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영국 남서부 도싯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난 토머스 하디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건축사 사무실에서 도제 생활을 하다 문인 활동을 시작했다. 도싯 주를 배경으로 한 가공의 시골 ‘웨식스’를 마치 실재하는 공간처럼 작품 속에 형상화하면서, 영국 전원 풍경의 장중한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삶의 희비극을 강렬한 문필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4권의 장편소설, 3권의 단편집, 1권의 서사시극, 1권의 희곡 그리고 993수에 이르는 시를 남기며 근대 문예의 신기원을 열어간 독보적인 작가였지만, 당대에는 사회적 인습과 불합리한 제도를 공격한 ≪테스≫와 ≪무명의 주드≫가 보수 진영으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아 1895년 소설가로서 절필을 선언하고 죽을 때까지 시만 쓰기도 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하디에게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첫 소설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10’(가디언 선정),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피터 박스올)에 꼽힐 정도로 140여 년 동안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각색되고 리메이크되며 사랑받아온 걸작이다. 1874년에 콘힐 매거진에 익명으로 연재되면서 매 회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냈던 이 소설 역시 ‘웨식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아름답고 독립적인 성품의 여성 밧세바 에버딘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성의 사랑과 욕망을 탁월한 문체로 보여준다.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잣대가 사회를 옥죄던 시절, 결혼과 성 그리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과감히 깨트리며 하디만의 독보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준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커다란 감동과 영감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영위하는 삶에 얼마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내가 아니었기에, 가만히 멈춰 서서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예술품을 음미하는 태도로 하늘을 응시했다. 한동안 그는 그 장면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외로움에 심취한 듯 보였다. 어쩌면 인간 사회의 모든 광경과 소리가 완벽하게 추상화된 것을 보고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모든 형체, 장애물, 고통, 즐거움이 사라져 어두컴컴한 지구 반구에 오크 외에는 어떤 생명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햇볕이 내리쬐는 반구로 옮겨갔을 거라고 상상했다. --- p.32
그녀는 조랑말의 머리와 꼬리 사이에 누워서도 꽤 편안해 보였으며, 숲을 지나 그 이상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어지자 처음보다도 훨씬 수월한 자세로 바꾸었다. 곁안장 없이 부드러운 가죽만 깔고 앉았기 때문에 옆으로 걸터앉았다가는 똑바른 자세를 취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휜 묘목을 연상시키는 평상시의 직각 자세로 잽싸게 바꾼 그녀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안장의 제약을 받아들여 보통 여자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자세로 다리를 양옆으로 뻗더니 튜넬 방앗간 쪽으로 말을 달렸다. --- p.38-39
“이게 내가 당신을 죽도록 사랑한 대가로군요! 아, 당신과 결혼했을 때 나에게는 당신의 생명이 내 생명보다 더 소중했어요. 나는 당신을 위해 죽기라도 했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 죽기라도 했을 거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이제 와서 당신과 결혼한 내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군요. 아, 내 실수를 내 얼굴에 들이대는 게 나에 대한 친절인가요? 내가 지혜롭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말해선 안 돼요. 내가 당신의 여자인 이상.” --- p.444
그날 밤 늦게 홀로 작은 난롯가에 앉아 마음을 한층 진정시킨 밧세바는 트로이의 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 시계는 그의 나머지 소지품과 함께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가 일주일 전에 자기 앞에서 열었듯이 시계 덮개를 열었다. 이 큰 사건의 발단이었던 창백한 색깔의 작은 머리카락 묶음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의 사람이었어. 그들은 운명을 함께해야 해.”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들 누구에게도 아무 존재가 아니었어. 그런 내가 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간직해야 하지?” 그녀는 그것을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불 위로 들어 올렸다. “아니야, 태우지 않을 거야. 가련한 그녀를 추모하며 간직하겠어!” 그녀는 손을 얼른 거둬들이면서 그렇게 덧붙였다. --- p.535
나는 남은 평생 부인을 보호해주고 싶은 중년의 남자요. 적어도 부인 편에서는 열정이라든가 비난받을 만큼 서두를 일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아마도 있을지도 모르오. 그렇지만 만약 부인이 먼 앞날을 생각하고 나와 맺어지기 위해, 그러니까 동정심이든 아니면 당신 말처럼 보상을 위해서든 좀 늦었더라도 모든 일을 바로잡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약속해준다면 한 여자로서 부인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소. 나한테는 부인에 대한 우선권이 있지 않소? 부인은 한때 거의 나와 결혼할 뻔하지 않았소? 분명 나한테 이 정도까지는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상황이 허락한다면 나를 다시 받아주겠다는 걸 말입니다. 자, 부디 대답해보시오. 아, 밧세바, 약속을, 아주 간단한 약속만 해주시오. 만약 당신이 다시 결혼한다면 그 상대는 내가 될 거라고!” --- p.570-571
그들의 애정은 우연히 첫 만남을 가진 이후 서로의 거친 성격을 아는 것부터 출발하여 엄하고 단조로운 현실 틈바구니에서 피어나 자란 것이기에, 아주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는 견고한 애정이었다. 공동의 것을 함께 추구할 때 발생하는 이 우의(친구애)가 남녀 간의 사랑에 더해지는 일은 드물다. 남자와 여자는 일반적으로 노동이 아닌 쾌락을 통해 서로 엮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마련됨으로써 관계가 진전될 때, 이렇게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은 죽음만큼 강한 유일한 사랑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 뜨거운 사랑은 아무리 많은 양의 물로도 끌 수 없고, 홍수로도 삼킬 수 없다(구약성서 아가 8장 7절 인용?옮긴이). 이것과 비교하면 흔히 애정이라 불리는 정열은 사라지는 수증기만큼 덧없는 것이다. --- p.638-639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한 가지 일은 할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죽을 때까지 계속 갈망하겠다는 것.” ---「4장 가브리엘의 결심」중에서
“그들의 애정은 우연히 첫 만남을 가진 이후 서로의 거친 성격을 아는 것부터 출발하여 엄하고 단조로운 현실 틈바구니에서 피어나 자란 것이기에, 아주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는 견고한 애정이었다.”
19세기 영국 웨식스, 숙부에게 물려받은 드넓은 땅을 직접 관리하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고집스러운 밧세바 에버딘, 그녀에게 세 남자가 운명처럼 다가온다. 준수한 성품의 양치기 가브리엘 오크, 부유한 농장주 윌리엄 볼드우드, 잘생겼지만 난폭한 프랭크 트로이 하사. 늘 곁에서 신실한 우정을 보여주는 가브리엘과 절제되었지만 집착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볼드우드를 뒤로하고, 밧세바는 트로이의 위험한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트로이에겐 숨겨진 여자 패니가 있다. 패니의 임신과 죽음을 둘러싸고 이들 네 남녀의 운명은 예상치 못한 광란의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데……. 과연 누가 밧세바를 저 광란의 무리에서 건져낼 것인가? 밧세바는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