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수가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존시가 멍한 눈을 크게 뜨고 드리워진 녹색 블라인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좀 올려줘. 보고 싶어.” 그녀가 명령조로 낮게 속삭였다. 수는 마지못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맙소사! 밤새 비가 내리고 돌풍이 거세게 몰아쳤는데도 불구하고 담쟁이덩굴 잎사귀 하나가 벽돌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덩굴에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였다. --- 「마지막 잎새」 중에서
1달러 87센트. 그게 전부였다. 게다가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이었다. 동전들은 식료품점과 채소 가게, 그리고 정육점에서 가게 주인들을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면서 값을 깎아 한 푼, 두 푼씩 모은 것이었다. 그렇게 박박 깎으려드는 인색한 사람은 처음 봤다는 듯한 주인의 눈초리에 두 뺨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모은 돈이었다. 델라는 돈을 세 번이나 세어보았다. 1달러 87센트. 그리고 내일은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서
“자기, 내가 거짓말을 했어요. 자기는 나랑 결혼하지 않을 거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털어놓아야만 할 것 같아. 앤디, 애초에 백작 같은 건 없었어요. 애인이 있었던 적도 없었어요. 다른 여자애들은 다 있는데……. 걔들은 자기 애인 이야기들을 했어. 그런데 다른 남자들은 그런 애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어. 앤디, 자기도 알다시피 난 검은 옷이 잘 어울리잖아요. 난 결심하고 사진 점에 가서 근사한 남자 사진을 하나 샀어요. 그리고 작은 사진을 만들어 목걸이에 걸고 다니면서 백작 이야기랑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검은 옷을 입은 거예요. 아무도 거짓말쟁이는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앤디, 자기는 날 차버릴 테고 난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거야. 오, 자기 외에는 아무도 좋아해본 사람은 없어. 이게 다예요.” --- 「백작과 결혼식 손님」 중에서
거리 맞은편에 수수한 식당이 하나 있었다. 싼 값에 양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그릇과 분위기는 투박했고 수프와 냅킨은 얄팍했다. 이곳에서는 주인을 고발해대는 그의 신발도, 내막을 폭로해대는 바지도 얌전하기만 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비프스테이크와 핫케이크와 도넛, 파이를 먹었다. 그런 후 그는 웨이터에게 자기에게 땡전 한 푼 없다고 털어놓았다. --- 「경찰과 찬송가」 중에서
시인은 민감한 동물이다. 래글스는 이 해독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이 냉혹한 환경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도시의 쌀쌀맞고 수수께끼 같고, 빈정거리는 것 같고 판독 불가능하며 부자연스럽고 무자비한 표정에 그는 의기소침했고 당혹스러웠다. 이 도시에는 심장이 없단 말인가? 다른 천박하고 소란스럽고 거친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작더미, 뒷문을 열고 욕을 퍼붓는 가정주부의 잔뜩 찌푸린 얼굴, 무료 급식소에서 볼 수 있는 급식자의 다정한 심술, 시골 순경의 친절한 가혹 행위, 발길질과 체포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행동들이 얼어붙은 무정함보다는 훨씬 나았다. --- 「뉴욕인의 탄생」 중에서
백화점 내 점원들이 곧 낸시의 야심을 눈치챘다. 그럴듯한 남자가 그녀의 판매대로 올 때마다 그녀들은 “낸시, 저기 네 백만장자께서 오시네.”라고 말하곤 했다. 함께 온 여자가 쇼핑을 하는 동안 어슬렁거리던 남자들이 손수건 매장으로 슬금슬금 다가와서 하얀 면 손수건 앞에서 꾸물대는 것이 그들의 버릇이 되었다. 낸시의 배워서 흉내 내는 고상한 태도와 타고난 뛰어난 미모에 끌렸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그녀 앞에 와서 점잖을 떨었다. 그들 중 몇몇은 백만장자일 것이고 그저 부지런히 흉내만 내는 족속들도 있을 것이다. 낸시는 그 둘을 확실히 구별해낼 수 있었다. --- 「손질된 등불」 중에서
“아니, 아니.” 차머스가 두 손을 열심히 저으며 말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하나만 묻지요. 당신 그림들은 모두 불쾌한 특징만 드러냈나요? 당신의 그 독특한 붓이 주는 시련으로 고통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나요?” “없었냐고요? 있었지요.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았습니다.” 플러머가 대답했다. “대개 아이들이었지요. 하지만 여자들도 많이 있었고 남자들도 꽤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전부 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문제가 없으면 그림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왜 그런지는 설명해 드릴 수 없지만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 「매디슨스퀘어의 아라비안나이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