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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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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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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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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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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36.8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9.4만자, 약 3.2만 단어, A4 약 59쪽?
ISBN13 979116040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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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슬픔 속에서도 반짝이는 마음이 있다] 따스하고 섬세한 눈길을 지닌 이주란 작가의 신작. 소설 속 인물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각자의 고통을 겪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세상을 향해 다시금 단단한 마음으로 나서는, 작지만 빛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와 너무 닮아 놀라운 장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될지도. - 소설/시 PD 김유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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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너무 쉽게 부서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그날 밤 나는 숨죽여 울었다. 밤이었고, 엄마는 잠이 들었고, 나는 낮잠을 자고 저녁에 깨어난 뒤로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숨죽였으나 5평짜리 원룸에서 울음소리를 감추기는 어려워 복잡한 마음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지나 2시를 넘겼고 엄마의 방엔 엄마와 방과 내가 있었는데 엄마의 코 고는 소리도 작고 방도 작고 나의 울음소리도 작은, 모든 것이 작은, 그런 밤이었다.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헤어지는 게 두려우면 더 사랑하면 될 텐데. 그쵸?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나는 순간 오래전 그 방을 떠올렸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고 잊고 싶지 않지만 잊혀지는, 그런 기억이 있다. 기억이라는 건 자꾸만 기억하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순간 기억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그게 누군가의 죽음이어도 되는 건지, 나는 그건 좀 싫었다.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이따금 새소리만 들려왔다. 대단한 소원은 아니었고 달라지는 나 자신을 알아가기를, 나끼리 매일 싸우지 않기를, 싸웠다면 화해하기를 빌었다.
---「별일은 없고요?」중에서

고민 끝에 퇴사를 하고서는 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늪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늪에 빠지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나 보다 싶을 만큼 그랬다. 뜻밖에 너무 잘되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도 그랬을까?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슬펐지만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힘겹게 잡고 있던 줄을 탕, 하고 놓은 것처럼 엄마가 내게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아팠구나, 미안하고 고마웠으며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다행이다, 너무 좋다,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그런 말을 엄마가 아주 많이 하는 게 마음 아팠지만 정말 좋다, 나 역시 그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나는 평생 엄마에게 받기만 했기 때문에 그땐 내가 모든 것을 주고 싶었으나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너는 이제 혼자가 될 거고 많이 울지도 모르니까.
엄마가 말했고 나는 옆집에서 종종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곤 한다.
---「사람들은」중에서

은영 씨와 같이 일하던 회사 근처에서 살 무렵에는 매일 무릎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무릎을 굽힐 때마다 무릎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서로의 무릎을 베고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무릎은 그저 닳고 있구나, 스스로 닳게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람들은」중에서

나는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중에는 그날의 기억으로 살거나 그날의 마음으로 사는 거라고. 그런 기억으로 살거나 그런 마음으로 사람은.
---「사람들은」중에서

겨우 두부인데, 나는 생각했고 아무튼 좀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른」중에서

무성했던 것들이 하나둘 말라가고 있었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 더 많은, 그런 길이었다.
---「어른」중에서

4년째 나는 4개월마다 계약을 했다. 계약을 이어왔지만 늘 심장이 뛰곤 했다. 그랬기에 내가 더 열정을 쏟아부었다면 누가 믿어줄까. 초조하고 불안해서 그만하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누가.
---「어른」중에서

넌 최선을 다해 잘 살아왔어.
울던 내게 소맥을 말아주던 아줌마. 자기는 맥주만 마시면서 소맥을 잘도 말던 아줌마.
---「어른」중에서

안 되는 줄 알아도, 계속해왔고, 계속할 거고.
어떻게 그게 돼요?
그냥 하는 거지. 하면 좋으니까.
아줌마는 늘 행동으로 내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줌마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른」중에서

나는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조금 흘린 것은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도, 무언가가 슬퍼서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어른」중에서

은영 씨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었고 보지 못할 때조차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은영 씨는 내게 그런 사람.
---「어른」중에서

몇 바퀴쯤 돌았을까. 이제 나는 아줌마와 멀어져 다른 사람들하고 섞여 뛰게 되었고 중간에 힘이 들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너무 힘들 땐 그러는 게 좋다고, 아줌마가 알려주었다.
---「어른」중에서

내년 봄도 은영 씨와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어두운 밤 산책길엔 어디선가 풍겨오는 은은한 라일락 향기를 맡고 주말이면 준경 씨네 밭에서 쑥을 캐고 쑥국 한 그릇과 오이지를 두고 소박한 밥 한 끼를 먹는 일. 은영 씨는 이른 열대야가 계속되던 어느 여름밤 조용히 사라졌다.
---「여름밤」중에서

사는 것도 이렇게 그냥 두 시간짜리 높지 않은 산이었으면 좋겠다. 힐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위해」중에서

너한테 집이 될 것 같아.
응. 우리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
짐이 될 것 같다고 말하려던 것이 ㅁ을 ㅂ으로 잘못 쳐 그에게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타였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는 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믿고 싶었으나 실제로 며칠이 지나자 역시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중에서

생각해보면 나도 슬픔을 다루는 방식엔 나름 일가견이 있지만 기쁠 때 어쩔 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동안 기쁜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경험 부족. 말하자면 기쁨 부족. 나는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기쁜 거랑 행복한 건 아마 다른 걸 거야, 라던 보라의 말을 곱씹곤 했다.
---「서울의 저녁」중에서

어떤 말과 마음들은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게 되곤 하니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 을…… 정말 해야 하는 순간에 하리라고.
---「서울의 저녁」중에서

다음. 그렇지, 웬만하면 다음이 있지. 다음이 있다는 마음으로 살았었고 꽤 오래 그 생각을 지웠었지만 이제 다시 다음을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다신 없을 것 같은 말이라고 확신했던 날들과 너무 행복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던 날들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 보라와 나는 그것들을 함께 나누고. 그러니까, 그런 사이가 되었다.
---「서울의 저녁」중에서

현경은 잠깐 재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현경아. 잘. 잘 살아야 돼. 재한이 다시 한번 말했다. 응. 잘 살게. 현경은 그렇게 말하고 ‘예약’ 등이 깜빡이는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파주에 있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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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의 소설을 읽고 ‘신세’에 대해 떠올렸다. 어쩌면 신세를 지고 끼치고 갚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동시에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인생의 한 ‘시기’에 방문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기는 퇴사나 이별, 죽음 등으로 인해 단절되곤 하는데, 적당히 거리를 두는 적절한 사람이 있어 “다음이 있다는 마음”(「서울의 저녁」)은 단절을 다시 연결로 이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다시 혼자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끝나도 삶은 계속되듯, 떠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희망 쪽을 향해 있다. 이 무자비한 세상에 맞서 “무자비한 따뜻함”(「어른」)을 전하는 그의 소설에 또다시 큰 신세를 입었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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