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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큰글자책]
프란시스코 고야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세상과 맞서 싸운 이단아들
박홍규
인물과사상사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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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도서]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박홍규 저 인물과사상사
10% 6,480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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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 4

제1부 사상과 행동의 이단아들

마스트맨에 저항한 아나코 페미니즘 | 루이즈 미셸 · 13
권력 없는 자유를 추구하다 | 표트르 크로폿킨 · 18
나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 소피야 코발렙스카야 · 24
자본주의의 억압에 맞서다 | 루시 파슨스 · 29
시카고에서 대동사회를 꽃피우다 | 제인 애덤스 · 35
과학은 가장 급진적인 사회참여의 방식이다 | 마리 퀴리 · 40
의사들의 기득권과 싸운 의사 | 마이클 샤디드 · 45
폭력이 있을수록 혁명은 사라진다 | 바르트 더리흐트 · 51
어떻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을까? | 에른스트 블로흐 · 57
신청년의 애인이 아닌 독립운동 동지로 살다 | 현계옥 · 63
조금씩 더 가난해집시다 | 도로시 데이 · 68
폭력에 맞서 인간성을 옹호하다 | 제르맨 틸리옹 · 74
나 자신이 진실한 언론의 대변자다 | 이시도르 파인스타인 스톤 · 80
모든 불행은 거대함에서 온다 | 레오폴트 코어 · 86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 자크 엘륄 · 92
미국의 민중사를 몸으로 다시 쓰다 | 하워드 진 · 98
진영을 뛰어넘어 평화주의를 외치다 | 에드워드 파머 톰슨 · 104
전문가 시대는 인간을 불구로 만든다 | 이반 일리치 · 110
골방의 조현병을 태양 아래로 끌어내다 | 로널드 데이비드 랭 · 116
민중이 길을 만들고 길이 민중을 만든다 | A. 튜더 아리야라트네 · 121
미국의 침략적 속성을 까발리다 | H. 브루스 프랭클린 · 127
대가 없이 일하고 가난해져라 | 웬들 베리 · 132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다 | 호세 무히카 · 138
‘서구 정신’의 위선을 폭로하다 | 에드워드 사이드 · 144
국가의 길들이기를 거부하라 | 제임스 스콧 · 150
평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 | 존 모호크 · 156
무력을 버리고 민주연합을 꿈꾸다 | 압둘라 오잘란 · 161
차별금지 헌법을 만들다 | 에드윈 캐머런 · 167
인류학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바꾸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 173
명품족에서 환경운동가로 | 나오미 클라인 · 179

제2부 문학과 예술의 이단아들

세상을 모방하지 않고 시대의 진실을 그리다 | 프란시스코 고야 · 187
삶이 예술처럼 바뀌는 세상을 꿈꾸다 | 에드워드 카펜터 · 192
진실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 로맹 롤랑 · 197
인류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다 | 케테 콜비츠 · 203
그 누구도 모범으로 삼지 마라 | 헤르만 헤세 · 209
나를 애도하지 말고 조직하라 | 조 힐 · 215
인류에게 ‘거리두기’를 권하다 | 존 로빈슨 제퍼스 · 222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 장 지오노 · 228
삶과 글이 완벽하게 일치하다 | 조지 오웰 · 233
내 책에 자유를 주십시오 | 바실리 그로스만 · 239
음악은 사회적인 문제다 | 존 케이지 · 245
토착의 힘으로 꽃피운 생태건축 | 로런스 베이커 · 250
20세기의 절망을 연주하다 | 헤르베르트 케겔 · 256
나쁜 평판을 당당히 노래하다 | 조르주 브라상 · 262
예수를 농민 혁명가로 그리다 |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 269
눈먼 혹은 눈뜬 시대를 투시하다 | 조제 사라마구 · 275
픽션에 진실을 담다 | 호르헤 셈프룬 · 281
나의 유일한 조국은 말이다 | 존 버거 · 287
나의 묘비명은 노코멘트 | 에드워드 애비 · 293
함께 머물고 꽃을 배우며 가벼이 떠나라 | 게리 스나이더 · 299
예술은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이어야 한다 | 토니 모리슨 · 306
허약한 의지와 상처를 드러내는 것도 괜찮다 | 메리 올리버 · 312
민중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다 | 켄 로치 · 318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도 사랑하다 | 루이스 세풀베다 · 324
착취당한 자들이여, 눈을 뜨라 | 아룬다티 로이 · 330
길거리 미술로 변혁을 꿈꾸다 | 뱅크시 · 335
힙합으로 이란의 신정정치를 흔들다 | 히치카스 · 341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2021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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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188*257*30mm
ISBN13
9788959066476

