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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1. 춘황(春皇) 포희(庖犧) 2. 염제(炎帝) 신농(神農) 3. 헌원(軒轅) 황제(黃帝) 4. 소호(少昊) 5. 요(堯) 임금 6. 순(舜) 임금 2권 7. 우(禹) 임금 8. 은(殷)나라 9. 주(周)나라 3권 10. 춘추전국의 진(晉) 11. 춘추전국의 연(燕) 12. 진(秦) 5권 13. 전한(前漢) 6권 14. 후한(後漢) 7권 15. 위(魏) 8권 16. 오(吳) 17. 촉(蜀) 9권 18. 진(晉)대의 시사(時事) 10권 / 습유명산기 19. 곤오산(昆吾山) 20. 동정산(洞庭山)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王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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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는 있는 힘을 다해 도랑을 파고 물길을 끌어다가 언덕을 고른다. 황룡이 꼬리를 끌며 앞장을 서고 검은 거북은 푸른 진흙을 짊어지고 뒤에 섰다. 검은 거북은 하수 정령의 사자이다. 아래턱 밑에 도장 자국이 있는데 문(文)은 전부 옛 전서체이고 자(字)는 구주의 산천을 본떠 만들었다. 우가 뚫어놓은 곳마다 푸른 진흙으로 봉하고 그 장소를 적으면, 검은 거북이 그 위에 봉인했다. 지금 흙을 쌓아서 경계를 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유습이다. 2. 조증이 천하의 유명한 서적을 모아 글자가 와전되고 누락된 것을 교정본 것만 해도 만여 권에 달한다. 난리가 평정되자 조정에서는 남아 있는 서적을 수습하는 작업을 조증의 집에서 하는 바람에 수레가 줄을 잇고 바퀴 자국이 사라질 새가 없었으니 모든 책이 왕의 서고로 운반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문밖에 사당을 세우고 ‘조사부님 사당’이라고 했다. 세상에 다시 난리가 일어나서 집집마다 창고가 불타자 조증은 옛 글이 화재로 소실되어 버릴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는 서고 주변에 돌을 쌓아 방화벽을 만들고 책을 숨기는 치밀함을 보였으니 조증을 ‘책 창고’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3. 석계륜이 사랑한 첩의 이름은 상풍(翔風)인데 위나라 말에 오랑캐 나라에서 얻었다. 10살부터 집에서 길렀는데 15살이 되자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자태도 빼어났다. 옥 소리를 기묘하게 구분하고 금 빛깔도 신통하게 구별했다. 석숭은 재력으로 황실에 버금가는 당대 최고로 사치를 누린 인물이다. 온 집에 진기한 보물이며 기이한 물건들이 기왓장처럼 흔하게 밟히고 썩은 흙더미처럼 아무데나 널려 있었다. 다들 여기저기 타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것들로 그 출처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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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울 습(拾), 전할 유(遺), 기록할 기(記)로 풀어보면 《습유기》는 주워서 전하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주워서 전한다’는 한가한 표현 덕분에 《습유기》는 엄격한 학문적 제약을 피해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쓱쓱 주워 담았다. 중국의 신화, 역사를 시작하는 삼황오제는 물론, 진시황으로부터 한 무제, 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 너무도 잘 알려진 위나라의 조조, 조비, 촉의 유비, 오의 손권, 그리고 진류왕 조환을 마지막으로 무제 사마염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진(晉)까지도 거침없이 주워 담았다.
