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올린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생겼다. ‘2022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독자가 읽은 브런치북’에 선정되기도 하고, 포털 사이트 자동 검색어에 내 필명이 뜨기도 했으며, 구독자 14,000명을 넘기는 등, 평범한 삶을 살던 내게 믿기지 않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해준 이야기는 나의 평범하지만 조금 다른 이혼이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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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피운 남편과 이렇게 여행을 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안다. 누가 들으면 여기가 할리우드냐고 어이없다 할 테지. 이 여행은 내가 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 한 달 사이에 가능하면 그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에 모두 함께해주려고 했다. 그것이 나와 함께 7년을 보낸 그와 이별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는 이 여행을 내가 함께해줘서 희망을 가졌을지 모른다. 아마 그랬을 거다. 여행지에서 그는 먼저 나서서 내 사진을 열심히 찍어줬고, 둘이 셀카도 찍자며 먼저 폰을 들었다. ‘6년간 한 번도 내가 먼저 부탁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주지 않더니…. 이것도 할 수 있었구나, 당신.’ 또 씁쓸한 웃음이 스며 나왔다. 그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 내 얼굴은 다시 들춰보고 싶은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모두 슬픈 표정의 사진들. 그마저도 추억으로 남을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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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이혼 확인 기일에도 이렇게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같이 정말 많은 걸 공유하고 이해하고 있는 사이. 그렇지만 이제 그 누구보다도 멀어지게 될, 다시는 이어질 수 없는 관계로 바뀌는 사이. 이혼은 이런 거구나. 새삼 웃다가도 슬퍼졌다. 지평선 너머로 뭉게구름이 보이는, 하늘이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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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제 추워지니까 아마 내년 봄에나 다시 탈 것 같은데 그때 기억나면 좋겠다. ”
“탈 수 있을 거예요. 자전거는 한번 배워놓으면 안 잊어버려.”
내년, 그때의 나는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을까. 혼자 발을 내딛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만약 다 잊어버렸으면 어떡하나. 그때는 더 이상 내 곁에 남편도, 평생의 반려자도 없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자전거를 배운, 새로운 경험치 하나를 추가한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비록 늦긴 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켜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30여 년 만에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네. 이제 혼자서도 잘 탈 수 있게 더 연습할게요.”
그래, 이제 혼자 해낼 수 있게 노력하자. 자전거도, 인생도. 그에게 배운 것들을 잊지 말고, 혼자 잘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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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종료를 누른 뒤, 눈가가 잠시 뜨거워졌다. 이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여전한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집에서 외롭게 기다리고 있었을 고양이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깜빡할 정도로 정신을 놓고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나보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헤어진 뒤 아마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를 동정할 이유도 사실 나에겐 없다. 그렇지만 함께 보낸 7년의 시간이 애잔한 마음을 가져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블라인드를 혼자 달 수 있게 된 날, 그는 현관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둘은 이미 각자 견뎌가며 어떻게든 서로가 없는 삶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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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던 결혼생활이었다. (중략) 그 덕분에 웃고 행복하고 포근했던 날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가 내게 준 절망을 부정하지 않듯이, 행복도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다행히 나 자신에게 확신이 있기 때문일 거다. 난 내 행복이 뭔지 알고,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제대로 들으며 살고 있으니까. 그와 살았던 7년이 거짓과 기만으로만 가득했다면, 진작 그와 미련 없이 이혼했을 거다. 그렇지 않았음을 알기에 그의 잘못을 두 번이나 묻어두고 어떻게든 그 행복을 이어가고 싶었다. 결국 진짜 행복을 위해선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닫고 그와 이혼하게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그가 나를 지난 7년간 충분히 사랑해주었다는 거다. 그 소중한 마음을 잊지 말고, 다만 이 아픔만 치유하자. 내게 남은 긴 인생에서 분명 또 마음껏 사랑할 날이 올 거니까. 문득 돌아보니 내 마음은 긴 겨울을 지나, 뒤늦게 봄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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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에도 나는 나였고, 이혼 후에도 나는 역시 나였다. 스스로를 믿고 나다운 결정을 했던 작년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울면서 그와 작별 인사를 했던 나에게 이제 웃으며 말해주고 싶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설레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더 밝게 웃으며 다가올 행복을 누리라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의 너도 분명 잘할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계속 너답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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