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오늘의책

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 리커버 ]
신형철 | 난다 | 2022년 10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6 리뷰 107건 | 판매지수 113,262
베스트
에세이 45위 | 국내도서 top20 2주
구매혜택

[예스24XEBS] 구매 시 리딩 트래커 or 포함 3만원 ↑ 구매 시 리딩 저널 (각 포인트 차감)

정가
18,000
판매가
16,2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46g | 124*210*30mm
ISBN13 9791191859379
ISBN10 1191859371

이 상품의 태그

망그러진 만화

망그러진 만화

15,120 (10%)

'망그러진 만화' 상세페이지 이동

인생의 역사

인생의 역사

16,200 (10%)

'인생의 역사' 상세페이지 이동

작은 땅의 야수들 (리커버 특별판)

작은 땅의 야수들 (리커버 특별판)

16,200 (10%)

'작은 땅의 야수들 (리커버 특별판)' 상세페이지 이동

지구에서 한아뿐

지구에서 한아뿐

11,700 (10%)

'지구에서 한아뿐' 상세페이지 이동

연결된 고통

연결된 고통

15,300 (10%)

'연결된 고통' 상세페이지 이동

인생의 열 가지 생각

인생의 열 가지 생각

14,400 (10%)

'인생의 열 가지 생각' 상세페이지 이동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13,050 (10%)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상세페이지 이동

암컷들

암컷들

19,800 (10%)

'암컷들' 상세페이지 이동

귀신도 반한 숲속 라면 가게

귀신도 반한 숲속 라면 가게

10,800 (10%)

'귀신도 반한 숲속 라면 가게' 상세페이지 이동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19,800 (10%)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상세페이지 이동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18,000 (10%)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상세페이지 이동

에이징 솔로

에이징 솔로

15,120 (10%)

'에이징 솔로' 상세페이지 이동

나의 비거니즘 만화

나의 비거니즘 만화

16,920 (10%)

'나의 비거니즘 만화' 상세페이지 이동

새 마음으로

새 마음으로

13,500 (10%)

'새 마음으로' 상세페이지 이동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1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1

14,400 (10%)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1 ' 상세페이지 이동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18,000 (10%)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상세페이지 이동

지금 당장 기후 토론

지금 당장 기후 토론

13,950 (10%)

'지금 당장 기후 토론' 상세페이지 이동

달리기의 과학

달리기의 과학

17,910 (10%)

'달리기의 과학' 상세페이지 이동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29,700 (10%)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 상세페이지 이동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16,200 (10%)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 상세페이지 이동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시와 같다면] 시를 읽는 일은 인생을 읽는 일, 『인생의 역사』는 시로 다시 겪게 되는 생의 순간, 걷게 되는 사색의 걸음을 담는다.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말하는 평론가 신형철은 스물다섯 편의 시를 소개하며 그 행과 연 사이를 흐르는 운율에서 삶을 읽어낸다. -에세이 PD 박형욱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머리에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 …… 5

프롤로그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 17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1부 고통의 각

가장 오래된 인생의 낯익음 …… 31
―「공무도하가」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 …… 37
―『욥기』
언제나 진실한 것은 오직 고통뿐 …… 45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
왜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는가 …… 53
―에이드리언 리치, 「강간」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생 …… 63
―최승자, 「20년 후에, 지(芝)에게」

2부 사랑의 면

그대가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 …… 75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연인들에게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 …… 83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무정한 신과 사랑의 발명 …… 91
―이영광, 「사랑의 발명」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보내는 사랑 …… 99
―나희덕, 「허공 한줌」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 107
―메리 올리버, 「기러기」

3부 죽음의 점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117
―김시습, 「나는 누구인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 …… 125
―W. H. 오든, 「장례식 블루스」
외로움이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 133
―황동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 …… 141
―월리스 스티븐스, 「아이스크림의 황제」
운명이여, 안녕 …… 149
―한강, 「서시」

