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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리뷰 총점9.7 리뷰 17건 | 판매지수 6,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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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66쪽 | 338g | 130*200*17mm
ISBN13 9791192465043
ISBN10 119246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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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연결된 고통』을 쓴 이기병 내과 의사는 3년간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아픈 몸과 만났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고통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이 책은 여러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하며 겪은 희로애락을 글로 남긴 최초의 기록이다. - 손민규 인문 PD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추천의 말
머리말 - 잊히지 않아야 할 크고 작은 세계의 기록

1 갑상선 호르몬의 진실
: 재현의 목적은 본질의 장악에 있다

2 술과 심부전
: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다

3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
: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

4 옴과 헤테로토피아
: 그들에게 쉼터는 장소 바깥에 있는 장소였다

5 요통, 변비 그리고 실신
: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

6 질병이나 죽음은 형벌일까
: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 고통에 관하여

7 고통의 이분법
: 몸과 마음 사이의 간극과 관계에 대하여

맺음말 - 누군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저자 소개 (1명)

만든이 코멘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안녕하세요. 이책의 저자 입니다.
2023-09-08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 선생님이 외국인노동자의원에서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입니다. 어느 날 함께 일했던 동료가 〈과학뒤켠〉이라는 잡지에 실린 기고문을 메일로 보내줬어요. ‘길 잃은 내과 의사, 인류학의 길을 찾다’라는 제목을 단 그 글은 솔직히 좀 어렵긴 했지만 (웃음) 매우 새로웠고 독특했어요. 환자를 어떤 ‘장기’를 지닌 치료 대상으로만 보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들, 진단 뒤에 숨은 ‘목소리를 잃은 서사’에 귀 기울였어야 하지만 본인도 그러기를 실패했다는 고백, 이제라도 그 실패를 주섬주섬 손에 쥐고 복기해보려는 시도들이 거기 담겨 있었어요.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겪으셨던 것인데, 이것은 이분만 하실 수 있는 이야기이며 자칫 묻힐 수도 있는 기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북토크를 할 때면 저자는 이 책을 ‘긴 후회의 기록’이라고 소개하세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분명 존재했고, 매일 적게는 40명 많게는 100명 가까이 환자를 봐야 하는 열악한 환경 탓이긴 했어도, 진료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인데요. 책을 읽다 보면 가리봉동의 어느 좁다란 진료실 한 편에 슬그머니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때로는 의사의 마음이 되어 위독한 환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전화를 해대며 노파심과 불안을 느끼고, 때로는 환자가 되어 내 말을 성의껏 들어주지 않는 의사의 무심함에 서럽고 속상하기도 하죠. 어느새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이야기를 곧 내 이야기로 읽게 되는 마법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 시간들을 인류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복원해내는 데는 ‘성공’하신 듯해요. - 아몬드 이은정 대표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고통과 통증은 오직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층위 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 p.15

이 책은 외노의원에서 내가 만났던 환자들과 3년간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의 기록이다. 이제 외노의원이 폐원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 가리봉동의 작은 의원에 다녀갔던 수많은 이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 잊히지 않아야 할 그 크고 작은 세계의 기록이 어쩌면 이 책에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든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이 글의 목적은 기록하여 닫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게 환기되고 회자되도록 진입로를 열어두는 것에 있음을 밝혀둔다.
--- pp.16~1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의사보다 병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환자의 몸이 현대 의학의 진단 체계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 p.49

질환을 가진 삶은 분명 고통스러운 면이 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가족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환자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결코 원하지 않던 무엇인가를 떠안는다. 그러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그 교환의 관계가 지속되며 그는 질병이나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삶에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또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 p.51

그는 “조금 마셨다”는 식의 변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매일 마시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거푸 되풀이했다. 나는 당신은 내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정도로 계속 싸우고 있는 중이었고, 나는 내 쪽에서도 그의 투쟁의 어딘가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p.68

잠시 머뭇거리던 환자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약간은 긴장한 듯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한 가지 더 검사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 HIV 검사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HIV 라는 단어를 듣고, 흠칫 놀랐으나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환자 분 말씀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는 건가요?”
--- p.90

의사라는 직업은 모순적인 면이 있다. 성경에 실려 있듯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기 때문’에 의사라는 업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불건강과 고통이 있어야 유지된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유지되는 의업의 목적은 고통을 근절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희한한 것은 고통의 연료를 때가며 고통을 근절하고자 하는 이 모순된 직업에 나같이 평범한 이들도 일말의 사명감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 p.91

