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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민구
아침달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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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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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신작
여름
우나기
일 분이 되기 전 영원한 오십구 초
그는 거기에 있겠다고 했다
루브시엔의 사과 도둑
메모리얼 스톤
과수원에 간다
백조의 호수
영구 없다
핸드 프린팅
거울 속의 신
유일
나의 시인


2부
이어달리기
증발하는 세계
비밀이 있어
정물
주변의 모든 것
머랭
카나리아
보이지 않는 정원
사이드웨이
거울
우리
손톱을 먹어요
가을 다음 여름
모래의 여자
기념일

3부
그것이 울었다
평범
누군가
8월의 크리스마스
이번 역은 사랑시, 비둘기들의 섬
도서관은 나른해
계절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을 거야
슬레이트 지붕이 보이는 해변
당신의 옥수수
악몽
스모크
버섯이 들려주던 우산의 시
수도국산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아


발문
하나의 이름에게 -소유정 문학평론가

저자 소개1

198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09년 <조선일보> 등단했으며,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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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60g | 125*190*7mm
ISBN13
9791189467241

책 속으로

여름을 그리려면 종이가 필요해

종이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크거나
훨씬 작을 수도 있다

너무 큰 해변은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은
액자에 걸면 가져가버린다

당신이 조금 느리고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남은 검은색 파스텔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다를 그리자

당신의 여름이 기분이거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여행지라면
시원한 문장을 골라서 글로 쓸 수 있는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나를 기다린다면 좋겠다
--- 「여름」 중에서

―――――――――――――――――――――――――――

순간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았다

‘아주 짧은 동안’

소리 내서 발음하자
두 번은 없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소리 내서 발음하자
한 번뿐이라고 누군가 대답해주었다

그것은 일 분 뒤면 사라질 것같이 굴다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땅에서 올라온 새싹 한 줄기

네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순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영영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기다란 나무가 마당에 서 있는 걸 보곤
놀라서 웃고 말았다
--- 「일 분이 되기 전 영원한 오십구 초」 중에서

―――――――――――――――――――――――――――

우리 집에 살던 녀석은
똑똑했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지능이 모자랐다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으니

개가 죽으면
동물의 출입을 금지한
마트와 식당에 함께 갈 수 있다

네가 죽었을 때
우리는 돌로 만들지 않았지만
언제든 목욕탕에 같이 갈 수 있었다

대관람차도 타고
저가 항공이었지만
비행기에서 아주 멋진 풍경도 보았지
--- 「메모리얼 스톤」 중에서


영구 없다를 영어로 쓰면
Where is Young gu?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그는 정원에 있다
그는 정원이 뭐냐며 내게 의미를 묻고
나는 영구가 된 것처럼 어리둥절하다

크다, 예쁘다, 냄새가 좋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영구가 신이 나서 말하면
정원은 크고 아름다워지고

이곳이 사람도 사랑도 없는
외로운 공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 「영구 없다」 중에서

―――――――――――――――――――――――――――

머리를 깎다가 알았다
주인이 이발비를 깎아주고 있었다는 걸

거울에 비쳤던 것이다
돈을 덜 받았던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가격이 올랐냐고 묻지만
원래 그렇다 하시고

그럼 왜 만 원만 받았냐고 물으니
숱이 없어서 금방 한다고

--- 「거울 속의 신」 중에서

출판사 리뷰

웃기고도 쓸쓸한 시,
진솔한 농담의 시


빈자리는 거기에 있던 것이 떠남으로써, 혹은 있어야 할 것이 없음으로써 생기는 흔적이다. 이 흔적은 부재를 통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시간의 간격을 생각하게 만든다. 민구의 시는 일상 풍경을 소소하고 담백한 언어로 담아내는 와중에 곳곳에 있는 사라짐의 흔적에 눈길을 주고, 시차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일 분 뒤면 사라질 것같이 굴다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땅에서 올라온 새싹 한 줄기

네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순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영영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기다란 나무가 마당에 서 있는 걸 보곤
놀라서 웃고 말았다

-「일 분이 되기 전 영원한 오십구 초」 부분

민구의 시에서 이러한 사라짐의 흔적들이 발견되는 까닭을 “대상이 사라진 뒤에도 그것이 남기고 간 것을 감각하며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소유정 문학평론가는 발문을 통해 말한다. 이러한 마음의 순간들은 시집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가령 「카나리아」라는 시에서는 이제는 “빈 새장”임에도 그 안에서 날아다니는, 새처럼 보이는 무엇에 관해 말한다. 「누군가」라는 시에서 화자는 누군가의 손바닥에 살아 있는 물고기를 주지만, 그것은 첨벙대다가 손바닥에서 사라져버린다.

