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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큐레이션

도쿄 큐레이션

: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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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532쪽 | 784g | 140*205*35mm
ISBN13 9791197915277
ISBN10 1197915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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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 p.34
음악을 사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 속에는 그 어떤 글보다 생생한 리듬이 살아있다. 내가 그를 동경하는 건 그의 음악적 글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34

누군가의 집에 들어서듯 활짝 열린 대문을 통과하자마자 나를 반긴 건 정원 가득 빼곡히 들어선 분재였다. 겨우 몇십 년 된 나의 나이테를 가볍게 비웃듯 몇백 년은 족히 이 지구를 살아내고 견뎌낸 자태에는 뭐랄까, 어떤 말로도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신성한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그 장엄하고도 우아한 모습은 하나하나가 자신들만의 세계이자 우주 자체였다.
--- p.37

작품을 모두 걷어낸 채 하얗게 텅 빈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오롯이 마주한다는 건 매우 기묘한 경험이다. 화장을 지운 연극배우의 얼굴처럼,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평일의 도심처럼 생경했다. 그것을 허락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에게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 p.48

다 때려부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레트로가 붐이라며 모든 옛것들이 그저 오래됐다는 이유로 추앙받는 것도 이상하다. 다만 전쟁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풍경 또한 어디에도 없는, 그 나름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무미건조하다고, 몰개성하다고 취급받는 1980년대 아파트들도 해석하기와 진화 방식에 따라 자랑스러운 우리만의 유산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 p.86
노출 콘크리트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안도 다다오는 건물 그 자체가 주변 환경에서 독보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을 잘한다. 안도 다다오 이후 세대인 구마 겐고는 반대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건축을 추구한다. 환경에 녹아들어 마치 환경의 일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건축이다.
--- p.55

둘. 빛

정중앙에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오로지 자신만의 조명을 받은 선인장들이 조용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처음 보는 생경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순간 멈칫했다. 긴자 한복판 쇼케이스에 놓인 주얼리를 마주한 듯 눈부시고,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어쩐지 주얼리보다 더 경이롭게 느껴졌던 건 선인장은 시작과 끝이 있는, 숨 쉬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 p.108

그 속에서 자신만의 빛깔로 빛나는 숍이란 어떤 것일까, 인 어 스테이션을 보며 생각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온전하지만 온화하게 드러내는 것.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신념을 강건하되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 비단 숍 이야기만은 아니다. 정보가 난무해 오히려 SNS를 켜고 싶지 않을 때도 생겼다. 다 비슷비슷해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정보의 바다가 때론 무자비하게 느껴져서다.
--- p.113

그녀의 까다로운 납득 관문을 통과한 물건으로 가득 찬 아트 앤 사이언스는 ‘물건이 차고 넘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소비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의가 될 것이다. 그녀가 소개하는 제품들은 확실히 트렌드에 크게 휘둘리거나 유행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쓸수록 빈티지한 멋이 살아나며 오래도록 만족감이 높다. 나의 경우는 몇 년 전에 구입한 남색 스웨이드 가방이 그랬다. 충분히 납득이 간다.
--- p.118

언젠가 세상의 감각을 대표했던 버려진 아이템들이 그들의 눈을 통해 새롭게 리디자인돼 펼쳐지는 ‘구제’의 과정은 언제나 진한 감동을 준다.
--- p.129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지만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걸 도모한다면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움직임이 정체된 도시에 흥미로운 색을 입히고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면, 이보다 의미 있는 일상 속 예술이 또 있을까.
--- p.151

오늘날의 진정한 새로움은 규정 지어진 한계를 허들 넘듯 계속 뛰어넘는 데서 출발하는지 모른다. 모르는 지역의 시장을 우연히 방문할 때의 설렘은 여행이 주는, 계획되지 않은 기쁨이다.
--- p.160

프레시서비스가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속성’이라는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언제든 추후에 재구매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그것은 좋은 것은 계속 쓰고 싶다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배려이자, ‘용의 미(用の美)’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고 실천하는 태도라 나는 생각한다.
--- p.171

도쿄의 앤티크 마켓은 일본인의 얼굴을 참 많이 닮았다. 마켓은 비단 낡은 물건만을 늘어놓은 장소가 아니다. 영감을 채집하고 주인들과 도란도란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며 흘러간 시간에 지긋이 눈을 맞추는 곳. 그러다 어쩐지 눈에 밟히는 물건이 있으면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만지작만지작 교감하며 고심하다가 마침내 손에 들고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 p.199