필수 불가결한 것들만 진행해도 시간과 여력이 모자란 생의학적 진료 현장에서 생사회적 관점이란 언제나 잉여의 논의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은 언제나 사회적 특성들에 기반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이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약 이전에 그 약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돈, 또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 p.122

쉼터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옴이 돌고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그 쉼터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 의아했다. 옴 진드기가 뭔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쉼터가 가진 모종의 비밀이 있는 것일까. 그곳은 어떤 장소인가.
--- pp.134~135

당일에 드물게 환자가 많지 않은 날이라 나는 비교적 긴 시간을 그들과 면담할 수 있었다. 나중에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당시 의도치 않게 일종의 인류학적 현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면담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보다 그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내 질문을 통해서보다 그들끼리의 환담과 대화를 들으며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137

나의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처럼 원인을 잘 모르는 통증이나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몸의 이상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병원의 여러 과를 돌아다녀본 경험을 지닌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말이다. 시간이 늘 부족한 진료실에서, 본인이 생각해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증상들을 불가피하게 열거할 때 일그러지는 의료진의 표정을 아마 당신도 보았을지 모른다.
--- p.180

어느 월요일이었다. 근무 시간이 끝나가고 모니터를 보던 눈이 침침해지던 때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한 남자가 진료실로 들어섰다. 조선족임을 알 수 있는 말씨였고 작업복에는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차림새가 단정했다. 다만 어떤 의사라도 첫인상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너무 창백했다.
“기침을 달포가 되도록 계속 하는데 가끔 피가 묻어나요.”
그의 이야기는 간결했지만 증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 p.190

나는 석연치가 않았다. 일을 하다 보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찜찜한 순간이 한 번쯤은 꼭 있기 마련인데 그날이 그랬다. 뒷목 언저리가 서늘했다. 진료가 끝난 뒤 나는 병원에 홀로 남아 기록과 정황을 새로 검토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상황을 다시 보는 방식이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결국 왔던 길을 잠시라도 되짚어가야만 한다. 문득 환자의 기침 증상에 생각이 미쳐 엑스레이 사진을 열었다. 5분이 넘게 사진을 응시하던 나는 결국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 p.196

내가 그와 만나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일은 질병의 발견이나 죽음의 언도가 아니라 아마도 그의 고통을 헤아려 보는 것, 그 고통의 현장에 일부 참여하는 것이었다는 점도. 어쩌면 그것이 본질이자 전부였을 수도 있다.
--- p.209

괜찮은, 정상적인 환자가 아니라 이상한 환자. 괜찮은 환자라니 여기부터 엄청난 역설이다. 정상적인 환자라니 무슨 말인가. 그럼에도 이분법은 간편하다. 망치를 든 사람 눈에는 못만 보이는 법이니까. 내 몸은 피곤하고 이 사람은 이상한 환자라고 일단 못 박고 나면 나머지 정보들은 상당히 탈색되거나 소거된다. 재고의 여지가 부족해진다. 이 환자를 향한 이분법은 자명한 검사 결과로 인해 다행히 망상 수준에서 끝이 났지만 이러한 선입견의 효과는 우리의 드러나지 않는 일상에서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괜찮은 것과 이상한 것을 나누며 여전히 진행 중일지 모른다.
--- p.223

이 책은 가리봉동의 좁다란 진료실 안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복기한 것에 불과하지만,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세상이 오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게 다녀갔던 외국인노동자 신분의 환자들, 그들은 이 땅에 살며 고통을 견디던, 우리 역사의 일부다. 바라기는 이 기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일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거나 적으나마 해석의 여지를 늘려주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고통에 개입하거나 고통을 완화시키기에 수월하기를, 또 다른 누군가의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고통이 잠시나마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 p.259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의사로서도 인류학자로서도 뛰어나지만,
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의사와 인류학자의 경계 속에서 탄생한다.”
-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현대 의학이 간과한 돌봄의 필요와 쓸모를 살뜰히 발굴해낸다.”
- 장일호, 기자 · 『슬픔의 방문』 저자

“누군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내과 의사이자 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3년의 기록


내과 의사 이기병은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한다. 그때의 그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안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난다.

