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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의 집
■ 파이트 클럽 ■ 점쟁이 ■ 코로나와 잠수복 ■ 판다를 타고서 옮긴이의 말 |
Hideo Okuda,おくだ ひでお,奧田 英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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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대형 마트에서 왁스를 사 와, 마루와 기둥을 닦았다. 그러자 원래부터 좋은 목재여서 그런지 점차 빛을 되찾으면서 관록 있는 모양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곳곳에서 삐걱삐걱, 끼익끼익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그야말로 집 그 자체가 다시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소생을 위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청소가 질리지 않았다. 내일은 집 어디를 손볼까 하는 생각만 한다. 원고 집필은 나중으로 미루면 된다. 지금은 한 달에 장편 소설 한 편만 완성하면 되기에 딱히 마감에 쫓기는 상황도 아니었다. 고지는 유명한 문학상도 탄 적이 있는 중견 작가였다. 글을 대량 생산해야 할 시기는 벌써 지났다. 밤에는 또 슈퍼마켓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와 그걸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라디오 지방 FM 방송국에서 앤드류 골드의 〈Lonely Boy〉를 내보내자, 그리움에 가슴마저 들떴다. 혼자 보내는 밤이 이렇게나 자유롭다니. --- p.19 “너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건데? 그냥 인사과에 사표 던지고 와.” 후지타가 조금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10년 전이라면 그랬겠지만 나도 이제 마흔여섯이야. 정규채용으로 이직하긴 너무 어려운 나이니까.” 구니히코가 솔직히 대답하자 후지타는 한숨을 쉬며 “너도 참 잘 버틴다”며 얼굴을 붉혔다. “나라면 벌써 사표 내던지고 당장 회사 때려치웠을 거야. 그리고 좀 더 좋은 일자리를 찾거나, 아예 내 사업을 차려서 보란 듯이 성공하려고 하겠지. 그게 남자다운 거 아니겠어?”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이것도 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니까.” “너, 지금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셈이야?” “당사자는 나인데 네가 왜 화를 내?” 뜻밖의 실랑이가 벌어지자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다만 후지타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다. 이 동기는 회사에 대해서도 화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 p.103 “다무라 씨!” 이곳저곳에서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요즘 유키가 제일 인기가 많다. 젊고, 활약도 대단한 데다 독신이기 때문이다. 여자 팬들은 조금이라도 이쪽을 보게 하려고 유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펼치며 목청 터지게 소리친다. 마이코는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흥, 여기에 유키의 여자친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연인에게 팬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특별한 기분이 들게 해줬다. 여자 팬들은 각자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유키의 진짜 얼굴을 아는 건 자신뿐이다. --- p.136 “저기요, 이 영상, 마음대로 내보내지 마세요.” 야스히코가 리포터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요. 이것도 다 뉴스 보도 아닙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거 와이드쇼잖아요.” “보도 형식으로 내보내면 다들 주목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마 저녁 뉴스에도 방송되지 않을까요.” “잠깐만요!”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야스히코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텔레비전 방송 취재진은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다시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들 스마트폰 렌즈를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 야스히코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허리에 손을 댄 채 슈퍼맨 포즈를 취해 보였다. --- p.222~223 나오키는 실물을 보고 완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이런 좋은 차가 백만 엔이라니 이렇게 이득을 보는 구매가 다 있는지. 판다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다. 얼마나 귀여운 디자인인지.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인의 장난기다. “그럼 차량 내부도 보시죠.” 재촉을 받아 좌핸들 운전석에 앉아본다. 황량할 정도로 심플한 계기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오키는 필요 최소한의 미학을 다시금 통감했다. 현대 공업 제품은 하나같이 전부 장식이 과하다. 시험 삼아 엔진을 켜봤다. 부르릉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어쩐지 그리운 옛날식 엔진 소리다. 문득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판다의 인테리어에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붙어 있었다. --- p.249~250 |
코로나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
