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4월 18일 |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46g | 132*200*30mm |
ISBN13 | 9791130689890 |
ISBN10 | 1130689891 |
발행일 | 2022년 04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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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46g | 132*200*30mm |
ISBN13 | 9791130689890 |
ISBN10 | 1130689891 |
MD 한마디
저자의 삶이 가르침인 책이 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그렇다. 때 이른 성공을 뒤로 하고 출가한 그는 깨달음을 향해 정진했다. 수행이 끝나갈 무렵,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지만 죽음 앞에서도 꿋꿋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책이 답한다. - 손민규 인문 PD
프롤로그_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 알아차리다 가만히 있어도 불편한 삶 과거라는 목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사원에 첫발을 내딛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는다 엄마, 나 숲속 승려가 되려고요 지혜가 자라는 사람, 나티코 순간의 지성 괴짜들의 공동체 선택하지 않는 훈련 곰돌이 푸의 지혜 마법의 주문 아홉 번의 실패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은 어색한 은자의 행복 닫힌 주먹, 열린 손바닥 할 짓이 없어 빌어먹나 기적이 일어날 여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무언가가 깨어나다 잃을 것은 너무나 많지만 전직 승려의 수치 반지 안의 비밀 모든 것은 너에게서 시작한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다 인생의 의미는 당신의 선물을 찾아 나누는 것 믿음이 보여주는 자리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죽음이 찾아오는 모습 다 빼앗길 것이다 네가 세상에서 더 보고 싶은 것 떠날 때를 아는 이별 몹시 거슬리는 한마디 원래 그랬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에필로그_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
이 책을 구매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예스24의 홈페이지 메인에 있었는데..17년 동안 모든 것을 끊은 숲속 승려가 쓴 책이라는 부분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일 것 같다. 그리고 읽어나간 이 책은 몇 마디의 기억에 남은 말들과, 마지막 죽음에 대한 부분에서의 폭풍 눈물일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읽고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하는 요즘이기에, 내가 그 부분에 가장 집중한 것일까. 혹은 이 책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인생의 지혜는!!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서일까. 첫 부분은 조금 실망이었고(숲속 승려의 에피소드 같은 부분), 뒤에 작가가 승려를 그만두고(승려도 퇴사! 은퇴!를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다.) 나서 일어난 부분에 오히려 더 인간적인 공감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죽음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 그와 함께 책의 60프로 정도까지는 깨끗하게 읽고 다시 중고서적으로 책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끝에 가면서 주옥같은 이야기들, 공감가는 말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함께 꼭 소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앞부분이 공감가지 않았다든지, 감동받지 않은 이유는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여서 일듯 하다. 젊은 나이에 임원까지만 하면서 누가봐도 부러워하던 청년이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갑자기 숲속 승려가 될 생각을 하다니! 나같이 속물이고 세속적인 물질주의에 찌든대로 찌들고, 핸드폰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승려가 된 이야기, 승려가 된 후 이야기는 사실 몰입을 하면서 읽어나가기에는 어려웠다. 가독성은 좋지만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할까! 이런 삶은 나에게 있어 거의 마블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만큼 먼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마블의 영웅들이 더 가깝고 나에게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숲속의 승려가 되어 하루에 한 끼의 밥을 먹고(물론, 사원에 따라 밥의 횟수는 달랐지만) 돈을 사용하지 않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니. 최대한 부처가 살던 때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는 것인데, 내가 이런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하늘에 철갑을 입은 사람이 날아다니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하지만 충격적으로 작가는 그렇게 17년 승려 생활을 하고나서 마음 속에 분명한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라는 목소리이다. 즉, 승려의 옷을 벗어던지고 이제 다시 현실의 세상, 속세로 나와야한다는 본인의 목소리이다. 17년 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현실의 뉴스도 모르고 살아왔던 그는 마음 속의 이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현실로 나오게 된다.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여 큰 결정을 할 때 잠깐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의 신호들을 읽으려고 하였다. 그것은 퇴사라든지, 이사라든지, 혹은 결혼이라든지 하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내면의 목소리는 갑자기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떻게 하고 싶어?"하고 물어보면서 듣는 것이었다. 이 목소리는 사실은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욕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을 수도 있다. 조건과 두려움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하고 싶어하고 묻는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또한 내면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에 대한 계기와 계획이 없었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 들리는 생각으로 승려의 일을 그만하기로 한 작가. 이 때부터의 시간은 급박하게 흘러간다. 17년 숲속의 시간이 천천히 큰 드라마없이 마음속 고민없이, 수행과 고행 고행과 수행으로 흘러갔다면, 숲속을 나온 시간은 우리가 매일 보는 바쁜 현대인들처럼 빠르게 흐른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 작가는 17년 전 끊긴 훌륭한 경력, 연락이 끊긴-혹은 연락이 와도 본인이 쉽게 마음을 다시 열지 못하는 친구들, 부모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경제상활으로 괴로워한다. 세상에서 그는 그의 이력서로 평가받고 17년 수행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가 겪고 배운 일을 알려주고 명상에 대하여 강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내가 틀릴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의 바탕, 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과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죽음이라는 친구 역시 새롭게 마주보게 된다.
