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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희망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다
들어가며 히키코모리 시네필, 루마니아와 만나다 루마니아어 학습, 그 고통스러운 가시밭길 루마니아 사람이 찾아왔다! 루마니아 문단에 뛰어들다 나의 스승은 고등학생, 그리고 90대 번역가 일본계 루마니아어는 내가 만들겠다 위대한 루마니아 문학 나는 나대로, 오로지 동쪽으로 마무리하며 부록 후대의 루마니아 오타쿠를 위한 자료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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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가르쳐주는 것은 당신이 혼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 p.12 나는 일본에서 극심하게 마이너인 언어로 소설이나 시를 쓰고, 그걸 루마니아 문예지에 싣는다. 이 현실을 지금도 믿기 어렵다.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든다. --- p.20 나는 이 책을 통해 사이토 뎃초라는 일본의 얼빠진 히키코모리가 어쩌다가 루마니아 문화와 루마니아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마음이 부풀다 못해 어떻게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는지, 또 일본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인 루마니아어를 서서 어던 식으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다. --- p.21 2015년, 나의 히키코모리 시대가 시작된 해. 내 마음은 바닥없는 심연에 있었다. 돈 없고 직업 없고 친구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내게 남은 것은 터무니없는 우울의 혼돈뿐이었다. 히키코모리로 암울한 인생을 살고, 부모님에게는 집에다 알이나 까는 바퀴벌레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었고 갈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죽을 것 같아? 나는 밖에 나가니까 히키코모리가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 pp.31~32 히키코모리의 생활에서 가장 최악의 친구가 바로 초조함이다. 무자비하게도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마음속에는 ‘나란 인간, 아무것도 이룬 게 없잖아!’라는 초조함이 고개를 불쑥 든다. 버너에서 분출되는 화염처럼 내 등을 마구 태운다. 히키코모리의 일상이란 곧 초조함과의 질리지도 않는 투쟁이다. 이 투쟁 속에서 내가 시작한 일이 바로 영화 비평을 쓰는 행위였다. 좋게 말하면 생존 투쟁, 나쁘게 말하면 현재 상태에 대한 변명이었던 셈이다. 나도 뭔가 하고 있다고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어필이었다. --- pp.34~35 그때 나를 매료한 대상은, 남에게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저 자기가 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에 영화 이야기를 마구마구 써대는 재야의 시네필들이었다. 온라인 세상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니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영화에 관해서도 글을 쓰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 나는 그런 글을 게걸스럽게 읽었고, 수십 편이 넘는 작품을 감상하다가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 나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p.36~37 그래도 나는 이런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도 좋다고 본다. 이런 자의식을 사춘기의 방황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인생의 미학으로 키워가는 놈이 있어도 좋지 않은가. 나는 이런 독아론(獨我論), 즉 하나뿐인 자기 자신을 끝끝내 파고들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 p.38 나는 루마니아 영화를 더 알고 싶다고 절실하게 바랐다. 그러려면 루마니아어를 필수 불가결하게 배워야 했다. 돌이켜보면 이 지적 호기심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가스등과 같았다. --- p.42 또 외국어는 꼭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쓰는 것만은 아니다. (.…) 뭐, 이득 될 것도 없고 세상에 도움도 안 된다. 그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게 최고로 즐겁다. --- p.44 그래도 제일 중요한 요소는 루마니아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 서점에는 관련 서적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대학에서도 전문적으로 배울 곳이 없었다. 애초에 루마니아어 자체를 아는 사람이 적었다. 같은 로망스어군, 위에서 언급한 두 언어나 프랑스어와 비교하면 지명도가 천지 차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그랬다. 아무도 루마니아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 p.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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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루마니아인 3000명과 친구가 되고,