책 속으로

신혼부부의 집에는 침대와 탁자 하나, 의자 둘, 책장뿐이었다. 곧 두 딸이 태어났지만, 피에르가 교사로 일한 공업학교의 작은 공간을 이용해 실험을 계속한다. 마리와 피에르는 방사성 원소를 분리하고 발견해서 이후 원자핵물리학이 발전할 길을 열어주었다. 이어 발견한 새로운 방사 물질을 마리의 조국인 폴란드에 대한 경의로 ‘폴로늄’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로 발견한 방사 물질을 ‘라듐’이라고 했다. 그 공로로 퀴리 부부는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처음에는 피에르만 추천되었으나, 그는 마리와 공동 수상하기를 고집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야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자리를 얻는다. 그전에 마리는 외국인 여성이고, 피에르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반항적이라는 이유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다.
---「과학은 가장 급진적인 사회참여의 방식이다 : 마리 퀴리」중에서

현계옥은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김원봉에게 폭탄 투척법과 권총 사격법을 배운다. 최초의 여성 단원이었던 그는 헝가리인 폭탄 전문가 마자르를 도와 폭탄 제조와 운반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1923년쯤 의열단 일은 끝났다. 당시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이 주도한 조직인 청년동맹회가 의열단의 암살 활동을 테러리즘으로 매도해 청년동맹회의 중요 멤버인 현정건과 대립했기 때문이다. 의열단을 떠난 현계옥은 청년동맹회에 참여해 현정건과 함께 1926년에 잡지 『여자해방』 발간을 담당했다. 『여자해방』은 3호 정도의 발간으로 그쳤으나, 여성해방과 민족해방,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이라는 삼위일체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한 점에서 당시 국내에서 시작된 정칠성 등의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연결되었다.
---「신청년의 애인이 아닌 독립운동 동지로 살다 : 현계옥」중에서

무히카도 “이제 문명 프로젝트의 화두는 생명이다.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의 생명을 함께 문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단지 조금 더 떳떳한, 조금 덜 부끄러운 나라를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먼저입니다”라고 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이고, 진정한 자유는 적게 소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지 않고 계속 걷는 것,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코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입니다”라는 그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다 : 호세 무히카」중에서

2009년 이래 클라인은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춘 환경 문제에 집중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3가지 원칙인 공공영역의 민영화, 기업의 규제 완화, 소득세와 기업세의 감축은 환경보호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금융위기와 기후위기의 뿌리가 기업의 무한한 탐욕인 점에서 같다며, ‘월가 점령 운동’이 환경운동에 동참하기를 촉구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판했고 조국인 캐나다를 ‘기후 범죄자’라고 비난했다. 2011년 백악관 앞에서 시위 도중 체포되기도 한 클라인은 2016년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 준수를 거부하면 미국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자는 국제 캠페인을 요청하는 등 세계 환경운동 실천의 선봉에서 활동했다.
---「명품족에서 환경운동가로 : 나오미 클라인」중에서

그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급격히 대두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우리는 일기나 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당대 페미니스트들 가운데서는 여성의 사회참여, 참정권 확보 등을 주장하면서도 모성을 여성의 천성으로 본 이들이 있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시(戰時)에 필요하게 된 사회복지사업이 모성이라는 특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으며, 이에 많은 여성이 전쟁을 벌이는 조국에 적극 봉사했다. 이 때문에 당시 페미니즘이 나치의 인종주의적 모성 이데올로기와 협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수한 독일 민족의 혈통을 받아 자손을 늘리자는 나치의 정책은 백인종 중심의 모성 이데올로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다 : 케테 콜비츠」중에서

