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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통영 비명 지석원 송씨의 심정 도깨비 집 혼례 봉제 영감의 죽음 오던 길을 꽃상여 송씨 제2장 귀향 뱃놈이 왔고나 파초 명장 정사 애인 혼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장막 제3장 불구자 주판질 비밀 풍신 대접 요조숙녀 취중 낙성식 출범 나라 없는 백성 실종 형제 제4장 영아 살해 사건 서울서 온 사람들 결별 절망 오욕의 밑바닥에서 떠나는 사람들 거절 일금백원야 까마우야 까마우야 흐느낌 제5장 봉사 개천 나무라겠다 나타난 한돌이 점괘 가장례식 소문 보고 싶었다 꾀어낸 사내 미친놈 번개 치는 밤의 흉사 타인들 제6장 차중에서 광녀 감이 소담스럽게 선고 늙은 짐승 부산행 윤선 침몰 두 번째 대면 안녕히 주무세요 출발 어휘 풀이 등장인물 소개 |
저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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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제1장 통영」중에서 용란이 시집가던 날은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모두 혼사 일로 우왕좌왕했으나 어장 일이 걱정되었다. 김약국은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처음에는 집 안이 벌컥 뒤집어지게 김약국을 찾곤 했으나 결국 이 혼사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 없이 중구 영감이 신부의 아버지를 대신하였다. 신랑은 비쩍 마르고 혈색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신랑이 달아서 하는 혼사라 했건만 눈알이 풀어지고 통 생기가 없어 보인다. ---「제2장 바람이 세게 불었다」중에서 용숙은 방으로 들어가서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밀어붙이고 쭈그리고 앉는다. “흥! 요조숙녀가 따로 있나? 남편이 있음 다 요조숙녀제.” 뇌까리며 사내가 남겨놓고 간 허리띠를 집어 돌돌 말아서 장롱 서랍 속에 넣는다. 용숙의 집에서 쫓아 나온 한실댁은 망짝골 굿바위에 올라가서 두 다리를 뻗고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솔바람에 실리어 멀리 사라진다. ---「제3장 요조숙녀」중에서 용숙은 아들 동훈이 늘 아프다 하여 여러 차례 왕진을 청하던 자애병원의 의사하고 정을 통해 오다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시동생이 쫓아냄으로써 그 많은 재산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여서 뒤란에 있는 연못에 빠뜨렸다는 것인데, 의사의 처가 시동생에게 달려가서 결국 사건은 크게 벌어지고, 의사와 용숙은 경찰서에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제4장 영아 살해 사건」중에서 “비상 묵고 죽은 구신아, 칼 맞아 죽은 구신아, 배고파 죽은 구신아, 청춘에 죽은 구신아, 물에 빠져 죽은 구신아…….” 무당은 쿵쿵 땅을 구르며 눈을 뒤집었다. 그러더니 마루로 훌쩍 뛰어올라 암탉을 문지방에 놓고 칼을 번쩍 들다가 휙 얼굴을 돌렸다. 연학이었다. 개글개글 웃고 있는 연학의 얼굴이었다. “저눔이 언제 나왔노?” 연학이는 칼을 내리쳤다. 동강이 난 암탉의 대가리가 대굴대굴 마루 위에서 구른다. 대굴대굴 구르는 소리가 차츰 웃음으로 변하였고 그 웃음소리는 용란의 소리였다. 고개를 쳐들고 사람 속에서 발돋움을 하고 보니 암탉의 대가리는 용란의 대가리가 아닌가. ---「제5장 번개 치는 날의 흉사」중에서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6장 안녕히 주무세요」중에서 |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5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5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질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이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지나간 일 말하믄 뭐하겠노. 다 팔잔 걸 할 수 있나. 그래도 살아야제. 죽으나 사나.” 시대의 비극 아래 핏빛으로 번뜩이는 생의 감각 생명력으로 충만한, 박경리 문학의 또 다른 출발점 다산북스에서 새롭게 출간된 『김약국의 딸들』은 박경리의 또 다른 걸작이다. 이 작품은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펴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 후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며 전 국민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됐다. 박경리의 문학 세계를 『토지』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이들도 많지만 작가의 이름을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건 바로 이 작품, 『김약국의 딸들』이다. 선연하게 대비되는 비극과 생의 이미지, 형형하게 빛나는 문장과 날카롭게 벼려진 인물 묘사, 맛깔 나는 경남 방언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훌훌 넘기게 한다. 출간 60년이 지난 지금도 페이지마다 꿈틀대는 고유의 생명력으로 독자를 붙잡는다. 압도적인 이야기의 재미만으로도 다시 읽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지만,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세세한 묘사와, 유교적인 가치에 얽매어 연기처럼 허망한 운명을 맞이하는 구세대, 세속적인 욕망과 전통의 굴레에서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의 분투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격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요동치며 살아가는 인물들,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 속에서도 지지 않는 생명력, 『토지』로 이어지는 박경리 문학의 원형이 『김약국의 딸들』에 담겨 있다. 이번 특별판에서는 국립국어원의 맞춤법 규정을 따라 현대의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다듬으면서도, 작가의 고유한 표현과 방언, 시대를 드러내는 단어 등은 그대로 두어 원작의 생동감을 살렸다. 대신 이해가 어려운 단어들은 어휘 풀이를 따로 실었고, 등장인물 소개를 통해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와 인물 간의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비상 묵은 자, 자손은 지르지 않는다 카던데…….” 삶과 죽음이 무수히 찍힌 한 편의 점묘화 박경리 장편소설의 최고봉 남해의 미항 통영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봉제는 지역의 유지다. 터울이 나는 동생 김봉룡은 첫 번째 부인을 때려 죽였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광폭한 성정으로, 아름다운 둘째 부인 숙정과의 사이에서 아들 성수를 두었다. 어느 날 숙정을 사모하던 욱이 도령이 통영에 들어서고,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봉룡은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난다. 숙정은 오해에 맞서 비상을 먹고 자결한다. 성수는 김봉제와 그의 부인 송씨의 손에 자라고, 약국을 물려받아 집안의 유지를 이어 나간다. 한실댁과 혼인한 성수(김약국)는 딸 다섯을 둔다. 샘이 많은 큰딸 용숙은 과부로, 통영을 뒤집어놓는 스캔들에 휘말리지만 재물을 향한 남다른 감각으로 부를 축적한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둘째 딸 용빈은 자매 중 가장 이성적인 인물이다. 셋째 딸 용란은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이성보다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머슴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 아편쟁이에게 떠밀리듯 시집을 간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머슴과 달아나며, 김약국댁을 완전한 몰락으로 이끄는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넷째 용옥은 손끝이 야문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장 가까이에서 집안의 비극을 목도한다. 집안의 어장 사업을 도맡던 청년 서기두와 혼인하지만 애정 없는 결혼으로 고통스러워한다. 막내 용혜는 할아버지 봉룡의 노란 머리칼을 닮은 딸로, 김약국이 아끼며 사랑한다. 김약국은 물려받은 유산으로 풍족하게 살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뒤떨어진 감각으로 재산을 탕진하며 역사의 뒤편으로 떠밀린다. 이에 반해 영민한 둘째 딸 용빈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다른 자매처럼 결혼하지 않았고, 신식 교육을 받았으며,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돈을 번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규율에 얽매어 비극적 결말을 맞는 집안 식구들과 달리,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폐허로 남은 과거를 뒤로 하고 서울로 떠나는 용빈과 용혜를 통해, 무수한 비극을 극복하는 것은 새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임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끝내 피어나는 생명, 그것이 박경리의 작품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치이자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