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1월 05일 |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84g | 152*225*30mm |
ISBN13 | 9791197549335 |
ISBN10 | 1197549331 |
발행일 | 2022년 01월 05일 |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84g | 152*225*30mm |
ISBN13 | 9791197549335 |
ISBN10 | 1197549331 |
MD 한마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양한 걸 탐색해야 하는 게 현대 사회의 풍경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전념이라는 태도를 잃어버린 듯하다. 이 책은 전념의 대가를 소개하며, 헌신과 꾸준함의 가치를 강조한다. - 손민규 인문MD
I. 무한 탐색 모드 1. 문화의 두 가지 유형 2. 무한 탐색 모드의 장점 - 융통성 - 진짜 자아 찾기 - 새로움 3. 무한 탐색 모드의 단점 - 결정 마비 - 아노미 - 피상적인 삶 4. 해방 vs 헌신 II. 전념하기 반문화 5. 전념하기의 영웅 6. 반문화 둘러보기 - 시민 - 애국자 - 건축가 - 관리인 - 장인 - 동료 7. 후회에 대한 두려움과 목적의식이 주는 자유 8. 유대에 대한 두려움과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 9.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깊이가 주는 기쁨 III. 액체 세계 속 고체 인간 10. 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돈 vs 특정성 11. 선택지 열어두기의 도덕: 무관심 vs 명예 12. 선택지 열어두기의 교육: 발전 vs 애착 13. 홍수와 숲 14. 초대 영향을 준 글 감사의 글 |
반신반의하며 산 책이다. 전념이란 뜻은 한 가지에 몰두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몰입은 무엇인가에 빠져든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전념한다'는 마도 요즘 드물지만 문득 몰입과 다른 의미란 생각을 했다. 책 제목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뭔가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배우고 연마해야 한다"라는 어린 시절의 충고를 책의 초입에 꺼내고 있다. 이 문장을 보고 난 내 삶의 시간에 어떤 것들들에 전념했을까? 어려서는 놀고 재미있는 것에 전념하고, 고등학교 시절 문과생이나 그냥 수학이 재미있었다. 희한한 일이나 나이 먹어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 대학시절에 전혀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 것도 아니지만 여행처럼 싸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람에 전념해서 집에 다 모셔두었더니 엄한 AS센터에서 나올 법한 말이 가끔 나온다. ㅋㅋ 그 후론 취미란 이름하에 레고, 독서, 영화보기가 전념의 단계를 넘어 익숙한 것들이 되고 있다. 돌아보니 별로 한 게 없네. 그 외에도 잡다한 것과 일을 하며 시간을 죽였는지 살렸는지 지나왔다.
현대에 미래의 불확실성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liquid modernity로 표현한 것은 참 문학적이다. 노매드처럼 어디든 흘러갈 수 있다는 것, 난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아니면 하던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처럼 자유의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고 갈 뿐이다.
인생에서 방황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는 불가피하다. 노무 곱게 크면 역풍 노도의 시기가 나이 먹고 생긴다. 그 역풍에 좌절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청소년기만큼 많은 것도 분석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복도의 여러 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하나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확실한 하나를 준비하는 것이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이것이 하나의 길들이기 프레임처럼 느껴질까? 물론 어떤 성취에 있어 전념의 과정은 필요하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관심과 재능이 잘 부합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을까? 척 보면 압니다도 아니고.
내 관점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전념의 과정과 개인의 자유의지를 보면 상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 길을 빨리 찾는 것은 옛날처럼 할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갖고, 아들의 직업을 손자가 갖고 가업이란 이름하에 재능과 상관없이 방에 가두고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모범적이고, 누군가는 잔인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이런 사례가 먼저 생각난다. 너무 순종을 강요하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비주류적이나 반모범적인가?
만약 일정한 시기엔 무한 탐색의 시기를 보내고, 또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 선택과 전념의 방식으로 설명하면 어땠을까? 지우학,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은 인생의 시기에 맞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지우학에서 학이 국영수만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학교에서 그 다양한 과목을 왜 가리키나? 얼마 전 읽어 본 Gig에 관한 책을 보며 공감이 떨어지는 이유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온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과하게 설명하면 직업 선택의 자유는 선택할 역량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유사한 말들이 30년 전에도 많았지만 복잡 미묘하고 인간의 갖은 해괴망측하고 놀라 자빠질 역량을 보면 그대로 된 것이 드물다. Gig의 생활을 위해서 내가 하나에 매달리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단,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완전고용이나 국가가 민생고 해결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동시에 인간의 역량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일용직이라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하게 되거나 종종 쉰다는 것을 최악의 gig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자유로운 직업과 휴식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대상과 life cycle에 따라 다르다. 때에 맞는 일을 해야, 조금이라도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실패와 좌절의 맛을 본다는 것은 큰 배움이다. 계속된 실패와 좌절은 나와 내 방향성을 돌아봐야 하지만 적절한 실패와 좌절은 내가 나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다. 전념은 세상과 나를 바꾸는 큰 동력이지만 주변과 상황, 체험과 학습을 통해 다양성을 먼저 느끼고 스스로의 결핍을 인지했을 때 필요한 것이다. 왠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라는 말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거부감이 있다.
