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시절에는 민주적으로 여러 직책에 선출되었고 그 모든 직책에서 큰 상까지 받았다. 겉으로는 이 모든 것을 잘 해낸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난 완전히 지쳐 있었고, 내적으로는 사실상 불행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었는데, 왜 그 여정의 끝에서 더 행복해지지 않는지 의아했다. 의사가 되려고 그토록 긴 시간을 일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건만, 이게 다란 말인가? 답을 얻지 못한 채로 자기처방을 시작했다. 코카인이나 헤로인, 엑스터시,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미드, 마리화나 등으로 자가치료를 한 건 아니다. 하버드에서 공부한 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가 만든 개념인 ‘도착 오류’라는 심리적 현상에 스스로 중독되는 방법으로 자가치료를 했다. 탈 벤 샤하르는 〈뉴욕 타임스〉에 낸 기사를 통해 ‘도착 오류’ 현상에 대해 정의하기를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행복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착각”이라고 했다.
--- p.13~14
개인적 자율성도 침해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매일 내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늘어나는 업무 목록에 따라 삶이 통제당하는 기분이었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을 때도 기분은 일시적으로만 나아졌다. 내 ‘도착 오류’가 나를 물에 빠뜨리지 않고 수면 위에 떠 있게 하려면 일을 더 해야만 하는데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의사로서 그리고 기업가로서 날마다 버티느라 분투 중이었다. 무언가를 해내고 일시적으로 도파민이 올라가도 그 시간은 짧았다. 나는 번아웃의 모든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번아웃에 수반되는 불안감과 우울감이 진짜라고 느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번아웃에 익사하려고 할 때 주치의가 때마침 에스시탈로프람이라는 구명장비로 구급처치를 해주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내 삶은 부서진 기차 같았다. 번아웃을 절절히 느꼈고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더 무서웠던 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에스시탈로프람, 치료, 정상적인 갑상선 기능은 모두 도움이 되었지만 이런 것들로는 번아웃을 치료하지 못했다. 정작 번아웃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따로 있었다. 코칭에 대한 관점을 바꾼 것이었다.
--- p.20~21
이런 생각이 든다. 의료계의 상황이 너무나 열악한 나머지, 우리에게는 의사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형을 생각해낼 리더가 필요해졌다. 의사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그들도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가족을 돌보고, 소변 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줄 기관과 싱크탱크가 필요한 상황까지 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무너진 시스템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의료시스템은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변화라는 목표는 의사가 번아웃을 이겨내고 그가 사랑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일과 상호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다 해낼 수 있고, 또 해내야 한다. 의료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데, 그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번아웃된 의사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안 이 시스템이 언젠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 p.49
번아웃된 의사는 개인적 자율성과 직업적 자율성, 둘 다의 부족으로 인해 정서적 소진을 경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자기결정성이 높은 의사는 두 영역에서 충분히 자율적이다. 번아웃된 의사는 소속감과 연민의 상실로 인한 탈인격화depersonalization를 겪는다. 자기결정성이 높은 의사는 자신의 팀과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의 더 깊은 목적의식, 이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의미 있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번아웃된 의사는 성취감이나 역량 인식을 다 상실한 상태인 반면, 자기결정성이 높은 의사는 자신감이 넘치고 일에서도 역량을 발휘한다. 이와 같이 번아웃된 의사와 자기결정성이 높은 의사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아웃이 질병이라면 가장 건강한 것은 자기결정성이 높은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적은 의료 분야에서 자율성, 소속감, 역량을 경험하는 자기결정성이 높은 의사를 양성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 p.81~82
대다수의 의사는 완벽주의자다. ‘옳아야’ 한다는 불행한 덫에 걸려 있다. 이 인지왜곡은 대화나 코칭에서 중요한 것으로부터 딴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논쟁의 초점이 내가 ‘옳고’ 상대는 ‘틀린 것’에 맞춰져 있으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초점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란, 우리가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는 팀원으로서 각자 존중받고 있다고 느껴야 할 필요를 말한다. 대화에서 팀원보다 ‘옳음’에 더 관심을 두면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더 이상은 팀에서 가치 있는 구성원이 아니라고 느끼기 쉽다. 그런 대화로 우리는 상대의 자기결정성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 p.146