의학의 진단 및 치료 체계는 특정 증상을 보이면 특정 질병으로 이어지는 병인론에 근거해 정해진 프로토콜에 의해 움직인다. 의학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인류 전체의 건강한 삶을 견인했으나 한편으론 환자 개개인이 겪는 질병 서사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이야기보다는 과학이, 숨은 맥락보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중요했다.

『연결된 고통』은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이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건강과 불건강,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나와 너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시대에 이 책은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코로나 시대 감염내과 의사로 일하며 틈틈이 옛 기록을 복원하는 작업은 지난하고 외로운 일이었으나, 여러 차례 고쳐 쓰고 다듬어 집필 4년 만에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외노의원이 이제 폐원(2004-2017)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구와 진료에 힘겨웠던 내 머릿속 의학의 영토 위에 인류학적 세계관이 새로이 거주하고 경합하면서, 비로소 그 진통에 힘입어 접근 불가의 영역과도 같았던 외노의원 3년의 시간을 재해석하고 재현해볼 수 있었다. 이제 보니 그 3년은 고통스럽게 반성하고 망설이며 좌절했던 기억이면서 삶이 때때로 보여주는 것처럼 간혹 기쁘고 감사한 나날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머리말 중에서

고통과 통증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역사와 문화와 사회의 층위에서 상연되는 것이다


저자는 2011년부터 3년간, 외노의원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중국 조선족에 이르기까지 10개국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권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내국인 환자들에게서 경험하지 못한 일련의 난관에 봉착한다. 첫째는 소통의 문제였다. 타국의 진료실에 환자로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곳 언어를 할 줄 알아도 진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어가 능통하지 않다면 더욱 곤란하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책에는 실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코트디부아르 청년의 사례가 등장한다.(7장 고통의 이분법) 진료실을 찾은 그는 한국어도, 영어도 그리고 불어도(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령이었다) 할 줄 몰랐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살던 지역의 토착어만 할 줄 알았던 그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오해’는 왠지 낯이 익다. 비록 극단적이긴 해도, 진료실에서 내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소통은 충분하지 않다. (배경지식이) 동등하지 않은 ‘의사와 환자’ 같은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둘째는 국내와는 다른 환경에서 태동한 다양한 질병을 감별해야 하는 어려움이었다. 저자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는 문진에 한두 가지 주요 증상이 아닌 여덟아홉 가지의 증상을 토로하는 조선족의 (한결같은) 사례에서 황망함을 느꼈다. 특정 증상을 증상의 원인인 장기와 질병으로 좁혀 들어가 마침내 진단에 이르는 ‘생의학’의 훈련만 받아왔기에 이런 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인류학 문헌을 통해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원인이 다분히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사회적일 수도 있음을 확인한 저자는, 일말의 해방감과 동시에 무거운 ‘의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환자들의 질환에 단지 진단명 하나로 압축되지 않는 ‘서사’가 있고, 더 나은 진단과 진료를 위해 들어야 하는 서사가 무엇인지 알려면 ‘역사적 · 사회적 ·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과 통증은 오직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층위 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질환 서사는 현대 의학의 거대한 패러다임과 코드화된 카테고리 속에 갇혀버린 몸의 목소리를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재현(representation)’과 같다. 동시에 그것은 주변에, 그리고 치료자나 의사에게 그 고통의 의미를 전달하고 해석하게 함으로써 본질에 새롭게 접근하도록 돕는 우리 몸의 가장 오래된 레토릭이다.” - 52쪽

의학과 인류학의 경계에서 바라본 고통의 얼굴들
목소리를 잃은, 잊히지 않아야 할 크고 작은 세계의 기록


외노의원을 거쳐 이후 의사로 살아가면서 ‘진료실 내 의료’의 한계에 회의를 느낀 저자는 인류학에 입문한다. 그는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의학(과 인류학)을 감히 안다거나 할 수는 없”다면서도 의학과 인류학의 경계에 서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그 경계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은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즐겁고, 또 때로는 가슴 아프다. 현대 의학은 보편적 질병 범주와 함께 이를 진단, 치료하는 체계를 고안해냈다. 의학의 진단 체계가 정교해질수록, 치료법이 더 발전할수록 인간의 수명은 늘고, 고통의 범위는 줄어들었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러나 그렇게 정확도와 속도, 효율과 효과가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은 ‘질병 코드’로 암호화되면서 고통이나 증상을 통해 아픈 몸이 말하고자 했던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목소리가 검열, 절삭되어 일개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 그 목소리는 다른 말로 하면, 환자의 ‘서사’다. 책에는 환자의 몸이 의학의 진단 체계보다 더 정확히 ‘말’했던 사례가 등장한다.(1장 갑상선 호르몬의 진실)

