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6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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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2쪽 | 170g | 114*188*20mm |
ISBN13 | 9788932041575 |
ISBN10 | 8932041571 |
발행일 | 2023년 06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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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2쪽 | 170g | 114*188*20mm |
ISBN13 | 9788932041575 |
ISBN10 | 8932041571 |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7 인터뷰 공현진 × 최선교 41 김기태, 「롤링 선더 러브」 57 인터뷰 김기태 × 소유정 10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121 인터뷰 하가람 × 이희우 153 |
이제는 계절마다 찾아오는 한국 문학을 떠받칠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를 기다리는 것이 내겐 습관처럼 되었다. 나는 매번 세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하고, 그 작가를 마음속에서 응원하곤 한다. 이번 ‘2023 여름’편에서도 한 분을 고이 새겨둔다.
세상이, 그리고 사람들이 묘하게도 설정하는 기준, 모호하기 그지없는 표준적 양태라는 정상성, 이를테면 ‘그만하면 됐어’하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미묘한 감각에 물음을 던지는 공현진 작가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시니컬한 제목의 소설을 시작으로, 늘어난 미디어 채널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전파를 장악한 짝짓기 프로그램을 제재로 한껏 통속성으로 호흡하고 있는 김기태 작가의 『롤링 썬더 러브』, 마지막으론 “공간적 디테일인 구조, 전반적인 톤/색체/분위기 등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는 하가람 작가의 도시 울산을 배경으로 한 『재와 그들의 밤』, 이렇게 세 편이 수록되어있다. (가나다 順이 수록순서의 편집 규칙인 모양이다.)
김기태 작가의 『롤링 썬더 러브』로 시작해야겠다. 소설은 “나 조맹희, 37세 독신.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장미를 들고...”라고 자신을 설명하며, 이성에 대한 적대와 환대의 상징을 양손에 쥔 채 세상을 가늠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흔해빠진 가십거리를 양산하는 짝짓기 쇼 <솔로 지옥>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한 여성의 이야기다. 세상 평(評), 주변의 시선에서 풀려나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출연 남성들에게는 관심을 등지고 자신을 담당하는 PD에 눈독을 들이는 여성, 나는 이 인물을 따라가며 그저 세태의 한 양상만을 읽고 싶어졌다. 문학의 소명이란 무엇일까 를 다시금 생각하는.
아마 내게 생각이란 걸 촉구한 작품은 공현진 작가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라 할 수 있는데, 소위 “적당하고 당연한 기준”이라는 사고와 행동의 그러해야 함이라는 기묘한 모호성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두 인물을 그리고 있다. 소설에 묘사되는 희주와 주호는 표현된 결과는 닮았지만 당연한 기준에 대한 인식은 존재와 부재처럼 양 극단에 있다. 성인기초 수영반에 등록하고 수영을 배우지만 두 사람은 늘 잘 못 된 동작의 예시로 뽑힌다.
두 사람이 물에 뜨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물장구치는 방법을 좀처럼 익히지 못하는데, 희주는 “힘을 빼야하지만...그렇다고 힘을 다 빼면 안 되고...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와 같이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는 사람이라면, 주호는 자신이 “지금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소설에는 두 개의 커다란 테마가 연결되어 오늘 우리네들 각자가 지닌 적당하고 당연한 기준이 동료 인간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한계, 생태계에 대한 자기 책임의 한계 등에서 대체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생각토록 한다.
사출성형기에 끼어 죽은 동료에 대한 애도를 “그만하면 됐잖아. 이제 그만하고 나와. 더는 무리야.”처럼, 정해진 기간의 기준이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들의 사회적 책임의 한계란 어디까지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꿀벌이 사라지면 사슬처럼 연결된 생태계의 연속적 파괴, 마침내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행성이 됨을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교사에게 용납되지 못하는 것일까? 작가가 묘사해 내는 두 인물에 심취케 하는, 놀라운 필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서사적 재미를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 사유의 끈을 강력하게 견인하는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하가람 작가의 『재와 그들의 밤』은 울산이라는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 공간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분위기, 고유한 정서를 느끼게 하듯, 그렇게 세밀화를 보듯 한 장면 한 장면에 그려진 현상들의 의미를 씹어보는 맛이 있는 그런 소설이라 할 것이다. 고향 울산의 집으로 향할 때 자신이 20년간 살았던 집(아파트 한울) 앞 산불의 영상,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묘사되는 “산에서 시작된 불길이 한울을 집어삼켜...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바라는 화자의 바람처럼 한 문장도 버릴 것 없는 촘촘하게 의미로 가득한 작품이다.
