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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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46g | 124*210*30mm |
ISBN13 | 9791191859379 |
ISBN10 | 1191859371 |
[예스24XEBS] 구매 시 리딩 트래커 or 포함 3만원 ↑ 구매 시 리딩 저널 (각 포인트 차감)
발행일 | 2022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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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46g | 124*210*30mm |
ISBN13 | 9791191859379 |
ISBN10 | 1191859371 |
MD 한마디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시와 같다면] 시를 읽는 일은 인생을 읽는 일, 『인생의 역사』는 시로 다시 겪게 되는 생의 순간, 걷게 되는 사색의 걸음을 담는다.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말하는 평론가 신형철은 스물다섯 편의 시를 소개하며 그 행과 연 사이를 흐르는 운율에서 삶을 읽어낸다. -에세이 PD 박형욱
책머리에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 …… 5 프롤로그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 17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1부 고통의 각 가장 오래된 인생의 낯익음 …… 31 ―「공무도하가」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 …… 37 ―『욥기』 언제나 진실한 것은 오직 고통뿐 …… 45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 왜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는가 …… 53 ―에이드리언 리치, 「강간」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생 …… 63 ―최승자, 「20년 후에, 지(芝)에게」 2부 사랑의 면 그대가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 …… 75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연인들에게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 …… 83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무정한 신과 사랑의 발명 …… 91 ―이영광, 「사랑의 발명」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보내는 사랑 …… 99 ―나희덕, 「허공 한줌」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 107 ―메리 올리버, 「기러기」 3부 죽음의 점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117 ―김시습, 「나는 누구인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 …… 125 ―W. H. 오든, 「장례식 블루스」 외로움이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 133 ―황동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 …… 141 ―월리스 스티븐스, 「아이스크림의 황제」 운명이여, 안녕 …… 149 ―한강, 「서시」 4부 역사의 선 그런 애국심 말고 다른 것 …… 161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 두 편 윤동주는 ‘최후의 나’를 향해 갔다 …… 169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그러나 문학은 기적적이다 …… 177 ―황지우, 「나는 너다 44」 광화문에서 밥 딜런이 부릅니다 …… 185 ―밥 딜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아름다운 석양의 대통령을 위하여 …… 195 ―신동엽, 「산문시 1」 5부 인생의 원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임의의 다른 절망 …… 205 ―이성복, 「생에 대한 각서」 단 한 번의 만남이 남긴 것 …… 213 ―레이먼드 카버, 「발사체」 절제여, 나의 아들, 나의 영감(靈感)이여 …… 223 ―김수영, 「봄밤」 이 나날들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 231 ―필립 라킨, 「나날들」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 240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부록 반복의 묘 오타쿠의 덕 …… 249 ―어느 ‘윤상 덕후’의 고백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 …… 255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 …… 263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 실패한 사랑의 역사를 헤치고 …… 269 ―최승자의 90년대를 생각하며 오디세우스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 289 ―황동규의 최근 시 에필로그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 …… 305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글과 책 …… 322 |
“시집”을 펼치고 천천히 “시”를 읽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한 때는 나도 하늘과 별과 시에 눈물방울 찍어내던 감성 소녀였건만, 세상사에 시달리는 어른이 되고 만 지금 “시는 무슨 시!?”라며 무심한 인간이 되었다. 집의 책장을 훑어보니, 시집이라고는 딱 한 권뿐이었다. 이래저래 인생에 치여 살다보니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구나...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 “인생의 역사”라는 시화집을 읽자고 한다. 솔직히 제목만으로는 썩 내키질 않았다. 인생도 별로고, 역사는 더더욱... 거기다 시화집이라고? 그래도 읽자고 하니, 어쨌든 책을 사들고 왔는데, 한마디로 뜻밖이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생업이 빡세서 책을 맘 놓고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불고하고, 이 책은 꽤 짧은 시간에 다 읽어냈다.