알코올성 확장성 심근병증, 즉 술에 의한 심부전을 겪던 환자의 이야기(2장 술과 심부전)는 어떤 상황이나 결과가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음을 짚는다. 일상을 ‘건강’과 ‘불건강’의 의료적 언어로 재편하는 의료화 시대에는, 질병과 은유가 서로 유착된다. 예를 들어 ‘외국인노동자’인 환자에게 주어진 진단명 ‘알코올중독’에 모종의 경계와 위협, 나태한 일상, 잠재적 폭력 등이 상상되는 것처럼. 이런 차별적 시선과 낙인이 어쩌면 그의 병을 더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따라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혼자서) 건너는 것이 아님’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HIV를 보유한 청년의 치료를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득하려 시도한 경험(3장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은,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전방위적으로 다시 검토하게 만든다. 저자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것을 반성하는 한편, 치료 현장에서 ‘사회적’ 관점이 언제나 잉여의 논의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위층 쉼터에 전염병 ‘옴’이 번진 이야기(4장 옴과 헤테로토피아)에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와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를 연결시키는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인 장면이다. 저자가 책에서 심혈을 기울여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 개념은 ‘이분법’이다. 저자는 근대적 사유의 핵심인 ‘이분법’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삶과 죽음, 몸과 마음, 주체와 객체, 개인과 사회 등으로 간편하게 나누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나뉘지 않으며 이분법적 도해가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거나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의학이 지닌 어쩔 수 없는 이분법적 관념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의학에서 죽음은 삶을 위해 몰아내야 할, 적어도 지연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에는 완전히 연속적인 시계열상에 위치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죽음 앞에서 초연한 듯 보이는 어느 환자의 이야기(6장 질병이나 죽음은 형벌일까)를 통해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의제가 ‘고통’이라고 말한다. 또한 만성염증과 우울증을 동시에 겪던 환자의 사례(7장 고통의 이분법)를 통해서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분리하려는 이분법에 사로잡혔던 시간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이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는지는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 이 책에서 면면히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 - 251쪽

친절한 의료 지식과 치열한 인류학적 해석
이제, 그들의 고통에 나의 고통을 맞대어 본다


책에 실린 얼굴들과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게 된다.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몸과 마음, 삶과 죽음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 질병과 죽음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인가. 돌봄이란 무엇이며, 좋은 돌봄은 가능한가. 어느 하나 가벼이 다룰 수 없는 묵직한 질문들에 이 책은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는 대신,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검토하게 만든다.

이 책은 친절한 의료 지식과 치열한 인류학적 해석을 넘나들며,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던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책을 읽다 보면 가리봉동의 어느 좁다란 진료실 한 편에 슬그머니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때로는 의사의 마음이 되어 환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연신 전화를 해대며 노파심과 불안을 느끼고, 때로는 환자가 되어 내 말을 성의껏 들어주지 않는 의사의 무심함에 서럽고 속상하다. 외국인노동자 ‘환자’로서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나의 고통을 맞대어 보게 된다.

국내외에서 터져 나오는 다양한 고통의 목소리들이 하루도 끊이지 않은 시대.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의 것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연결된 고통』은 고통의 시대를 함께 건너는 징검다리다. 누군가의 고통을 해석하고 줄여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한 걸음 한 걸음 알려주는 단단한 징검다리 말이다.