4부 역사의 선

그런 애국심 말고 다른 것 …… 161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 두 편
윤동주는 ‘최후의 나’를 향해 갔다 …… 169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그러나 문학은 기적적이다 …… 177
―황지우, 「나는 너다 44」
광화문에서 밥 딜런이 부릅니다 …… 185
―밥 딜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아름다운 석양의 대통령을 위하여 …… 195
―신동엽, 「산문시 1」

5부 인생의 원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임의의 다른 절망 …… 205
―이성복, 「생에 대한 각서」
단 한 번의 만남이 남긴 것 …… 213
―레이먼드 카버, 「발사체」
절제여, 나의 아들, 나의 영감(靈感)이여 …… 223
―김수영, 「봄밤」
이 나날들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 231
―필립 라킨, 「나날들」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 240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부록 반복의 묘

오타쿠의 덕 …… 249
―어느 ‘윤상 덕후’의 고백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 …… 255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 …… 263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
실패한 사랑의 역사를 헤치고 …… 269
―최승자의 90년대를 생각하며
오디세우스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 289
―황동규의 최근 시

에필로그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 …… 305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글과 책 …… 322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그랬던 시들 중 일부를 여기 모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페이지들에는 내 문장이 아니라 시만 적혀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에서 산발적으로 쓰인,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중에서

사랑 따위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격정으로서의 사랑이 덧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천사가 껴안으면 바스러질 뿐인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연인들에게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중에서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 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중에서

나의 대답은,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한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는 말하지만,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중에서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이 세계가 흡수해도 안전한 것임을 미리 확인하고 당신에게 그것을 주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의 안전함을 먹는 일이 된다. 그러고 보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라는 첫 시집의 제목은 그의 첫 시집이 ‘자기’를 돌보는 불가피한 단계의 산물임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제 그는 ‘당신’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 리커버 디자이너 노트

책의 디자인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지재단의 배려로 박서보 화백의 아카이브에 담긴 엄청난 양의 그림을 훑는 것이었다. 모니터로 그림을 보는 일은 즐겁지만 그럴수록 불안감이 번져갔다. 작품을, 그것도 대작을(다른 누구도 아닌 박서보 화백 아닌가!) 공장 인쇄기로 다량의 종이 위에 구현한다는 건 애초 여러 한계를 운명으로 하는 탓이다.

초판을 출간할 적에 동네서점과 일반서점, 두 작품을 어렵사리 골랐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이번 디자인은 당시 저자가 원했던 그림을 베이스로 하게 되어 폰트와 그 위치, 이를 잘 담아낼 종이에 대한 욕심 정도로 고민의 폭을 크게 좁힐 수 있었다.

신형철이라는 이름과 박서보라는 이름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팽팽한 균형감을 가질 수 있게 조화를 이루려면 디자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 시급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간만에 작업 일지를 폈다. “세련을 겪고 나면 심플함에 다다른다”라는 문장이 거기 적혀 있었다. 이 문장을 다시 읽으려 이번 리커버를 작업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 편집자의 책소개

우리 문학을 향한 ‘정확한 사랑’이자 시대를 읽는 탁월한 문장, 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다섯번째 책이자 처음으로 선보이는 ‘시화(詩話)’임에 그 제목을 『인생의 역사』라 달았다. 저자 스스로 ‘거창한 제목’이라 말하지만, 그 머리에 ‘인생’과 ‘역사’가 나란한 까닭은 간명하다. 시를 이루는 행(行)과 연(聯),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일. 우리네 인생이, 삶들의 역사가 그러한 것처럼.

총 5부에 걸쳐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를 꼽아 실었다. 상고시가인 「공무도하가」부터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까지, 역사의 너비와 깊이를 한데 아우르는 시들이다. 시 한 편마다 하나의 인생이 담겼음에, 이를 풀어 ‘알자’ 하는 대신 다시 ‘겪자’ 하는 저자의 산문을 나란히 더했다. 여기에 부록으로 묶은 다섯 편의 글은 시의 안팎을 보다 자유로이 오가며 써낸 기록이다.

