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는 죽음들은 대상만큼 다양했다. 그리고 그 어떤 죽음도 잔혹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교통사고로 깨진 머리에서 흐르는 뇌수, 살인을 당하면서 튀어나온 살점들, 죽고 싶지 않다며 마지막까지 치는 몸부림, 뚫린 목구멍에서 나오는 쇳소리와 바람 소리,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과 그 사이로 흐르는 눈물, 고장 난 기계처럼 덜컥거리며 빠진 목뼈와 기이하게 늘어진 혀, 다리 사이로 흐르는 오물들. 죽은 사람을 보는 것과 죽는 사람을 보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 p.29
“말도 안 돼.”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그건 사실 제영의 바람에 가까웠다. 그는 이미 진실을 일부 알고 있었다. 사장은 죽어야 했지만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죽음을 맞는 것을 보았다. 대신사. 다른 사람이 대신 죽으면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 세 번째 법칙이었다. 하얗게 질린 제영을 아이는, 아니, 남자는 이죽거리는 시선으로 보았다. “너도 보이는구나?” --- p.98
그동안 죽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것만 먹어왔다. 먹는다고 해서 매번 그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공포가 그렇게 만들었다. 제대로 먹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제영의 배를 그득하게 채운 것은 감격이었다. 솔지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제영이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제영의 기세에 압도된 것 같았다. 한입 가득 음식을 넣은 채 우물거리며 제영이 말했다. “안 먹어요?” 돌아온 것은 엉뚱한 대답이었다.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먹는 사람은 처음 봐요.” 제영은 그녀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죽을 둥 살 둥. 틀린 말은 아니었다. --- p.137
“생각보다 일찍 왔네? 데이트는 잘했나?” 오랜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중개인이 한 손을 들고 그를 반겼다. 꼬고 앉았던 다리를 풀며, 입고 있던 재킷의 깃을 바로 잡았다. 그런 그의 옆에 가늘고 긴 회칼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제영의 시선이 그쪽에 가닿는 것을 본 중개인이 미소를 지었다. 입은 웃고 있었고, 눈은 서늘하게 빛났다. “우리, 할 말이 있지 않나?”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죽음을 누가 막았는지. --- p.183
“내 걱정 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 최석태 그 새끼가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회장이나 그 새끼나 같은 피야. 뒤통수치는 피는 어디로 안 간다고.”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너나 걱정해.” 피식, 웃던 중개인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인상을 쓰고 떨리는 눈을 제영에게로 돌렸다. “혹시 내 죽음을 봤어?” 볼 수 있는 죽음의 대상은 얼굴을 아는 자다. “글쎄.” 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문이 부서졌다. 그 소리와 함께 중개인은 아래로 뛰어내렸다. “안 돼!” 제영의 외침이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