케겔은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반대 성악곡인 [전쟁 레퀴엠]을 녹음한 직후 자살했다. 이 곡은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의 라틴어 가사로 이루어졌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바로 며칠 전에 전사한 윌프리드 오언의 전쟁 탄핵 시 9편을 결합해 전쟁의 비참과 평화에 대한 희구를 표현했다. 독창자 3명은 전쟁 중 가장 고통을 겪은 세 나라인 영국, 독일, 러시아를 대표한다. 브리튼은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와 간디의 암살에 충격을 받아 이 곡을 썼다.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이 곡의 녹음이 케겔의 자살과 상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케겔이 제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이 그가 평생 저주한 자본주의화라는 점에 대해 공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0세기의 절망을 연주하다 : 헤르베르트 케겔」중에서

무엇보다도 나는 메리 올리버가 월트 휘트먼이나 에밀리 디킨슨처럼 동성애자로 살았던 점도 이 시를 통해 공감한다. 시인이 평생 “내 삶은 나의 것”이라고 했던 외침을 듣는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가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 그의 산문집 『긴 호흡』 속 그 언덕은 메리 올리버가 평생을 사랑하는 파트너와 살았던 프로빈스타운에 있다. 그곳은 사하라와 같은 완전한 불모지다. 그래서 동성애자인 마이클 커닝햄은 ‘땅끝’이라고 부른 그곳의 삶을 기록했다. 『땅끝』이 우리말 번역서에서는 『아웃사이더 예찬: 문학적이고 섹슈얼한 프로빈스타운 여행기』라는 너무나 상업적인 제목으로 바뀌었지만, 그 내용은 섹슈얼한 여행기 따위가 아니라 15년간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삶이다.

--- 「허약한 의지와 상처를 드러내는 것도 괜찮다 : 메리 올리버」중에서

출판사 리뷰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다

루이즈 미셸은 몽마르트르 여성위원회의 수장으로서 혁명정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바리케이드를 쌓고 무장투쟁에 가담했다. 그는 남자들에게 조롱을 당했지만, “남녀가 모든 인간성의 권리를 획득한 뒤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한몫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후 정부군이 파리를 탈환하자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되었다. 1880년 파리코뮌 참가자에게 사면이 내려져 미셸은 파리로 돌아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를 공격하는 혁명 활동과 함께 사형제·동물실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남녀만이 아니라 식민지인이나 비서양인은 물론 동식물까지도 자유롭고 평등하기를 바란 미셸은 성매매나 결혼은 똑같은 거래관계라고 비판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소피아 코발렙스카야는 가부장 세계에 저항해 치열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산화한 이단아였다. 특히 남성 과학자들이 주류인 과학계에서는 그가 여성이라는 점 자체가 이단이었다. 소피야는 ‘편미분 방정식’, ‘토성의 고리 역학’, ‘타원 적분’에 관한 논문 3편을 발표하고 유럽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수학 강사가 되지 못했고, 무료 강의 제안도 거부되었다. 조국 러시아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점과 정치적 견해 때문에 거부당했다. 결국 스웨덴의 스톡홀름대학에서 사강사로 지내고, 5년제 계약교수가 되고, 당시 과학계의 최고상인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보르댕 상을 받았다. 래퍼인 슬릭의 노래처럼 소피아는 “나는 불꽃이다. 붉게 타올라 그 빛으로 앞을 밝힌다”에 맞는 인물이다.

루시 파슨스는 언론과 저술 활동을 통해, 여성들이 가정부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주부의 역할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5년 유진 데브스·마더 존스와 함께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을 설립해 산업민주주의를 추구했다. 당시 시카고 경찰은 그를 “폭도 1,000명보다 더 위험한” 사람으로 불렀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 창립총회의 유일한 여성 연설자인 루시는 여성을 ‘노예의 노예’라고 하면서 자신의 독립성과 인간성에 따라 개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 정부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비롯해 모든 계급차별에 맞서 싸운 루시를 지속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노동자들에 의한 공장의 자주관리와 이를 통해 사회를 자유연합으로 만들어갈 것을 주장한 생디칼리슴을 옹호하기도 했다.

