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정권 인수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과 갈등은 일시적 현상이나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한미 모두 지난 수년간 진행되어온 민주주의 퇴보의 결과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지식인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등 미국 스탠퍼드대학 동료 교수들도 적극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나 역시 그간 한국 민주주의의 역행에 대해 심각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가랑비에 옷 젖듯’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0년 7월 『저널 오브 데모크라시(The Journal of Democrac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민주주의의 쇠퇴(Democratic Decay)’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바 있다.
---「제1장, 민주주의의 위기, (본문 20~21쪽)」중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주장처럼 민주주의 쇠퇴가 바닥을 쳤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리더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푸틴은 위기에 빠졌고, 시진핑 역시 고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은 다소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낙승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이 전쟁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리전쟁으로 확산했다.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자칫 이 전쟁이 푸틴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시진핑 역시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하며 권력을 더욱 강화했지만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불황 등으로 국민의 불만은 쌓여가고 있다.
---「제1장,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회복을 위해, (본문 57쪽)」중에서
전쟁범죄는 세계사에서 새로운 일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해도 베트남, 캄보디아, 옛 유고슬라비아, 시리아, 미얀마 등 세계 각국에서 전쟁범죄가 발생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잔혹한 범죄행위와는 수위와 강도 면에서 비교할 바가 아니다. 내전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범죄와 달리 러시아는 엄연한 주권국가인 타국 국민을 상대로 범죄행위를 자행했다. 피오나 힐(Fiona Hill)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영국 『더타임스』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장악’이 아니라 ‘절멸’”이라며, 그가 우크라이나인 말살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단언했다. 조 바이든 역시 러시아군의 범죄행위를 ‘제노사이드(genocide, 인종학살)’로 규정했다.
---「제2장, 우크라이나 전쟁과 민주주의 연대, (본문 88쪽)」중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은 드물게나마 일정 부분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2014년 유엔 인권조사위원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북한은 극렬히 반발하면서도 15년 만에 외무상을 유엔 고위급 회의에 파견했다. 또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고위 관리가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의회와 뉴욕에서 열린 회의에서 자국의 인권 실태에 대한 토론에 나서기도 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고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에 반발하지만, 북한은 인권 문제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이러한 모습이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인권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제2장,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본문 125쪽)」중에서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 인선을 보며 법조계, 특히 ‘검찰 슈퍼 네크워크’로 얽혀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법무부, 통일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통령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의 선후배 법조인이다.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소위 ‘모피아(MOFIA)’ 출신이다. 대통령실의 항변대로 개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고 탄탄한 팀워크로 일의 효율성을 높여 단기간에 성과를 낸다고 가정하자. 그럼에도 급변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사회에 필요한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여성의 시선’이 한류의 성공을 가져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제3장, 슈퍼 네트워크의 위험과 다양성의 가치, (본문 154~155쪽)」중에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세계 인재 보고서」를 보면, 2016년 한국은 글로벌 ‘두뇌 유출(brain drain)’ 면에서는 조사 대상 63개국 중 41위에, ‘두뇌 유치(brain gain)’ 면에서는 33위에 그쳤다. 2020년에 두뇌 유출은 64개국 중 43위로 더욱 뒤쳐졌다. 이 보고서의 자료를 기준으로 두뇌 유출과 두뇌 유치를 두 축으로 해서 조사 대상국을 4개 그룹으로 분류해보면 한국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 영국 등이 속한 그룹은 두뇌 유출은 적고 두뇌 유치는 많아 인재풀이 풍부하다. 반면 그 대척점에 있는 그룹은 두뇌 유출은 많은 반면 두뇌 유치는 적다. 한국은 일본·타이완 등과 함께 이 그룹에 속해 있는데, 이 그룹 안에서도 두뇌 유출과 두뇌 유치의 격차는 가장 큰 편이다.
---「제3장, 글로벌 인재를 유지하라, (본문 180~181쪽)」중에서
K-컬처가 소프트 파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불필요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정부는 K-컬처 스타들을 정부 행사나 해외 공공외교에 활용할 유혹에 빠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을 평양에서 공연하도록 한 것이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BTS의 공연 여부로 논란을 빚은 게 대표적 사례다. 글로벌 팬들은 레드벨벳이 독재자와 함께하는 데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반페미니즘’의 이미지를 가진 윤석열의 취임식에 BTS가 공연할 가능성을 두고 팬클럽 아미(ARMY)의 불만도 컸다. 정부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 K-컬처가 글로벌 무대에서 소프트 파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조용히 뒷받침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통해 해외에서 소프트 파워를 키우려다 외려 반중 정서만 키운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제4장, K-컬처와 문화의 힘, (본문 206쪽)」중에서
SDGs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인류의 번영을 위해 힘쓰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할 것을 촉구한다.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각국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 최종 합의문을 채택했다. 파리협약은 2016년 11월 발효되었다. 파리협약에서 모든 국가는 지구의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불참하면서 다소 빛이 바랬지만, 2018년 4월 175개국이 파리협약을 비준했으며 10개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응계획을 처음으로 제출했다. 2022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 문제가 처음으로 당사국총회의 정식 의제로 채택되었다.
---「제4장,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법, (본문 235~236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