머리를 깎다가 알았다
주인이 이발비를 깎아주고 있었다는 걸

거울에 비쳤던 것이다
돈을 덜 받았던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가격이 올랐냐고 묻지만
원래 그렇다 하시고

그럼 왜 만 원만 받았냐고 물으니
숱이 없어서 금방 한다고

-「거울 속의 신」 부분

사라짐에 관해 말한다는 건 보통은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지만, 민구는 이를 쓸쓸하게만 말하지 않는다. 삶에서 발견되는 미소와 수줍은 감정 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민구의 시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며 미덕이다. 「거울 속의 신」과 같은 시에서처럼,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사라짐 중에는 머리카락의 사라짐도 있다. 미용실에서 겪은 일을 풀어내다가 등장하는 “당신이 나를 만들다가 졸았을까”라는 농담은 해학 중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또 ‘민구’라는 이름 때문에 놀림당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겪은 뒤, 개명을 고민했으나 결국 이름자에 새겨진 자기 존재를 그대로 지켜나가려는 그의 이야기(「그는 거기 있겠다고 했다」)에서는 사라진, 또는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리는 심지 굳은 사람의 얼굴이 엿보인다. 이 시집은 필연적으로 무언가가 하나씩 사라져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억하고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 삶에 관한 하나의 솔직하고 담담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추천평

물 한 방울의 의지

민구 시인의 시는 충만함을 지향하지 않는다. 무언가로 꽉 차 있음을 욕심내지도 않는다. 마치 “일 분이 되기 전 영원한 오십구 초”처럼 완결이나 완성과는 거리를 둔 듯한 그의 시에서 화려한 수사나 예술가연하는 자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에 평범한 일상의 장면과 소소한 내면의 언어가 시를 채우는데, 그것으로만 가득 차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이 민구 시의 묘미라면 묘미겠다. 무미하되 건조하지 않고, 담담하되 답답하지 않고, 순순하되 심심하지 않은 그의 시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 한 방울의 이미지로 집약된다. 하나씩 풀어보자면, 물 한 방울처럼 아무 맛이 없으면서도 무슨 맛이 계속 나는 듯한 잔상을 남기는 화법. 물 한 방울처럼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으면서도 해변이든 숲이든 하늘이든 무엇이든 다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세계. 뻔하디뻔한 일상 가운데서도 “중력을 무시하고 떠 있는 물방울 하나”를 발견하는 상상. 그런 환상조차 다시 물 한 방울처럼 아껴서 소비하는 검소한 언어가 민구 시의 일단이라면, 그 극단에는 시를 향한 아니 이 세계를 향한 물 한 방울의 의지 같은 것이 보이지 않게 들어 있다. 탄생하는 순간부터 시시각각 증발하는 것이 물 한 방울의 운명이겠지만, 그 운명에 표나게 대들기보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비폭력의 힘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물 한 방울이 마를 때까지” “가만히 있”으려는 자세는 물 한 방울이 마를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다른 말이다. 시집의 핵심 구절이기도 한 “그는 거기에 있겠다고 했다”는 발언이 미력하지만 끈질기게 이 세계를 응시하는 자의 조용한 다짐이라는 점도 함께 짚어둔다. - 김언 (시인)
우산의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는 일

이 시집엔 조임이 없다. 나사가 없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를 느슨하게 거닐 수 있다. 킥킥 웃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슬퍼질 수 있다. ‘한적한 외로움’은 이 시집이 입은 옷이다. 쓸쓸할 때마다 비석이 세워지는 정원이 있다면, 이 시집의 정원에는 이쑤시개처럼 작고 마른 비석들이 여름비처럼 모여 서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보면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시 속 화자들은 여기에 있고, 여기에 없다. “머랭”처럼 순하고 언제든지 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밤에 손톱을 깎으며 쥐를 기다린다. “내 손톱을 깨물어 먹어요/오늘부터 나로 살아요.” 말하거나 “세상에 없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람도 사랑도 없는 외로운 공간”에서 없는 “영구”를 생각한다. 없음. 영구 없음. 흐느낌 없음. 청승 없음. 기다림 없음. 외로움 없음. 시련 없음. 그러다 문득 한꺼번에 슬퍼짐. 녹아 사라짐. 없는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거기)에 있다. 이곳에 있는 게 부끄러워서, 추워서, 가난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거기”에 있다. 사라짐은 존재를 투명하게 숨겨, 잠자코 생을 견디는 일이다.
이 시집을 읽는 일은 “거기에 있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다. 이쪽으로 오기를? 아니다. 그건 아니다. “구름을 따라가면/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고, “우산 사세요, 우산 사세요/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우산이 된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는 일이다. 비처럼 기다랗고 축축한, 그 사람의 둘레가 되고 싶어 하는 일이다.
-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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