“이 기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일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거나 적으나마 해석의 여지를 늘려주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고통에 개입하거나 고통을 완화시키기에 수월하기를, 또 다른 누군가의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고통이 잠시나마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맺음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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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보낸 3년간의 공중보건의 생활은, 누군가에게는 단지 군대 의무를 해소하는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 이기병에게는 오히려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을 환대하고, 아픈 자들의 목소리와 몸짓에 마음을 기울이며, 조금 더 나은 공동체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분투와 용기의 나날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샘물처럼 맑고 바위처럼 성실한 그가 매 순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밀려드는 환자와 제한된 진료 시간 속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위태로운 법적 지위로 인해 오지 않는 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대며 애태우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의학적 진단은 순간일지 모르나, 외국인노동자 각자의 질병과 죽음은 중국, 네팔, 태국, 코트디부아르, 가나 그리고 한국에서의 복잡하고 고단한 삶이 축적된 결과다. 저자는 의사로서도 인류학자로서도 뛰어나지만, 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의사와 인류학자의 경계 속에서 탄생한다. 그는 경계적 삶을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 또 다른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노동자이자 외국인인 환자들을 비로소 우리와 같은 이웃으로 만날 수 있다. 친절한 의료 지식과 더불어 깊이 있는 인문학적 사유와 유머러스한 표현들은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이 책은 가리봉동의 좁다란 진료실에서의 경험을 의학과 인류학을 경유하여 읽어내려는 시도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진료를 보기 위해 찾아왔던 환자들과의 만남, 진단명을 찾기 위해 나눴던 대화, 그 속에서 읽어냈던 사회·문화적 맥락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고통을 저자는 ‘연결된 고통’이라 부른다. 의학적 진단이 소외시키는 시공간을 돌아보며 그 속에 담긴 맥락을 분석하는 일은 여태껏 우리 사회가 무엇을 놓쳐왔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은유다. 책장을 덮고 나면 지금은 사라진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찾아왔던 이들의 증상과 진단명, 이를 가로지르는 삶의 서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읽어내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이 이어지고 연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연결된 고통』을 읽는 동안 타국의 진료실에 앉아 있는 나를 어쩔 수 없이 상상하곤 했다. 곤란과 당혹에 자주 몸을 떨었다. 같은 언어를 써도 진료실 안에서 소통은 늘 충분치 않다. 의사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의학 지식의 차이가 말을 누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원에서 신체는 하나의 몸이 아니라 부위나 기관으로 다뤄진다. 대개의 의사는 ‘살리는’ 일만 중요하게 가르친다. 그 주변을 탐험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이기병은 우연이 데려다 놓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만난 ‘낯선 몸들’ 덕분에 진료 현장이 “언제나 불충분”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다시 배운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 환자는 무엇이 미안한 줄도 모르면서 미안해했다. 그것이 그나마 가장 ‘잘’ 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언어마저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진료실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상대하는 일은 고통을 듣는 훈련이기도 했다. 진단명 하나로 압축되지 않는 삶을 샅샅이 들여다 본 덕분에 ‘몸’은 진료실 안이 아닌 사회적 맥락 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현대 의학이 간과한 돌봄의 필요와 쓸모를 살뜰히 발굴해낸다. 의학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인류학까지 뻗어나간다. 어떤 ‘앎’은 되돌릴 수 없어서, 더 먼 곳으로 운명을 등 떠민다. 나는 이 기록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게 만든다는 걸 믿는다.
- 장일호 ([시사IN]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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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우리를 연결하다 - [연결된 고통]을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흙******에 | 2023.09.09 | 추천10 | 댓글0 리뷰제목
고통이 우리를 연결하다 <연결된 고통>을 읽고     현대인은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둘 중 하나를 택한다. 병원에 가거나 그렇지 않거나. 현대 의학과 의료에서는 아픈 사람을 환자, 그(의) 고통을 덜거나 없애는 사람을 의사, 두 사람이 대면하여 진료를 주고받는 공간을 병원으로 규정한다. 동요 「병원놀이」 노랫말처럼 ‘배가 아프고 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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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우리를 연결하다

<연결된 고통>을 읽고

 

