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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 시인선-57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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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224g | 128*205*10mm
ISBN13 9788932040448
ISBN10 893204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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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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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 시인 진은영의 언어로 되살아나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슬픔, 그리움, 치유. 지난날 당신이 경험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의 시 속에서 비로소 선명해진다. 가라앉았던 저편의 기억이 불현듯 기다린 듯 다시 떠오르는, 맑고 단단한 시의 목소리, 시인의 음성 -시 PD 박형욱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사랑의 생애를 읽는 기분
박형욱 (kaeti@yes24.com)
시인 진은영이 10년 만에 내놓은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그 세월만큼이나 짙고 묵직하다. 그리 두껍지 않은 시집 안에 그의 시간이, 지난 우리의 10년이 꼬박 담겼다. 함께 나누어 온 이야기와 여전히 숙제같이 남은 질문들이 겹겹이 두텁게 쌓여 매 장마다 고개를 내밀고, 그것들은 이제 새롭게 활기를 찾는다. 그의 시 속에서 우리는 뜨겁고 차가운 감각의 부활을 맞는다.

시가 하는 말은, 시에게 듣는 말은 저마다 다르겠으나 이곳에서 그 모두는 마침내 사랑으로 남는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고 말하는, 시집의 문을 여는 ‘시인의 말’부터, ‘나이 먹었는데 절망해도 되나’ 묻는 마지막 시 「빨간 네잎클로버 들판」, ‘사랑의 윤회를 믿는 것 같다.’ 밝히는 뒤표지의 시인의 글까지.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사람이, 문학이, 시가 하는 사랑의 방식을 절실하게 체감한다.

첫 시 「청혼」으로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시는」에서 ‘그러니까 시는 / 시여 네가 좋다 / 너와 함께 있으면 /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 그러니까 시는 / 여기 있다’ 하는 고백에 닿고 「사랑의 전문가」에 이르러 바다의 일종인 나는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다. 이어지는 시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만난다. 노랗고 검은 빛의 시들은 손끝에 방울방울 맺혔다가 툭툭, 그리고 다시 으쌰 일어나도록 툭툭.

푸른 슬픔과 붉은 분노와 노란 그리움, 모두를 담아내는 하얀 사랑이 여기에 있다. 온갖 예쁜 마음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반짝이고, 빛나는 것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잇는, 청명하게 까맣고 고요한 지지가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청혼」중에서

빨간 풍선은 높이 올라갔지
내 심장의 꼭 쥔 주먹이
종이처럼 스르르
펼쳐졌을 때

너는 얼마나 멀리 날아갈까
네 몫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빨간 풍선」중에서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사랑의 전문가」중에서

아침의 기슭엔 면도한 얼굴로 말끔하게 희망이, 오후가 되면 거뭇거뭇 올라오는 수염 같은 절망이 남아 있고 또다시 아침, 부서질 마음의 선박과 원자로들이, 잘 묶인 매듭처럼 반드시 풀리는 나의 죽음이 남아 있고
---「남아 있는 것들」중에서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성냥개비들, 불꽃 한 점에 날뛴다

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

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잘려 나간 그림자에 뒤덮여서
돋아나는 버섯의 부드러운 얼굴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한밤중 쏟아지는
폐병쟁이 별들의 기침
언어의 벌집에서 붕붕대는 침묵의 말벌들

이 슬픔의 앙상한 다리는 어느 꽃술 위에 내려앉았나

내 속에 매달린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 하나
---「그러니까 시는」중에서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날 이후」중에서

사라지고 꺼지는 것들로
잠시 환해지는 관념의 모서리

방은 눈을 녹이는 뜨거운 손을 닮았다
방은 죽음을 쫓아 달리는 커다란 개다 겨울이 죽고 봄이 죽고
죽음은 항상 너무 빠르다
개의 헐떡거리는 혓바닥 위에서 담뱃불이 꺼지며 빛난다

너는 흰 도미노처럼 서서
쓰러지는 방들의 흔들리는 어둠을, 우리를 응시하는 영원한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방을 위한 엘레지」중에서

종이는 손수건-도무지 손바닥만 한 평화
종이는 신의 얼굴-세상을 통째로 구원할 재능 없는 신의 얼굴
삼류 신, 어린 시절부터 싹수가 노랬던 신
할머니가 발가락처럼 거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이 먹었는데 절망해도 되나
죽을 때까지 절망해도 되나
차창 밖에다 물었다
검은 상자를 칸칸이 두드리며 물었다
기차 바퀴가 끽끽, 마찰음으로 울었다
멈추는 것들은 대개 그렇듯, 슬프거든
---「빨간 네잎클로버 들판」중에서

또 오랜 시간을 문장들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문학은,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로제 그르니에의 문장을 읽고 두려워졌다.
얼마나 많은 것이 내 단순함의 칼날에 잘려 나갔을까?
아마도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신이 자꾸 미워졌다.

그때마다 다른 문장들이 다가왔다.
“나는 이미 한때 소년이었고 소녀였으며,
덤불이었고 새였고,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말 못하는 물고기였으니.”
엠페도클레스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문장이다.
아무래도 나는 엠페도클레스의 후예인가 보다.
사랑의 윤회를 믿는 것 같다.
---「뒤표지 시인의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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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처럼 많고 기차 여행처럼 긴 이름들 사이에서 진은영은 반드시 멈춰 서게 되는 이름. 그가 펼쳐 보일 사랑이 오래된 거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곳으로 가 밤낮없이 거닐고 싶다. 나 역시 오래된 거리의 벤치처럼, 그의 시를 기다려왔다.
- 안희연 (시인)
진은영의 시집이 10년 만에 나온다. 10년이라니! 그사이 강산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그의 시를 향한 나의 애틋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그의 새 시집을 읽고 밑줄을 그으려고 천천히 연필을 깎았다. 지우개는 준비하지 않았다. 아무리 깨끗이 지워도 애틋한 흔적은 남는 법이니까.
- 오은 (시인)
나는 고양이 꼬리를 쳐다보고 있다. 슬픈지 기쁜지 알 수 없는 꼬리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일은 역시 조금 슬프다. 진은영 시인은 내게 고양이의 꼬리다. 시집이 나오면 또 하염없이 읽을 것이다.
- 김승일 (시인)
은빛 심장과 붉게 물드는 종이배. 그 사이에 진은영의 시가 있다. 이토록 아름답자는 약속.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진은영을 사랑하고.
- 이혜미 (시인)
내게는 무수한 문이 있는데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문이 대부분이다. 진은영의 시를 읽다 보면 전구가 켜지듯 그 문들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그저 진은영의 시를 더 많이, 더 오래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환하게 펼쳐 읽을 그의 새로운 시를.
- 안미옥 (시인)
매일 넘어지던 시간, 흰 셔츠 윗주머니에 진은영의 시를 넣고 다닌 덕분에 새빨간 버찌 얼룩을 잔뜩 묻힌 채로도 다음으로 갈 수 있었다. 넘어진 자세 그대로 움직일 수 없어도 넘어진 자리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힘껏 멀리 온 여기서 다시 우리들의 시인, 진은영을 기다린다. 다른 우리로, 다시 우리로.
- 김리윤 (시인)
진은영 시인을 사랑하지 않을 시인이 어디 있을까. 나 역시 그의 뜨겁고도 섬세한 시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그의 시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황인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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