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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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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698g | 152*225*23mm
ISBN13 9791168261808
ISBN10 116826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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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날 호랑이 등에 태웠던 거야.’ 그는 생각했다. ‘호랑이 등에서 자란다는 건 황제의 아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인 게야. 모두가 경탄할 정도의 힘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과 동시에 호랑이 같은 무시무시한 짐승을 지배하는 느낌이기도 하지. 그리고 허벅지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맹수의 단단한 근육을 체감하는 것이기도 해.’
--- p.19

죽음의 공포로 손발은 떨렸고, 입안은 바싹 말랐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더듬어 팔걸이의자 옆에 놓아두었던 탄산수병을 찾아 한 모금 들이켰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고 주위를 훑어보았다. 방문에 귀를 대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p.32

한편,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이스탄불린을 입은 압둘하미드에게는 아무도 관심이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작은아버지와 형의 외모에 호감을 보이던 유럽 사람들은 압둘하미드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솔직히 이런 대접에 그가 상처받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압둘하미드에게는 방문한 모든 곳, 목격한 모든 것, 그리고 만난 모든 사람에 대해 여유 있게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 pp.73~74

그는 황제와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이 기록이 나중에 세상에 알려질지는 알 수 없지만, 후세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했던 황제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황당한 이야기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메모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됐다.
--- p.135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사나운 호랑이에게 모두가 복종하는 재미를 맛보지 않고서야 어찌 황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라고 해도 일상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그렇게라도 해야 황제가 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황제든 왕이든 벌거벗은 채 태어나서 벌거벗은 채 죽고 벌거벗은 채 사랑을 나누며, 먹고 자고 병 들고 화내고 기뻐하지 않는가? 모든 게 백성들과 똑같다면, 저 멀리 인도까지 뻗어 있는 알라신의 지상 그림자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pp.185~186

“어쩌면 오늘 밤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충돌할 것이고 지구는 사라질 겁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길이 세상을 집어삼킬 겁니다. 엄청난 진동과 폭발, 천지를 뒤집어 놓을 재앙과 함께 무시무시한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황제는 군의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가?”
--- p.202

제국을 위해 오랜 세월 헌신했는데 자신의 공은 새까만 천으로 다 가려져 버렸다. 이 어둠 속에서 진실이 묻히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머지않아 죽음이 찾아올 테고, 눈을 감으면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겪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들려주는 것이었다. 어쨌든 역사는 자신의 누명을 벗겨 줄 테니 진실만은 가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p.237

‘불쌍한….’ 군의관은 ‘불쌍하다니?’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쌍하다고? 내가 지금 그자한테 불쌍하다고 했어?’ 황제는 아무 소식도 모른 채 정원에도 나가지 못하고 저택에서 몇 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걸 알지 못한 채로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황제에게는 그게 최선이 아닐까.
--- p.341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켜졌다 꺼진 안광. 이제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자신이 다시 권좌에 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었다. 동생이 현재 상황을 해결할 수 없기에 폐위시키고, 자신의 경험이 제국에 필요하니 다시 황제 자리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신의 뜻에 달려 있었다. 모든 건 운명에 달린 것이니까.
--- pp.382~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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