그 후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내가 결국 집중하는 부분은 속세의 부분인것인지, 17년의 경험 후에 현실로 나와서 그가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된 것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숲속에 있는 순간 무소유의 삶으로 살면서 얻게 된 지혜보다는, 현실속에 나와 생각하고 알게 된 것들은 가슴에 하나하나 와 닿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지혜로와졌다는 생각은 없다. 공감하고 얻은 이야기는 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느낌은 없었다. 다만,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언제나 사람들이게 친절하라는 그의 말, 업보에 대한 그의 말, 죽을 때는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기에 살아 있을 때 가져야 할 마음과 정신에 대해서는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이 부분은 새해마다, 아니 한 해에 두 세번 다시 들여다 보면서 나의 삶에 대한 자세를 다지고 싶었다.
연명치료를 세게(!!)하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다르게 안락사도 가능한 나라. 죽음에 대한 준비. 아버지의 병상이 아닌, 죽음상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켜 놓고 작별 인사를 하고, 농담을 하는 그들. 죽은 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아들. 그래서 죽은 후,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거봐요!"하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기억해내라는 대화. 정말,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없는 죽음에 대한 준비였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도, 존엄사에 대한 책도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죽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멋지게 포장할 수도 있고, 혹은 마지막은 정말 비참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맞닿아 있는 존재이고 우리는 죽음의 순간과 시간을 고를 수 없기에, 늘 오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은 탄생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게 삶과 죽음은 맞닿여 있기에, 이 책에서 안락사를 선택하고 삶에 대한 마무리를 하는 모습은 결국 이 책을 완성체로 만드는 느낌이었다. 죽음마저 우리 삶의 모습이기에 청년기에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끝에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죽음을 노래하면서 끝이 난다.
책을 읽고나서 다시 표지를 보았다.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 그렇구나. 마지막 인생수업이었구나. 표지를 보고, 다시 한 번 펑펑 울다가 책을 책꽂이에 두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다시 예스24에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와 오늘 책을 반넘게 읽으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책의 광고에서처럼 이 책을 17번인가? 그렇게 읽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히 두세번은 더 읽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틀릴수도 있지만.
스톡홀름경제대학 졸업 후 잘나가던 직장 등 세속의 지위를 내팽개치고, 태국 아잔 차 스님의 숲속 사원과 영국 등 유럽에서 17년간 승려 생활을 하다가 환속한 뒤 루게릭 병에 걸려 2022년 1월 생을 마감한 어느 구도자의 영적 여정.
승려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뿐 아니라 생활하며 힘들었던 점, 환속의 과정, 내면의 갈등을 솔직히 털어놓는 장면들에서 인간적 진솔함이 느껴졌다. 우울의 나락에 빠졌다가 회복하는 등 자기 고백적 글의 전체 흐름이나 일관된 메시지가 다소 두서없이 느껴졌으나, 진리와 가치 있는 삶을 향한 저자의 열정만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게 없었더라면 애당초 출가하려고 마음먹지도 않았을 터.
독자들은 저자의 이러한 비상한 인생 행로에 일단은 관심이 끌려 책을 집어들게 된다(스웨덴 방송국에서 그를 인터뷰한 이유도 그것일 테다).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숲속으로 출가했다고? 17년이나 승려로 생활했다면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깨달음을 선사하겠지? 저자가 독자에게 어떤 특별한 위로와 지혜의 메시지를 전할지, 독자들은 일단 주목한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그다지 특별한 메시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 "좋은 말"인데, 그게 마음에 콕 와닿지는 않는다. 내 마음이 닫혀 있는 탓일까.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맞는 말, 좋은 말이지.. 부정할 수 없이 "옳은" 메시지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의 글이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고 평한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본의나 진심과는 별개로, 이런 글은 글 자체로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물론, 삶이 글보다 중요한 건 맞다. 삶에 값하지 못하는 위선적이고 허무맹랑한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많은 명상 서적이 이런 함정에 빠진다. 저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겠지만 "맞는 말, 좋은 말 대잔치" 책에 나는 독자로서 좀 지쳤다. 그나마 책의 핵심 메시지라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7년간 숲속에서 수행해 얻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p.8)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면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근심이 사라지게 되는 마법의 주문: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p.130)
그래,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매우 특별한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책의 중심 메시지로 삼았다면, 각각의 메시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어땠을까. 더 이상의 전개 없이 흐름이 뚝 끊어진 채 다음의 '좋은 말'로 넘어가는 글의 전개가 다소 아쉬웠다.
