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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시골 의사 작품 해설 작가 연보 독후감―배수아(소설가) |
Franz Kaf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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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살짝 들자 아치형의 각질로 뒤덮인 둥근 갈색 배가 보였고, 배의 불룩한 곳에 걸쳐 있던 이불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몸통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이 가느다란 다리들이 무수히 눈앞에서 속절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변신」중에서 그레고르는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디를 보나 자신의 예전 목소리가 분명했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억제할 수 없이 올라오는 어떤 고통스런 찍찍거림이 거기에 섞여 있었다. 이 소리 때문에 그의 말은 처음에만 명확하게 들렸을 뿐, 나중에는 상대가 제대로 알아들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 엉켜버렸다. ---「변신」중에서 그레고르 옆으로 무언가가 날아와 바닥에 가볍게 쿵 떨어지더니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사과였다. 곧이어 두 번째 사과가 날아왔다. 그레고르는 공포에 질려 걸음을 멈추었다. 계속 도망쳐봤자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과 폭격을 퍼붓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변신」중에서 그레고르는 심한 부상으로 한 달 넘게 앓았다. 사과는 누구도 빼낼 엄두를 내지 못해 여전히 눈에 보이는 육신 속의 기념비처럼 그의 등에 꽂혀 있었다. 이걸 보면서 아버지조차 그레고르가 지금의 애처롭고 역겨운 몰골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일원이고, 그래서 원수처럼 대해서는 안 되고, 혐오감을 꾹꾹 누르면서 참고 또 참는 것만이 가족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변신」중에서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요. 두 분은 알면서도 외면하고 계시는지는 몰라도 저는 안 되겠어요. 저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든 저걸 치워버려야 해요. 돌보고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우린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우리한테 비난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변신」중에서 “이제 어떡하지?” 그레고르는 이렇게 혼자 물으며 어둠 속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을 곧 알아차렸다.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껏 이렇게 약하고 얇은 다리로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움직여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온몸에 통증이 있었지만, 그게 서서히 약해지고 또 약해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와 먼지로 뒤덮인 사과 주변의 염증도 이젠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변신」중에서 잠자 씨 가족은 편안하게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만히 따져보니 전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셋 다 어쨌든 일자리가 있었고, 게다가 서로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조건도 괜찮은 편이었고, 특히 전망이 밝았다. ---「변신」중에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급히 먼 길을 떠날 일이 생긴 것이다. 중환자가 16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환자 사이의 공간에는 강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마차는 준비되어 있었다. … 그런데 말이 없었다. 마차를 끌 말이. ---「시골 의사」중에서 나는 한창 잘나가던 의사 자리를 잃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쳐갔다. 그러나 소용없다. 나를 대체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 집에서는 그 역겨운 마부 놈이 난동을 부리고, 로자는 그놈의 제물이 된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 몸은 벌거벗은 채,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를 타고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 속을 정처 없이 떠돈다. ---「시골 의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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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과 부조리를 초현실적인 문장으로 파헤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카프카는 평탄치 않은, 소외되고 배척된 삶을 살았다. 몸은 유대계 체코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독일인이어서 체코인들에게 배척당했고, 제국 시민인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변방의 보헤미아인으로 무시당했으며, 독일인들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살았고, 기독교인에게는 유대교도라는 이유로 유대인에게는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외면받았으며, 작가로서는 일반 대중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결국 카프카는 유대인이라기에는 너무나 독일적이고, 독일인이라기엔 너무나 보헤미아적이며, 보헤미아인이라기에는 너무나 유대인적인 경계선상의 존재였다. 그럼에도 카프카를 독일 작가로 분류하는 것은 독일 문학과 사상, 문화에 뿌리를 두고 독일어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법학 박사학위까지 받지만, 문학을 자기 삶의 유일한 의미이자 탈출구로 여겼다. 그렇게 평생 작가의 꿈을 놓지 않았고, 일을 하면서도 밤새 글을 썼다. 그러나 부조리한 삶과 고독한 죽음의 이미지, 슬픈 정서로 가득한 글은 난해하고 기괴한 것으로 평가되어, 마흔 살로 요절할 때까지 그를 소설가로 기억하는 체코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작가로 부활시킨 사람은 유명 작가이자 평생지기인 막스 브로트다. 브로트는 대학 시절부터 카프카의 재능을 알아보고 글을 쓰라고 독려했으며, 그의 작품을 출간하고 알리는 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사후에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모아 직접 출판하기도 했다. 독일어에 ‘카프카스럽다kafkaesk’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터무니없고 불가사의하고 위협적인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가리키는데, 카프카 문학과 관련해서 보면 부조리한 세계와 거대 권력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개인의 무력함과 두려움, 좌절, 실존적 위협을 의미한다. 카프카는 그런 무력감을 있을 법하지 않은 초현실적인 사건과 대상을 빌려 아주 명료하게 표현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지극히 구체적이고, 대상을 추상화하거나 서술이 감상적으로 흐르는 일이 없으며, 묘사는 언제나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건조하다. 그러나 세부 묘사가 아무리 치밀하더라도 사건 자체는 기괴하기 짝이 없고, 독자는 그런 기괴한 당혹감 속에서 한발 떨어져 실제 현실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변신」은 지극히 카프카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일을 빌려 현실을 투영한, 자화상 같은 이야기 카프카는 관료로 취직해 14년 동안 근무하면서 관료 기구의 문제점과 노동자의 위험하고도 열악한 환경, 자본주의의 냉혹함, 그 체제 아래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소외를 절감하는데, 그때의 경험이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상황에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채 깨어난다.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일벌레인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도산한 후 ‘전국을 떠도는 외판원’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정확한 시간에 일터로 간다.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고, 퇴근한 뒤에도 개인 생활 없이 오직 회사만 생각했다. 심지어 벌레로 변한 뒤에도 출근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에게는 일이 전부다. 현대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다. 자본주의는 인간 삶을 외형적으로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배 원칙을 개인의 내면에 각인시킨다. 그래서 개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일을 해야 하며, 거대한 공장의 부품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평가된다. 만일 이 시스템에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그런 인간은 벌레나 다름없다. 그건 그레고르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노동력을 상실해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그레고르는 단순한 무능력자를 넘어 가족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레고르처럼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인간이 죄악시되고 도태된다. 다른 한편으로 카프카는 가족을 비롯해 아무리 깊고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도 결국 미혹에 불과하다는 무서운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레고르의 변신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이 보인 태도는 가정조차 수고와 보상이라는 응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 순수한 애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레고르는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데, 그의 죽음이 가족에게는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그레고르의 변신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에게 씌워놓은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까지 자신을 옥죄던 부양의 의무를 벗어던지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내면의 무의식적 소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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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문학의 한 장르로 만든 작가는 카프카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만날 때, 비밀의 장막에 숨겨진 듯한 제도나 체제, 법의 장벽과 마주칠 때, 우리를 초월해서 있는 불가해한 권력의 존재를 희미하게 느낄 때, 그것은 지극히 카프카적이다.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우리는 벌레로 변신할 수 있으며, 아무 잘못도 없이 체포될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은 지극히 합당하며, 측량사는 성으로부터 일을 의뢰받았으나 아무도 그에게 일을 의뢰하지 않았다. 카프카는 양말을 뒤집듯이, 그 어떤 흔적도 없이 꿈과 현실을 역전시킨다. 왜 하필이면 다른 작가가 아닌 카프카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걸까. 여기서 카프카는 어쩌면 하나의 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어떤 자장 속으로 마침내 들어갈 수 있는. - 배수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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