시를 함께 읽고자 함이나 그 독법을 가르치는 글은 아니다. 직접 겪은 삶을 시로 받아들이는 일, 그리하여 시를 통해 인생을 살아내는 이야기라 하겠다. 저자의 말대로 시를 읽는 일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일 터이므로.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7쪽)

저자가 사랑한 시를 모으는 일이 하나, 함께 나눌 이야기를 덧붙이는 일이 하나. 시화라 함은 곧 인생을 배우고 인생을 시로 이루는 글이기도 하다. 10대 후반의 어느 날부터 시를 사랑했고 20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은 연재 역시 이 시화를 흉내낸 것이었다 하니, 이번 책이야말로 평론가이자 작가 신형철의 글쓰기, 그 ‘원형’이라 하겠다. 저자의 말마따나 시가 인생의 육성이라 할 적에, 작가 신형철의 목소리에 가장 편히 붙는 곡이자 몸에 꼭 맞는 옷이 바로 시화인 셈이다.

이번 책에는 저자가 직접 번역한 아홉 편의 시를 실었다. 외국어로 쓰인 시를 나의 말 우리의 언어로 옮긴다는 것, 그 역시 시를 겪는 또하나의 방식일 테다. 어떤 시가 널리 사랑받을 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읽어낸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절실한 곳에 그 필요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번역, 그러니까 ‘옮김’의 미덕이리라. 그가 데려다준 곳에서 만나게 될 이 시들이 곧 우리가 기다리는 줄 모른 채 기다려온, 바로 그 시편들일 것이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 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87쪽)

5부에 부록까지 여섯 장의 제목을 먼저 모아둔다. 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 반복의 묘. 삶의 키워드라 할 여섯 테마에 저마다 꼭 맞는 틀을 주었으니, ‘격’을 갖춤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1부의 제목이 ‘고통의 각’인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가장 오래된 고통’이라 할 「공무도하가」로 시작하니 말이다. 이어서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라 일컬은 성경의 「욥기」, 에밀리 디킨슨과 에이드리언 리치, 최승자로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의 시까지 통과하고 나면 저자가 우리 앞에 놓은 이 인생의 첫 얼굴이 ‘고통’인 연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고통이라는 날카로운 ‘각’을 겪어내는 슬픔이 있고, 이를 끝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란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저자가 “일단 이 점을 자인하는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으리라” 말할 때, 불가능의 벽이란 ‘진짜 노력’의 시작점일 뿐이다. 전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부터 우리가 익히 배워왔던 바, 타인의 슬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영원히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이 책, 그 첫 화두는 필연 고통일 수밖에 없겠다. 인생의 공부가 여기서 출발하는 까닭에.

2부 ‘사랑의 면’에는 셰익스피어의 연가(戀歌) 소네트와 릴케의 비가(悲歌)가 나란히 실렸다. 이영광 시인에게서 배운 「사랑의 발명」, 나희덕 시인의 「허공 한줌」 속 부모의 사랑, 메리 올리버의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나아가려는 사랑…… 사랑이란 응당 인생을 채우는 너른 면이면서 그만큼 다양한 ‘얼굴들’이기도 하겠다. 두 편의 글에서 따로 쓰인 글을 이렇게도 나란히 놓아본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97쪽)

책의 허리, 3부에는 ‘죽음’을 두었다. 죽음이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질문이므로,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므로. 생육신 김시습에게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볼 때 죽음 곁에는 삶이 놓인다. W. H. 오든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 곁에 두는 것은 사랑이다. 황동규에게서 남은 자의 외로움을 홀로움으로 환히 밝히고, 월리스 스티븐스를 통해 인생의 불완전함을 가능성으로 치환한다. 죽음이라는 점으로 수렴하는 대신 여기서 다시 삶의 읽기를 시작해보는 일. 한강의 「서시」가 책의 시집의 맨 앞이 아닌 끝에 있는 이유와 이 책의 ‘죽음’이 한가운데 있는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한 점, 인생의 방점이기도 하니까.

