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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상품

원서발췌 가곡원류 (큰글자책)
[도서] 원서발췌 가곡원류 (큰글자책)
박효관,안민영 저/신경숙 역 지만지한국문학
24,000
원서발췌 가곡원류 (큰글자책)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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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남창

우조
초삭대엽
이삭대엽
중거
평거
두거
삼삭대엽
소용
반엽
계면조
초삭대엽
이삭대엽
중거
평거
두거
삼삭대엽
만횡
농가
계락
우락
얼락
편락
편삭대엽
얼편

여창

우조
이삭대엽
중거
평거
두거
반엽
계면조
이삭대엽
중거
평거
두거
농가
우락
계락
편삭대엽

가필주대

『가곡원류』 발문

해설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3

박효관(朴孝寬, 1800~1880)의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애(雲崖)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가객이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아주 적다. 이는 그가 신분이 낮은 중인 계층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밝혀진 바는, 그는 본디 서울 오군영 소속의 수군(守軍) 일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객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생애 후반부에 종2품 동지중추(同知中樞) 벼슬을 얻기도 하나, 이 벼슬은 실직이 아니라 일종의 명예직이다. 수군을 지냈지만, 워낙 가객으로서의 명성이 높고 또한 대원군 휘하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얻게 된 직함으로 보인다. 박효관은 당
박효관(朴孝寬, 1800~1880)의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애(雲崖)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가객이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아주 적다. 이는 그가 신분이 낮은 중인 계층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밝혀진 바는, 그는 본디 서울 오군영 소속의 수군(守軍) 일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객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생애 후반부에 종2품 동지중추(同知中樞) 벼슬을 얻기도 하나, 이 벼슬은 실직이 아니라 일종의 명예직이다. 수군을 지냈지만, 워낙 가객으로서의 명성이 높고 또한 대원군 휘하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얻게 된 직함으로 보인다. 박효관은 당시 대표적인 음악 풍류회였던 ‘노인계’와 ‘승평계’의 수장으로, 많은 가객들 사이에서도 매우 영향력 있는 가객이었다. 이런 그의 가객으로서의 명성 때문에, 당시 여항 음악인들은 그를 존경해서 감히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반드시 ‘선생’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의 활동 중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은 흥선대원군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가곡원류≫라는 방대한 가집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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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영은 그의 스승인 박효관(朴孝寬, 1800∼1880?)과 더불어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한 가집 편찬자이자 가창자(歌唱者)로 활동했다. 그들이 편찬한 《가곡원류》는 조선 시대 시조사를 논함에 있어 핵심적인 자료이기에, 그동안의 연구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안민영은 당시 문화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기에, 19세기 시조문학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당시 문화계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음에도, 정작 안민영의 생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에 관한 자료가 가장 풍부하
안민영은 그의 스승인 박효관(朴孝寬, 1800∼1880?)과 더불어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한 가집 편찬자이자 가창자(歌唱者)로 활동했다. 그들이 편찬한 《가곡원류》는 조선 시대 시조사를 논함에 있어 핵심적인 자료이기에, 그동안의 연구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안민영은 당시 문화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기에, 19세기 시조문학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당시 문화계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음에도, 정작 안민영의 생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에 관한 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남아 있는 기록은 자신의 작품으로만 엮은 가집 《금옥총부》다.
