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 300권 가까운 책을 번역하였고, 이런 나를 보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니 인간 승리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 직업이라는 이 은혜로운 상황을 맞게 된 건 글쓰기와 독서를 하며 존재감 없는 시절을 꿋꿋하게 살아낸 과거의 나 덕분이리라.
--- 「프롤로그-사실은 사실이다」 중에서
때마침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가 열렸다. 아무 질문이나 고민을 올리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별하여 답을 해 준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같은 사이트였고, 당연히 출간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내 질문이 걸린다는 보장도 없고, 답을 듣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머릿속이 온통 그 문제로 고민이라 어느 날 새벽에 일을 하다 말고 한번 써 보았다. 일본 사람인 것처럼썼지만, 지금 생각하니 메일 주소가 한국 계정이네.
친구한테 오십만 엔을 빌려주었어요. 저도 대출한 돈입니다.
그러나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갚으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빌려줄 때 돈이 생기면 달라고 했거든요.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내 마음이 편해질까요?
그렇다.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빌려준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에는 약 보름 동안 약 37,465개의 질문이 올라왔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3,716개의 답변을 달았다. 확률은 10퍼센트. ‘또뽑기’ 하면 꽝만 나오는 내 마이너스의 손, 걸릴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
---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중에서
2016년에는 특히 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상은 따 논 당상이라
고 믿었던 해다. 라디오 출연 요청도 들어오고 신문사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다. 뒤에도 구구절절 얘기가 나오지만, 이런 것은 나한테 쥐약이다. 휴대전화 너머의 사람에게 잘못한 것도 없이 쩔쩔매며 거절하느라 고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로 확정되기도 전에 이러는데 진짜로 그가 받으면 얼마나 연락이 올까. 나는 어떻게 다 거절하지. 휴대전화를 꺼 놓을까. 아니면 자동응답으로 바꿔 놓을까.
“죄송합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개뿔도 아는 게 없습니다”라고.
그러나 그해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와 노벨문학상」 중에서
지금은 종영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내가 번역한 소설 『종이달』을 녹음하던 날, 편집자의 초대로 난생처음 팟캐스트 구경을 갔다. 말 그대로 순수하게 부스 앞에서 구경하는 것이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과 작가 김중혁 님이 진행을 했다. ‘두 분 다 참 잘하시네’ 감탄하며 듣고 있다가, 편집자의 안내로 쉬는 시간에 인사를 하러 갔다.
김중혁 님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는 “선생님 책 리뷰 쓴 적이 있어요!” 하고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리뷰 쓴 걸 보여 주었다. 주책이었다.
--- 「이동진의 빨간책방」 중에서
성공한 인생이든 실패한 인생이든 관계없이 어쩜 그렇게 곳곳에 절묘한 복선을 장치하고, 사건을 만들고, 희로애락을 심어 놓는가. 살아가면서 만나야 할 사람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적재적소에 데려다 놓고. 이보다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는 완벽한 시나리오도 없을 것이다.
낯선 주소의 메일이 날아왔다. 메일은 이런 인용문으로 서두를 시작했다.
오, 멋진 문장인데, 생각했더니 맙소사, 『번역에 살고 죽고』에서 내가 쓴 글이었다.
--- 「그녀의 시집 제목」 중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번역가의 서재’를 취재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합니다. 서재가 없어서요” 하고 거절하지만, 정말 없어서 거절하는 거라고는 믿지 않는 눈치다.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참고로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主婦美) 철철 넘쳐 난다. 이러니 따뜻한 번역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닐까?(웃음)
그래서 나는 번역가라는 수식어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라는 말이 더 좋다.
--- 「번역하는 아줌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