벚꽃은 봄,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생과 유한함 같은 삶의 본성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불과 2주 동안 짧은 시기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의 꿈처럼 사라지는 속성을 가진 까닭이다. 이 웅장하지만 짧은 수명은 우리의 인생 또한 결코 길지 않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러니 이 인생에서 최대한 좋은 것을 보고 즐겨야 한다는 것,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 p.203

동네 자치회가 소상공인들과 합심하여 시간과 품을 들여 함께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이 지도에는 구글 지도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자신의 숍에 대한 자부심, 숍을 낸 터전인 마을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애정이다. 비단 자신의 매장뿐만 아니라 내 옆의 매장, 우리 마을이 함께 번영했으면 좋겠다는 공통된 소망의 반영이다.
--- p.208

오모테나시는 진심만으론 부족하다. 자신의 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어떤 것이다. 오모테나시가 일본을 대표하는 서비스가 된 것은 이 진심에 ‘성의’라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 더해져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쉽지만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 p.217

여기저기 깨지고 흠집나고, 또 흩어진 것들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단점과 불완전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 그것이 킨츠기와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 p.230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비단 시간만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일본의 시간이고,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말 것.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것. 그러면 언젠가 일본의 흐름을 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p.232

일본 전역에 견고한 브랜드가 많은 이유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이러한 크루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나아가되 ‘따로, 또 같이’ 뭉치는 문화. 결국 함께 잘 살자는 것이다
--- p.266

도쿄는 요즘 유독 이런 분위기의 가게가 흔하다. 세련되면서도 적당히 캐주얼한 프렌치 비스트로. 오픈 키친에서는 셰프들이 달그락달그락 음식을 만들고, 바에 앉으면 가끔 주인과 눈을 맞춰가며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 p.295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그립고 생각날 음식은 사실 스시도, 가이세키도 아니요, 돈가스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돈가스와 수준 차이가 유독 많이 나는 음식이란 얘긴데, 이 맛과 고기의 질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297

간단해 보이는 것이 실은 더 어렵다는 진리를 오므라이스가 말해준다. 재료가 심플할수록 실력은 적당히 뭉개거나 감출 수 없다.
--- p.322

오랜 액자 속 풍경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킷사텐이 주는 매력이다. 모든 것이 격변하는 세상이지만 때로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날엔 동네 킷사텐을 찾는다.
--- p.335

그의 디자인에는 요즘 일본의 모던 디자인을 대표하는 요소가 모두 담겼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 각이 져 있지만 어딘가 둥글려진 정제된 형태, 서정적인 정물화 같은 미감이 그러하다. 이 그릇들로 식탁을 꾸미면 일상을 채우는 음식들도 전부 예술의 경지로 업그레이드될 것만 같다.
--- p.401

그녀는 일본이 디테일의 나라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성실함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동안 만난 디자이너들이 빠짐없이 해준 이야기였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해야겠다. 그건 상대방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오모테나시’적인 성실함일 거라고.
--- p.422

인터뷰 끝까지 그는 움직임을 강조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매일을 살며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이 보일 거라고, 그것이 자연적인 흐름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이 마음을 다해 하는 것들을 어디선가 지켜봐 주고 연결해 주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끈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물처럼 파도처럼 상황에 맞게 흘러가면 된다고.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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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수많은 도시 중에서 도쿄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 곳이 있었던가.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책장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싶다. 도쿄 거리를 걷고 싶다. 그곳에 가고 싶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본질은 꿰뚫지 못한 채, 누구나 다 아는 곳만 찾아 다녔던 나의 수박 겉핥기 식 도쿄행과 달리, 저자가 풀어낸 도쿄 이야기는 형언할 수 없이 알차고 섬세하다. 읽는 내내 취향 좋은 친구가 곁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도쿄 큐레이션』은 십여 년 차 에디터로서, 6년 차 도쿄 생활자로서 직접 경험한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신(scene)의 미적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 새로운 공간과 브랜드를 제안하는 일을 하는 나를 비롯한,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한 공간과 브랜드, 사람들을 만나러 지금 당장 도쿄행 티켓팅을 하고 싶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듯하다.



- 김태경 (어반북스 공동대표/편집장)
이 책에는 도쿄에 살며 부지런히 다녀야만 보이는 장소들이 있다. 저자는 곳곳에서 열심히 질문을 건넨다.
질문을 받은 일본인들은 특유의 마지메(まじめ, 성실)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대답하고, 그 문답의 뭉치들이 모여 근사한 책 한 권을 이룬다. 도쿄에 들어가 살아본 사람만의 감성이 살아있다. 저자 이민경이 찾은 멋지고 귀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길 바란다.
- 박찬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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