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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곁에서

[ 작가 인쇄 사인본 ]
신경숙 | 창비 | 2023년 05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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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08g | 128*188*20mm
ISBN13 9788936439019
ISBN10 8936439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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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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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내게 닥친 일 중에서 어려운 것만을 찾아 나를 돕던 큰아이. 나를 탓하지 않고 그렇게 말해주는 아들에게서 힘을 얻어 다시 일거리를 찾아다녔어. 집을 나설 때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라던 성경 말씀을 새겼지.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곳간에 모아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그들보다 귀하지 않으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면 무거운 발걸음을 떼면서 너.희.는.그.들.보.다.귀.하.지.않.으.냐. 웅얼거렸다네.
--- p.51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던 17년 6개월 동안은 조국이 우리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했어. 깊이 사랑한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은 아문 후에도 마음에 폐허를 남기지. 우리 네 식구는 타의로 시작된 이곳에서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서 속마음을 털어놔본 적이 없네. 내가 서울에 딱 한번 갔었다고 말하자 왜 서울에 다시 가지 않느냐고 선생이 물었지. 시인이 모국어와 그렇게 등지고 살아서 되겠느냐고도.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나? 대답을 하기는 했는가? 조국과 정부는 다르다고 생각하네. 딱 한번 서울에 다녀온 후 알게 되었네. 조국이 우리 가족을 버린 게 아니라 정부가 우릴 버린 것이었다는 걸. 남편이 그렇게 그리워한 곳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가지 않은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네. 내 아들들이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조국이지만 마음에 품고 살아가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지. 이 나이가 되면 자식의 침대가 놓여 있는 곳이 조국인지도 모르지.
--- p.73

언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지만 널 보는 언젠가,라는 시간이 이유가 되어 오늘 잘 지낼 수 있겠지. 오늘도 기분 좋게 하루라는 강을 건너자.
--- p.96

우리는 젊어서 외로웠고 각자의 태생지를 두고 기차를 타고 떠나온 사람들이라 도시에 집이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매달 다가오는 월세 내는 일은 벅차고 고되었다. 결핍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은 이유 없이 잡을 손이 필요했다. 나에겐 너의 손이 거기에 있었고 너에겐 나의 손이 거기 있었겠지.
--- pp.111~112

퇴락한 기다란 목선 안에 빈틈없이 실린 남루한 살림살이들은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라는 작품 제목에 비쳐져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게 했다. 우리는 강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 중의 하나에 불과하겠지. 강만이 아니라 너의 배에 무엇이 실렸는지 나는 모른다. 나의 배에 무엇이 실렸는지 너도 다 알진 못하겠지. 그래도 너는 베를린에서 나는 제주에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보며 동시에 서로를 생각했다.
--- p.121

너에게 갈 수 없으니 나는 여기 있을게. 오늘은 어땠어? 내일도 물을게.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하지. 반짝이는 눈망울을 한 아이들, 모든 것을 잃고 멀리 떠나는 사람들, 남루한 세간살이들, 누군가를 부르는 애타는 목소리. 이 고통스러운 두려움과 대면할게. 사랑하고도 너를 더 알지 못해서 미안해.
--- p.157

가끔 처음 해보는 일이나 처음 당해보는 일 앞에 처하게 되면 제 나이를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물끄럼해집니다. 아직도 처음인 게 남아 있다니 싶어서요. 도대체 얼마를 더 살아야 처음 닥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일이 사라지는 날은 없겠지요. 누구에게나 죽음을 앞둔 일초 전도 처음 처하게 되는 순간일 테니.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 일초 전까지 처음 앞에 서게 되는 거네요, 선생님.
--- pp.167~168

단순한 여행으로 이 섬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송당의 어디쯤에서 이런 표석과 마주쳤어요. 사람이 죽은 얘기가 담담히 쓰인 표석을 본 뒤부터 이 섬에 자주 왔어요. 그러니까 표석을 찾아내고 그 내용을 읽으러요. 어느 날인가 이 다랑쉬굴 앞의 표석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바람이 너무 휘몰아쳐서 날아가버릴 것 같은 날이었는데 내 숨은 내 것인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 살지 못한 사람들 몫까지 내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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