그리고 참 가느다랗긴 하지만, “감성”이란 것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이 책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달려가기만 하던 인생에 아주 잠시나마 브레이크를 걸고 내 앞에 놓인 삶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도 있고, 새로이 알게 된 작품도 있는데, 나와는 다른 시각, 또는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시의 해석 방법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시화집의 제목이 왜 “인생의 역사”일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좀 더 감상적이고 예쁜 제목을 달지, 뭔가 밋밋하기도 재미없기도 한데다 무겁게까지 느껴지는 “인생의 역사”라...
인생이 뭐지? 그냥,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살아지는 게 인생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아니란다. 책 머리말 첫 문장부터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체호프가 러시아어로 ‘아, 인생이여’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어로 ‘아이고, 인생아’라고 한다. 불쌍해서, 죽일 수도 없을 만큼 불쌍해서. 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p6-7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이 ‘인간이라는 직업 (알렉상드르 졸리앵)’을 가진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나도 인간이라는 직업을 갖고 태어나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얼마든지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겠구나.
책은 5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제목이 ‘고통의 각’이다. 고통의 뾰족한 각으로 시작된 인생은 2부 사랑의 면으로 이어지고, 3부 죽음의 점을 지나, 4부 역사의 선을 긋는다. 그 선으로 결국 5부 인생의 원이 완성된다.
각 부마다 잊지 못할 시와 글귀가 가득하지만 각자 자신이 걷고 있는 인생의 길에서 마음에 와 닿는 시 몇 편을 이 중에서 건져 올린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고통임을 느끼고 있는 요즘, 1부 고통의 각의 글들이 무겁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 중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에서는 욥의 마지막 말이 소개 되는데, “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면서, 아직도 되풀이 되는 현실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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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다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사건, 사고를 만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이런 문장들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이들이 이 글을 꼭 읽었으면 한다. 위로가 되든 아니든...
참으로 섬세하고 예민하게 인생을 들여다 본 저자 덕에 내 인생을 다시 보듬게 된다.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고, 한 번 택한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책은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감하며, 그래도 이왕 걸어온 내 인생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은 또 어떻게 가야 할지를 가늠해 본다.
마지막 편으로 실려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다시 읽어본다. 여러 갈래의 길이 펼쳐지듯. 이 시의 해석 또한 여러 갈래 일 수밖에 없다.
내가 택한 길이 비록 꼭 옳은 길이었는지, ‘험로를 택한 자’였는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한 눈 팔지 않고 여기까지 왔음에 스스로에게 지난날을 미화 시키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일까?
앞으로 내가 가는 길에 또 두 갈래 길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 두 갈래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할까?
책을 덮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밥 딜런의 노래처럼 다가오는 후배들에게 나의 길을 비켜 줘야 할 때, 때 맞춰 그 길을 비켜 줘야 함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언제고 이 책은 다시 한 번 펼쳐 읽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꼬마 때부터 좋아한 박하사탕 두 알 양쪽 볼 빵빵하게 넣고 이 글을 쓴다. 2부가 1부보다 훨씬 진하다. 신형철 표 명언들(아포리즘)로 가득하다. 포근한 일상의 웃음과 함께 해서 그런지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야기로 시작해서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가 낳은 페스티발과 근대영어의 창시자. 이탈리아의 시풍을 영국적 소네트로 재창출한. 그의 시와 희곡은 ‘운문’이라 각운을 맞추며 비유와 대구의 배틀 장소가 된다. 어휘가 제한적인 시대인데도 그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생생한 데생처럼 묘사한다. 어려운 대사를 외워 연기하는 배우들은 더 훌륭하고.
인간세상의 대부분이 필멸하기에 예술가들은 시간을 고정forever frozen still시키고자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변하고 소멸하는 속성에 저항하는 하나의 몸부림이자 투쟁이 된다. 나도 소설 ‘스토너’의 초입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에 전율했었다. 소네트 한 편이 불러들이는 긴장감이란. 한사람의 인생 장악은 독자에게로 옮겨 붙는다. 팽팽하게 끊길 듯 놓지 않는 고무줄 같은 삶이 나와 너무 닮아서, 독서토론 때 엄청 씹었던 기억이 난다. 닮은 사람은 답답해. 진지함과 다크함은 내가 2~3인분하면 되니까 빠져.