  현대인은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둘 중 하나를 택한다. 병원에 가거나 그렇지 않거나. 현대 의학과 의료에서는 아픈 사람을 환자, 그(의) 고통을 덜거나 없애는 사람을 의사, 두 사람이 대면하여 진료를 주고받는 공간을 병원으로 규정한다. 동요 「병원놀이」 노랫말처럼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면’ 우리는 (소아과)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어릴 적부터 배웠다. 이 같은 사실을 지금의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지만, 의료가 점차 의료‘화’ 되어가는 현실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의료기술의 발달이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환자를 대상화하거나 질병과 동일시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깊이 공감한다.
  이 같은 생각은 올해 봄에 <연결된 고통>이라는 책을 만난 뒤 더 단단해졌다. 그러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으나, 이미 각자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는 9월의 북클러버 멤버들과 함께, 다시 책에 담긴 주제와 메시지를 두루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연결된 고통>은 내과 의사인 저자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며 외국인노동자들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폐원하였기에 외노의원을 찾았던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의 고통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어, 성별, 연령은 물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의 소통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한계를 모를 리 없는 저자에게 ‘인류학’과의 만남은 환자와 질병(질환) 그리고 둘을 잇는 고통을 재해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외노의원을 방문한 환자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족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는 의사의 물음에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덟아홉 가지의 증상을 털어놓아 저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를 다시 인류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중국의 문화혁명이라는 역사적, 문화적 시련이 그들에게 남긴 고통이 한국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면서 고용불안, 사회적 편견, 차별 등 부정적 요소로 인해 덧나게 되어 여러 개의 증상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매일이 가져다주는 심신의 고통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혹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갑상선암, 심부전, HIV, 옴, 요통과 변비, 폐암, 우울증 등 다양한 질병으로 발현(재현)된다.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다 담기지 않는 아픈 몸의 이야기, 즉 질환 서사 속에는 가난, 노동, 성차별,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통 등의 문제가 거의 언제나 상존한다. 의학이 환자의 질환 서사를 제외한 채 깔끔하게 통제되고 압축된 정보로 재단된 몸만을 다룬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서 상당한 부분을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 아닐까. 그것은 의학의 무능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43쪽)


  여기서 저자는 ‘질병(disease)’과 ‘질환(illness)’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에 따르면, 질병은 코드화된 분류 체계이며, 질환은 환자의 삶에서 '이야기'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것으로 그 이야기, 즉 “질환 서사(illness narrative)”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의료적 의사소통에서 의료진에게 ‘듣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픈 사람의 몸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음소거하지 않고, 환자의 얘기에 주의를 기울이면 보다 나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외노의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HIV 감염 진단을 받았음에도 종교적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형벌을 받듯 홀로 생활하다가 끝내 폐암 판정을 받은 환자와 같이 때로 호전이나 쾌유되지 못한 경우에도, 저자는 두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니 다시금 환자의 ‘질환 서사’와 의사의 ‘듣는 능력’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질병이 복수의 존재론에 기반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질병 경험을 온전히 이해하고 설명하고 통제할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의료는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몸의 존재론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조심스럽게 해소하고 조정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183~184쪽)


  현대 의학에서 진단과 치료는 증상의 원인을 특정 장기와 질병으로 좁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앞서 조선족 환자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하나의 몸에 하나의 증상 혹은 질병만 생기란 법은 없다. 한국의 식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변비 증상이 생기고, 무거운 짐을 계속 나르는 중노동 때문에 허리도 아파서 외노의원을 찾은 태국 국적의 중년에게 결국 실신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일견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질병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심장 기능과 구조에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밝혀진다.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때의 경험과 ‘복수의 질병들’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한 사람의 환자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돌봄’이라고 답한다. 태국인 노동자처럼 여러 병원을 오가며 (오진(誤診)이 아닌 각 증상에 맞는) 각기 다른 진단을 받아 병에 다른 병을 얹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돌봄 의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가족 단위의 돌봄을 담당하는 ‘마을 주치의 제도’ 운영을 하나의 대안으로 들기도 한다.
  지난봄, 책속 외노의원에 들렀을 때 저자 덕분에 이국땅에서 삶과 일을 병행하면서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겪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알게 되었다면, 다시 들른 그곳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른 삶을 살거나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통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지만, ‘연결’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염두에 두고 고통 너머의 이야기에 주목하면 좋을 듯하다. 의사로서 늘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분리하여 진료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 저자는 그때를 되돌아보며 말한다. 하나의 경험에서 시작된 몸과 마음의 증상을 구분 짓기보다 그 관계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그러한 시선으로 한 개인의 삶을 재구성하고 그 안에 자리한 고통을 재해석한 책을 거듭 읽고 나니 비단 외국인노동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든 저자의 맞은편에 앉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연결된 고통>이 저자와 독자들의 연결고리가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인식하고, 나아가 아픈 몸과 마음이 내는 소리에 관심을 갖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어주길 바란다.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이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는지는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 이 책에서 면면히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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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도 이어진 섬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가* | 2023.09.3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고통'이라는 단어 자체를 두려워하는 내가, 고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은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책은 단순 '고통'을 넘어 '삶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작가가 직접 겪은 에피소드들로 섬세하게 알려준다. '신분 위장자', '질환의 서사', '이방인', '처벌과 속죄' 등 매 키워드가 내 삶을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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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는 단어 자체를 두려워하는 내가, 고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은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책은 단순 '고통'을 넘어 '삶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작가가 직접 겪은 에피소드들로 섬세하게 알려준다.