책의 제목부터 인생에 이어 ‘역사’를 두었으니, 4부의 제목 역시 ‘역사의 선’이다. 문학을 읽는 일이 슬픔을 공부하는 일인 것은 생이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삶과 삶들의 사이에 있는 까닭이다. 고대 그리스 서정시에서 읽는 국가와 ‘나’의 관계, 윤동주가 끝내 나아간 ‘최후’의 자리, 1980년대 잿더미 속에서 피워낸 황동규의 기적, 밥 딜런이 노래한 변화하는 시대, 신동엽이 꿈꿨던 ‘아름다운 석양의 나라’. 책의 제목부터 ‘인생의 역사’라 하였으니 큰 역사에 개인의 인생이 일방적으로 편입되어서는 안 되리라. 어쩌면 시를 읽는 일은 곧 “‘언제나’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5부는 ‘인생의 원’이다. 이성복, 레이먼드 카버, 김수영, 필립 라킨, 로버트 프로스트. 이름만으로도 불멸의 시인들이니, 끝나지 않을 원에 더없이 걸맞은 셈이다. “365일 내내 음미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매년 주어지는 365개의 나날들, 그것들 외에 또 어디에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이라는 원을 두고 회전목마가 될지 굴레가 될지는 우리의 몫임에, ‘인생’에 대한 이 다섯 편의 시에서 저자가 발견하는 것은 감탄과 감사 혹은 은연한 빛이다. 그러므로 넘어가는 책장, 본문의 끝 무렵에 아쉬워하는 우리가 이 문장을 만날 때, 우리는 더없이 안도하게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부록에는 시화를 대신해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다채로이 써간 글들을 한데 묶었다. 단연 한 편을 소개하자면 ‘윤상 덕후’를 자처하는 저자가 오타쿠의 덕(德)을 말하는 순간. 인간 신형철의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기쁨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에서는 예리하게 사회를 읽어내는 특유의 시각을,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는 노래와 시대에 실은 진중한 음성을, 최승자와 황동규의 시를 읽는 비평에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평론가’ 신형철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앞뒤를 감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소개도 빠질 수 없겠다. 그 제목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그리고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 다소 벗어난 독법이려니 하면서도 두 제목의 ‘대하여’를 지나치지 못하겠다. 조심과 돌봄, 인생을 ‘대하는’ 저자의 작심이기도 할 테니까. 그 세심과 살핌이야말로 우리가 시를 읽고 인생을 대함에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므로.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317쪽)

책을 묶으며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 화백의 작품으로 표지의 격을 더했다. 시화, 곧 삶 위에 선을 긋고 겪음으로 면을 이루는 일. ‘인생’과 ‘역사’가 나란한 제목에 다시 한번 방점을 찍어둔다. 책머리에 메리 올리버를 빌려 “시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 했고, 알렉상드르 졸리앵을 빌려 “인간이라는 직업”을 가진 모두에게 이 책을 바쳤다. 과연 그럴 것이다. 우리의 직업은 시를 넘어 인간, 그 과업은 씀을 담은 인생.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겪어야만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읽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삶도 있을 것이다. 시라는 ‘빈 바구니’에 우리의 삶을 담음으로써 보다 넓고 보다 깊은 무언가를 얻게 하는 바로 그 일이 시화의 사명 아니겠나. 인생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물음이면서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리라는 필시의 믿음으로, 이 책 『인생의 역사』를 권한다.

