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축구에 대한 마음을 키워 가고 있을 때 마을에 여자 축구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호기심 정도였다. 여전히 나는 애 엄마고,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제대로 된 운동 한번 안 하고 살아왔으니 축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계속 선긋기를 했다. 그런데 그 팀에 3남매, 4남매를 키우는 언니들이 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내가 축구를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던 ‘애 엄마’라는 수식어를 깨끗이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속으로 그어 놓은 경계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언니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나갔다.
--- 「축구, 해봤어?」중에서
그래서인지 축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이렇게 재밌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너무나도 하찮은 나의 실력과 마주할 때마다 미친 듯이 축구만 하던 그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그 애들이 떠오를 때마다 부럽다 못해 약이 올랐다. 그때 물 떠 줘서 고맙다는 말 대신 너도 한번 뛰어보라고, 이게 얼마나 재밌는지 직접 뛰어봐야 안다고 말해줬더라면,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축구에 재미를 붙였더라면. 그러면 최소한 축구에 관심도 없는 내 남편 정도의 실력은 갖출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불어났다. 불어나는 아쉬움은 나를 자꾸 재촉했다. 그동안 억울하게 못 배운 시간만큼 빨리 배우고 빨리 익히고 싶어 자주 조급해졌다.
--- 「‘이니광훈’을 제치는 그날까지」중에서
날이 많이 더울 때는 운동장을 한 바퀴만 뛰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잠시 쉬며 마시는 미지근한 물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마지막 훈련으로 미니 경기를 할 때 팀 구분을 위해 망사 조끼를 입는데, 그 조끼를 입기는커녕 그 망사 조끼만 입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아, 웃통 벗고 싶다.
언젠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세상을 표현한 프랑스 단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오래전에 본 거라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환한 대낮에 한 여성이 웃통을 다 벗고 조깅을 하는 모습. 출렁이는 가슴을 그대로 노출한 채 누구보다 가볍게 뛰어가는 그 여성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느끼는 이질감과는 달리 굉장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훈련을 하다 보면 그때 그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남자들은 더우면 잘만 웃통을 벗던데 왜 나는 벗으면 안 되는지 심술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웃통 벗고 싶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면 코치님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코치님을 뒤로 한 채 나는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나중에 우리끼리 한밤중에 모여 웃통 벗고 축구 한번 하자며 낄낄댔다.
--- 「비키니 대신 브라탑」중에서
유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의 친구들과 경기를 할 때는 상대 팀 어린이들의 멘탈을 관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낮은 연령의 친구들과 자주 경기를 해온 터라 이제 이 친구들을 울리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할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눈물을 흘릴 타이밍을 주지 않는 것이다. “공 못 받는다고 주저앉아 있을 시간 없어! 그럴 시간에 지금 당장 공을 받으러 갈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저쪽! 지금 당장 저쪽으로 달려가야 공을 받을 수 있어!” 그러면 아이들은 주저앉아 울려다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런 어린이들을 보면 상대인 우리도 다시 한번 마음이 진지해진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경기에 더욱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 「우리의 적들은 다정하다」중에서
나는 그동안 실수에 벌벌 떨며 살았다. 내가 틀릴까 봐, 내가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봐. 무엇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마음을 들켜서 결국엔 상처 받을까 봐. 그러나 축구를 하면서는 매번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숨기고 싶어도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면 부끄러움에 머리를 쥐어뜯고 발차기 손차기 다 하면서도 다시 운동 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운동장에 나가 계속 실수하며 숨기려고 했던 내 모습을 들켜 보니 이제는 창피하기보단 웃기다. 같이 뛰던 친구들도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는다. 우리 팀 부주장 조조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나의 성격을 눈치채더니 이제는 자기가 먼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함께 웃다보니 큰일 날 것 같은 일들도 그저 작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함께 웃고 함께 실패하다 보니 실수가 부끄럽 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함께 실패하는 거다. 혼자 시도하다 실패하면 상처가 되지만 같이 시도 하다 실패하면 추억이 된다.
--- 「적도 속이고 팀도 속이는 최악의 작전」중에서
[훈련 공지] 3월 10일 일요일 오후 2시 홍동중 운동장 훈련합니다. 일 년 중에 운동하기 좋은 시즌이 봄이에요. 아끼지 마시고 나오세요~^^
그 밑으로 참여 댓글이 하나둘 달린다. ‘참1’부터 ‘참5’까지 달리더니 ‘참9’까지 이어졌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다. ‘그래도 올해는 팀이 계속 유지되겠군’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같이 뛰다 보면 다음에는 조금 더 나아지겠지.’ 다독여도 본다. ‘다음에 홍동초랑 경기할 때는 적어도 치욕은 당하지 않으리라.’ 비장하게 다짐도 해 본다. 이러다 결국 나는 또 어렵고 답도 없는 축구를 하러 매주 운동장으로 나갈 것이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니까, 근육을 키워야 하니까, 친구들이 보고 싶으니까, 이기고 싶으니까, 무엇보다 축구가 좋으니까. 올해도 그렇게 축구하기 힘들었던 겨울이 지나간다. 어느새 운동하기 좋은 계절, 봄이 왔다. 사람들도 하나둘 다시 운동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어두웠던 생각은 금세 걷히고 다시 공을 차고 싶어 발가락을 꼬물거린다.
--- 「제 지시는 일부러 따르지 않으시는 건가요?」중에서
되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지금의 우리 팀을 만든 것 같다. 이제는 각 잡고 서로의 마음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만두고 싶다는 투정 어린 말 한 마디에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봐 주고 같이 해결해 나가자는 친구들이 있다. 이제는 그 친구들이 있어 축구를 나간다. 기쁘고 슬프고 괴로웠던 것들이 모두 추억이 되어 간다. 나는 우리 팀이 이상해서 좋다. 이제는 정말 한 팀으로 같이 성장해 나가고 싶다. 이제는 축구가 좋은 건지 우리 팀이 좋은 건지 헷갈린다.
--- 「축구는 팀 스포츠!」중에서
그 뒤로 1년이 지난 지금 나의 슬개골은 여전히 가끔 불편하고 종종 문제가 생긴다. 그래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 무릎이 뻐근해지면 보호 기구를 차거나, 찜질을 해주거나, 물리치료실 언니에게 배운 운동을 하거나, 무릎을 덜 쓰는 훈련을 한다. 나름의 적응 과정을 터득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디를 다쳐도 100퍼센트 완치란 없겠구나. 이렇게 적응하며 뛰는 수밖에 없겠구나. 단지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다친 부위가 슬개골인지 쓸개골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 나의 상처를 다정하게 진단해 주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주는 동료들을 찾는 것, 겁먹고 움츠러들기보단 힘껏 달려보고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뿐이다. 그렇게 나는 절뚝이면서도 축구를 하러 간다. 가방에 보호 장비를 가득 넣고, 아픔에 익숙해져 가며 계속 뛰기 위해서.
--- 「부상을 안고 뛰는 법」중에서
지금까지 나는 엄마로서 혹은 다년간 이것저것을 덕질 해온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성장을 응원한다는 것이 나를 얼마나 살릴 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좋아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자부심, 책임감, 지키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결국에는 더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성장을 꾸준히 함께 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이 별 수 없이 깊어진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무조건적인 응원을 하게 된다. 그런 응원을 받는 날이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이 그 자체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기분이 들어서다. 무엇이든 이유가 필요한 세상에서 조건 없는 응원은 언제나 벅찬 감동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응 원하는 마음이 나를 살리고 동시에 상대도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 「응원하는 마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