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산다는 건 매일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다. 하루하루 용기를 내는 일이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는 삶이다. 고통과 환희를 넘나들며 명작을 탄생시킨 예술가들의 사연을 통해 독자들도 삶의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독일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한 말을 잊지 말자. “우리 모두가 다 예술가다.” ---「프롤로그, ‘예술가로 산다는 것’」중에서
그런데 고흐 그림과 함께 화장해 달라는 사이토 회장의 유언은 이루어졌을까? 1996년 사이토 회장 사후 이 그림의 행방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다시 팔렸을 거라는 소문만 있지 현재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실한 건 수십 년 후 이 그림이 만약 다시 시장에 나온다면 ‘화장당할 뻔한 명화’라는 사연이 추가돼 또 한 번 최고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빈센트 반 고흐, ‘회장님의 기막힌 유언’」중에서
삶도 죽음도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고갱은 남은 인생 마지막까지 창작 혼을 불태우다가 1903년 55세를 일기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죽음을 결심하고 그렸던 이 그림은 그의 말년 대표작이 되었고, 타히티섬의 전설을 좋아했던 아마추어 화가는 사후에 미술사의 전설이 되었다. 고갱의 그림이 120년이 지난 지금도 감동과 울림을 주는 건 바로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죽음을 결심하고 남긴 걸작’」중에서
보수적이었던 어머니는 귀족 집안의 여성으로서 전통과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매우 엄하게 가르쳤다. 그러다 자제심을 잃을 때면 어린 딸을 종종 때리기도 했다. 아버지 역시 딸을 호되게 대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그는 학교에서도 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여러 번 쫓겨날 뻔했다. 그러다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니키가 아주 오랫동안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야 했던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친아버지가 어린 딸을 범한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그 후 20년이나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니키 드 생팔, ‘붓 대신 총을 들다’」중에서
영향력 있는 유명 평론가가 혹평한 그림을 살 고객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휘슬러의 작품을 소유한 컬렉터들 사이에서도 소동이 일었다. 그의 작품을 소유하는 건 안목이 없거나 부끄러운 일이 되는 분위기였다. 휘슬러는 화가로서의 평판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았다. 4년 전에도 자신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했던 평론가를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명예를 건 세기의 소송’」중에서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당신은 카이사르의 용기를 지닌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