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 그랬던 시들 중 일부를 여기 모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의 가장 심오한 페이지들에는 내 문장이 아니라 시만 적혀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에서 산발적으로 쓰인,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8쪽)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내게도 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만났던 시들이 있다. 그 시들의 목소리를 이어보니 과연 인생의 역사가 됨을 깨닫는다.
- 채사장 (작가)
[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시 속에 인생이 있다는 말은 부풀려진 관념도 채색된 낭만도 아니다. 역사가 시간과 공간의 대화라면 인간은 그 언어이고 시는 그 기록이다.
- 신용목 (시인)
[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잠자고 있는 내 영혼에 찬물을 끼어 얹는다. 전신이 젖었다. 강을 건너 앞 산 밑을 걸었다. 땅을 보며 걷는다. 아! 이 곳에서 태어난 인생은, 시는 얼마나 쉬운 것인가.
- 김용택 (시인)

회원리뷰 (107건) 리뷰 총점9.6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주간우수작 내 인생의 역사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외****배 | 2023.07.17 | 추천22 | 댓글15 리뷰제목
“시집”을 펼치고 천천히 “시”를 읽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한 때는 나도 하늘과 별과 시에 눈물방울 찍어내던 감성 소녀였건만, 세상사에 시달리는 어른이 되고 만 지금 “시는 무슨 시!?”라며 무심한 인간이 되었다. 집의 책장을 훑어보니, 시집이라고는 딱 한 권뿐이었다. 이래저래 인생에 치여 살다보니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구나...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 “인생;
리뷰제목

시집을 펼치고 천천히 를 읽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한 때는 나도 하늘과 별과 시에 눈물방울 찍어내던 감성 소녀였건만, 세상사에 시달리는 어른이 되고 만 지금 시는 무슨 시!?”라며 무심한 인간이 되었다. 집의 책장을 훑어보니, 시집이라고는 딱 한 권뿐이었다. 이래저래 인생에 치여 살다보니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구나...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 인생의 역사라는 시화집을 읽자고 한다. 솔직히 제목만으로는 썩 내키질 않았다. 인생도 별로고, 역사는 더더욱... 거기다 시화집이라고? 그래도 읽자고 하니, 어쨌든 책을 사들고 왔는데, 한마디로 뜻밖이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생업이 빡세서 책을 맘 놓고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불고하고, 이 책은 꽤 짧은 시간에 다 읽어냈다.

그리고 참 가느다랗긴 하지만, “감성이란 것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이 책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달려가기만 하던 인생에 아주 잠시나마 브레이크를 걸고 내 앞에 놓인 삶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도 있고, 새로이 알게 된 작품도 있는데, 나와는 다른 시각, 또는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시의 해석 방법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시화집의 제목이 왜 인생의 역사일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좀 더 감상적이고 예쁜 제목을 달지, 뭔가 밋밋하기도 재미없기도 한데다 무겁게까지 느껴지는 인생의 역사...

인생이 뭐지? 그냥,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살아지는 게 인생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아니란다. 책 머리말 첫 문장부터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체호프가 러시아어로 , 인생이여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어로 아이고, 인생아라고 한다. 불쌍해서, 죽일 수도 없을 만큼 불쌍해서. 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p6-7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이 인간이라는 직업 (알렉상드르 졸리앵)’을 가진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나도 인간이라는 직업을 갖고 태어나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얼마든지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겠구나.

 

책은 5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제목이 고통의 각이다. 고통의 뾰족한 각으로 시작된 인생은 2부 사랑의 면으로 이어지고, 3부 죽음의 점을 지나, 4부 역사의 선을 긋는다. 그 선으로 결국 5부 인생의 원이 완성된다.

각 부마다 잊지 못할 시와 글귀가 가득하지만 각자 자신이 걷고 있는 인생의 길에서 마음에 와 닿는 시 몇 편을 이 중에서 건져 올린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고통임을 느끼고 있는 요즘, 1부 고통의 각의 글들이 무겁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 중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에서는 욥의 마지막 말이 소개 되는데, “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면서, 아직도 되풀이 되는 현실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죄 없는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고 이에 저항하는 인간을 굴복시켜 결국 다시 자신을 인정하게 만드는 이 가학적인 신의 잔인한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어처구니없는 확률(우연)의 결과로 죽었다는 사실이 초래하는 숨 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 쉬게 할 수 있다면? 무신론자에게 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한사람들이라 말할 수 잇을 것인가. p44

 

일상을 살다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사건, 사고를 만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이런 문장들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이들이 이 글을 꼭 읽었으면 한다. 위로가 되든 아니든...