안민영은 주옹(周翁)과 구포동인(口圃東人)이라는 호를 사용했으며, 자(字)는 '성무(聖武)'와 '형보(荊寶)'다. 특히 '구포동인'이라는 호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내려 준 것으로, 북악산 기슭의 삼계동에 있는 그의 집 후원에 '구(口)'자 모양의 채마밭이 있어 붙여졌다고 밝히고 있다. 《금옥총부》의 기록을 통해서 안민영의 출생 연도가 1816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언제 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70세 되던 해인 1885년에 안경지라는 인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의 작품이 있어, 적어도 그때까지는 생존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또한 1880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작품의 발문(跋文)에 아내와 '함께 따른 지 40년으로 금슬처럼 벗하였다(相隨四十年, 琴瑟友之)'라는 기록으로 보아, 대략 25세(1840) 무렵에 부인과 결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옥총부》의 기록을 통해서, 안민영은 젊어서부터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교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안민영이 66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지은 작품의 발문에, '내가 젊어서부터 성격이 호탕하고 편안하게 지내며 즐기고 좋아하는 일은 풍류(風流)였으며, 배운 바는 모두 음악이고 가는 곳은 모두 번화한 곳이요 시간이 있으면 또한 세상을 벗어날 생각도 있었다(余自靑春, 豪放自逸, 嗜好風流, 所學皆詞曲, 所處皆繁華, 所交皆富貴, 而有時亦有物外之想)'라고 토로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가집의 수록 작품과 발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과의 인연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흥선대원군과 그의 아들인 이재면의 후원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조건에서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었으며, 음악을 바탕으로 하여 낭만과 풍류를 즐기는 생활이 가능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흥선대원군과의 만남은 안민영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인데, 1867년부터 '오랫동안 모셨다(長侍)'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심복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하정일과의 인연을 강조한 작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흥선대원군과 연결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안민영은 당대 최고 권력자의 후원 아래 당대 문화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왕실 인물들과도 인연을 맺어 그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작품을 짓기도 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흥선대원군의 저택인 운현궁과 별장들을 출입하면서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들의 후원에 대해 《금옥총부》의 작품들과 발문에 상세히 기록을 남긴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 연대가 확인되는 안민영의 마지막 작품은 1885년에 지은 것인데, 이후 창작된 작품의 연대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1880년에 서문을 쓰고도 새롭게 창작한 작품들까지 가집에 추가하여 보완했던 편찬 태도로 보아, 그 이후 어느 시점에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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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교대, 한성대, 고려대를 거치며 국어국문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대학에서는 고전시가를 주 전공으로 가르쳤고, 동시에 고전문학과 문화를 접목한 강의들을 해 왔다. 현재는 한성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진행한 연구 주제는 주로 ‘조선조 가집’, ‘가곡 연행 환경’, ‘궁중 연향 가요’, ‘근대 공간에서의 전통 가요 향유 양상’들에 대한 것들이다. 최근에는 ‘구술가요 시대의 가곡 연행’에 대한 탐색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19세기 가집의 전개≫(계명문화사, 1994),
신경숙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교대, 한성대, 고려대를 거치며 국어국문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대학에서는 고전시가를 주 전공으로 가르쳤고, 동시에 고전문학과 문화를 접목한 강의들을 해 왔다. 현재는 한성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진행한 연구 주제는 주로 ‘조선조 가집’, ‘가곡 연행 환경’, ‘궁중 연향 가요’, ‘근대 공간에서의 전통 가요 향유 양상’들에 대한 것들이다. 최근에는 ‘구술가요 시대의 가곡 연행’에 대한 탐색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19세기 가집의 전개≫(계명문화사, 1994), ≪조선 후기 시가사와 가곡 연행≫(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1), ≪조선 궁중의 노래, 악장≫(민속원, 2016)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가곡의 새김≫(민족음악연구회, 2003), ≪예술과 장인 문화1, 2, 3≫(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5), ≪조선 후기 궁중 연향 문화2, 3≫(민속원, 2005), ≪효명세자 연구≫(한국무용예술학회, 2005),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2≫(휴머니스트, 2006), ≪고시조대전≫(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고시조 문헌 해제≫(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조선 궁중의 잔치, 연향≫(국립고궁박물관, 2013), ≪청구영언 주해본≫(국립한글박물관, 2017), ≪청구영언 영인본 해제≫(국립한글박물관, 2017), ≪풀어쓴 정가≫(국립국악원, 2018)가 있고, 공역으로는 ≪송설당의 시와 가사≫(어진소리, 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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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128*188*20mm
ISBN13
9791128826771