사상의 자유와 인류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표트르 크로폿킨은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오로지 자유를 추구했다. 그에게 자유란 모두가 자유롭기에 당연히 평등한, 모두가 함께 자치(自治)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뜻했다. 그는 『상호부조론』에서 진화의 원리에는 생존경쟁만이 아니라 상호협력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학문의 경계를 넘어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으로 통합적이고 연계적인 사유를 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르네상스적 창조인이었다. 특히 여러 정부 당국자는 물론 이웃에게도 감시와 핍박, 탄압과 멸시를 받으며 힘들게 투쟁했지만, 권력의 지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인간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바실리 그로스만은 자유를 짓밟는 전체주의를 비판했다. 전체주의의 핵심은 전체에 대한 개인의 복종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자율을 억압하고, 국가가 지시하는 전체라는 추상적 이념에 대해 복종만을 용인하는 것이 전체주의다. 그로스만이 말한 자유를 짓밟는 것이 전체주의다. 그로스만은 아무리 작은 자선 행위라도 선이 살아 있고 정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으며, 악이 아무리 커도 선의 기본 핵심은 인간 본성의 핵심이며,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자 투쟁이라고 했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흐루쇼프에게 “내 책에 자유를 주십시오. 내 일생을 바친 책이 투옥된 지금의 상황에서 나의 육체적 자유에는 아무런 진실도, 의미도 없습니다”라고 간청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조작한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정치, 학문, 예술, 문학 등 서양 문화 전반을 비판했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주의가 문학과 학문, 예술과 종교 등의 이름으로 어떻게 조작되고, 제국주의적 권력 지배와 결탁해 식민지 민중을 착취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하고 있는지를 해부했다. 이는 서구 정신의 허구와 위선에 대한 분노의 발로였다. 사이드는 평생을 반권력의 휴머니스트로 살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한 학문권력?언론권력?문학권력?예술권력 등을 비판했다. 그는 모름지기 지식인이란 권력에 맞서서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은 대학의 산학협동 등에 항의해 6년 만에 교수직을 내던지고 대학 밖에서 프리랜서로 살았다. 그는 워릭대학 사회사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했지만, 영국 정부가 좌우를 불문하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고 대학이 고도성장과 산학협동 등으로 학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 항의한 것이다. 그는 반핵 평화운동의 선봉에 섰고, 핵무장과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내적 압력과 강제 시스템의 논리인 절멸주의가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절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 연대와 사회적 민주주의,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삶과 생각을 주장했다.

뱅크시는 그라피티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소비지상주의의 과잉 소비와 환경파괴의 풍경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뱅크시는 그라피티를 하층계급이 할 수 있는 ‘복수’ 또는 개인이 더 강하고 더 우월한 적에게서 권력과 영토와 영광을 빼앗을 수 있게 하는 게릴라전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주요 주제는 평화다. 뱅크시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지 100주년을 맞은 2017년, 베들레헴 장벽 앞에 ‘월드 오프 호텔’을 조성하는 데 자금을 지원했다.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자치운동, 그린피스의 환경보호운동, 무기 거래 반대 또는 무주택자나 노숙자를 위해 작품 여럿을 기증했고, 2020년 8월에는 지중해에서 위험에 처한 난민을 구하기 위해 구조선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어머니에게서 “어떤 짓을 해도 좋지만 결혼만은 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룬다티 로이는 ‘자유’라는 깃발 아래 글로벌 기업이 세계의 모든 약자를 ‘자유롭게’ 조작하는 21세기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비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마음대로 입혔다가 벗길 수 있는, 마음대로 이용해먹고 버릴 수 있는 자유세계의 장식품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로이는 전문가가 지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고 비판하고, ‘지배의 정치’가 아닌 새로운 ‘저항의 정치’를 역설했다. 즉, 반대하는 정치, 책임지기를 요구하는 정치, 속도를 늦추는 정치, 세계 전역의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명백한 파괴를 막는 정치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유일하게 세계화할 가치가 있는 것은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자크 엘륄은 자신이 저술하는 모든 주제는 ‘자유를 위한 저항’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존재하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기독교도, 마르크스주의도 자유를 위한 저항이었다. 그는 기독교나 현대문명을 철저히 비판하는 저항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또 기술이 단순히 기계의 사용을 넘어 인간의 의식에 통합되고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생을 두고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매개로 무한히 자체 증식하는 힘이 되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억압하는 자율적인 현상이 됨으로써 인간이 기술을 감지할 수 없게 한다고 보았다.

