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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당황하지 말고 당당하게]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교사 은퇴 후 실버아파트에 입주한 그는 자신을 ‘노인’이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더 나이 든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며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겪게 될 나이듦을 조금은 낯익게 만들어줄 책. - 에세이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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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쩌다 실버아파트로
들어가며 9 전원주택 대신 실버아파트 15 우리집에 놀러 와 20 이사 떡과 실버 시에스타 26 여기 아파트 맞아요 31 혼자 남는다는 것 38 실버 식당과 밥 전쟁 46 발발이 할머니 모임 51 기타 동호회에 들어간 남편 58 카페의 두 여인 64 식당 풍경 70 꽃 부부 74 아파트 내놓읍시다 79 2장 실버아파트의 주민들 실버 전용 산 85 죽음의 나이 89 사막의 여우 94 국가주의와 대벌레 논쟁 98 치매인 듯 치매 아닌 103 이곳엔 천사가 산다 109 가을의 먹이 활동 115 젊고 예쁜 여자 120 시폰 원피스 할머니 126 종이배 130 세입자 134 헤어질 준비 142 꼭 다시 와 146 그곳을 떠났나? 153 3장 실버기의 초입에서 나를 죽게 하라 159 노인이 되는 법 164 전셋집 도배하기 169 무료 교통카드 유감 175 남편의 가발 180 모나리자가 되었네 186 노는 중 190 노노(老老) 양보 196 붕어빵 위로 204 오래된 남편 211 배우자의 죽음 217 그렇고 그런 모임 224 요양원에 다녀와서 232 서로 닮아 가는 240 은퇴 부부가 사는 법 248 소풍 254 나가며 261 |
저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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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아파트는 다른 세계였다. 실버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그냥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산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예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난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덜컥 실버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삶은 시작되었다. 매우 조용히.
---「들어가며」중에서 “아유, 한창인데 여길 빨리 들어오셨네. 이제 60이나 되셨나?” 자세가 상당히 곧고 옅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는 8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펌을 한 은갈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밝은 핑크빛의 두피가 살짝살짝 드러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60은 넘었고요. 할머니 정말 고우시네요.” 옆으로 비켜 앉으며 할머니의 손을 보니 손톱마다 고운 색깔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퀴어퍼레이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선명한 무지갯빛 색깔들이었다. 대단하시다! 감탄하는데 할머니에게서는 고급스러운 향기까지 은은하게 났다. 무슨 섬유 유연제를 쓰시나 궁금했지만 내가 묻기 전에 할머니가 먼저 시작했다. “지금이 제일 고울 때야. 젊은 사람이 멋 좀 내고 다녀요. 이렇게 이쁠 때는 금방 지나가거든. 알았죠?” ---「젊고 예쁜 여자」중에서 이 모임에서 죽음이 주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멤버들 나이가 평균 60이 되면서부터 죽음은 좀 더 가깝고 평범해졌다. 그동안 부모나 시부모, 가끔은 친구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아직 멤버들이나 그들의 배우자가 죽음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와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죽는 게 사는 것처럼 당연한 거지 뭐. 별날 것 없는.” 느닷없는 잠실댁의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말없이 웃었다. 아니, 웃고 싶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죽음을 기뻐할 것까진 아니어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 죽음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접근해 간다는 것과, 나름 계획까지 세워 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나를 죽게 하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죽음인 것은 알지만. 하여간. ---「나를 죽게 하라」중에서 그때였다. 앞자리의 남자가 부스럭거리며 일어섰다. 내리려나 보다 하고 옆으로 비켜 서는데 남자가 내 소매를 끌어당겼다. “여기 앉으세요.” 잡아끄는 힘이 예사롭지 않게 강했다. 나는 힘에 끌려 자리에 앉혀졌다. “아니, 왜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리려면 곱게 내리지 뭘 굳이 날 끌어당겨 앉히느냐는 뜻이었다. ‘아는 사람인가?’ 몰래 얼굴을 살폈지만 생면부지의 40대 남자였고 그는 분명히 내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버스고 지하철이고 자리를 양보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자리를 양보했던 경우를 생각했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지금 내게 해당되는 항목은 한 가지였다. ‘노인이라서?’ ---「노인이 되는 법」중에서 |