코로나의 재해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이런 따뜻한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도 오래간만에 사람을 들여 되살아난 모양이다” 아내의 바람으로 인해 충격과 배신감을 느낀 소설가. 그는 소설 집필을 핑계로 한동안 집을 떠나 머물 곳을 찾다가 바닷가의 품위 있는 한 고택에 들어간다. 집을 수리하고, 잡초를 뽑고, 해안가를 산책하는 등 힘든 현실을 잊어보려 애쓰지만 좀처럼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태연하게 지내는 아내에 대한 원망은 점점 커질 뿐, 이혼 생각에까지 이르며 괴로워하는 그는 우연하게 현재 살고 있는 고택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제 어느 방에서 잘까 고민하다가 문득 바람이 잘 통하는 2층이 생각났지만, 화장실 문제도 있고 해서 바로 옆 13평짜리 다다미방에 침낭을 폈다. 다다미는 흠 난 곳 없이 아직도 푸릇푸릇한 향이 났다. 침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등골이 쭉 펴지는 게 기분 좋았다. 눈을 감았더니 3분 만에 졸음이 쏟아졌다. 고지는 의식이 스러지는 중, 집 안 곳곳의 기둥이 삐걱대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꿈인가, 아니면 실제로 소리가 나는 것일까. 정말로 나는 소리라면, 아마도 집도 오래간만에 사람을 들여 되살아난 모양이다. 삐걱삐걱, 끼익끼익. 그 소리는 잠에 빠지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바닷가의 집〉 중에서 “진정으로 주먹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예의이며 우정의 증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회사 내 신설된 위기관리부는 사실 조기 퇴직 권고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놓은 떨거지 부서일 뿐이다. 본래 업무와 무관한 공장 경비 보조를 맡게 된 중년의 가장들은 굴욕감과 무력함을 매일 참아내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우연히 회사 창고에서 복싱용품을 발견하고 어설프게 섀도복싱을 흉내내보던 이들 앞에 정체 모를 ‘코치’가 나타난다. 촉탁 직원이라고 밝힌 그에게서 매일 복싱을 배우며 이들은 점차 용기와 활력을 되찾게 된다. 살집이 두둑한 몸에 펀치를 먹여서 잠시 상대를 기절까지 시켰지만, 미안하다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보다 진정으로 주먹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예의이며 우정의 증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위기관리부 직원들의 복싱에 화기애애함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벌함이 앞서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는 아마 해방감이리라. 어쩐지 잔뜩 흥분으로 달뜬 기분이었다. “자네들 제법이군.” 코치가 활짝 웃으며 직원들을 칭찬했다. -〈파이트 클럽〉 중에서 “거울을 보면서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내 행복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프리 아나운서 마이코는 불안정한 신분이지만, 그녀에게는 최고 인기의 프로 야구 선수인 남자친구가 있다. 그가 연봉 1억 엔의 플레이어가 되어 자신에게 멋지게 프러포즈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어쩐지 그와 반대로만 흘러가려 한다. 속상한 마음에 점쟁이를 소개받고 그녀와 상담을 시작하면서부터, 마이코는 점점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가게 된다. 다행히 유키도 마이코가 마음에 들었는지 둘은 곧 사귀게 됐다. 그 당시, 마이코는 패션 잡지의 독자 모델로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했기에, 유키도 그녀를 곁에 두고 다니면서 제법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한마디로 캠퍼스의 스타끼리 서로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렇게 맞춰진 균형이 지금 한쪽으로 무너지려고 한다. 유키는 성공의 계단을 쑥쑥 올라가고 있고, 마이코는 여전히 무명의 프리 아나운서 신세다. 다른 여자를 선택할지도 몰라……. 마이코의 가슴이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유키가 홈런을 칠 때마다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아 응원도 진심으로 할 수 없었다. -〈점쟁이〉 중에서 “얘, 아빠가 이런 모습을 하고 다니는 기분이 어떠니?” “멋져요.” 임신 중인 아내, 다섯 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도쿄의 평범한 회사원에게 큰일이 생겼다.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확신이 강하게 든 것이다. 방호복을 구할 수 없어 대신 구식 잠수복을 입고 생활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잠수복을 입고 아들을 산책시키고, 축구도 하는 그에게 텔레비전 취재까지 나올 정도다. 일약 스타가 되어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는 시민의 상징’이 된 그이지만, 아내만큼은 자신의 증상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원래 임신을 하면 담력이 커지는 걸까. 그는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걱정으로 벌벌 떨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직 감염됐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듯한데……. 그보다 열이나 피로감도 아직 없잖아?” “이제부터 올 거야.” 야스히코가 진지하게 호소하자, 아내는 작게 코웃음을 흘렸다. “그럼 난 이제 출근할 테니까 우미히코 좀 부탁해. 뭐 필요한 건 없어?” “요강이 필요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잠수복 입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알았어. 오리발은 안 필요해?” “오리발?” “그게 있어야 그 패션이 완성될 거 아니야.” 야스히코는 발끈했지만, 일부러 대꾸하지는 않았다. 만약 지금 아내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더욱 생활이 불편해질지도 모른다. -〈코로나와 잠수복〉 중에서 “오늘은 네 여행에 끝까지 동행해줄게”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드림카 ‘피아트 판다’를 중고로 구입하게 됐다. 상태가 너무 좋은 차를 보고 완전히 흥분한 주인공은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따라 내키는 대로 달린다. 그런데, 주소를 입력하지도 않았는데 내비게이션에서는 계속해서 안내 음성이 나온다. 그리고, 도착한 장소마다 이 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차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내비게이션의 마지막 안내 장소는 어디일까. 판다는 산길로 들어섰다. 간신히 스카이라인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오르막길을 판다가 힘차게 달려 올라간다. “오오!” 나오키는 또 탄성을 내질렀다. 겨우 850cc 엔진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활기찼다. 핸들링도 훌륭하다. 이것이야말로 라틴계 자동차의 주행이다. 그 사장은 이 길을 달리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멀리 있는 가게를 알려준 걸까. 그런 엉뚱한 추측까지 하고 만다. ‘목적지까지 앞으로 300미터입니다.’ 이제 슬슬 도착하는 모양이다. 고갯길 도중에 확 뚫린 땅과 함께 건물이 하나 보였다. ‘음성 안내를 종료합니다.’ 여기구나. 가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있는 글자는 ‘카레와 파스타 가게’였다. 으응? 나오키는 얼이 빠지고 말았다. -〈판다를 타고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