하워드 진은 ‘엘리트를 위한, 엘리트에 의한, 엘리트의 나라’를 비판하며, 미국의 민중사를 몸으로 다시 썼다. 그는 노예제도가 미국처럼 인종차별이 오랫동안 문제된 나라는 없었다면서 미국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꿈의 땅이 아니라, 처음부터 영국의 계급제도가 고스란히 이식된 열악한 조건에서 계급 질서가 더욱 강화된 나라라고 비판했다. 또 미국 독립이란 지주들이 하층민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나라를 만든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즉,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득권층 중심의 공화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북전쟁도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듯이 두 차례 세계대전도 제국들의 전쟁이었고, 결국 제국들의 전쟁은 냉전으로, 1990년대부터는 이라크 침공 등 다시 열전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제임스 C. 스콧은 국가의 길들이기를 거부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이고, 예일대학 농학부의 공식 창시자이자 저항 연구의 비공식 창시자다. 스콧은 6만 평 정도 되는 농장에서 소와 닭과 벌을 반세기 이상 키우며 살고 있다. 그는 농민을 비롯해 무력한 사람들이 중앙집중식 국가통제를 위협하기 위해 『지배와 저항의 기술』과 함께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회피와 계략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며 『약자의 무기』를 썼다. 이 2권의 책은 ‘저항 연구의 성경’이라고 불린다. 스콧의 아나키즘은 국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주장한 ‘길들이기’에 대한 거부였다. 다시 말해 타율성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희망의 원리’를 찾다

레오폴트 코어는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롭고, 더 창조적이고, 더 번영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사회적 불행은 거대함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작은 나라들로 다시 해체된다면, 작은 규모의 정치 단위가 평화와 안보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작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국가의 구성으로 돌아가 권력 집단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질병은 추악함, 가난, 범죄, 방치가 아니라 현대국가와 도시 거대주의의 비견할 수 없는 차원에서 오는 추악함, 빈곤, 범죄, 방임이라고 했다. 너무 크면 아름답지도, 올바르지도, 참되지도 않다고 했던 그는 녹색사상, 생태지역주의, 제4세계, 분권주의, 아나키즘 운동 등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로런스 베이커는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었다. 그는 한센병 전문의사와 결혼하고 히말라야의 외딴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산속 골짜기의 황무지 언덕 비탈에 집과 병원을 짓고 16년 동안 그들을 돌보며 살았다. 그는 집을 지을 때 현대 기술을 신중하게 채택함으로써 지역 건축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고,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한 지역 재료의 사용은 건축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건축물을 건설하고 벽돌 등 건축자재를 제조하는 일에 지역의 노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지역 경제도 되살렸다. 또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고 디자인을 검소하게 만드는 생태건축을 지향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로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어떻게 평생 희망의 원리를 추구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어떻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을까? 그토록 절망했기에 희망을 그렇게 절실히 추구했을까? 이 책은 백과사전이지만, 모든 학문과 예술 분야의 ‘희망의 원리’를 보여주면서 모든 분야를 ‘희망의 원리’로 꿰뚫는 사상서라는 점에서 ‘희망의 백과사전’이다. 이처럼 이 책은 ‘희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모든 학문과 예술, 역사와 세계를 관통한다. 그에게 희망은 ‘더 나은 삶에 관한 꿈’과 ‘유토피아’다. 우리는 그가 주장하는 희망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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