우리가 갈 길의 경로는 이것이다. 마인드셋 → 돈 → 인생. 순서도 중요하다. 마인드셋의 정복이 우선되어야 자율성과 역량을 배양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돈을 잘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여유가 생기면 진정으로 원하는 이상적인 삶의 균형을 만들기 시작할 수 있다. 자동차 운전을 배우려면 우선 운전학원에 가서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말이다. 이런 일은 마인드셋을 정복했을 때 일어난다. 이것이 책 후반부의 전제다. 그런 다음 원하는 곳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연료를 자동차에 넣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일단 여기까지 이루어져야만 삶의 우선순위를 최선으로 반영하기 위해서 차를 얼마나 자주, 어디로 몰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 p.164
청혼할 때 어땠는가? 긴장되었나? 첫 아이를 가졌을 땐 어땠나? 밤중에 아이의 침대 곁을 지키면서 숨 쉬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어떠했는가? 더없이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기쁨에 겨운 그런 기분이지 않았던가? 레지던트 업무 첫날 임상적 결정을 내려야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하는가? 처음으로 수술했던 날은 어떠했는가? 주치의로서 어려운 환자에게 진단을 내릴 때는 어떠했는가? 이처럼 긴장감에 사무치는 경험의 반대편에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종종 우리가 제대로 된 길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것이다. 그것들을 다 피하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안고 가야만 한다.
--- p.218~219
호기심을 선택하고 그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질문에 답하면 비생산적인 수치심이 생산적인 호기심으로 바뀐다. 이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전진과 후퇴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 수치심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코스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선택하는 대신 ‘흠, 이거 재밌군…….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네.’라는 생각을 할 기회가 생긴다. 내가 블로그 포스팅으로 경험했던 비생산적인 수치심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고 잡스, 에디슨, 레너드처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침묵 속에서 자라고 부작위를 양산하는 데 반해 호기심과 호기심이 만드는 생각은 해독제 역할을 한다. 항공 및 의학 분야에도 이러한 호기심에 관한 생각이 작용하고 있음을 이미 알 것이다. 이 프로세스를 ‘디브리핑debriefing’이라고 하며, 이는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는 데 활용하는 방법이다. ‘디브리핑’은 무엇이 잘 되었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무엇이 안 되었고 왜 잘 안되었는지 묻는다. 마지막으로 팀이 함께 어떻게 움직이면 다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비난하면서 손가락질하는 대신, 이렇게 ‘디브리핑’을 하면 팀의 소속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팀으로 전진할 수 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수치심 대신 호기심을 선택하면 같은 과정으로 일이 전개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내적 소속감을 수치심으로 공격하지 말고 체계적인 개선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 p.267~268
연구진은 실험군의 결과를 코칭을 받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했다. 결과적으로 5개월의 기간에 걸쳐서 총 3시간 30분의 전문적인 코칭을 받은 의사들은 대조군에 비해 정서적 소진 정도가 30% 낮았다. 또한 번아웃은 20% 정도 줄었고 삶의 질과 회복탄력성이 좋아졌다. 간단히 말해, 코칭은 효과가 있었다. 기존의 업무량에 코칭을 추가하였으니 이런 지표들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더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코칭은 효과가 있었다. 코칭은 의사들이 도덕적 손상을 입히는 기관으로부터 번아웃을 경험하면서 위축된 직업적 자율성과 개인적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클리블랜드 클리닉도 코칭의 힘을 경험한 사례다. 의사들에 대한 코칭으로 의사의 이직이 감소함으로써 이 병원에서 절감한 비용은 1억 3천 3백만 달러로 추정되었다. 코칭은 의사가 개인적 및 직업적 자율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취감 증가에도 도움을 준다. 그런데 코칭이 번아웃된 의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세 번째 이유가 있다. 많은 코칭 프로그램은 그룹 코칭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번아웃된 의사들이 소속한 기관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더 깊은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다른 동료 의사들도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그룹 코칭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같은 팀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다.
--- p.31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