 

참으로 섬세하고 예민하게 인생을 들여다 본 저자 덕에 내 인생을 다시 보듬게 된다.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고, 한 번 택한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책은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감하며, 그래도 이왕 걸어온 내 인생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은 또 어떻게 가야 할지를 가늠해 본다.

 

마지막 편으로 실려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다시 읽어본다. 여러 갈래의 길이 펼쳐지듯. 이 시의 해석 또한 여러 갈래 일 수밖에 없다.

내가 택한 길이 비록 꼭 옳은 길이었는지, ‘험로를 택한 자였는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한 눈 팔지 않고 여기까지 왔음에 스스로에게 지난날을 미화 시키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일까?

앞으로 내가 가는 길에 또 두 갈래 길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 두 갈래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할까?

책을 덮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밥 딜런의 노래처럼 다가오는 후배들에게 나의 길을 비켜 줘야 할 때, 때 맞춰 그 길을 비켜 줘야 함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언제고 이 책은 다시 한 번 펼쳐 읽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2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2 댓글 15
구매 주간우수작 2부 사랑의 면 (1)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싱* | 2023.02.21 | 추천17 | 댓글20 리뷰제목
 꼬마 때부터 좋아한 박하사탕 두 알 양쪽 볼 빵빵하게 넣고 이 글을 쓴다. 2부가 1부보다 훨씬 진하다. 신형철 표 명언들(아포리즘)로 가득하다. 포근한 일상의 웃음과 함께 해서 그런지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야기로 시작해서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가 낳은 페스티발과 근대영어의 창시자. 이탈리아의 시풍을 영국적 소네트;
리뷰제목

 꼬마 때부터 좋아한 박하사탕 두 알 양쪽 볼 빵빵하게 넣고 이 글을 쓴다. 2부가 1부보다 훨씬 진하다. 신형철 표 명언들(아포리즘)로 가득하다. 포근한 일상의 웃음과 함께 해서 그런지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야기로 시작해서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가 낳은 페스티발과 근대영어의 창시자. 이탈리아의 시풍을 영국적 소네트로 재창출한. 그의 시와 희곡은 운문이라 각운을 맞추며 비유와 대구의 배틀 장소가 된다. 어휘가 제한적인 시대인데도 그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생생한 데생처럼 묘사한다. 어려운 대사를 외워 연기하는 배우들은 더 훌륭하고.

 인간세상의 대부분이 필멸하기에 예술가들은 시간을 고정forever frozen still시키고자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변하고 소멸하는 속성에 저항하는 하나의 몸부림이자 투쟁이 된다. 나도 소설 스토너의 초입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에 전율했었다. 소네트 한 편이 불러들이는 긴장감이란. 한사람의 인생 장악은 독자에게로 옮겨 붙는다. 팽팽하게 끊길 듯 놓지 않는 고무줄 같은 삶이 나와 너무 닮아서, 독서토론 때 엄청 씹었던 기억이 난다. 닮은 사람은 답답해. 진지함과 다크함은 내가 2~3인분하면 되니까 빠져.