지금과 비교하면 16세기에는 짧은 인생이 배로 두려웠을 것이다. 신형철의 73번 해석은 “여하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안의 청년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서 삶을 더 사랑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고집이 세고 기억력도 나쁘다(81).” 때가 되어야 들리는 말이 있다. 대학 은사님이 선물했던 책을 최근에 읽었다(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ㅎㅎ). 삼십 년 후에 당도한 말. 불시착 안 되고 도착한 게 어디여^^. 볼 때마다 “너 나 싫어하지!” 하시는데도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안궁금으로 정정. 이상형 발표 시간에 내 얘기에 “그런 사람 없다”고 저주한 분, 나빠.
사실 나는 시를 어려워한다. 조금 보여주고 알아서 알아들어, 이거 폭력 아닌가?^^. 반면 지인들은 대체로 시를 암송하며 만만하게 본다. 신 평론가는 번역시를 읽을 때면 “성실한 실패작”을 대하는 심경이라며 “포기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87)”한단다. 초점과 스케일이 애초에 다르다.
시를 읽게끔 유혹하는 문장도 남다르다.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87).” 이런 교육과 연습을 딥따 받은 지인들은 사회에서 소통하기 귀찮은 존재가 된다. 문학전공자들끼리 몰려다닐 때 민망해서 웃는 일이 잦다. 자꾸 디테일하게 별의 별 것들을 다 물어.
시인 릴케를 내가 쉽게 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쏘아진 화살이라던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시니컬한 개탄이 섞인다. “연인들이여, 그때에도 너희들은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 가는가!” 소멸과 사라짐은 자연 현상임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사랑은 시간을 멈추고 장소를 보존한다. 그것은 ‘순수한 지속’이다. 그런데 릴케의 요점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모든 ‘첫’들이 지나고 나면 연인들은 ‘멀어진다는 것’(89)”이다. 그러니 좀 이르더라도 두 눈 딱 감자.
지독한 러버인 저자가 격정적 사랑으로 사랑이 탕진되지 않도록 ‘살며시 어루만지는’ ‘절제하는’ 사랑을 말할 때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90)”이라는 문장에 백분 공감한다. 구원 환상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미지 모두 천상계의 이야기로 위험하다. 특히 상상 속에 만들어진 신격화는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환상을 쫓고 옥죄는 거라 만류하고 싶다. 감정이 활화산이다 일순 휴화산이 되어버려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흐를 확률이 높다.
이것이 사랑인가, 아니면 연민인가를 두고 고민해본 적이 다들 있을 거다.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사랑의 발명’ 믿음에 빠진 사람들을 볼 때면 신기하고 부럽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헌신하겠다는 건데. 엄마의 지독한 희생과 책임짐을 봐버려서 굳이 나서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동정이 사랑으로 도약할 수는 없다는 것(96)”만 인지한다면 ‘심퍼시의 힘’을 긍정하고 싶다.
“나와 네가 근원적으로 닮았음을 발견하는 때, 고유한 ‘나’는 없고 다만 아픈 ‘우리’가 있을 뿐임을 깨닫는 때가 있는데, 그때의 감정을 ‘동정’이라 한다면, ‘사랑’이 그것과 다른 것일 수가 없다고(95).”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 아모블로 우트 시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가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96).” 불가능과 무의미까지 이겨내도록 ‘신 대신’ 그 사람 곁에 있어주겠다는 지원자들 대단.
