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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

: 난감하고 화나도 멈출 수 없는 운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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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128*200*20mm
ISBN13 9788950948535
ISBN10 8950948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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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호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박혀 머물러 있다. 타인의 호의, 나는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정교하고 완전한 시스템이자 톱니바퀴라고 생각한다.
---「프롤로그_우리는 도로처럼 연결돼 있다」중에서

“도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요, 정글이에요, 정글.” 정글은 약육강식이잖아요. 조금만 어설프면 잡아먹혀요. 안 봐줍니다. 강사님의 조언은 현실적이어서 살벌했다. 나는 물었다. 그러면 이기적으로 운전해야겠네요. 그런데, 그런 건 또 아니란다. 바르게 운전해야죠.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날렵하게 운전하는 것도, 이기적으로 운전하는 것도 아니에요. 기본에 충실하게, 교통법규 잘 지키고, 양보해가면서, 출발할 때도 멈출 때도 차선을 바꿀 때도 커브를 돌 때도 부드럽게 운전하는 게 결국은 정글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생존자가 되는 길입니다.
---「01 핸들을 잡다」중에서

그렇게 차 정비에 관하여 하나를 배웠다. 웬만해선 공식 서비스센터에 갈 것, 한 군데 이상에서 견적을 받아볼 것.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귀한 것을 배웠단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슴눈을 하고도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존재가 사람이고, 그런 것이 어쩔 수 없는 직업인의 딜레마라는 것. 나는 사슴눈 아저씨가 악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그곳의 직원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 같아서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일을 했을 뿐. 그래도, 45만 원은 너무 심했다. 내 인생의 한순간에 사기의 신이 날 비껴간 것에 감사드릴 뿐이다.
---「11 정비소에 가다」중에서

드디어 운전 연습을 하기로 한 날, 친구는 생색을 내고 또 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목숨을 내건 일”이라며, 목숨 걸고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너에게 복된 일인지 혹시 알고 있느냐고 물어댔다. 나는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춰가며, 그러게 참으로 복된 일이다, 이런 친절을 베풀어주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공손히 답했다. 의외로 친구는 역정 한번 내지 않고 나를 지도해줬다. 물론 한숨은 좀 쉰 것 같다만.

(…) 재밌는 건,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친구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는 점이다. 1~2년 초보운전자로서 운전을 하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알았다. 초보운전자 옆에 동석한다는 건 참된 우정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임을.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거라던 친구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란 것을. 친구에게 그때 돼지고기가 아닌 한우를 사줬어야 했음을.
---「23 실전 연습을 하다」중에서

지금까지 친구를 조수석에 태우고서 연습을 했다면, 이제는 그다음 단계로 혼자서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가야 하는 큰 산을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아는 동생에게 전화로 “혼자 차를 몰고 나갈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섭다”라고 말했고, 동생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언니” 하고 진지하게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자기가 딱 한 마디를 할 테니 잘 들어보라고 했다.
“잘 생각해봐, 언니. 운전은 ‘원래’ 혼자서 하는 거야. 운전석은 1인석이잖아.”
이토록 강력한 말은 또 오랜만이었다. 동생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성적으로 백 퍼센트 납득이 됐다. 그래, 어차피 핸들은 두 명이서 잡는 게 아니잖아? 옆에 누군가가 있든 없든 운전석을 운영하는 건 언제나 나 혼자다. 그러니 혼자 도로에 나선다고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23 실전 연습을 하다」중에서

내가 한 짓은, 그러니까, 무려 역주행이었다.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후진을 감행했다. 트럭 뒤에 따라오던 차들은 영문을 모른 채 줄지어 대기 중이었고,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민폐를 주면서 나는 홀로 도로 가운데서 고군분투했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퍼부었다. 운전의 신이 도와준 덕에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마침내, 제 길로 내 차는 돌아올 수 있었던 거다. 그날 나는 결국 살아서 집에 돌아왔다. 이런 게 기적이지 무엇이 달리 기적일까. 옷은 안 젖었지만 정신은 축축하게 젖다 못해 흐물흐물해진 채로 나는 내 방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3 비 오는 날의 역주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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