 지금과 비교하면 16세기에는 짧은 인생이 배로 두려웠을 것이다. 신형철의 73번 해석은 여하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안의 청년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서 삶을 더 사랑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고집이 세고 기억력도 나쁘다(81).” 때가 되어야 들리는 말이 있다. 대학 은사님이 선물했던 책을 최근에 읽었다(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ㅎㅎ). 삼십 년 후에 당도한 말. 불시착 안 되고 도착한 게 어디여^^. 볼 때마다 너 나 싫어하지!” 하시는데도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안궁금으로 정정이상형 발표 시간에 내 얘기에 그런 사람 없다고 저주한 분, 나빠

 

 사실 나는 시를 어려워한다. 조금 보여주고 알아서 알아들어, 이거 폭력 아닌가?^^. 반면 지인들은 대체로 시를 암송하며 만만하게 본다. 신 평론가는 번역시를 읽을 때면 성실한 실패작을 대하는 심경이라며 포기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87)”한단다. 초점과 스케일이 애초에 다르다.

 시를 읽게끔 유혹하는 문장도 남다르다.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87).” 이런 교육과 연습을 딥따 받은 지인들은 사회에서 소통하기 귀찮은 존재가 된다. 문학전공자들끼리 몰려다닐 때 민망해서 웃는 일이 잦다. 자꾸 디테일하게 별의 별 것들을 다 물어.

 시인 릴케를 내가 쉽게 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쏘아진 화살이라던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시니컬한 개탄이 섞인다. “연인들이여, 그때에도 너희들은 영원한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 ,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 가는가!” 소멸과 사라짐은 자연 현상임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사랑은 시간을 멈추고 장소를 보존한다. 그것은 순수한 지속이다. 그런데 릴케의 요점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모든 들이 지나고 나면 연인들은 멀어진다는 것’(89)”이다. 그러니 좀 이르더라도 두 눈 딱 감자.

 지독한 러버인 저자가 격정적 사랑으로 사랑이 탕진되지 않도록 살며시 어루만지는’ ‘절제하는사랑을 말할 때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90)”이라는 문장에 백분 공감한다. 구원 환상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미지 모두 천상계의 이야기로 위험하다. 특히 상상 속에 만들어진 신격화는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환상을 쫓고 옥죄는 거라 만류하고 싶다. 감정이 활화산이다 일순 휴화산이 되어버려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흐를 확률이 높다.

 이것이 사랑인가, 아니면 연민인가를 두고 고민해본 적이 다들 있을 거다.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사랑의 발명믿음에 빠진 사람들을 볼 때면 신기하고 부럽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헌신하겠다는 건데. 엄마의 지독한 희생과 책임짐을 봐버려서 굳이 나서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동정이 사랑으로 도약할 수는 없다는 것(96)”만 인지한다면 심퍼시의 힘을 긍정하고 싶다.

 “나와 네가 근원적으로 닮았음을 발견하는 때, 고유한 는 없고 다만 아픈 우리가 있을 뿐임을 깨닫는 때가 있는데, 그때의 감정을 동정이라 한다면, ‘사랑이 그것과 다른 것일 수가 없다고(95).”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 아모블로 우트 시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가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96).” 불가능과 무의미까지 이겨내도록 신 대신그 사람 곁에 있어주겠다는 지원자들 대단.

 

 최근 경험한 감정 뭉치를 들여다보며 적어도 앞뒤 재고 계산하진 않았음에 안도했다. 영단어 퓨어(pure)는 순수한, 정통의, 뜻을 지니는데 이 둘이 묘하게 맞닿아 있는 뫼비우스 띠 같다. 순수한 게 찐이여 인증 같아서. ‘무정한 신에게 기분 상할 뻔 했다가 슬쩍 딜을 넣었다. 안 들어주시면 네메시스의 버키보다 더 폭발할 거예요. 셰익스피어 비극들 모조리 읽은 입은 조심하셔야*^^*.