이들 신예의 작품과의 대면을 통해 새롭게 응원하는 작가를 마음에 품게 되는 것은 독서가에게 하나의 즐거움이다. 가을에는 어떤 작가의 소설이 인간 세상의 비의(秘意)를 안고 다가올지 벌써 기대하게 된다.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설정과 교묘한 은유와 상징으로 나를 어지럽게 만들기도 한다. 다르게는 그만큼 매력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소설 보다: 여름(2023)』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새로운 작가의 소설을 읽는 건 언제나 반갑지만 그 첫 만남이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니까. 조심스럽다는 생각, 그러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싶다. 그냥 끌리는 소설의 읽고 그 작가를 기억하면 그만인 것을.
『소설 보다: 여름(2023)』는 대체로 좋았다. 특히 좋았던 소설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이었다. 제목이 암시하는 우울과 절망의 분위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 소설 속 ‘희주’와 ‘주호’는 성인 기초 수영반에 등록했다. 기초에 주목하자. 그러니까 수영을 처음 배우는 것,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수영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이는 열심히 해도 그 자리인 경우가 있다. 희주와 주호는 후자라 할 수 있는데 강사나 다른 회원의 눈에는 둘은 성실하지 않게 보인다. 눈치가 없는 주호는 특히 그렇다. 잘 하는 사람은 앞에 서라는 강사의 말에도 주호는 맨 뒷자리로 가지 않는다. 그런 주호를 희주가 뒤로 이끈다.
수영장 밖에서 주호와 희주는 어떤 사람인가. 주호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희주는 10년의 교사 생활을 끝으로 퇴직했다. 희주는 환경을 생각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버리는 만큼 필요한 것들이 늘어났다. 물건과 물건 사이에서 희주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교사 시절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도 우리는 물에 잠기고 인간은 다 같이 죽을 수 있다는 걸 말한 것도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괴롭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주호의 직장에서 사출성형기에 끼어 동료 하나가 죽었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사고 후에도 공장을 돌아갔고 주호는 이건 아니라며 기계를 컸다. 누가 봐도 돌방행동이었다. 지속되는 주호의 행동에 회사는 주호를 쉬게 만들었다. 어떤 죽음과 어떤 사건에 대해 적당한 기준의 애도와 추모가 가능한가. 그만하면 됐다는 그 선은 누가 정하는가. 주호에게 침묵을 강요한 건 누구인가.
네가 왜 난리냐,라는 말을 듣고 주호는 그러게, 왜 내가 난리일까, 싶었다. 곽주호는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살았다. 나는 정말 책임이 없는 걸까. 그 생각에 사로잡혔고, 무슨 일을 대하든 습관처럼 이 질문을 마주했다. 점점 주호는 자신과 상관없는 뉴스들을 보면서도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물속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21~22쪽)
어쩌면 희주와 주호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왜 남들처럼 살지 않고 유난을 떠냐고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환경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싶었던 희주와 이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느낀 주호. 그들은 정말 나와 다른 사람일까. 수영을 배운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만 수영을 배우는 이들이 다양한 것처럼 수영에 대해 다가가는 방법이 모두 똑같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여러 각도에서 읽을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수영장에서 수영장의 그것으로 비유한 점이 탁월하다. 수영장은 다른 어느 곳으로든 치환된다. 내가 속한 작은 모임, 공동체 그 안에서 어떻게 의견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는 생각하게 만든다. 공현진의 다음 소설도 꼭 읽고 싶다.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는 세태소설로 무방하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해 출연한 37세 독신 ‘조맹희’의 이야기다. 너도 나도 사랑을 외치고 찾지만 정작 진짜 사랑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고 할까.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소설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큰 의미나 재미는 없다.
서울에서 고향 울산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해 엄마 ‘추자 씨’와 ‘나’ 사이의 시간과 둘 사이의 관계의 변화를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주는 하가람의 「재와 그들의 밤」도 나쁘지 않다. 20년 동안 살았던 한울 아파트가 산불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가 챙겨온 앨범에서 ‘나’ 가 마주한 건 ‘추자 씨’ 사진뿐이다. ‘나’ 가 모르는 진짜 엄마의 모습. 재와 그들의 밤이 지나면 ‘추자 씨’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나’의 열망으로 가득한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말이 탁월하다.
나는 바랐다. 바람이 굳게 닫힌 투명한 창문을 깨뜨리기를.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이 오래된 발자국들을 뒤덮기를. 깨진 창문으로 걷잡을 수 없는 강한 바람이 불어닥치기를. 또 바랐다. 바람이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젖히기를. 옷장과 서랍 속을 뒤집고 흔들어 부질없는 내용물들의 무덤이 만들어지기를.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재와 그들의 밤」, 150~151쪽)
한 쪽을 기운 편향적인 리뷰지만 취향의 차이일 뿐 장맛비 쏟아지던 여름에 만난 『소설 보다: 여름(2023)』는 장맛비처럼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