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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부부의 시간 가족의 시간 아내의 시간 나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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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함께 살아 보니 의외로 충돌보다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열정이 식고 부모와 아이들에 대한 의무도 어지간히 끝낸 시점이니 서로 상대를 대하는 데 여유도 생겼지만 무엇보다도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가 상대의 어떤 부분이 예각인지를 알고 있는 터라 함께 지내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어디쯤 경계석을 두어야 할지 압니다. 세상에는 부부 관계에 대한 통념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느낍니다.
--- p.15 오래된 사진은 소리 없는 울음을 울게 하고 미소 짓게 합니다. 후회하게 만들기도 하고 기쁨을 되찾아 주기도 합니다. 뒤바뀐 옳음과 그름을 바로잡기도 하고 숨겨졌던 진심을 발견하게도 합니다. 사진은 경험이 아니면 배울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얘기이며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면서 서서히 발효되어 사랑이 된다는 것을 오래된 사진이 알려줍니다. --- p.33 만발한 진달래꽃 무리 속으로 멀어지는 아내의 뒷모습에 설레서 나는 자꾸 뒤처져 따랐습니다. 아내는 신발에 갇힌 발이 가엾다며 등산화를 벗었습니다. 나는 아내의 등산화를 지고 뒤따랐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가장 간소한 점심을 준비하고 싶다던 아내는 아무 찬도 필요 없는 현미찰밥을 지어 바리때에 담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찬으로 밥을 오래 씹었습니다. 참 달았습니다. --- p.90 “내가 기억하는 위대한 사랑의 대부분은 사회적 금기까지 어긴 것이었어요. 두 사람 사이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은 애정 표현의 가장 짙은 방식이에요.” --- p.242 그림을 그리다가 무심코 ‘더 젊었을 때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그 생각을 드러냈다. 남편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금이 ‘적시’예요. 지금의 당신은 그때는 없었던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시간, 경험, 스승.” 젊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잠시 잊었었다. 펜을 들 시간과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경험과 이렇게 나의 의문에 답해 줄 스승이 곁에 있다는 것. --- p.251 사랑에 상대의 마음에 귀 기울이겠다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다면 손을 잡고 걷는 대신 각기 다른 골목을 홀로 걷는 지금의 방식도 40여 년 전 당신의 모든 것에 몰입했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요. 골목 끝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궁금해 하며 상대의 하루 혹은 며칠치 삶에 귀를 쫑긋 세우잖아요. --- p.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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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성숙하고도 자유로운 부부의 일상, 그 아름다운 동행 예술가와 여행자를 위한 북스테이 모티프원을 운영하는 남편 이안수, 종합병원에서 신생아를 돌보고 환자의 영양을 챙기던 아내 강민지, 두 사람은 서로의 일과 삶을 존중하며 각각 헤이리와 서울에서 따로 또 같이 생활해 왔다. 은퇴 후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살아 보려 여러 해 준비했던 아내의 계획은 정년퇴직을 맞은 해에 찾아온 코로나19로 실현이 요원해졌다. 아내는 방향을 틀어 남해안과 섬 여행을 떠나고 이안수 작가는 이를 응원하다 중간에 합류, 귀갓길에 아내의 집으로 함께 들어간다. 13년에 별거를 끝내고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고 조율하고 이해하며 아름다운 동행을 함께한다.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일상, 43년을 함께한 성숙하고도 자유로운 관계는 우리에게 ‘부부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맺음은 어떠해야 하나?’ 다시금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속 깊은 글과 어우러진 43년의 뭉클한 사진! 사진작가와 기고가로 활동하며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열었던 이안수 작가가 아내의 집에서 몰두한 것은 지난 시간 찍어온 가족의 사진을 모으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43년 전 첫 만남부터 쭉 아내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왔으나 그간 많은 사진들이 상자와 앨범 속에 잠들어 있었다. 수만 장의 필름과 사진을 스캔하고 변색된 부분을 매만지며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지내기를 여러 계절, 세월 속에도 빛나는 가슴 뭉클한 사진들을 책에 담아 세상에 선보인다. 갓 스물의 연애 시절 아내,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로의 아내, 노쇠한 부모님을 모시는 아내, 그리고 은퇴 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카메라 뒤에 서있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가족의 시간은 정감 어린 사진 덕분에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여운을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