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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2. 1947.1 3. 1947.2 4. 1947.3 5. 1947.4 6. 1947.5 7. 해설 8.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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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벌어지고 있다. 일생 동안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순간들은 손꼽을 수 있을 정도다. 빨간색과 초록색 불빛이 반짝이는 땅을 빛의 붓들이 쓸고 있다. 야회 저녁이요 밤의 축제다. 나의 축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프로펠러가 점점 빨리 돌고, 모터들이 날뛴다. 내 심장은 더 이상 그것들을 좇지 못한다. 붉은 경표들이 단번에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멀리 파리의 불빛이 아물거리고, 소박한 별들이 짙은 파란색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온다.
결국 일은 벌어졌다. 뉴욕을 향해 날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확성기에서 '뉴욕행 여행객들'이라 말했고, 그 목소리는 역 플랫폼 스피커에서 들리는 그 모든 목소리의 친숙한 억양을 띠었다. 파리발 마르세유행, 파리발 런던행, 파리발 뉴욕행. 이건 단지 하나의 여행이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행일 뿐이야.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승무원의 무심한 얼굴이 주장하는 바도 그것이다. 그는 직업상 내가 미국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이 세상은 단 하나 뿐이며, 뉴욕은 그중 한 도시일 뿐이라고. 천만에. 내가 읽은 그 모든 책이며, 영화들, 사진들,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내 과거 속의 전설적인 도시다. 현실에서 전설로 가는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늙은 유럽의 맞은 편에 위치한, 1억6천만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대륙의 문턱 뉴욕은 미래에 속한다. 어떻게 내가 두 발을 모으고 나 자신의 삶을 건너뛸 수 있겠는가? 이치를 따져보기로 하자. 뉴욕은 실재하고 현존한다. 그런데도 나의 감흥은 여전하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내 세계에 새로운 사물을 첨가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난 내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 같다. 분노를 통해서일지 아니면 희망을 통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꽉 차고, 풍요롭고, 또한 도무지 예측하기 힘든 세계이기에, 나는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그런 기이한 모험을 겪게 될 것이다. ---pp.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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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심장부에 자리한 할렘은 기독교인들의 양심에 원죄가 그러하둣이 백인들의 선량한 양심을 짓누르고 있다. 미국인은 자신과 같은 인종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활달한 기질, 온정, 우정의 꿈을 품고 그러한 덕목들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할렘 가장자리에서 죽고 만다.
세상과 화합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고심하는 보통의 미국인은, 그 경계만 넘어서면 가증스런 압제자의 얼굴, 적의 얼굴이 된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얼굴이다. 그는 스스로 증오받는다고 느끼며 증오받아 마땅하다는 걸 안다. 타협적인 그의 마음속에 박힌 이 가시는 확실한 외부의 위험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 p.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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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보부아르는 미국에 초청을 받아 여러 대학과 학회에서 순회 강연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과 인상들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이 책을 남겼다. 당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혼란스런 상태였고, 미국은 승전국으로서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던 때였다. 문화적 우월감에 젖어 항상 미국 앞에서 우쭐대던 유럽은 이제 미국의 경제적 원조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도 어려운 처지로 곤두박질쳤고, 미국은 더 이상 근본이 없는 국가로 무시당하지 않게 되어, 자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현대 문명의 미래를 읽기 위해 유럽의 작가들이 자주 방문하는 나라가 되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도 이런 풍조에 편승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기대로 마음 설레며 미국을 방문한다.
당시 보부아르는 아직 여성 해방 운동과 실존주의에 깊이 빠져들기 전이어서 열린 마음으로 미국을 받아들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미국의 문화와 풍토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녀의 미국 문화 바라보기는 지금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미국에서 보부아르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매우 첨예화된 인종간의 갈등이다. 그녀가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런 인종 차별의 낌새는 두드러지는데, 보부아르는 한 백인 친구에게서 혼자서는 결코 흑인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흑인들의 습격을 받는다는 둥, 얼마 전 그곳에서 머리 잘린 백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둥 백인들이 흑인들을 경계하며 퍼뜨리는 말들이다. 백인들이 흑인들에 적대적인 만큼 흑인들도 백인들을 꺼려하고 멀리한다. 이 백인과 흑인간의 간극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나마 노예 제도가 가장 일찍 폐지되었다는 북부에서도 이런 뿌리깊은 인종 차별을 볼 수 있으며 오랜 노예제 전통이 남아 있는 남부 지역에서는 더욱 극심해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녀는 이런 차별의 벽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유색 인종을 친구로 사귀고 그들과 어울려 다니며 흑인들의 음악인 재즈를 듣기 위해 탐욕스럽게 찾아다닌다. 미국 여행 동안 그녀는 아카데믹한 장소만을 방문한 게 아니라 나이트클럽, 카지노, 싸구려 선술집 같은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의 소굴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향유하는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의 실체, 이면의 모습들을 좀더 잘 알려는 탐구자로서. 방황하는 이들, 알코올 중독자들, 마약 복용자들, 동성 연애자들……. 그녀가 찾아가는 곳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인생의 쓴맛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인 상류층 자녀들의 호화로운 일상도 미국을 이해하는 한 코드가 된다. 그녀가 강연하는 대학의 학생들은 대개가 부유층 자녀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학습에 대한 열정도 없이 그냥 적당한 학점을 따기 위해 학교를 다닐 뿐이다. 그들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고 주변의 소외된 자들에 대해 무관심하며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에만 분개한다. 여성들도 미국 여성들이 매우 자립심이 강하고 진취적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체는 그렇지 않다. 그녀들은 남성과 동등해질 것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남자들을 위해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 또 물질 문명에선 매우 앞섰지만 철학과 정신에서는 매우 빈곤한 자신들의 문화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정신 문화 자체를 스스럼없이 경멸하기까지 한다. "당신네 프랑스에서는 문제는 제기하지만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는 제기하지는 않지만 해결은 하지요."라고 말한 한 기자의 평은 문화적으론 우월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유럽을 비꼬며 자기네의 정신적 결핍을 정당화한 말이다. 이렇듯 그녀의 눈에 비친 미국은 먼 거리에서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비평가로서 미국 문명을 바라봤을 뿐만 아니라, 몸소 그 속에 섞여 들어가 살았기에 모든 미국인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다. 유럽 지성인들에게 '기회의 나라', '개척자의 나라'로 비쳤던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는 어떤 기만이 숨어 있다. 모든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평등의 나라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을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떠나 이 나라에 매혹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미국에는 온 세계가 겪고 있는 온갖 인간적인 문제들이, 인간의 미래가 걸린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다면적인 모습을 몸소 느끼고 얻어낸 걸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미국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반반', 혹은 '100분의 50 정도'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정든 그곳을 떠나며 미국에서 행복을 느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열렬히 그리워할 거라는 건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