1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7 댓글 20
파워문화리뷰 시를 읽는다는 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꼼* | 2023.02.08 | 추천12 | 댓글4 리뷰제목
곁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가 축 처져 있거나 초점을 잃고 멍한 눈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내 손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타인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면 나조차 의욕을 잃게 되는 까닭입니다. 매 시;
리뷰제목

곁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가 축 처져 있거나 초점을 잃고 멍한 눈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내 손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타인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면 나조차 의욕을 잃게 되는 까닭입니다. 매 시간 내가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까닭에 타인을 보면서 으라차차 기운을 내고자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쉽게 만날 수 없는 지인의 기운 없는 목소리를 전화로 들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시(詩)를 권하곤 합니다. 한 편의 시를 소리 내어 낭독하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지요. 시는 한 편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에너지이며 삶의 리듬이자 진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의 리듬이 가슴으로 전해질 때까지 되뇌어 낭송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에너지를 흠뻑 들이마시고 나면 우리는 다시 또 기운을 내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시의 효용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쓴 <인생의 역사> 역시 시의 힘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가 사랑한 시를 모아 함께 나눌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완성되는 하나의 시화(詩話)는 평론가로서의 신형철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재정립하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번역한 아홉 편의 시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살아내는 하나의 방편이기에 이 한 권의 책에는 오롯한 시적 체험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하겠습니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7 '책머리에' 중에서)

 

'책머리에'와 '프롤로그'를 지나면 5부로 이루어진 본문과 부록 그리고 '에필로그'와 '본문에서 인용한 글과 책'이 이어집니다.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 부록 '반복의 묘'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각 부의 소제목을 찬찬히 살펴보면 마치 우리 인생의 면면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뾰족뾰족한 고통의 '각(角)'과 사랑의 '면면'을 겪은 후 찾아오는 죽음과 그 개별적인 죽음의 '점'들이 모여 역사의 '선(線)'을 이루며, 인생은 둥근 '원'처럼 순환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묘'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서시란 서문을 대신하는 시이므로 시집 맨 앞에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한강의 「서시」는 시집의 끝에 있는가. 죽음에 대한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그건 너무 늦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  (p.157)

 

시를 평론하는 사람은 무릇 시인이 살아낸 삶의 격랑 속으로 들어가 시에 깃든 삶의 에너지를 가늠하고 내재된 삶의 리듬을 타고 시인과 함께 동행하는 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평론가는 시에 깃든 시인의 리듬을 독자들에게 찬찬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시인의 리듬을 어느 평론가를 매개로 비로소 감응하게 되고, 나의 안테나를 세워 시인의 주파수에 동조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은 순전히 평론가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며, 시인이 보내는 삶의 리듬에 저항하지 않고 일체가 되는 동조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타자의 실종과 사랑의 위기라니, 관념의 유희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시인의 우울한 투정이야 어느 때나 있는 것이라고 냉소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노멀'이라고 말하면 이전의 모든 것이 '노멀'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고 말하면 이전에는 사랑이 자명하게 있었던 것처럼 돼버린다. 올해 들어 부모님의 가게는 월세를 못 내게 되었고 자신도 아르바이트에서 잘렸을지 모르지만, 취업이 불투명하고 연애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것은 그전부터다. 그들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썼던 마스크라는 것. 모두가 마스크를 쓰자 '간단한 자살'들이 묻혀버렸을 뿐."  (p.260)

 

신형철이 쓴 <인생의 역사>는 저자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지만, 동시대의 우리가 다 함께 겪어야만 하는 일반적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들 대부분은 시로부터 멀어지고, 시로부터 소외되고, 데면데면 어색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시에서 얻는 에너지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시인은 괜스레 헛심만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게 괜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곧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시를 가만가만 읊어보노라면 어쩌면 나도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기운을 내서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저 먼 발치로부터 스멀스멀 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1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2 댓글 4

한줄평 (200건) 한줄평 총점 9.6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와 약간은 친해진 느낌이에요. 신형철님 책은 항상 근사합니다.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s*********9 | 2022.11.08
구매 평점5점
신형철이 써내려간 연과 행, 이번에도 기꺼이 연행된다.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YES마니아 : 플래티넘 윤* | 2022.10.17
구매 평점5점
긴 기다림의 끝에 오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3
j*******8 | 2022.10.19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6,2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