《습유기》를 지은 원저자로 알려진 왕가(王嘉)는 그야말로 줍고 싶은 일화를 마음대로 주워 모아 19권의 서적으로 만들었는데 전쟁으로 불탔고 나중에 양(梁)의 소기가 10권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절대 황제답지 않은 무늬만 황제인 분도 계시고, 폼 잡고 허세 부리는 데 여념이 없는 귀족들도 계시며, 야한 시스루룩을 하늘하늘 나부끼며 황제에게 히프를 흔드는 ‘왕의 남자’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콘셉트가 언더웨어인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너도나도 벗어던지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속살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6권 후반부의 몸을 사르며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들의 일화는 그 열정이 대단해서 섬뜩할 정도이다. 희고 두툼한 자신의 허벅지살에 경전을 베껴 적는다거나, 등불의 기름이 떨어지자 자신의 골수를 대신 태우며 책을 읽는 데에 이르면 존경스러움을 넘어 엽기적으로 느껴진다. 또 깜깜한 밤중에도 옷을 척척 만들어 위 문제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바느질의 여신 설영운을 비롯한 여러 매력적인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원저자 왕가는 오곡을 먹지 않고 속세를 떠나 동굴에 숨어 살면서 깊은 명상과 호흡 수련에 정진했던 인물이다. 진(晉)의 요장(姚萇)에게 미래를 말해주었지만 살해되었는데, 관 속에 시체 대신 대나무 지팡이가 벌렁 누워 있었다고 한다. 불로불사(不老不死)와 장생(長生)에 대한 욕망으로 들끓던 세태에 걸맞게 그의 죽음이 신비화되었다고도 하고 정말로 그가 시해선(尸解仙)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왕가는 도교의 방사(方士)였고 사람들은 그의 《습유기》를 즐겨 읽었다. 목차를 보면 《습유기》는 역사책을 닮았다. 시대별로 배열된 점이 그렇고 왕의 연호를 따르고 있는 점도 그렇다. 마지막 10권은 산을 박물지처럼 언급해서 《습유명산기(拾遺名山記)》라고도 한다. 1권에서 4권까지는 삼황오제부터 주(周) 무왕(武王), 영왕(靈王), 목왕(穆王), 연(燕) 소왕(昭王), 진시황(秦始皇), 한(漢) 무제(武帝), 성제(成帝), 애제(哀帝) 등 신선술을 좋아했던 왕들이 나오고, 5권에서 9권은 학자와 귀족의 일화가 주로 나온다. 그중에서 지금 읽기에도 신선하고 흥미롭거나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발췌해 보았다. 독자들이 신화시대를 이해하기 쉽도록 1. 춘황(春皇) 포희(庖犧) 2. 염제(炎帝) 신농(神農) 3. 헌원(軒轅) 황제(黃帝) 4. 소호(少昊)를 배열하고 나서,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 그리고 우(禹) 임금에 한 번호씩 매겼으며, 이후로는 인물 이름과 나라 이름이 섞여 있는 원서의 목차 대신 발췌본의 목차를 따로 마련하였다. 그 순서는 하(夏) 은(殷) 주(周), 춘추전국의 진(晉)과 연(燕), 진시황의 진(秦), 한(漢), 위(魏), 오(吳), 촉(蜀), 그리고 진(晉)으로 역사서의 왕조명과 일치한다. 명대의 저명한 학자 호응린은 《소실산방필총》에서 《습유기》를 악평한다. “다 거짓말이다. 황아와 백제 아들이 부른 노래는 경박한데다 야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다. 《습유명산기》도 위작이다.” 한편 가정 연간의 학자 고춘(顧春)은 《습유기》를 읽고 감동한 나머지 글방에다 새겨두었다. 한 손님이 보고 황당무계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아아! 안타깝구먼! 소백온도 ‘사해구주의 바깥에 어떤 물건인들 없겠는가! 그저 사람의 눈과 귀가 보고 듣지 못했을 따름인데 쉽게 없다고 해버리다니.’ 하셨거늘. 이토록 오래 전의 일들에 대해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겠는가! 박학다식한 사람이 이 책을 보았다면 정말 흥미로워했을 터인데…” 하고 한숨지었다. 청말 담헌(譚獻)은 《복당일기(復堂日記)》에서 “내가 어렸을 적에 사람들은 《습유기》를 화려하고 기이한 것들의 원조이자 진기하고 훌륭한 것들의 으뜸으로, 내용도 풍부하지만 다소 황당한 데가 있어서 경전의 요체는 되지 못한다고들 했다. 《습유기》를 세 번 반복해서 읽었더니 이제야 작자의 마음이 와 닿는다. 사치스러운 왕조와 황제의 운명을 주워 모은 내용은 왕가가 과거의 일을 들어 현 황제에게 간언한 것으로 이른바 옛일로 현재를 풍자한 예이다. 이 책에 담긴 충언(忠言)과 흥망(興亡)의 이치가 핵심이다.”라고 했다. 역시 충효(忠孝)를 심하게 강조했던 청나라의 비평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