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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발췌 성학집요
[도서] 원서발췌 성학집요
이이 저/전혜경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2,800
원서발췌 성학집요

지식을만드는지식 원서발췌

책소개

목차

성학집요 1

서(序)
1. 통설(統說)

성학집요 2

2. 수기(修己) 상
제1장 자신을 닦는 데 대한 총론[修己總論]
제2장 뜻을 세움[立志]
제3장 거두어들임[收斂]
제4장 이치를 궁구함[窮理]

성학집요 3

2. 수기(修己) 중
제5장 참되고 진실함[誠實]
제6장 기질을 바로잡음[矯氣質]
제7장 기운을 기름[養氣]
제8장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
제9장 몸을 단속함[檢身]

성학집요 4

2. 수기(修己) 하
제10장 덕량을 넓힘[恢德量]
제11장 덕을 보좌함[輔德]
제12장 도탑고 독실하게 함[敦篤]
제13장 자신을 닦음으로써 거두는 효과[修己功效]

성학집요 5

3. 정가(正家)
제1장 집안을 바로잡는 데 관한 총론[正家總論]
제2장 효도와 공경[孝敬]
제3장 아내에게 본보기가 됨[刑內]
제4장 자식 교육[敎子]
제5장 친족과 친하게 지냄[親親]
제6장 근엄하게 함[謹嚴]
제7장 절약과 검소함[節儉]
제8장 가정을 바로잡는 효과[正家功效]

성학집요 6

4. 위정(爲政) 상
제1장 정치에 대한 총론[爲政總論]
제2장 현명한 사람을 등용함[用賢]

성학집요 7

4. 위정(爲政) 하
제3장 선을 취함[取善]
제4장 시급한 일을 앎[識時務]
제5장 선왕을 본받음[法先王]
제6장 하늘의 경계를 조심함[謹天戒]
제7장 기강을 확립함[立紀綱]
제8장 백성을 편안히 함[安民]
제9장 가르침을 밝힘[明敎]
제10장 정치의 효과[爲政功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율곡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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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珥, 석담, 숙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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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경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율곡의 심성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주로 한문 번역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비변사등록≫, 금석문 등의 번역에 참여했고, 번역서로는 ≪검요≫(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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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210*290*20mm
ISBN13
9791143025371

책 속으로

1.

임금은 군주와 스승[師]을 겸하는 자리에 있어 가르치고 기르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사방의 표준이 되니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생각 하나가 어긋나면 정사에 해를 입히고, 말 한마디를 잘못 뱉으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도에 뜻을 두고 도를 좇아 이로 인해 한 시대를 요순의 치세로 만드는 것도 나 때문이고, 욕심에 뜻을 두고 욕심을 쫓아다녀 이로 인해 한 시대를 말세로 만드는 것도 역시 나 때문입니다.

2.

아, 하늘과 사람은 하나로서 구분이 없습니다만, 천지에는 사사로움이 없으나 사람은 사사롭기 때문에 사람은 천지처럼 크지 못합니다. 성인은 사사로움이 없으므로 덕이 천지와 부합하고, 군자는 사사로움을 없애므로 행함이 성인과 부합합니다. 학자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는 데 힘써서 도량을 넓혀 군자와 성인에 이르도록 꾀해야 합니다. 사사로움을 다스리는 방도는 오직 학문뿐입니다. 학문이 진보되면 도량도 진보될 것이니 타고난 자품의 좋고 나쁨은 거론할 것이 못 됩니다. 끊임없이 애쓰고 애써서 마음이 텅 비어 그 속에 터럭만큼의 사사로운 생각[私意]도 있지 않으면, 순임금·우임금이 천하를 차지하고서도 간여하지 않았던 것이나, 문왕이 도를 바라면서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여겼던 것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왕을 위해 쓴 책

이 책은 직접 왕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흔치 않은 형식인데, 당시의 왕은 선조였으므로 선조를 위해 지은 책인 셈이다. 그만큼 선조가 좀 더 철두철미하게 개혁을 시행할 수 있는 군주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책을 지어 올리면서 함께 바친 차자(箚子)를 보면 선조의 성격과 장단점을 자세히 지적하고 개선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위정(爲政)> 편에서는 창업(創業), 수성(守成), 경장(更張)이 필요한 시기를 구분하고는 가장 어려운 것이 경장이라고 하면서 자세히 논했다. 율곡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경장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던 것이다. 선조의 등극과 사림의 정계 진출로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기를 희망했던 율곡은 기대와 달리 기존의 세력이나 관행은 청산되지 못한 채, 개혁을 추진해야 할 주체인 사림파 스스로가 동·서로 분열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중심에 있는 임금이 확고하지 않고서는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절감했다.

왕에 대한 기대와 실망

율곡은 선조에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가진 듯하다. 율곡은 선조에 대해 “총명한 자질을 갖고 있지만 도량이 넓지 못해 남이 단점을 지적하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더 잘하라고 충고하면 거꾸로 방향을 선회해 버리는 객기를 부리며, 유능한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잘못된 사람도 과감하게 청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위정> 편에서는 인재 등용에 관해 길게 논했는데, 인재 등용이야말로 정치의 향방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종 인사권자인 임금은 직접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없고, 적합한 사람을 등용해 맡겨두면 된다. 제대로 된 사람을 쓸 수 있는 임금이 훌륭한 임금인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보고 등용하고 맡기려면 그만한 인격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 임금은 욕심이 적어야 하며, 또 자기주장을 접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성학집요≫뿐만 아니라 유학에서 거론되는 최고의 왕은 훌륭한 신하들에 둘러싸인 채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역사의 평가와 위상

이 책에 대한 종전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는 실록의 관련 기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직접 책을 받은 선조가 높이 평가한 것은 물론이고, 숙종 이후부터는 경연의 텍스트로 쓰일 만큼 비중 있는 저술이었다. 경연은 왕의 학습이 행해지던 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왕을 독자로 설정한 이 책을 텍스트로 사용했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왕을 대상으로 했다는 특징을 넘어 이 책은 보다 넓은 독자층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지은이의 내심에 설정된 독자는 학문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수기·치인으로 대치할 수 있고, 왕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또 책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기>는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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