'신분 위장자', '질환의 서사', '이방인', '처벌과 속죄' 등 매 키워드가 내 삶을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를 주었다.

가볍게 읽고 넘어가기에 아까운 주제들을 찬찬히 다시 한번 읽어보며, 삶의 태도에 대해 재고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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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소외된 이야기, 그러나 소외될 수 없는 이야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빛* | 2023.09.28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9월 독서리뷰] 연결된 고통(아몬드, 이기병 지음, 2023)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심하게 아파 한동안 쉬었다. 심야시간 호흡이 되지 않아 들어간 응급실에서 예상치도 못한 장기간의 입원으로 이어진 병원 생활이었으나, 나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을 완벽하게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짓지 못하고 치료가 종료되었다. 진단서 상에 적힌 나의 질병은 일부 희귀병으로 ‘추정되는’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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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독서리뷰연결된 고통(아몬드, 이기병 지음, 2023)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심하게 아파 한동안 쉬었다. 심야시간 호흡이 되지 않아 들어간 응급실에서 예상치도 못한 장기간의 입원으로 이어진 병원 생활이었으나, 나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을 완벽하게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짓지 못하고 치료가 종료되었다. 진단서 상에 적힌 나의 질병은 일부 희귀병으로 추정되는질환으로만 적혀있다. 정확한 진단명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입원 치료가 종료되었고, 그 이후는 그저 대증요법에 맞춘 치료가 지속되고 있다.

 

나에게 나타난 증상은 다양했다. 호흡곤란, 발작, 근육 뒤틀림, 어지럼증, 복시 등. 어느 한 과에서 진료할 수 없어 매번 증상을 놓고 병원의 여러 과에서 협진을 봐야 했으며, 시간이 흘러 증상들이 개선되기 시작되면서 병원 생활을 종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특정 질병으로도 정의내릴 수 없이 증상들의 나열만 가득 차던 나의 병원 기록지를 보며, 나조차도 내가 호소하는 이 증상들이 심리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인지, 흔히 이야기하는 꾀병이 아닐지 스스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나타난 그 모든 증상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모든 증상을 왜 현대 의학에서는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짓지 못했던 것일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연결된 고통은 이런 나의 의문과 궤를 같이하던 책이다. 책 표지에 적힌 문구,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이라는 말이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게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이 책은 저자가 지금은 사라졌으나 한때 존재했던,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의 근무 경험을 그간 만나온 환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낸 것이다. 저자는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중국 조선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와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낯선 몸들을 치료했다. 그 과정에서 제도적, 문화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으며, 환자를 호전시킨다는 보람과 어찌할 수 없는 진료 연속성의 부재와 같은 좌절을 맞이하기도 했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가 처음 마주하는 자리, 의사는 어디가 불편하시죠?”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환자는 으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요혹은 목이 불편합니다와 같은 주 호소증상부터 이야기할 테다. 그러나 저자가 마주한 조선족 환자의 호소증상은 위와 같은 간결한 내용이 아니다. 소화도 안 되고, 기침도 나고, 열도 나고, 머리도 아프다. 의사가 증상 유무를 물어보는 것 모두가 그의 고통이다. 이런 증상 설명은 환자가 정확히 어떤 질병을 가졌는지 의사가 간파하기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작가 역시 이런 증상호소에 답답함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이 모든 증상이 결국 환자가 살아온 삶의 고통을 포함하는 내용임을 깨닫는다.

 

(P.41-43)

환자는 결코 질병 코드로만 압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 의료 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은

코드화된 분류 체계로써의 질병(disease)과 환자의 삶에서 이야기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질

(illness)를 구분한다. (중략) 그렇게 환자의 아픔을 둘러싼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환서사(illness narrative)”라 부른다. (중략) 완치의 개념이 질병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가능한 질병과 함께 무난히 살아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질병과 함께 살아야하는 아픈 몸

은 삶에 다양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문제는 완치불가라는 한계가 드러났음에도 현대

