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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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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300g | 128*188*16mm
ISBN13 97911721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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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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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왔다. 가출한 지 10년 만이었다.
--- p.9

흑회색의 거친 질감 때문인지 처음 윤주가 사진을 건넸을 때 아기는 몹시 외로워 보였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 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윤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야 만날 수 있어, 하고 말했다.
--- p.23

새해를 몇 분 앞둔,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는 밝은 표정의 아버지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외로운 ‘한 점’에서 시작됐을 한 사람, 나는 보자마자 알았다. 사랑이었다.
--- p.26

별난 인생도 없었고, 못난 인생도 없었다. 인생은 누구나 다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었다. 단 살면서 때만 놓치지 않으면 되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때 빌고,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는 것.
--- p.71

인생은 피아노의 하얀 건반이 아니라 검은 건반 같은 거라고.
--- p.80

속이 비치는 하얀 커튼은 둥그렇게 부풀어 올랐다 느리게 가라앉는다. 한숨 같다. 바람이 한참 불지 않을 때 커튼은 주름 형태로 머문다. 다시 바람이 분다. 풍선 같다. 세상에서 풍선을 가장 잘 부는 건 바람일 것이다.
--- p.123

집이 오랫동안 혼자되면 귀신이 들어와 살아.
--- p.189

살다 보니 단조롭지만 엄살스럽지 않은 권태를 스스로 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누구나 홀로 감당해야 하는 자기 몫의 외로움이 있듯이, 그것은 고독한 시간의 형태로 찾아왔다. 그때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녀는 혼자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고칠 필요가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 p.192

문학은 늘 삶을 노래하지만 삶은 문학으로 영위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자 문학이야말로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깨달아버린 나한테 화가 났고, 알려준 세상을 향해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 p.248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쪽에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자국을 지니고 살아가는 건가. 아니 우리는 결국 모두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에 불과한 걸까. 덩어리는 허상인가.
--- p.267

끝나는 곳에는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우리는 그 문으로 발 하나만 내밀면 돼. 쉽지, 쉬워. 끝내는 건 아주 쉽지. 그래서 다행이야. 생각을 오래 할 필요가 없거든. 그저 한 발짝뿐이지.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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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의 소설은 나를 고요한 빈방에서 나오게 한다. 끝났다 싶은 곳에 문을 열어두고 한 발짝만 내밀라고 손짓하면서. 나는 진심이 담긴 여섯 편의 소설을 따라 읽으며 바깥의 계절을 확인한다. 단단하고 짙은 인간의 외로움이 어떻게 여리고 부드러운 봄의 시간에 스미는지 확인한다. 장은진의 인물들은 홀로 감당해야 할 고독의 시간을 겪지만,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는” 방식으로 깊은 사랑과 마주한다. 열심히 우는 사람이 혼자이듯이, 이들이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들여다보았을 사람과 사랑을, 오랜 자리를 생각하면 너무 고마워서 열심히 울 것 같은 마음이 된다. 누군가에게 “집이란 지키고 지내온 자의 것”이듯, 삶이나 마음 역시 지키고 지내온 자의 것일 테니까.
- 이주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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