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동호문답
리커버 개정판
책세상 2023.09.20.
가격
8,900
10 8,010
YES포인트?
8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세상문고·고전의세계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안외순 7

제1장 군주의 길을 논하다 15
제2장 신하의 길을 논하다 23
제3장 좋은 군주와 좋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에 대해 논하다 31
제4장 우리나라에서 도학이 행해지지 않음에 대해 논하다 41
제5장 우리 조정이 옛 도를 회복하지 못함에 대해 논하다 45
제6장 금일의 시대 정세를 논하다 55
제7장 무실務實이 수기修己의 요체임을 논하다 63
제8장 간인姦人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임을 논하다 73
제9장 안민정책을 논하다 83
제10장 교육정책을 논하다 101
제11장 정명正名이 정치의 근본임을 논하다 113

해제. 선조에게 올리는 청년 이이의 수기치인의 정치개혁 보고서|안외순 121
1. 인간 율곡과 생애 123
(1) 생과 사 123
(2) 성장기 128
(3) 관직 생활 129
(4) 저술 세계 132
2. 《동호문답》의 내용과 구성 136
3. 조선 전기 수기치인의 정치학 142
(1) 왕도정치의 관건: 정치 주체의 입지와 무실 142
(2) 수기치인과 무실 145
ㄱ. 수기와 무실 146
ㄴ. 치인과 무실 148
4. 선조 대 율곡 152
5. 율곡과 한국 지성사: 도덕과 정치, 사람과 제도의 조화 158

주 162
더 읽어야 할 자료들 178
옮긴이에 대하여 182

저자 소개2

율곡 이이

관심작가 알림신청
 

李珥, 석담, 숙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율곡 이이의 다른 상품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여느 1980년대 학번들과 마찬가지로 강의실보다는 운동장과 거리와 주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 학부 3학년 때 정조 원년(1776) 규장각에서 판각한 내각장본 《맹자》를 처음 접했다.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더 많았지만 큰 위안을 받았다. 노동 현장으로 진로를 결정한 친구들에게 미안해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기까지 무척 고심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은 낮에는 정치학을, 밤에는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익히는 주독야독 시절이었다. 한국 전통 시대의 마지막 국면인 대원군 집정기 정치권력의 성격과 관련된 연구로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여느 1980년대 학번들과 마찬가지로 강의실보다는 운동장과 거리와 주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 학부 3학년 때 정조 원년(1776) 규장각에서 판각한 내각장본 《맹자》를 처음 접했다.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더 많았지만 큰 위안을 받았다. 노동 현장으로 진로를 결정한 친구들에게 미안해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기까지 무척 고심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은 낮에는 정치학을, 밤에는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익히는 주독야독 시절이었다. 한국 전통 시대의 마지막 국면인 대원군 집정기 정치권력의 성격과 관련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통의 재전유 관점에서 한국정치사, 한국정치사상, 유가정치사상을 연구해왔다. 주요 논저로는 〈송시열과 한국 보수주의의 기원〉, 〈유가적 군주정과 서구적 민주정에 대한 조선 실학자의 인식〉, 〈정약용의 사상에 나타난 서학과 유학의 만남과 갈등〉, 〈19세기말 조선에 있어서 민주주의 수용론의 재검토〉, 《정치, 함께 살다》 등이 있고, 《근역서화징》과 《김택영의 조선시대사 한사경韓史?》 등을 공역했다. 전통 시대 한국정치사/한국정치사상의 체계 수립을 학문적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한국·동양 정치사상 강의를 했고,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한서대학교 글로벌언어협력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외순 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82쪽 | 128*188*20mm
ISBN13
9791159319433

책 속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율곡은 동시에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안민安民을 위해 현실 개혁을 주장한 사상가이자 현실에서의 경장과 변통을 통해 국가의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고자 한 정치가였다.
--- p.10

지금 우리나라에는 왕도정치를 행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좋은 조건과 두 가지 나쁜 조건이 있소. 좋은 조건이란 위로 성스럽고 밝은 군주가 계시다는 것이 그 하나라면 아래로 권력을 천단하는 간신배들이 없다는 점이 다른 하나라오. 나쁜 조건이란 인심이 가라앉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그 하나라면 사기가 매우 심히 가라앉았다는 것 또한 다른 하나지요
--- p.58~59

관리들의 수뢰는 참으로 근절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그들에게 농사짓는 수입을 대신할 만한 재물을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되오. 왜냐하면 옛날의 아전들은 일정한 녹봉을 받았지만 오늘날의 아전들은 생활 보장이 안 되어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것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오.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법〔國制〕이 미진하다는 것이오.
--- p.96