실버아파트를 소개합니다
삼시세끼 식사가 제공되고 대형 병원까지 전용 통로로 연결된 곳. 단지 내에 사우나와 헬스장부터 바둑, 탁구, 기타까지 취미 활동을 위한 모든 시설들이 갖춰진 곳. 이 살기 좋은 아파트에는 입주 조건이 하나 있다. 나이 60이 넘었을 것. 은발의 노인뿐인 실버아파트는 마치 거대한 노인정 같다. 느리고 불편한, 늙은 몸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 불편함이 마치 내 것인 양 느껴진다. 저자는 결국 실버아파트 탈출을 시도하지만 치솟은 집값과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이사는 쉽지 않다. 그렇게 2년 8개월간 실버아파트에 머물며 저자는 노인들의 느린 일상 안의 다이내믹함을, 쓸쓸함과 편안함에 스민 조용한 열정과 은은한 활기를 엿본다. 멀리서 보면 다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 같지만, 가까이에서 본 노인들은 모두 다르다. 이삿날 불쑥 집 안에 들어오는 마당발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이웃집 현관문 앞에 직접 키운 야채들을 조용히 놓고 가는 할머니도 있다. 아픈 아내를 돌보며 기타를 배우는 할아버지가 있고 오른 밥값에 분기탱천하며 투쟁을 외치는 할아버지가 있다. 어떤 할머니는 씩씩하게 동네 뒷산의 벌레를 잡는 장군의 면모를 보이고, 또 다른 할머니는 무지갯빛으로 손톱을 칠하고 하늘하늘한 쉬폰 원피스를 입은 고운 자태를 뽐낸다. 노인은 다 똑같다는 숨은 마음을 뜨끔하게 하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지금이 제일 고운 때야. 젊은 사람이 멋 좀 내고 다녀요. 이렇게 이쁠 때는 금방 지나가거든.” 실버기의 초입에서 『초보 노인입니다』의 1~2부가 실버아파트에서의 적응과 관찰의 기록이라면, 3부는 이제 막 노년기에 들어선 저자가 일상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린 수기다. 지하철에서, 사진관에서, 남편과의 평범한 하루하루와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저자는 노인이 된 자신과 무시로 마주친다. 은퇴 이후의 삶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만치 않다. “대개 한두 가지의 질병에 시달리고, 간간이 찾아오는 불면에 힘든 하루를 보내며, 직장을 은퇴하고 아이들이 독립한 후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가끔씩 절망하다가 또 스스로 위로해 가며 살아가는” 삶이다. 하지만 늙어 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과 모여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인생은 소풍’이라는 비유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도 있는 나이라서. “나의 이야기는 베이비붐 1세대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많은 베이비부머 중 한 명이 늙어 가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은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쳐 줄 어딘가의 내 실버 친구들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늙어 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귀한지. 소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이야기들이 가뭇없이 실버기에 막 들어선 이들에게 조금은 낯익은 미래이길 바란다.” 저자는 이 책의 독자로 이제 막 노년기에 진입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호명한다. 『초보 노인입니다』는 아직 ‘노년’이라는 단어가 낯선 채로 그곳을 향해 가는 이들 그리고 부모이고 선배인 초보 노인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모든 이를 위한 늙어 감의 기록이다. 작가의 말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노인으로 입문한 나의 푸념이며 관찰 기록이다. 관찰한다고 해서 좀처럼 익숙해지지는 않는 인생 마지막 여정의 시작이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죽음 전에 지나야 할 실버기는 어떤 생애 주기보다 길다. 그 긴 시간을 견뎌 내는 일에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고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이 글쓰기였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실버들, 특히 초보 실버기에 들어선 이들이 나처럼 당황하지 않길. 끝까지 담담하며 당당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