넷플릭스 자막과 인터넷 뉴스로 문법과 어휘를 공부하는 모니터 앞에서 떠난 루마니아 유학 4년간의 대학 생활을 외톨이로 보내고, 취업까지 실패하면서 히키코모리가 된 저자 사이토 뎃초를 위로하는 것은 영화뿐이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디 영화들을 섭렵하던 그는 루마니아의 영화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의 [경찰, 형용사]를 보면서부터 목표 없이 흘러가던 삶에 변변한 교재도 없는 마이너한 언어인 루마니아어를 홀로 독학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채워넣기 시작한다. 그런 그가 루마니아어를 공부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곳이 바로 페이스북이었다. 페이스북으로 불특정의 루마니아인 3000명에게 친구 신청을 보낸 그는 자신만의 ‘루마니아 메타버스’를 만들어 그곳에서 루마니아인들과 교류하며, 루마니아어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갔다. 넷플릭스에서는 언어 설정과 자막을 루마니아어로 바꿨고, 영문으로도 발행하는 인터넷 뉴스를 루마니아어판과 나란히 놓아 문법과 어휘를 공부했다. 그가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페이스북 덕분이다. 하루하루 루마니아어 실력을 갈고닦던 그는 페이스북에 자신이 루마니아어로 쓴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는 글을 올린다. ‘일본인이 쓴 루마니아어 소설’에 흥미를 보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는 한 통의 DM을 받는다. “당신의 소설, 마음에 들었어.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온라인 문예지에 싣고 싶어.” 그렇게 일본인 최초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탄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조국이 아닌 머나먼 타향, 한 번도 방문해본 적 없는 동유럽의 루마니아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허세라 해도 좋다, 나르시시즘이라 해도 좋다, ‘주변과는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생각이 나를 만들어간다 이 책에서 저자 사이토 뎃초는 자신만의 독특한 독아론(獨我論)을 피력한다. 소위 ‘일반 대중과는 다른 취향’에 대한 선망과 그런 취향을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자아도취를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자칫하면 허세 혹은 나르시시즘으로 손가락질당하기 쉬운 이런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취향’에 대한 욕망을 저자는 인생의 미학으로 삼아왔다. 이런 독아론이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마음가짐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믿으며, 그 믿음을 실천해왔다. 개봉되지 않은 세계 각지의 영화를 탐닉한 것도, 루마니아 영화에 흥미를 가진 것도, 루마니아어에 빠지게 된 것도 모두 이런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취향’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요소는 루마니아어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 서점에는 관련 서적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대학에서도 전문적으로 배울 곳이 없었다. 애초에 루마니아어 자체를 아는 사람이 적었다. (…) 아무도 루마니아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흔히 외국어를 배울 때면 그 언어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그 언어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고려하고, 그 언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배우기가 쉬운지 어려운지 등을 꼼꼼히 따진다. 그러나 저자는 루마니아어가 앞서 말한 조건들과 정반대되기에 더욱 흥미를 느끼며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니 나는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인생을 걸었다. 그건 루마니아와 루마니아어에 인생을 거는 것이기도 했다.” 저자 자신조차 자신이 히키코모리가 되고, 영화 비평을 쓰다가,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무용하고 별 볼 일 없을지언정,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고 꾸준히 해온 끝에 결실을 맺었다. 삶이 어딘가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그 삶의 주인인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삶을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세워두지 말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일이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면, 어느 순간 그 쓸모없던 일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아무도 걷지 않는 용감하게 걸어간 용감한 히키코모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묘한 희망과 마주하게 된다. 일단 인생을 멈춰 세워두지 말고 뭐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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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서다. 타인의 상상을 통해서든 경험을 통해서든. 이 책은 후자로,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발표한 일본 지바 지역에 사는 히키코모리 오타쿠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소설이라 해도 과장이 심하다며 욕먹을 설정인데, 이 모든 게 진실이다. “외국어는 꼭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쓰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저자는 다양한 미개봉 영화를 보고 평론을 써 인터넷에 올리다가 루마니아 영화를 본 뒤 어학 오타쿠 기질을 발휘해 루마니아어를 배운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오타쿠와 힙이라는 좀처럼 붙지 않는 두 단어가 시너지를 일으켜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의 에세이가 탄생했다. 방안에 틀어박혀 완성하는 루마니아 유학법을 읽다 보면 루마니아어든, 다른 어딘가의 언어든 당장 배우고 싶어진다. 언어와 함께라면 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으니까. - 이다혜 (작가·<씨네 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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