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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권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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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면 날마다 “어제 꾼 돈 서 푼 갚으러 왔다.”
약속대로 도깨비는 다음 날, 돈 서 푼 갚으러 왔겠지요. 두 손 모아 달랑달랑 돈 서 푼 들고 눈을 깜박이며 서 있는 모양새가 마치 잘했다고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천진한 어린아이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날, 도깨비는 돈 갚은 걸 깜박 까먹고 또 옵니다. “어제 꾼 돈 서 푼 갚으러 왔다.” “어제 갚았잖아.” “어라, 얘 좀 봐? 어제 꿨는데 어떻게 어제 갚아?” 그러고는 안 갚은 게 맞다고 도리어 아이를 타박하지요. 돌아서면 까먹고 돌아서면 까먹고 주구장창 돈 갚으러 오다가, 하루는 아이 집에서 찌그러진 냄비 하나를 발견합니다. 자, 이제 돈 서 푼에 냄비까지 얹어 가져다줍니다. 먹고 싶은 건 다 나오는 요술 냄비이지요. 그런데 사려 깊은 도깨비 눈에 띄는 것이 어디 냄비뿐이겠어요? 닳아빠진 다듬잇방망이를 보더니 다음엔 방망이도 새 걸로 가져다주겠다고 합니다. 원하는 건 뭐든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이렇게 아이네 집 살림은 점점 늘고, 도깨비네 집 살림은 어찌 되었나 궁금할 즈음, 우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도깨비입니다. 살림을 헤프게 쓴 죄로 벌 받으러 하늘나라에 간다고요. 그런데 이 사랑스러운 도깨비를 어찌 합니까. 가만 보니, 벌 받는 게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니지요. 그저 아이랑 떨어지는 게 서운하고, 아이한테 꾼 돈 못 갚고 가는 게 미안해서 우는 게 아니겠어요? 이미 갚았다고, 집에 다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는 데도, 도깨비는 벌 다 받고 오면 꼭 갚겠다며 가 버렸습니다. 사람의 수명과 도깨비의 수명이 달라, 아이는 행복하게 살다 죽었는데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 도깨비는 돈 서 푼에 냄비에 방망이까지 챙겨 들고 와서 “어라? 얘네 집이 어디더라? 벌 다 받고 왔는데…….” 하더랍니다. 이쯤이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도깨비라 할 만하겠지요. 우습고 사랑스러운 도깨비 이야기에 담긴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 이제 아이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살펴볼까요? 세상에 이 아이만큼 운 좋은 아이가 어디 있을까요? 그저 돈 서 푼 꿔 주었을 뿐인데 그 뒤로는 도깨비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기댈 곳 하나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아이에게 돈 서 푼은 적은 돈이 아닐 겁니다. 용케 돈 꿔 줄 마음을 먹은 것이지요. 그것도 도대체 믿어야 할지 모를 도깨비한테요. 그러고서 자꾸자꾸 늘어나는 살림에 아이 마음도 사뭇 여유롭고 좋았을 겁니다. 누구나 부자 되고 싶은 소망이 있으니, 그 솔직한 마음을 꾸짖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림을 보면, 아이가 큰 욕심은 내지 않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보기에도 이 도깨비가 너무 깜박깜박하는 것 같으니, 혹시 몰라 받은 걸 다 쓰지 않고 쌓아두지요. 도깨비가 벌 받으러 가고 난 다음에는, 이웃들한테 냄비며 방망이를 조금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큰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힘들지만 이야기에서는 실현이 가능합니다. 허구일지언정 이야기로부터 마음을 위안 받고 달래어, 현실을 살아내는 힘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옛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넘친다 싶은 욕심은 살짝 고삐를 걸기도 합니다. 아이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혼자 외롭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데 착한 도깨비 하나 툭 나타나면 어떨까? 그래서 형편도 나아지고 행복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어쩐지 아이와 도깨비의 닮은꼴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도깨비는 아이가 그려낸 소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망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