저자의 깨달음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의 깨달음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체득했는지도 자신 없고 부끄럽다. 하지만 "전 세계를 울린 이 시대의 마지막 지혜" "스웨덴 30만부 판매" 등의 대단한 수식어에 비해, 그만큼 새롭고 특별한 울림이 담긴 책으로 보이진 않았다. 글쎄, 그런 메시지를 이런 책에서 구하는 것 역시 나의 욕심일까 . 그 욕심마저 알아차리고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다음은 책에서 발견한 오타:
p.64 밑에서 셋째 줄: 오계(伍戒, 한자 오류) -> 오계(五戒)
p.65 밑에서 아홉째 줄: "아버지가 그어놓은 과도한 근본주의와 아닌 것의 경계선이나 다름없었습니다."(문장 의미 불분명)
p.144 위에서 셋째 줄: "어떤 노력도 통하지 않습니다" -> "통하지 않았습니다."
p.221 밑에서 열째 줄: "다른 사람들도 온전한 사랑을" -> "다른 사람들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p.261 위에서 아홉째 줄: 대오(大惡) -> 대오(大悟)(한자 오류)
내 생각 바라보기. 요즘 익숙해지려 하는 습관이다. 내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건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자꾸 새긴다. 자기 세계에 갇혀있다는 답답함에 나를 깨우려 애쓰는 동시에 현실과의 접점을 늘리려고 애쓴다.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바꾸고, 생각을 뒤흔드는 생각을 만나려 노력한다. 가만히 있으면 정체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저절로 일어나는 생각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은 그냥 떠오르는 대로 두고 본다. 물리치려 하면 할수록 더 집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꽁꽁 묶어두고 있는 고집센 생각들이 있다. 아주 오래동안 나 스스로 내 안에 적립해온 것들이다. 세월의 힘으로 단단하게 굳어있는 것을 한번에 풀어낼 방법은 없다. 대단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를 시도를 한다. 저절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망치로 두드리듯이 내 생각에 자주 충격을 가하고 있다. 내 몸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는 활동들로 순간순간을 채우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 그러면 안 되겠다는 간절함, 바꾸지 않으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질 거라는 두려움 같은 것 때문이다.
삶을 깊이 통찰하게 해주는 책들을 들여다보면서 제 궤도로 나를 옮겨놓으려고 애쓴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른 채 너무 오랫동안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이 없다라고 속으로 외치며 아는 것을 삶에 녹여 내려고 노력한다. 정말 중요한 일을 지금 실행하겠다는 생각을 늘 앞세운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잠든 것처럼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는 것을. 그래서 나를 깨우는 스위치를 곁에 둔다. 깨어있으라고 말해주는 책을 펼쳐보는 것이다. 이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와 같은.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살면서 이보다 더 도움이 됐던 말은 별로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타고난 초능력을 간과한 채로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에 의심을 품으며 조금은 거리를 두거나 우스갯거리 삼아 가볍게 접근한다면 자기답게 살아가기가 무한히 쉬워지는데 말이지요. (59-60쪽)
나는 나를 몰라도 정말 모른다. 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내가 아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란 사실도. 내가 나를 모르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면을 살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이것이 정답이구나 하고 확신할 수 있는게 차츰 없어진다. 확실한 건 없고, 그냥 불확실함만이 남는 오묘한 상황. 믿고 의지할 데가 '불확실함'뿐이라니. 내가 알 수 있는 것, 통제할 수 있는게 없다면 나는 그냥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데 힘쓰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건성으로 알고 있던 그 사실에 말이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131쪽)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얼마나 깨어서 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잊고 사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1초 만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면 뭣이 중한지 모르고 사는 것이다. 내가 딱 그렇다. 그래서 자꾸 지금 무엇이 중요하지? 라고 묻기 위해 책을 펼치는 것이다. 그런 행위가 없으면 질문조차도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보다는 '나는 틀렸다' 라는 제목이었으면 가슴에 더 콕 박혔을 것 같다.
내려놓기는 어쩌면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겁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설사 그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요.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124쪽)
삶은 불확실함으로 가득하지만, 확실한 건 단 하나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 이것을 떠올릴 때마다 내게 온 모든 진실을 그대로 안고 현실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좋은 것만, 중요한 것만 남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늘 나를 붙들고 있으면 좋으련만. 자주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리는 나를 흔들기 위해 이 책을 다 읽고도 다시 펼치며 중요한 말들은 반복해 새긴다. 그리고 내 안에서 시끌벅적이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애쓰는 나를 발견해 다행이라 여긴다. 내 생각에 조금 덜 휘둘리며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길 바랍니다. (3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