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슈가 게임판을 흔든다초기 라디오는 전형적인 남성적 매체였고, 텔레비전 채널권 역시 가장인 아버지가 쥐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편성을 획득했다. 게임도 비슷한 경로를 겪고 있다. 연령 분포도, 성별 차이도, 최근의 통계치는 공통적으로 게임의 ‘보편적 오락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일상적 여가·오락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게임은 수많은 장벽을 넘고 저항과 싸워야 했다. 노동이나 공부의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로 배척 받았고, ‘진지한 여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폄하됐으며, 소수만이 즐기는 오락이라는 이유로 무시됐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게이머는 게임의 문화적 정당성 획득에는 동의하면서 게임이 보편적 여가로 여겨지는 것에 저항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게임을 위계화 하는 전략을 통해 ‘가짜’ 게이머를 배제함으로써 진짜 게이머로서의 권력을 사수하고자 한다. ‘진짜’ 게이머의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대부분 소수의 젊은 남성이고, ‘가짜’ 게이머 취급을 당하는 건 대부분 다수의 여성이다.게임 세계에 여성이 비중이 커지면서 불거진 일들 게임 세계는 전통적으로 남성적이었다. 그러다가 여성 게이머들이 등장했고, 게임업계에 여성 인력이 늘었으며, 게임 속 여성의 모습과 역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앞서 나열한 사건들 역시 모두 게임 세계에서 여성의 비중이 커지면서 불거진 일들이다. 게임 세계의 남성에게 여성은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처럼 여겨지지만, 현실의 게임 세계는 더 이상 남성의 전유 공간이 아니다. 캐주얼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성 게이머의 비중이 남성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 게임을 ‘젊은 남성들’을 위한 놀이라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지났음에도 게임판에서는 여성의 진입에 따른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젠더 갈등은 다양한 분야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이다. 게임 속 젠더 갈등은 멀리서 바라보면 심각한 문제도 중요한 쟁점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현상의 한가운데에 있는 동안에는 저항과 갈등이 격렬해 보이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긴장과 어처구니없는 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교수인 윤태진 저자는 게임판에 여성이 진입하면서 발생한 갈등과 논란을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정리해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에 담았다. 게임판의 바깥 문화나 구조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안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언뜻 보면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들, 예를 들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나 강남역 살인 사건도 게임판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저자는 게임을 둘러싼 젠더 갈등 문제를 게임하는 여성 ‘플레이어' 영역, 게임 속 여성의 ‘재현’ 영역, 게임을 만드는 여성 ‘노동자’ 영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봤다. ‘젊은 남성의 영역’인 게임에 여성이 진입하고, 갈등과 타협이 이루어지고, 보편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여성 게이머, 여성의 재현, 여성 노동자’라는 세 범주에서 특별히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는 이 세 가지 범주에서 각각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학술적 분석이나 정책적 제안을 하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의 모습을 최대한 여러 시각에서 그리려고 노력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게임판에서 시작된 갈등과 논란이 게임 커뮤니티를 거쳐 증폭되고, 사회 문제로 확대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