지금 쓸 수 있는 방책은 팔도와 서울의 오부에서 해마다 한 번씩 생원과 진사를 뽑도록 하되, 유학중에서 크게 학문에 뜻을 두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을 뽑도록 하는 것이오. 이때 반드시 그 선발 기준을 너무 높여서는 안 되고 도학만이 높이 숭상할 만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모두 포함시켜 전체 명단을 이조와 예조에 넘기고 이조와 예조는 한곳에서 회합하여 그 명단을 조사하고 다시 의논해야 하오.
--- p.106

우리나라는 개국 이래 정사正邪, 소장 消長이 사실 빈번하게 반복되었소.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림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고 국가의 운명을 뒤흔든 것으로 을사사화 乙巳士禍만큼 심한 것이 없었소. 정순붕鄭順崩, 윤원형, 이기, 임백령林百齡, 허자許磁188 등 다섯 간흉은 그 죄가 하늘까지 달하니 반드시 죽이고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자들이오
--- p.115

율곡에게는 나름대로 자치론적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면모가 있었던 듯하다. 이미 앞에서 청주목사와 해주목사 시절에 그가 향약을 시도했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공동체주의적 경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1세 때 관직 생활에서 자신의 소신을 제대로 펼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100여 명에 이르는 대가족을 이끌고 처가가 있는 해주 석담으로 들어가 자치 규약인 〈동거계사同居戒辭〉를 선포하고 구족九族으로 구성된 자치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 p.135

출판사 리뷰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 시대를 뛰어넘는 정치다운 정치


과연 유교는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인가.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구성원들의 삶의 근간으로 기능했음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연고주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잉태한 주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율곡 이이의《동호문답》에 담긴 민(民) 중심의 현실 개혁 논의는 유교에 대한 이러한 세간의 편견에 이의를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동호(東湖)에서 묻고 대답함’이란 의미를 가진《동호문답》은 율곡이 선조 2년, 그의 나이 34세 때 지은 책으로서 왕위에 오른 지 만 2년여 밖에 안 된 새 군주 선조에게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담아 제출한 정치 개혁서다. 율곡은 이 책에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교의 보편 명제에 대한 확신 아래 왕도정치에 대한 선조의 입지(立志)를 촉구하고, 각종 제도와 정책의 개혁과 관리의 부정부패 근절, 곧 무실(務實)을 역설한다. 백성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로서 자신을 닦는 일〔수기(修己)〕과 백성을 다스리는 일〔치인(治人)〕의 조화를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이러한 율곡의 사상은 오늘날의 극단적 유교 폄하를 넘어 유교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수기와 치인의 유가 사상을 말하다
― 조선적 주자학의 완성, 수기치인(修己治人)


손님과 주인이 서로 문답을 주고받는 대화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율곡 주자학의 초기적 전모, 곧 성학론(군주론 혹은 성인론) · 수기학(윤리학) · 경세학(사회경제론)의 기본적인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① 군주의 길, ② 신하의 길, ③ 좋은 군주와 좋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 ④ 고려 때까지 도학이 행해지지 못한 이유, ⑤ 조선과 왕도정치 회복의 관계, ⑥ 금일의 시대 정세, ⑦ 무실(務實)이 수기(修己)의 요체, ⑧ 간인(姦人)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 ⑨ 안민정책, ⑩ 교육정책, ⑪ 정명(正名)을 실천할 것이라는 총 11개의 주제에 대한 율곡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11개 장은 크게 3부로 재배치할 수 있는데, 먼저 1부(1~3장)는 선조가 성군이 되어 진정한 치세를 이루겠다는 의욕을 갖도록 북돋우면서 그에 필요한 군주의 자세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부(4~6장)에서는 조선의 역대 정권의 성격과 현재의 정치 현실에 대해 점검하면서 선조로 하여금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성찰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3부(7~11장)는 당시 선조가 군주로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과 그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교, 구시대의 폐물을 넘어
― 사람과 제도, 제도와 사람의 공존을 위한 율곡의 도덕


지금, 우리에게 유교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구시대 지식인들만의 사유, 과학 기술을 등한시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저해한 관념, 격변하는 정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사상 정도로 치부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가득 메운 율곡의 시대 인식과 구체적인 현실 개혁 논의는 유교가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고리타분한 사상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통치자의 자기 성찰과 각성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 고위공직자들의 끊임없는 부정부패에 일침을 가하고 있으며, 을사사화 주역들의 엄단을 촉구하는 모습은 광복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 과거사 청산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런 율곡의 모습은 우리에게 왜 유교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사유세계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식의 유교 폄하가 아니라 유교가 현 시대에도 유효한 가르침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8,010
1 8,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