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칩거 중인 이 시절, 부쩍 집과 친숙해진 사람이 나뿐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당신의 집을 무어라 부르고 싶은지. 집에 화분이 많다면 ○○수목원이란 칭호도 가능할 것이고, 책이 빼곡하다면 ○○서림 같은 이름도 괜찮겠다. 손님을 재우는 것을 좋아한다면 ○○비앤비라 불러도 좋을 것이고, 음악 감상을 좋아한다면 ○○뮤직홀이라 불러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좋은 시도다. 이름이 붙는 순간 더 특별해지니까. 우리는 스스로 명명한 것을 각별히 사랑하게 되니까.
--- p.44
불안의 파장은 여전히 나의 대기에 은은하게 감돌다 공습경보처럼 몰아친다. 나는 잘 걷다가도 돌연 귀를 막고 비틀거린다. 아마 평생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지러울 적마다 내 귀를 막아주던 따듯한 손을 떠올린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가치관이 있었다. 그 범위 안의 행복이 있었다. 딸이 갔으면 하는 길은 당신이 일평생 쥐고 왔던 지도 안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긴박한 순간에 탈주하는 딸에게 엄마는 기왕의 관습과 세계관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공감과 응원을 건넸다. 그 인간을 그렇게 빚어낸 인간으로서.
찰나의 마음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 p.50
하지만 앞의 두 자신감도 결국 거머쥐었듯 감정 자신감도 차곡차곡 획득하고 싶다. 화를 내도 된다는 타인의 승인 없이도 내 감정에 당당해지고 싶다. 부당한 대우에 좀처럼 화내지 못하고 생각만 빼곡해지는 당신이라면, 이미 숱한 배려를 했을 자신을 믿고 우리 함께 이렇게 외쳐보자.
“나에게 나쁘게 굴면 나쁜 놈이다.”
--- p.83
마지막 날, 그는 손수 파스타를 차려주더니 나중에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주고 싶다며 조심스레 내 서울 집 주소를 물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정거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그가 꺼낸 작별의 말은 내 마음에 새겨져 평생 잊을 수 없는 문장이 되었다.
“루나, 너는 이제 이 세상에 집이 세 개야. 서울의 네 집, 바르셀로나의 네 집, 그리고 멕시코시티의 네 집. 너는 이제 언제라도 그곳에 올 수 있어.”
--- p.102
이따금 권태를 물리치기 위해 첫 광고를 내보냈을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본다. 뭐든 해보고 싶어서 패기가 넘쳤던 나를, 감격한 얼굴로 천장에 붙은 광고 앞을 떠나지 못하던 나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훔쳐보던 나를, 내릴 정거장이 지나도 내리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그날의 짜릿하고 특별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난다면 오늘의 권태는 물러갈 테지. 처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 p.171~172
나는 말을 만져보고 핥아보는 행위에 진심이다. 깨물어보고 터뜨려보는 과정이 짜릿하다. 천 개의 말에는 천 개의 맛이 있고, 천 개의 식감이 있고, 천 개의 향기가 있으니까. 감사하게도 나는 언제든 말을 맛볼 수 있다. 입술을 열고 목울대를 울리는 사소한 노력으로.
--- p.183
나는 그날 손을 떠는 영웅을 보았다. 현실의 많은 영웅은 벌벌 떨면서도, 무서워 이를 악물고서도, 눈물을 꾹 참으면서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떠올리면 내 여린 마음 바탕에도 용기가 번져드는 것을 느낀다. 병균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구나. 용기도 전염되는구나.
--- p.250
하지만 가진 어휘가 많다는 것이 꼭 사유의 폭이 넓다는 뜻은 아니고, 다수의 언어에 능숙하다고 내가 우월한 것도 아니다.
소통은 어휘력, 청해력의 문제보다 태도력의 문제에 가깝다. 나는 다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기보다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 p.261
이제 행복은 엄격한 무결함을 버리고, 저 먼 곳에서 별자리처럼 성글지만 뚜렷하게 반짝이고 있다. 그것을 감지한 것은 헐거워진 나의 시선, 느긋해진 나의 마음이다. 나는 이 과정이 마음에 든다.
---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