"첫발을 떼지 않으면 제대로 전진할 수 없고, 제대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전념이 필요하다"라는 세스 고딘의 평에 감히 과격한 의견을 달아보고 싶다. 대부분의 첫발은 누군가의 도움에 기초한다. 그 첫발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인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무조건 처음 한 것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은 강박일 뿐이다. 이것은 순서의 문제다. 아이만 봐도 첫발을 떼면 여기저기 산만하게 다니며 좌충우돌하다 결국 스스로 전진을 하게 된다. 그런 실패를 통해서 방향을 더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탐색 없이 달려들면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실패 확률만 늘어나다. 그리고 좌절하면 스스로 일어나는 독립성에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왈저의 복합 평등, 가치 영역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 가지 영역의 힘을 다른 영역의 힘으로 바꾸면 부조리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 사례가 아마도 돈과 권력의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하나의 영역을 배워,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고 성과를 내면 부조리가 아니라 혁신에 이루는 한 가지 길이다. 무한 탐색과 전념의 균형이 시간에 따른 단계로 구성돼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분야와 대상, 과정을 보면 다를 수 있는데 책의 시야가 조금은 협소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자신의 손을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도와줘도 한계가 있다. 또한 타인은 도와줄 수 있을 뿐 결국 어떤 성취는 자신의 힘으로 한다. 성취는 일시적 전념으로 다다를 수 있지만 무엇을 전념해서 어떤 수준을 성취할 것인가는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열심히 보다 제대로가 먼저라는 삶의 교훈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전념 #상상스퀘어 #난별롤세 #독서 #khori #제대로 #고리타분
아마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늦은 밤, 볼거리를 찾아 넷플릭스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제목도 홅어 보고, 예고편도 몇 개 보고, 후기까지 찾아 읽어보지만, 영화 한 편을 딱 골라서 진득하게 보기가 쉽지 않다. 순식간에 30분이 흘렀으나 아직도 참색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염없이 스크롤만 내리다가 결국 TV를 끈다. 이제 와서 뭔가를 보기엔 너무 피곤했기에 더 늦기 전에 이만 잠자리에 든다. (18쪽)
피트 데이비스의 『전념』은 위와 같은 문단으로 시작한다. 이 문단을 읽고는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에 결국 집어 들고 읽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현시대의 문화는 무한 탐색의 시대이며, 나 자신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몰두하는 전념하기가 필요하다”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현시대의 문화인 무한 탐색 모드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세상을 바꾸는 힘인 ‘전념’을 반문화(反文化, counterculture)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는 전념으로 출판이 되었지만, 책의 한쪽 귀퉁이에는 이 책의 원제인 “Dedicated”는 흔히 필수영단어로 외어온 ‘헌신하다’의 dedicate의 변형이다. 이에 저자는 dedicate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나는 ‘dedicate’라는 단어에 두 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첫 번째 뜻은 ‘무언가를 신성하게 하다이고, 두 번째 뜻은 ’오랫동안 무언가에 전념하다‘이다. 나는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념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곧 신성한 일이라는 의미다. (41쪽)
무언가에 전념하는 것이 신성한 일이라면 저자가 지적한 지금의 문화인 무한 탐색 모드는 폐해만 있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즐기는 주류적인 문화인만큼 무한 탐색 모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으며 그 장점으로 융통성, 진짜 자아 찾기, 새로움을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식을 때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능력인 ’융통성‘과 융통성을 바탕으로 단지 어떤 위치에서 태어났는지 만으로 결정되는 물려받은 전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진짜 자아 찾기‘,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경험하는 짜릿한 흥분과 설렘의 ’새로움‘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한 탐색 모드는 계속되는 탐색에 점점 마비되고, 고립되고, 피상적으로 변하는 결정마비, 아노미, 피상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에 저자는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무언가에 전념하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변화는 느리게,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꾸준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 있는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지름길을 없다.(36쪽)‘는 말로 꾸준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의 전념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먼저 전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전념하려면 ‘전념하기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 먼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력도 있어야 한다.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 새롭지 않아도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근성, 관계를 지탱하는 데에 필요한 열정도 중요하다. 열정이 있으려면 존경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어보다도 전념하는 능력, 즉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계속해서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76쪽)
상상력, 통합력, 집중력, 근성, 열정, 존경심, 전념하는 능력 중 하나만 뛰어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덕목을 일곱 가지나 제시하고 있다. 전념하기 위해 전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어도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 즉 한눈팔지 않는 능력을 전념하는 능력으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에 보통인 사람도 전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전념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첫째는 지루함이다. 오랫동안 전념하려면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둘째는 산만함이다. 길을 가다 보면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계속 눈에 띈다. 셋째, 불확실성도 깊이를 위협한다. 내가 올바른 결정을 했는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넷째는 유혹이다. 이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다. (217쪽)
저자는 지루함, 산만함, 불확실성, 유혹을 꼽고 있다. 이는 전념뿐만이 아니라 나름의 계획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같아 보였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낸 사람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큰 자취를 남기고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에서 말하는 몰입(flow),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에서 말하는 그릿(grit), 칼 뉴포트의 『딥 워크』에서 말하는 딥 워크(deep work), 이 책 『전념』에서 말하는 전념하기(dedicated)는 강조하는 것이 조금씩은 다를 수 있지만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는 ‘전념하기 반문화는 흙을 일구고, 씨를 심고, 작은 숲을 키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작은 숲을 키우는 것에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작은 숲이 하나 둘씩 모이면 거대한 산림이 되는 것과 같이 그 효과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지치지 않고 숲을 키워봐야겠다. 끝으로 『전념』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자이었다. 특히 제한 없는 깊이의 추구라는 말이 크게 다가온다.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에 있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삶의 깊이는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