의학이 효율적인 통제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몸이 아파 병원을 가면 정확한 진단명을 원한다. 정확히 어떤 질병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으며 인식에 따른 정확한 처방, 그에 따른 회복을 희망한다. 그러나 현대 의학체계에서 효율적으로 구별하기 위한 질병코드로는 우리가 왜 이런 아픔을 갖게 되었는지의 목소리를 파악할 수 없다. 질병이 들려주는 환자의 서사는 사라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왜 대학병원 진료를 다녀올 때마다 불만을 느끼게 되는지 알 수 있다. 환자는 본인의 고통을 의사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모든 고통은 질병이란 코드로 대체되기에 질환 서사는 진료실을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 - 제한된 진료 시간(의사는 일과 시간 내 그날 내원한 많은 환자를 다 확인해야 한다.), 체계적으로 분류된 질병코드(질병코드로 분류되지 않는 환자들의 증상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 등의 영향으로 의사에게 가 닿는 부분이 갈수록 줄어든다. 환자는 그 때문에 불친절한 의료환경에 분노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정확한 질병 진단이 없이 증상에 맞춘 약물치료가 이어졌다. 비정형적인 (추정)질병으로 파악된 나의 질병은, 특정한 진단 코드로 분류가 불가능한, 그래서 우선적으로 주증상부터 완화해 가며 하나씩 가능성을 제거해 나가는 방향으로 치료가 지속되었다. 그 과정은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지리멸렬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치료 과정과,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던 하루하루가 흘러가며, 장기간의 입원 치료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료진과 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각자의 직장에 대한 어려움에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쌓였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의료진들이 나에게 행하는 의술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작가는 다양한 국가의 환자들을 마주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질환 서사에 집중했다. 질병의 회복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의 질병 뒤에 숨은 서사를 살펴보는 과정은 그가 좀 더 괜찮은 의사를 고민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질병과 환자를 더 유심히 살펴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더 나은 치료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책 전체의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 의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리고 그 의술을 펼치는 데 있어 우리는 좀 더 질환 서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위에 언급한 질병과 질환의 구별 이외에도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내용이자 고민이라면 소외돌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장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질병과 환자의 네러티브는 결국 저자가 근무한 특수상황, 외노의원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외노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HIV 보균자였으나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했던 어느 가나 청년에게서도, 옴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쉼터에서 그대로 머무르길 희망하던 노동자들에게서도, 이유 모를 실신을 자주 해 병원을 찾은 이삿짐센터 인력인 태국 청년에게서도, 이 모든 이들의 삶의 궤적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개개인의 서사가 한데 모여 이방인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떠나면 나는 과연 이방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소속된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나아가면 나 역시도 이방인의 삶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P.146

그들은 이주 노동의 수요에 의해 초대받았으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대우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쉼터는 그들이 그들끼리의 세계를 잠시 소환하여 원래 가지고 있던 사회적 성원권을 복

원하는 공간이지 않았을까.

 

옴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쉼터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냐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일반적인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질병이 확산되고 있고, 그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본인 역시 감염이 될 것이 자명한데도 떠날 수 없다는 게 여간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떠나기를 주저하고 오히려 머무를 수 있음을 허락해달라 이야기하는 건, 쉼터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이방인으로서의 고달픈 삶을 쉬어가는 공간이자, 그들의 아픔을 서로 꺼내어 놓고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떠나온 그 세계를 쉼터라는 공간으로 다시 데려와 재현함으로써 자신이 소속되었던 곳을 그리워하였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의 소속감을 다시 되살렸으리라.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일상 속 경험하게 되는 소외감’,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내가 돌아갈 쉼터에서 잠시나마 잊혔을 것이다.

 

 

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쓸쓸한 것이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과연 이방인이 되어본 경험이 없었던 게 맞을지, 그리고 그런 삶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지 고민했다.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며 를 구별 짓는 경계는 어디서부터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일들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애써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에 안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는 당신의 것일 수 있다(p. 251-252)’ 작가의 말은 더 많은 울림을 준다. 그 고통이 나의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이기적인 형태의 동기라 해도, 숨겨진 목소리들에 의식적으로 귀 기울이고, 연대하며, 서로를 돌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이 성급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고민하며 천천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과학의 발달에 발맞춘 이분법적 사고로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숨겨진 서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작가가 언급한 우리가 책임지지 못한 고통받는 누군가의 얼굴을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병원을 벗어나 일상으로의 회복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고통은 개인의 서사와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개인의 서사는 다수의 서사가 될 수 있음을 통감한다. 그리고 그 연결된 고통이 우리가 잊지 않고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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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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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N***********0 | 2023.07.08
평점5점
경험과 통찰을 읽을수 있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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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바**리 | 20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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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몸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다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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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7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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