최근 경험한 감정 뭉치를 들여다보며 적어도 앞뒤 재고 계산하진 않았음에 안도했다. 영단어 퓨어(pure)는 순수한, 정통의, 뜻을 지니는데 이 둘이 묘하게 맞닿아 있는 뫼비우스 띠 같다. 순수한 게 찐眞이여 인증 같아서. ‘무정한 신’에게 기분 상할 뻔 했다가 슬쩍 딜을 넣었다. 안 들어주시면 ‘네메시스’의 버키보다 더 폭발할 거예요. 셰익스피어 비극들 모조리 읽은 입은 조심하셔야*^^*.
곁에 있는 누군가의 어깨가 축 처져 있거나 초점을 잃고 멍한 눈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내 손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타인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면 나조차 의욕을 잃게 되는 까닭입니다. 매 시간 내가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까닭에 타인을 보면서 으라차차 기운을 내고자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쉽게 만날 수 없는 지인의 기운 없는 목소리를 전화로 들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시(詩)를 권하곤 합니다. 한 편의 시를 소리 내어 낭독하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지요. 시는 한 편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에너지이며 삶의 리듬이자 진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의 리듬이 가슴으로 전해질 때까지 되뇌어 낭송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삶의 에너지를 흠뻑 들이마시고 나면 우리는 다시 또 기운을 내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시의 효용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쓴 <인생의 역사> 역시 시의 힘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가 사랑한 시를 모아 함께 나눌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완성되는 하나의 시화(詩話)는 평론가로서의 신형철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고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재정립하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번역한 아홉 편의 시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살아내는 하나의 방편이기에 이 한 권의 책에는 오롯한 시적 체험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하겠습니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7 '책머리에' 중에서)
'책머리에'와 '프롤로그'를 지나면 5부로 이루어진 본문과 부록 그리고 '에필로그'와 '본문에서 인용한 글과 책'이 이어집니다.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 부록 '반복의 묘'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각 부의 소제목을 찬찬히 살펴보면 마치 우리 인생의 면면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뾰족뾰족한 고통의 '각(角)'과 사랑의 '면면'을 겪은 후 찾아오는 죽음과 그 개별적인 죽음의 '점'들이 모여 역사의 '선(線)'을 이루며, 인생은 둥근 '원'처럼 순환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묘'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서시란 서문을 대신하는 시이므로 시집 맨 앞에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한강의 「서시」는 시집의 끝에 있는가. 죽음에 대한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그건 너무 늦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 (p.157)
시를 평론하는 사람은 무릇 시인이 살아낸 삶의 격랑 속으로 들어가 시에 깃든 삶의 에너지를 가늠하고 내재된 삶의 리듬을 타고 시인과 함께 동행하는 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평론가는 시에 깃든 시인의 리듬을 독자들에게 찬찬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시인의 리듬을 어느 평론가를 매개로 비로소 감응하게 되고, 나의 안테나를 세워 시인의 주파수에 동조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은 순전히 평론가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며, 시인이 보내는 삶의 리듬에 저항하지 않고 일체가 되는 동조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타자의 실종과 사랑의 위기라니, 관념의 유희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시인의 우울한 투정이야 어느 때나 있는 것이라고 냉소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노멀'이라고 말하면 이전의 모든 것이 '노멀'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고 말하면 이전에는 사랑이 자명하게 있었던 것처럼 돼버린다. 올해 들어 부모님의 가게는 월세를 못 내게 되었고 자신도 아르바이트에서 잘렸을지 모르지만, 취업이 불투명하고 연애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것은 그전부터다. 그들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썼던 마스크라는 것. 모두가 마스크를 쓰자 '간단한 자살'들이 묻혀버렸을 뿐." (p.260)
신형철이 쓴 <인생의 역사>는 저자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지만, 동시대의 우리가 다 함께 겪어야만 하는 일반적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들 대부분은 시로부터 멀어지고, 시로부터 소외되고, 데면데면 어색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시에서 얻는 에너지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시인은 괜스레 헛심만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게 괜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곧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시를 가만가만 읊어보노라면 어쩌면 나도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기운을 내서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저 먼 발치로부터 스멀스멀 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