책 속으로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등불 잡고
가까이서 사랑할 때 그윽한 향기조차 떠돌더라.
- 〈58〉번 작품

해 지고 돋는 달이
너와 기약 두었던가
방 안에 잠자던 꽃이 향기 놓아 맞는구나.
내 어찌
매화와 달이 벗 되는 줄 몰랐던가 하노라.
- 〈124〉번 작품

복숭아꽃은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 온다.
꾀고리새 노래는 안개비에 굴러가도다.
때마침
잔들어 권하려 할 제 아름다운 여인이 오도다.
- 〈232〉번 작품

꽃은 밤비에 피고
빚은 술 다 익도다.
거문고 가진 벗이 달과 함께 오마더니,
아이야
초가지붕 처마에 달 올랐다 벗 오시나 보아라.
- 〈288〉번 작품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가곡원류』의 탄생

『가곡원류』는 가객 박효관과 그의 제자 안민영에 의해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가곡 가집이다. 그 편찬 작업은 대원군의 경제적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박효관·안민영이 대원군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867년부터이고 대략 이때에 『가곡원류』도 제작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대원군은 1865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당시 여항인들의 칠송정 시사(詩社)를 후원해, 모임 장소였던 만리장성집을 수리해 주었다. 『가곡원류』는 바로 이곳에서 제작되기 시작해, 이후 1872년에 완성된다. 『가곡원류』 편찬에는 적어도 5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됐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만리장성집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대원군의 지원이 없었다면, 『가곡원류』 탄생도 어려웠을 것이다. 편자들의 문학적·음악적 시각에 따른 많은 작품들의 수집 활동, 작품 배열에 대한 고심, 문학적·음악적 실험의 단행, 작품마다 악보를 그리는 작업에는 절대적인 시간과 자본이 필요했는데, 거기에 대원군의 도움이 뒷받침되어 『가곡원류』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사집이자 성악보집

『가곡원류』는 가사집이면서 동시에 성악보집으로서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우선 ‘가사집’으로서의 특징적 모습은 종래의 가집들과 달리 저본을 놓고, 이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가집으로 탈바꿈시킨 것에서부터 나타난다. 여기에다가 역사상 유명한 작자의 작품임에도 빠진 것들과 자기 시대의 작품들을 찾아 보완해 넣는 방식으로 작품집을 구성했다. 이런 방식에 따라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는 물론이요, 서경덕, 황희, 변계량 등 수많은 유명 인물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성악보집’으로서의 특징은 크게 ‘가곡 연창 방식 순서’에서 나타난다. 『가곡원류』는 당대까지 형성된 가곡 악곡 전체가 연창 순서에 맞추어 배열되는 특징을 보인다. 악곡은 크게 ‘남창’과 ‘여창’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남창과 여창에는 평시조 형식의 노래와 사설시조 형식의 노래가 있고, 이것이 끝난 뒤에는 남자와 여자가 합창으로 부르는 가필주대, 즉 ‘노래가 끝났음을 알리는 노래’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개개의 작품들은 ‘가곡의 악절’에 맞추어 가사를 나누었는데, 시조(時調)가 세 개 악절로 되어 있는 반면에, 가곡(歌曲)은 다섯 개 악절로 되어 있다. 즉, 가곡과 시조는 가사는 같지만, 악곡은 전혀 다른 노래다. 가곡의 악절 수가 시조보다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곡의 음악적 표현이 훨씬 세련되다. 『가곡원류』의 모든 가곡 가사들은 다섯 악절로 분절되어 있어 가곡의 악절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책에서는 원본 『가곡원류』의 이러한 특징들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 원전에 실린 총 856수의 가곡 작품들 중에서 154수를 실었다. 또한 현대어 번역문과 원문이 함께 실려 있어, 이를 참고하며 본다면 가곡의 운율을 느끼고 『가곡원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독자들에게 가곡의 새롭고 멋스러운 느낌이 잘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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