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많은 일을 했는데도, 아직도 똘망똘망한 눈을 한 아이에게 물었다.
“하준아, 피곤하지 않아?”
“엄마, 나는 알고 싶은 게 많고, 계속 연습하고 싶어. 그리고 노는 게 정말 재밌어. 너무 즐거워서 피곤하지 않아.”
이 책은 아이를 이런 ‘능동적 학습자’로 성장시키는 ‘해냄 스위치’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의 간섭과 조급증을 끄면 아이의 자기주도성이 켜진다. 이렇게 자극된 능동성을 기반으로 아이는 이 세상을 자신의 마음과 머리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도구로 표출하며 즐겁게 성장할 수 있다. 모든 아이에겐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과 그걸 해낼 힘이 있다. 능동적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 꾸준히 연습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일을 큰 기쁨으로 여기는 삶.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pp.10-11 「프롤로그」 중에서
유치원 가방을 정리함으로써 아이들은 스스로 하루를 점검하고 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친구들과 더 재밌게 놀고 싶으면 어떤 걸 준비하고 가져가야 할지 스스로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부탁했다. 종이접기를 더 잘하고 싶어 일찍 일어나서 연습하는 시간이 늘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엄마에게 스스로 설명하면서, 더 알고 싶은 것들을 찾아 나갔다. 궁금한 건 책을 찾아보았고, 없으면 함께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다음 날 필요한 물건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생각했다. 선생님이 말한 준비물, 챙겨가야 하는 옷, 가져가고 싶은 책이 있다면 전날 미리 가방에 스스로 챙겨두었다.
---p.38 「‘유치원 가방 정리에서 시작하는 자기객관화’」 중에서
하루는 아이와 ‘할리갈리’를 하고 있었다. 이젠 내가 진심으로 임해도 아이가 이기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가 계속 종을 치며 카드를 가져가자 내가 투덜대며 말했다.
“하준아, 하준이가 자꾸 가져가니까 엄마가 속상하네. 엄마가 질 것 같아.”
“엄마, 마음이 너무 급해서 그런 거야. 숫자를 찬찬히 봐봐. 숫자를 천천히 보고 집중하면 잘할 수 있어.”
보드게임 3년 차, 아이의 마음에 하나의 공간이 생겼음을 느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쌓이자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다음 순서에 내가 종을 재빨리 치고 카드를 가져가자 아이가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 어때? 이제 잘 되지? 잘할 수 있잖아!”
아이는 내가 카드를 먼저 가져갔음에도 행여 자신이 질까 봐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격려해주었다
---pp.53-54 「‘아이를 강하게 하는 마법의 주문 ‘한 판 더’」 중에서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이 메뉴 중 한 가지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자석을 붙인다. 그리고 타이머로 스스로 정한 시간에 맞춰 놀이를 하거나 자유시간을 보내고, 아침을 먹는다. 입고 싶은 옷을 옷장에서 골라 스스로 입고, 로션을 바르고, 유치원에 갈 준비를 마친다. 남은 시간 동안 과일을 먹고 책을 읽는다.
우리 부부가 아침에 할 일은 아이들이 고른 아침을 준비하고, 과일을 깎아주는 일이다. 나도 출근으로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가진다. 우리에겐 ‘등원 전쟁’이라고 불리는 아침 풍경이 없다.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늘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스스로 해내고 있다고 해서, 당연한 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녁 시간에도 아이들의 자기주도는 이어진다. 밖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옷을 탈의하고 세탁기 안에 넣어둔다. 목욕 후 스스로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린다. 각자 입고 싶은 편한 잠옷을 골라서 입은 뒤 유치원 가방을 혼자서 정리하고, 유치원에서 담아온 세 가지 정보를 나에게 설명해준다. 더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선 물어보거나 요청한다. 내일 가져가야 할 준비물이나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챙겨두기도 한다.
---p.67 「‘살꾸긍핏의 힘’」 중에서
일상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과제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그걸 주도적으로 해낼 수 없으면 아이는 이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온 에너지를 쏟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기본적인 행동을 수행하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공부하기 전에 필요한 책상 정리, 연필 깎기, 책 정리 등이 되어 있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그런 기본적인 행동들을 하느라 온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다. 공부를 시작도 하기 전에 책상 정리에 모든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이 자잘한 준비 활동을 끝냈을 뿐인데 이미 진이 빠진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미리 준비해둬야지.’라고 다짐만 한 채로 공부에 대한 의욕도 맥없이 사라진다. 주의 집중의 핵심이 되는 대상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다.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선 ‘책상 정리’와 같은 일상적인 연습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p.90 「‘무조건 하게 되는 계획표’」 중에서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우리가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였던 그 일들을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침 시간에는 쓸 수 있는 시간에 제약이 있으니, 필요한 시간을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정하기로 했다. 그날의 주인공인 사람이 아침 먹을 때 15분, 과일 먹을 때 10분, 옷 갈아입을 때 10분 등과 같이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고 시간을 정했다. 아이들이 네 살 때부터 타이머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기에, 알아서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다. 가족 네 명이 A4 용지 맨 밑에 있는 각자의 이름 칸에 서명했다. 나는 이 용지를 코팅해서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는 자석 칠판에 붙여두었다. 이날 이후, 더 이상 아침 시간에 “씻어라”, “입어라”, “먹어라”, “시간 없다”라는 말들로 서로를 괴롭힐 필요가 없었다.
---pp.101-102 「‘잔소리가 필요 없는 15분 조절력’」 중에서
급식 표와 간식 표만 보더라도 알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유창하게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읽고자 노력한다. 문제집, 학습지에서 읽어야 하는 글자와는 다르게 급식 표와 간식 표에 있는 글자는 아이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메뉴를 미리 알고 가면 친구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가 있는 날도 확인할 수 있으니, 아이에게도 여러 장점이 있다.
“엄마, 오늘 친구들한테 방과 후 간식 뭐 나오는지 미리 알려줬는데 다들 진짜 좋아했어.”
“나도 백설기 좋아하는데, 백설기 좋아하는 애들이 많더라고! 백설기 좋아하는 애들이랑 같이 박수 쳤어!”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하기에 아름답다. 백설기가 나온다고 다 같이 박수 치며 좋아할 수 있는 시기다. 종이접기를 가장 잘하지 않아도, 글씨를 또박또박 쓰지 않아도, 달리기가 빠르지 않아도 백설기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충분할 때다. 혹은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미리 알고 있는 메뉴가 실제 나왔을 때의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메뉴를 매번 통보받는 것과 아이가 미리 알고 있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여기에도 ‘선택’이라는 능동성이 들어간다. 이렇게 유치원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쌓고 오면, 매일 저녁 급식 표와 간식 표를 더욱 진지하게 읽게 된다.
---pp.239-240 「‘읽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한 맛있는 한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