떤 믿음이 미신인지 아닌지 따져보는 일도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는 어떤 현상이 왜 미신이라 불리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 p.530

그러나 미신이 믿음으로만 존재한다면, 미신이 마음속에서만 살고 있다면 우리가 일부러 미신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 p.531

미신이라 불리는 믿음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늘 행동으로 표출되어 현실 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미신은 잠시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신체적인 상해를 입힐 수도 있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불안 요소가 될 수도 있고, 경제적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미신은 진폭이 매우 큰 범주이다.
--- p.531

우리는 과학이라는 여과지로 종교를 거를 때 여과지 위에 남는 찌꺼기를 미신이라 부르곤 한다.
--- p.533

미신은 개별적으로 하나씩 세속 공간에서 떼어낼 수밖에 없는 질기고 귀찮은 것이다. 따라서 세속 공간에 남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옛 흔적을 지우려면 정교분리 말고도 미신이라는 위생학적 개념이 추가적으로 필요했다. 종교는 이동의 대상이지만 미신은 제거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미신으로 범주화되는 것들은 먼저 ‘종교가 아닌 것’으로 판정되어야 했다. 그다음에 법의 힘이 세속 공간에서 미신을 하나씩 떼어냈다. 세속 공간에서 미신을 제거하는 일은 종교를 분리하는 일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단한 일이었다.
--- p.536

우리는 그러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소통되던 세계, 그러한 믿음조차 없다면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리기 힘들었던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미신의 현재적 적합성이나 부적합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믿음이 적합성을 지녔던 세계, 그러한 믿음이라도 있어야함 유지될 수 있었던 세계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여전의 ‘우리의 미신들’이 형성하는 체계 안에 갇혀 있을 것이다.
--- p.537

미신의 연대기를 통해 독자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과 실천을 지우고 탄생한 세계인지, 얼마나 많은 종교를 삭제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탄생한 세계인지 감각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 p.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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